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콘드리아 | 닉 레인 | 세상을 지배할 단 한 번의 진화
이는 별난 공생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며 생명의 산업혁명이랄 수 있는 생체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지구뿐 아니라 우주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생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복잡한 형태의 모든 생명체의 진화를 관장하는 운영체계를 알려준다. (『미토콘드리아』, 476~477쪽)
‘포스’의 원천 ‘미디클로리안’의 어원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험(Star Wars: Episode I - The Phantom Menace, 1999)」에서 제다이 마스터 콰이곤(Qui-Gon Jinn)과 그의 제자 오비완(Obi-Wan Kenobi)은 아미달라(Padmé Amidala) 여왕을 모시고 공화국으로 가던 중 우주선이 고장 나자 타투인(Tatooine) 행성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물상의 노예 소년 아나킨(Anakin Skywalker)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이때 범상치 않은 소년의 기상을 눈치챈 콰이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년의 혈액을 검사하는데, 이때 포스의(The Force) 결정체인 미디클로리안(midichlorian)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제다이(Jedi) 기사는 미디클로리안이 없으면 생명은 존재할 수도 없으며 포스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미디클로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설명을 하는데, 이 말의 어원이 바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다. 참고로 영문판 원서 제목은 ‘Power, Sex, Suicide: Mitochondria and the Meaning of Life’이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에서 미토콘드리아의 중요성은 제다이 기사의 설명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살아 있는 세포 속에 들어 있는 작은 발전기인 미토콘드리아는 지구 생명체 대부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한다. 미토콘드리아는 생명의 다양성, 유성 생식, 에너지 효율, 체내 열 생산, 자유라디칼(free radical) 누출, 아포토시스(세포 자살, Apoptosis), 노화, 퇴행성 질환 등 전반적인 건강과 생식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과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세상의 숨은 지배자이면서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덮인 미토콘드리아의 비밀을 추적함으로써 그들이 에너지와 성과 죽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이유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인상적인 이정표를 독자에게 남긴다 .
<포유 동물 폐 미토콘드리아, Louisa Howard / Public domain> |
자유라디칼과 항산화제
무엇보다 미토콘드리아와 관련에 흥미를 끄는 부분은 바로 자유라디칼과 항산화제의 관계이다.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전자의 흐름을 이용해 호흡연쇄(respiratory chain)가 발생하며 이 흐름은 세포막의 양성자 펌프를 가동시켜 에너지 화폐인 아데노신삼인산, 즉 ATP(adenosine triphosphate)를 만든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 의해, 예를 들어 과식하면 전자의 공급은 넘쳐나고 식후 휴식을 취하니 ATP의 수요는 변동이 없게 되는데, 이때 공급 과잉으로 넘쳐나는 전자가 호흡연쇄에서 이탈하여 산소와 반응해 자유라디칼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 신호를 감지한 미토콘드리아는 일단 산화효소를 더 만들어 호흡연쇄의 흐름을 좀 더 원활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 ATP 생산과 전자의 흐름을 분리시키는 짝풀림(Uncoupling) 현상을 유발하여 과도한 전자의 공급을 열에너지로 분산시킨다. 그래서 과식하고 나서 휴식을 취하면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자유라디칼이 감소하지 않으면 이때는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세포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한 미토콘드리아는 숙주에게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아포토시스, 즉 세포 자살 명령을 내린다. 이로써 문제가 생긴 세포는 괴사하기 전에 제거되고 그 찌꺼기는 주변 세포에 흡수되어 재활용된다.
이처럼 자유라디칼은 미토콘드리아와 전체적인 세포의 생리기능을 담당하는 변화의 신호다. 무조건 항산화제로 제거해야 할 해충이 아니다. 저자는 항산화제가 복잡한 미토콘드리아 체계에 적확하게 적용될지도 강하게 부정하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고 해도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충고한다 .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복제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암세포다. 만약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거짓 광고에 속아 약 같지도 않은 약에 의존하는 것보단 적게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현재로선 아마도 최상의 선택일 것이다.
‘생명, 그 경이로움’의 주인공 미토콘드리아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자신의 유명한 책,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The Burgess Shale and the Nature of History)』에서 만일 생명이라는 영화를 처음부터 몇 번이고 계속 재생할 수 있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인류가 파악한 지식 그대로 반복될까. 아니면 매번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까. 그 답은 미토콘드리아 속에 있다. 20억 년 동안 세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 일어난 단 한 번의 진화가 생물 다양성의 시발점이 된 진핵생물의 기원을 낳았고, 그 중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있었다. 만약 미토콘드리아가 없었다면 지구는 여전히 세균들로만 득실한 별 볼일 없는 행성으로 남았을 것이다.
고세균(Archaea)과 미토콘드리아 사이의 공생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20억 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생명 다양성을 이룬 행성을 찾으려는 인류의 희망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핵생물의 탄생이 20억 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는 매우 드문 진화라 할지라도 138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별을 헤아려보면 어딘가에는 분명히 지구와 비슷한 행성, 혹은 우리와 비슷한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상상해 보는 것도 크게 허황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지적생명체도 우리처럼 생명의 역사를 밝히고자 미토콘드리아의 비밀을 캐내려고 고심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모든 비밀을 밝히 덕분에 노화를 해결하고 장수의 열쇠까지 얻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르는 이 우주 공간이 너무나 아득해 서로 반갑게 인사도 못 나누고 유용한 정보도 교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면서...
솔직히 말해 과학교양도서는 읽기가 쉽지 않다. 전문용어와 졸업 이후 완전히 이별한 수학 공식이나 화학식이 난무하여 독자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소설가 같은 전문 작가가 아니고 논문을 즐겨 쓰는 학자들이다 보니 마치 학술 강의를 듣는듯한 고리타분한 문장과 딱딱한 어투가 유난히 읽기의 맛을 떨어트린다. 그럼에도, 꾸준히 과학교양도서를 찾다 보면 가끔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처럼 이야기꾼이 쓴 재미난 과학교양도서를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이 행운의 기쁨은 또 다른 과학교양도서를 찾는 원동력이 된다. 참고로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미토콘드리아』을 읽기 전에 이 책보다 먼저 나온 『산소: 세상을 만든 분자』를 읽기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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