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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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파시즘 | 갖지 못한 나라의 전쟁

Unfinished Fascism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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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파시즘 | 갖지 못한 나라가 가진 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

Original Title: 未完のファシズム: 「持たざる國」日本の運命 by 片山 杜秀
일본의 생산력이 가상적국 여러 열강을 좀처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격차에서 생기는 알력이야말로 1차대전 종결 직후부터 일본 육군을 계속 괴롭혀온 난제였으며, 현실주의를 어느 틈엔가 정신주의로 반전(反轉)시켜버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p114)

그들은 정말 ‘승리’를 확신했을까?

모두 알다시피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에 있는 미군 기지를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다룬 영화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 1970)」에서 진주만 공격을 성공으로 이끈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본국에서의 금의환향 자리에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라고 진주만 공격을 회상한다. 제독의 우려는 실현되었고, 역시 모두 알다시피 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참혹한 패망으로 끝났다.

당시 일본이 일찍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와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국력에서 아직은 영국이나 미국, 소련 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터무니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아시아라는 불모지에서만 빛나고 근사해 보이는, 서구 문명이 봤을 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비틀거리는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의도와 전쟁 중에 보여준 무모하고 비상식적인 전투 방식을 통틀어 우리는 보통 ‘광기’였다고 말한다. 미치지 않고는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들 중 일부는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왜 그들은 그토록 ‘광기’에 휩싸였을까. 설령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왜 행동은 다른 이들의 ‘광기’를 그대로 답습했던가. 그것은 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자들이 집요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세뇌 때문인가.

그들은 일본인의 미의식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사쿠라’를 이용하여 병사의 죽음을 미화했다. 사쿠라가 지듯 쓰러지는 젊은 병사들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육신은 전장에서 사라질지라도 영혼은 봄이 되면 사쿠라가 피듯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환생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먹혀들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물질적이고 물량적인 면에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밀리지만 강력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돌격만으로 미국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까.

Unfinished Fascism: The Fate of Japan,
<Japanese Americans in World War II / United States National Park Service / Public domain>

1차대전으로 ‘물량전’이라는 대세를 경험한 일본 육군

가타야마 모리히데(片山 杜秀)의 『미완의 파시즘(未完のファシズム: 「持たざる國」日本の運命)』에 그 해답이 들어있다. 저자 가타야마 모리히데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파시즘은 메이지 헌법에 저지당한 총력전 체제로서 미완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바로 1차대전이 일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운 저자의 의도다. 태평양 전쟁에서 보여준 일본의 거친 광기의 물살은 이미 전쟁 전부터 흐르기 시작했고, 그 원류는 1차대전을 평가하고 분석한 일본 육군 사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차대전은 일본, 특히 육군의 군사 철학에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차대전 전에 일어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러일전쟁의 승리를 판 가른 뤼순 전투에서 일본은 시체의 산을 넘고 넘어 승리를 이루었고, 그 시체는 러시아 병사의 시체가 아니라 일본 병사였다. 보급과 군사 과학에서 앞서는 러시아를 이기려고 선택한 일본의 전략은 인해전술과 전근대적인 공격 정신 일변도였다. 그것은 당시 메이지 후반의 공업생산력이나 자금력이 러시아를 상대로 탄환이나 포탄을 마구 퍼부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본이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연합군 측으로 가담해서 독일군을 상대로 치른 칭다오 전투에서는 이후 일어날 모든 전투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러일전쟁에서와는 다르게 포병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군 점령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나서 보병이 뒤처리하는, 이른바 물량전의 위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는 일본 전쟁사의 한 획을 긋는 중대한 경험이자 발견이었고, 이런 1차대전의 경험을 통해 일본 육군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물량전, 총력전, 과학전, 소모전, 보급전이라는 것을 절실히 배웠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 몇몇 육군의 장교들은 그러했다. 1926년에 출간된 <구주전쟁총서>의 제5권 「세계대전의 전술적 관찰」에서 러일전쟁에 대한 부분을 요약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근대전에 적합하지 않은 전법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간신히 이겼을 뿐이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육탄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일본 육군의 공격 정신도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관찰』은 그렇게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p97)
중요한 것은 기계의 정밀도, 정신력이 좌우하는 여지는 좁아지며, 마침내는 소멸해버릴 것이다. (p98)
완전히 기계 전쟁이다. (p99)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학력과 생산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일본 육군의 1차대전 학습 결산으로서 의 『관찰』은 그런 식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p99)

끝내 전수되지 못한 1차대전의 가르침

여기에서 바로 ‘가지지 못한 나라’가 ‘가진 나라’를 상대해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딜레마가 생긴다. ‘가지지 못한 나라’ 일본의 국력으로 ‘가진 나라’이자 미래 가상의 적인 소련이나 미국 같은 나라와 정면으로 충돌하여 물량전을 치른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것이 장기화된다면 일본의 파국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앞으로 일본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해도 다른 국가들 역시 발전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영영 상대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군인이라면 상대가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전쟁이 발발한다면 현재 상황에 걸맞은 최고의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미리 패배를 인정해 버린 채 전쟁에 대한 각오나 의지는 엿 바꿔 먹어 버린 군대라면 있을 필요조차 없다. 또한, 패배를 인정한다고 해도 전쟁이 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난제에 빠진 일본 육군은 어느샌가 ‘정신주의’로 기울게 되었다. 흔히 돈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려는, 그런 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독일이 1차대전 서부전선에서 보여준 타렌베르크 전투는 ‘갖지 못한 나라’가 ‘가진 나라’를 이길 수도 있다는 착각을 안겨주었다. 이 전투에서 독일은 13만 명으로 50만 명의 러시아군을 도륙하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포위섬멸전을 완성했다. 일본 육군은 이 전투를 통해 열세라도 기력과 창의, 궁리와 작전으로 속전속결 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렇다면 굳이 병참도 필요 없다. 그래서 일본 육군에 정신주의와 속전속결 사상을 널리 퍼트린 『통수강령』과『전투강요』에서 1921년 판에는 있었던 ‘병참’이란 항복이 1928년 개정 성안에는 아예 쏙 빠졌다.

그런 식으로 『통수강령』과『전투강요』를 최종 수정했던 황도파들은 ‘소질이 우등한 적에게는 적용되면 안 된다. 일본은 장비도 좋고 보급력도 충분한 적과는 절대로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라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군인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상 대놓고 그런 문구를 넣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군부의 패권을 계속 장악하는 한 전쟁 상대는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통수강령』과『전투강요』가 1936년 2 • 26 사건으로 황도파가 통제파에 패해서 실각하고 나서도 수정되지 않고 살아남아 그대로 미국에 적용된 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이다. 심오한 무공은 오직 책으로만 전수될 수는 없다. 그 무공을 체득한 사부로부터 구전을 통해 무공의 오묘한 이치도 함께 전수받고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그 무공을 완전히 터득할 수 있다. 즉, 통제파는 『통수강령』과『전투강요』의 구전으로만 전수될 수 있는 가르침은 받지 못하고 책에 적힌 글자 그대로만 믿고 따랐던 것이다. 그것은 ‘옥쇄(玉碎)’와 ‘반자이 돌격’, 그리고 ‘가미카제’로서 비참하게 연출되었다.

마치면서...

일본이 2차대전에서 보여준 광기의 또 다른 원인을 『미완의 파시즘』은 육군 철학에서 찾고 있다. 오오누키 에이코(大貫 惠美子)의 『미의식과 군국주의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ねじ曲げられた桜―美意識と軍国主義)』(이향철 옮김, 모멘토)는 그 원인을 문화적인 면, 즉 ‘사쿠라’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면, 가타야마 모리히데의 책은 군사적으로 풀어쓴 셈이다. 참고로 『미완의 파시즘』에서 ‘사쿠라’라는 단어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1차대전을 통해 배운 것을 어리석게도 헛되게 사용한 일본은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고 참혹하게 패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육이오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현재 남한은 병력 감축 중이다. 이것은 현대전에 걸맞은 물량전, 과학전, 소모전, 그리고 국가의 모든 산업 및 생산 시설과 온 국민을 조직적이고 통제적으로 총동원하는 총력전으로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도 ‘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몇 년 전 예비군 훈련 때 받은 구식 총은 아무리 해도 발사되지 않는, 케케묵은 카빈총이었다. 우리가 육이오로부터 받은 유산이 겨우 카빈총으로만 끝난다면 제2의 육이오가 발발해도 그때처럼 북한의 전격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리뷰는 2016년 3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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