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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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드라마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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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설산비호와 드라마 설산비호(2007)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소설 '설산비호'의 무대, 옥필산장>

소설 『설산비호』는 1권 정도의 분량이고, 험준한 설산 꼭대기에 있는 옥필산장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20여 년 전 묘인봉과 호일도 사이에 있었던 5일간의 결전과 마지막 결전의 날 일어난 호일도의 미스터리한 죽음, 묘가 • 범가 • 전가 • 호가와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의 관계, 피를 나눈 형제보다 의리가 깊었던 세 가문과 호가의 관계가 원수지간이 된 사연, 이자성이 남긴 보물 등 파헤칠 마음만 먹는다면 밑도 끝도 없는 방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낼 수 있는 사건들이지만, 이야기 대부분은 인물들의 회상 속에서 짤막하게 압축된 채로 전개된다.

사실 20여 년 전 사건 관계자들이 옥필산장에 모인 것은 우연은 아니다. 이날의 모임은 만찬을 위한 것도 아니고 친목 도모를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름 아닌 주인공 호비가 아버지 호일도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고자 마련한 계략의 일부다. 산장에 모인 사람들은 20여 년 전의 일에 대해 판사 앞에서 진술하듯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게 회상하는데, 독자는 추리소설 읽듯 이들의 회상 속에서 거짓과 진실을 분별해내야 한다. 이미 소설(혹은 드라마) 비호외전을 본 사람은 다 아는 진실이지만 말이다.

반면에 드라마 「설산비호」는 묘인봉과 호일도의 5일간의 결전부터 시작되어, 소설 「비호외전」 시기를 거쳐 소설 「설산비호」의 옥필산장 무대로 돌아오지만, 「설산비호」 원작 자체가 김용 작품치곤 짧은 분량이라 그런지 「비호외전」 분량이 끝나는 부분부턴 각색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것도 아주 자유분방하게 거침없이 펼쳐지는데, 원작을 한 번 이상 읽은 사람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소설 『비호외전』과 소설 『설산비호』는 등장인물 • 이야기 모두 이어지는 작품이지만, 집필 순서가 달라서 그런지 그 연결성이 그렇게 매끄럽지는 않다.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꽤 많다. 아마 김용은 『설산비호』를 완성하고 나서 의협 호비가 특히 마음에 들어 그를 위해 『비호외전』을 창작할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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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호비 역을 맡은 聂远(니에위안)>

호비의 염병할 염복은 여전하다. 정영소 • 원자의 모두 애처롭게 사별할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호 오라버니’ 하며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던 묘인봉의 딸 약란에겐 칼까지 맞는다. 참으로 여자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영웅에 걸맞지 않은 기구망측한 팔자다.

드라마 「설산비호」의 호비는 드라마 「비호외전」의 깔끔하게 변발한 호비보단 거칠고 어른스러운 외모지만, 성격은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웅 • 대협다운 풍모를 잃어버린 듯해 의아스럽고 아쉽다. 여자를 다루는 데도 너무 숙맥이고, 참을성 없는 성질과 단순 무식한 성격도 그렇고 산적 두목 같은 외모만큼이나 참으로 봐주기 곤란한 주인공이다.

아쉬운 점은 호비의 소년 시절 역을 맡은 류톈이(刘添艺)가 어른이 되어서는 배우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극 중에서 유일하게 호쾌한 액션을 보여주는 이가 바로 그인데, 왜 그랬던고 하니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천주시 무술 대회에서 태극권 • 태극검 부분에서 2등을 차지한 진짜 무술인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인재를 썩히는지 알 수가 없다.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맙소사, 나의 정영소가...>

드라마 「비호외전」보단 좀 더 질투심 많은 여자로 묘사되는 정영소.

그녀는 한 번은 몸을 받쳐, 또 한 번은 피를 받쳐 호비의 목숨을 구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을 연적 원자의의 생명과 맞바꾸는 보살 같은 행실을 보여준다. 드라마 「비호외전」에서도 그랬듯이, 원작에선 제일 못난이로 설정되었던 정영소(배우 钟欣潼 | 길리안 정)가 극 중에선 제일 이뻐 보인다.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강풍 맞은 듯한 사자머리로 미소를 짓는 원자의>

반면에 한 까불까불하는 원자의는 원작의 설정보단 좀 더 성숙하고 의젓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원자의를 연기한 배우는 朱茵(아테나 추)인데, 그녀의 나이는 길리안 정보다 무려 10살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면서 예쁘다기보단 잘 생겼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만, 이것보단 기억력 좋은 주성치 팬들은 그녀의 얼굴이 묘하게 낯이 익다는 점에 더 놀랄 것이다. 그녀는 영화 「서유기」 등 주성치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몇 편에서 주성치와 함께 열연했었다.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묘약란의 3단 발육>

어렸을 때부터 호비를 ‘호 오라버니’ 하며 아주 잘 따르는 묘약란.

약란은 호비 • 원자의 • 정영소과 함께 사각 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격 • 외모 모두 원작과는 판이하다. 원작에선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얌전한 규수로 나오는데, 드라마에선 천방지축 사고뭉치 왈가닥 소녀로 나와 호비를 꽤 애먹게 한다. 더 나아가 정영소가 목숨을 바치며 구한 원자의의 생명을 (본의 아니지만) 간접 일격으로 죽이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로 말미암아 호비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는 묘약란은 이에 대한 복수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훗날 본의 아니게 호비에게 칼침을 선사한다.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호색한으로 등장하는 복강안>

실제 역사적 인물이기도 한 복강안(福康安)은 호색한이자 황제의 부응에 보답하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로 나온다.

원작에서 복강안은 마춘화에게만 마수의 손길을 뻗는 것 정도에서 그치지만, 드라마에선 마춘화 • 원자의까지도 모르자 묘약란에게까지 흑심을 품는다. 지나친 호색 때문에 약삭빠른 전귀농에게 병권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한다. 『비호외전』 설정대로 복강안의 외모는 홍화회 총타주 진가락과 닮은 꼴로 나온다.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마지막까지 승승장구 일취월장하는 전귀농>

드라마 「설산비호」 등장인물 중 최고의 악역이자 모든 사달의 원흉인 전귀농(田歸農)은 배우 탄야오웬(谭耀文)이 연기했다.

그윽하게 쌍꺼풀진 눈에서 장국영의 모습이 스치듯이 얼핏 보이는 탄야오웬은 훌륭한 연기로 악랄하고 음흉하고 비열하고 후안무치하고 위선적인 전귀농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는데, 마치 토막 살해된 시체에서 눈을 돌리기 어려운 것처럼 외면하기 어려운 악당 중의 악당이다. 주연에 견줄만한 악역이 갖추어줘야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법이지 않겠는가.

황당하게도 전귀농은 주백통이 창안한 쌍수호박뿐만 아니라 작품 속 최고의 무공 호가도법과 묘가검법까지 익히며 무공은 비약적으로 급성장하고, 관직 또한 상관으로 모시던 복강안의 병부상서 자리를 빼앗는 등 악당치곤 참으로 많은 복을 누린다. 물론 이런 악당의 결말이 어찌 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올림픽 성화처럼 40편 동안 활활 타오르는 그의 꾸준한 악역 덕분에 「설산비호」는 그나마 봐줄 만한 드라마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마무리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무정하게도 삭막한 채석장을 주요 촬용 장소로 사용>
드라마 • 책 리뷰 | 설산비호(雪山飛狐, 2007)
<어른들보다 훨씬 나은 액션을 보여준 소년 호비>

김용 원작을 드라마화한 작품들이 다 그렇듯 원작과 비슷하면서도 안 비슷하고, 안 비슷하면서도 비슷한 것이 각자 나름대로 굴곡과 사연을 갖추고 있는데 「설산비호」도 마찬가지다. 「설산비호」는 원작을 고수하는 사람에겐 신경질 날 정도로 원작과 딴판이지만, 이미 원작을 읽은 사람에겐 같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복습하는 것이 아닌 각색의 묘미를 음미하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각색 수준이 예상을 뛰어넘더라도 원작을 읽은 사람은 이야기 흡수와 등장인물 소화가 더 잘될 것이라는 점에서 원작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드라마 「설산비호」는 자갈 채취장 같은 삭막한 촬영 장소도 그렇지만, 초반 묘인봉과 호일도의 성의 없는 무술 액션, 자랑하듯 노출된 와이어,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듯한 궁색한 음향효과 등 여럿 실망스러워 연출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중후반부턴 원작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므로 작가 김용이 잠깐 부활해 제삿밥 몇 숟갈 뜨면서 ‘옜다, 떡이나 먹어라’ 하고 던져주듯 ‘설산비호’를 개작했다고 생각하고 감상하면 나름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참고로 ‘설산비호’ 2022년 판도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하니 살짝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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