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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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나무 | 평범한 상흔문학이기를 거부

Windless tre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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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나무 | 리루이 | 평범한 상흔문학이기를 거부하는 문학적 자유로움과 체험적 풍부함

“저런 어린 사람이 되레 사람 놀리는 걸 배워? 난쟁이마을이 진짜 좋은 동네라면 난쟁이마을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사람은 실은 나무랑 같아. 어디서 낳든지 어디서 자라든지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없어. 다 팔자거든.” (『바람 없는 나무』, 226쪽)

어디서 태어나든 어디서 자라든 이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람은 나무와 같다. 바람이 불고 태풍이 몰아치는 세월의 모진 풍파를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는 점도, 나무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이 매우 드물듯 사람에게도 평온하고 평안한 삶은 드물거나 잠시뿐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공자가 이상적인 정치를 설파하고 굴원이 귤나무의 강직함과 꿋꿋함을 노래하던 시절부터 이미 인류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상을 말하고 꿈꾸었으며, 위정자들은 전쟁이나 혁명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피를 흘려도 이 모든 것이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응당 겪어야 할 ‘일시적’ 시련이자 고통이라고 백성을 위로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역사는 ‘일시적’을 ‘일상적’인 것으로 교묘하게 뒤바꿔버림으로써 백성에겐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없었다는 걸을. 그래도 그저 약간의 바람 정도는 견딜만했다. 문제는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태풍급 소용돌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단출한 집 한 칸에 살면서 그저 삼시 세 끼 굶지 않기를 바라는 원시적인 꿈을 품고 사는 난쟁이마을 사람들에겐 특급 태풍이나 다름없었다.

Windless Tree: Walking Mountains by Li Rui
<빗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듯...>

혁명 열사의 아들 왕재수는 아버지가 끝내 이루지 못한 혁명과업을 완수하고자 혈안이고,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옥수수 한 자루에 난쟁이마을로 팔려온 누안위는 자신의 결혼식 날 허겁지겁 국수를 먹다 급사한 둘째 동생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당 간부 류 주임은 아내와 자식들이 있음에도 누안위와 결혼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비굴함이 몸에 밴 난쟁이마을 남자들은 누안위가 류 주임을 따라 마을을 떠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부농분자로 낙인찍힌 다섯째 난쟁이는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혹독한 비판 대상이 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태평스럽게 사랑하는 당나귀들을 자식처럼 보살핀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흩날리며 사람들의 눈앞을 가리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며 입안을 텁텁하게 하지만, 서로 처한 각기 다른 상황을 이해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뿐더러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하든 각자가 처한 곤경에 골똘할 뿐이다. 왕재수나 류 주임은 혁명의 ‘혁’조차 모른다고 난쟁이들을 괄시한다. 이에 맞서 누안위와 난쟁이들은 (혁명이 그 무엇보다 파괴하려고 하는) 전통적인 양심과 인정으로 맞서면서 상황은 좀처럼 나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통과 혁명이 대립하고, 당의 지시와 인정이 충돌하고, 사욕과 양심이 맞선다. 이로써 가진 자나 없는 자, 힘 있는 자나 없는 자, 키 큰 사람이나 난쟁이나 모두 곤경에 처할 뿐이다. 곤경이 있으니까 소설을 쓸 수 있고 소설이 있으니까 곤경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안 불면 안 부는 대로 자리를 지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최선으로 알지만, 사람은 개인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저 흘러가게 놔두면 좋을 미약한 바람을 그악스럽게 태풍급으로 둔갑시켜 누군가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최악을 최선이라 고집한다. 이상적인 사회와 창조를 위한 발전적 파괴를 지지하는 혁명은 누군가에게는 최선일지는 몰라만, 전통적인 삶을 고집하는 난쟁이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을 못살게 구는 최악일 뿐이다. 모든 태풍이 그렇듯 혁명이 일으킨 태풍도 많은 곤경과 고난을 일으킨다. 리루이(李锐)의 『바람 없는 나무(无风之树:行走的群山)』는 혁명의 태풍이 일으킨 곤경과 고난, 그리고 태풍의 눈 속의 바람 한 점 없는 일시적 고요함을 기존의 논리적 서술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새로운 서술 방식으로, 즉 등장인물들의 갈마드는 사고 흐름과 난쟁이 똥자루 같은 거칠고 투박한 입담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문학적 자유로움과 체험적 풍부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이 텍스트 이해와 정독에 약간의 난해함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반면에 『바람 없는 나무』를 상흔문학이면서도 상흔문학이라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게 하는 이 작품만이 가진 독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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