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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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중국인 | 우울함의 병원은 인문학의 소실

Gloomy Chines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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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중국인 | 량샤오성 | 우울함의 병원을 인문학적 역량에서 찾다

한 민족이든 한 나라든 인도주의 교육은 필수적이다. 동정심이 없는 인도주의는 인도주의가 아니다. 인도주의가 없는 인문적인 문화는 인문적인 문화가 아니다. (『우울한 중국인』, 430쪽)

초고속 성장의 뒤탈을 단단히 겪는 중국

중국에서 ‘개미족(蟻族)’은 개미처럼 작고 허름한 집에 모여 살면서 쉴 새 없이 이사를 하는 청년들을 지칭한다. 베이징에서의 청년 실업과 주거 문제를 다룬 2016년에 방영한 국내의 한 시사 프로에서 개미족의 실상이 공개되었는데, 아이 하나가 써도 비좁은 방에 2층 침대 두 개를 넣어 어른 네 명이 쓰고 있었다. 이들은 카메라 촬영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게임 삼매경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필사적으로 구직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등 보잘것없는 생활이지만, 이마저도 그들 뜻대로 지속하기는 어렵다. 아파트에 하숙생을 꾸역꾸역 채워넣는 것은 정부의 단속대상이라 이런 생활마저도 하루하루가 위태롭기 때문이다. 폭등하는 집값에 누추한 달팽이 집이나마 장만하려 빚을 냈다가 수렁에 빠진 두 자매를 담은 드라마 <워쥐(蝸居, 달팽이집, 베이징 TV, 2009)>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당국의 철퇴로 조기에 종영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 정부는 실상을 덮으며 체면 차리기에 급급하다.

제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도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이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중국은 개혁 • 개방 이후 연이은 고도성장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따른 상당한 역효과와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온 것도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청년 실업과 주거 문제는 중국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 단지 하나일 뿐이다. 극심한 빈부 격차, 환경오염, 지역 간 발전 및 소득 격차, 인플레이션 등 이제 막 자본주의에 발을 들여놓은 사회라면 응당 치르게 되는 통과의례 격인 진통부터 부정부패, 범죄, 도덕적 가치 상실, 세대 간 단절 등 현대화된 사회가 겪는 보편적인 문제까지,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사회주의 덕목의 상실이라는 중국 특색 문제들까지 보태져 중국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Depressed Chinese by Liang Xiaosheng
<드라마 '蝸居(달팽이집)', 사진 출처: 简书>

우울함의 원인을 인문학적 역량의 상실에서 찾다!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량샤오성(梁晓声)은 『우울한 중국인』에서 몸살을 앓는 중국인을 한마디로 딱 잘라 우울하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 우울함의 기원은 꼭 개혁 • 개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을 만든 것은 시간상으로 현실과 가장 가까운 역사이듯 이 우울함의 기원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로까지 올라간다. 청 왕조의 멸망과 서구 열강의 억압에 의한 우울함, 일본의 침략과 내전으로 말미암은 우울함, 대약진 • 문화대혁명 등 공산당의 시행착오가 양산한 우울함, 개혁 • 개방이 낳은 우울함, 그리고 불확실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가 떠안긴 우울함까지 그 오죽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양심을 잃은 문화, 타락한 문학, 경외심과 수치심의 상실, 인성 미달, 공민 의식의 미성숙, 역사적 고통 등 이 우울함의 병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따지고 보면 앞에 나열한 것들은 인문학적 역량의 상실로 귀결된다. ‘사랑’이란 단어가 세상에 넘쳐난다고 해서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넘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듯, ‘인문’이 유행한다고 해서 그 사회에 인문적인 요소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유행이 결핍의 결과라면,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문학 붐이 일어난 것은 그만큼 사회 곳곳에 인문적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량샤오성의 『우울한 중국인(郁闷的中国人)』은 중국의 과거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뼈아프게 진단한 책이지만, 중국만큼이나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각 개인에 인문적인 역량이 부족한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귀띔해 주는 책이다.

저성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고성장에 목을 맨 한국인은 현재의 성장률이 마뜩잖아 우울하다. 파이를 키우자고 말하면서도 모든 국민이 어렵게 노력해서 얻은 파이를 인간적으로 공평하게 나누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으니 우울하다. 용기를 내어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해도 귀담아듣기는커녕 ‘빨갱이’, ‘좌빨’이라고 몰아세우니 우울하다. 똥구멍이 빠지도록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위로해주지는 못할망정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더 노력하라고 질타하니 우울하다. 살고 싶어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우울하다. 죽고 싶어도 죽은 뒤에 욕먹으며 손가락질당할 것을 생각하니 우울하다. 물 한 방울만 한 희망이라도 티클 모아 태산이듯 모이고 모이면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는데 이 한 방울조차 모이지 않으니 우울하다. 우울함이 심해지면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고 더 진행되면 화병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인이 화병으로 다 뒈지기 전에 한국인의 우울함을 명확히 진단하고 일부만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명쾌한 처방이 하루빨리 나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면서...

인문과 사랑, 그리고 인연을 노래하는 책이라 그런지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애절한 이야기들이 문장과 단락 사이를 도도히 흐르면서 이슬방울처럼 촉촉한 정情을 영글어낸다. 『우울한 중국인』은 모두가 저자 량샤오성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소한 일상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가 화톳불에 고구마를 구워주시면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 이야기 속에는 웃음과 유쾌함도 있지만, 만만치 않은 인생의 쓴맛도 알게 모르게 숨어 있다. 우리가 경제적,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국과 긴밀하게 엮어 있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우정 어린 인류애적인 입장으로만 본다 해도 이 책에 담긴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 그리고 허심탄회한 비판과 인간적인 분노는 중국인이 처한 위기에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더 나아가 비슷한 문제를 겪는 우리에게도 매우 큰 의미가 있기에 ‘우울한 중국인’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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