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연대기 | 애덤 프랭크 | 문명과 우주의 궤적을 아우르는 시간의 변천사
‘시간을 거쳐’라는 말은 새로운 물질이 역사에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제도가 달라지고 그 제도가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세대 간에 전파되어 진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 안에서’는 이 제도들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생활들을, 이를테면 학교생활과 직장생활 등을 매일 조직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들은 물질적 개입에서 시작해 새로운 제도 그리고 새로운 시간 경험에 이르기까지 마치 물 흐르듯 아래로 이어진다. 시계의 발명과 확산은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시간 연대기(About Time)』, 143쪽)
개나 소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디지털 시대
요즘은 개나 소나 휴대전화를 가지도 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전자 기기가 일상을 점유하는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GPS 등의 몇 가지 정밀한 기술이 더해져 사용자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에겐 1분 1초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확실하다. 상황에 따라 시간을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오직 손목시계 하나에 의존하던 지난 시절처럼 굳이 약속 시간을 정각으로 정할 필요도 없다. 시간을 쪼개고 나누어 필요한 일에 따라 적절하게 분배하는 효율성의 극대화로 생산성 역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한가하게 한눈을 팔며 이런저런 공상에 잠기는 시간이나 명상에 잠기는 여유 시간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매우 피곤한 삶을 살아간다 .
<시간에 관한 이야기> |
시간은 무엇인가?
도대체 시간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이다지도 쫓아다니며 피곤하게 하는 걸까.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은 물질의 한 종류인가? 아니면 영혼 같은 정신적인 무언가의 일종인가? 시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아니 무엇보다 정말 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 인류가 만들어낸 여타 문명의 이기, 혹은 문화 속에 내포된 수많은 제도나 기능 중 하나는 아닐까?
철학적이며 과학적이기도 한 시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인류가 구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짜내어 담은 것이 바로 애덤 프랭크(Adam Frank)의 『시간 연대기(About Time: About Time: Cosmology and Culture at the Twilight of the Big Bang):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까지, 최초의 도시국가에서부터 그리스의 논리적 우주까지, 뉴턴 역학에서부터 산업혁명까지, 그리고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디지털 혁명의 시기까지 시간은 물질과 과학, 문화의 발달과 변화 등 이 모든 것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고 진화해 왔으며, 이에 따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 역시 변화해 왔다. 사람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어떻게 얽혀왔으며 사람이 시간을 소비하고 경험하는 패턴이 시대의 우주론과 문화, 과학, 그리고 물질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즉 이 책 『시간 연대기(About Time)』는 시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시간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시간이 적용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시간에는 ‘소비’만 있고 ‘저장’은 없을까? 건전지에 전기를 저장하듯 시간도 저장했다고 필요할 때 꺼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망령되고 허황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늘 시간에 쫓긴 나머지 좀처럼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런저런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시간 전지’야말로 만병통치약까지는 못되더라도 대박 상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필요악처럼 군림하는 시간 앞에서는 그 누구도 이겨낼 장사가 없다. 그러나 『시간 연대기(About Time)』의 저자 애덤 프랭크(Adam Frank)는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소비하는 사람의 시간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문명과 기술, 문화, 즉 인류의 역사와 함께 변화해 왔으며 앞으로도 변할 것임을 . 이 말은 우리, 사회, 그리고 문화가 변한다면 시간에 쫓기는 불꽃 튀는 속도 경쟁에 더는 몸살을 앓을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이 같은 깨달음은 슬로시티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느리게 살고 좀 더 들 생산하고, 그러면서 개인과 가족, 더 나아가 사회의 여유를 찾는 것은 지금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원을 덜 소비하고 아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초가 될 수도 있기에 미래도 변화시킨다 . 기후변화,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의 전 지구적 위기는 자연의 순환을 무시한 무자비한 착취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면 이제 인류는 시간의 효율성이 가지는 의미 자체를 재고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적은 시간에 최대한 일하고 최대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고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면서 미래 세대들이 사용할 자원에 손대지 않으며 기후변화, 환경오염까지 고려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또한, 느리게 사는 것이 건강하고 오래 사는 비결 중 하나이지 않은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인류와 우주의 시간의 변천사를 통찰할 수 있다면 그 변화의 씨앗을 좀 더 쉽게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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