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 가식적인 영광에 가려진 위대한 통치자의 진짜 얼굴
이집트의 파라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라메세스, 즉 람세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람세스 2세(이하 람세스)다. 람세스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일부를 이루는 19 왕조의 세 번째 왕으로 재위 기간은 BC 1279~121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 내에서는 왕의 휘하에 있는 아주 효율적인 선전기구가 람세스를 신적인 속성을 지닌 살아 있는 전설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렸다. 누비아에서 람세스는 이미 완전한 신이 되었다. 나일 강이 매년 적당히 범람하여 계속 풍년이 이어지고, 국제정세가 안정되고, 람세스가 자신의 동년배들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자식들이나 손자들보다 더 오래 살 만큼 예외적인 장수를 누리는 등의 행운이 겹친 덕에 이집트는 이웃나라들이 시샘할 만큼 안정되고 일관된 한시 대를 향유할 수 있었다. 행운이 따라서든 통치를 잘해서든 간에 이집트는 람세스 치하에서 번영했고, 백성들은 그에게 고마워했다.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 중에서)
람세스 2세 사후 이집트는 끊임없는 쇠락을 길을 걸으면서 오랜 기간 번영을 누렸던 람세스 2세의 시대는 돌아오지 않는 옛 영광이 되었고 치세를 이끌었던 그는 신적인 존재로까지 격상되었다.
조이스 타일드슬레이(Joyce Tyldesley)의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Ramesses: Egypt's Greatest Pharaoh)』는 신화와 전설 뒤에 숨겨진 람세스 2세의 인간적인 모습을 현존하는 증거들을 토대로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천 년도 더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매우 빈약한 증거와 자료를 근거 삼아 논리적으로 완성된 하나의 사실로 엮어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의 상상력과 추리가 적절하게 보태졌음에도 이야기 중간마다 빈 곳이 많이 드러나지만, 그 빈 곳이 많을수록 독자는 더욱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야기의 빠진 부분이나 앞뒤 연결이 느슨한 부분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움으로써 독자만의 대서사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람세스는 위대한 파라오가 되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위대한 파라오들은 하나같이 용감한 전사요, 강력한 건설자요, 교양 있는 저술가요, 영험한 신관들이었다. 그래서 파라오들이 신전 벽 등에 남긴 기록은 과대 포장된 승리뿐이었다. 람세스는 비용이나 노력을 절약하기 위해 전임자들의 업적과 기념물들을 가로채거나 정교한 양각 부조 양식이 아닌 속도는 빠르지만 정교한 맛은 덜한 음각 방식으로 기념물을 장식했으며 좀 더 많은 기념물을 남기고자 날림공사도 내버려 뒀다. 역대 왕들을 뛰어넘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람세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람세스의 명성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것이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러한 붕 뜬 명성에 가려진 인간 람세스의 진짜 모습은 더더욱 자취를 감춰질 것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는 람세스의 바람대로 위대한 파라오의 모습을 적절하게 잘 그려냈지만, 그것이 진정한 람세스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나일 강을 거슬러 1천 마일』에서 람세스 왕이 현대 이집트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듯하다고 말한 아멜리아 B.에드워즈는 “그의 사람됨을 서술하려는 모든 시도는 … 사실상 자신의 환상을 표현하는 일에 불과하다.”라고 갈파했을 정도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 무측천을 서술한 역사가들도 그러했듯 역사가들은 오래전 인물의 개성과 행위 동기들을 서술할 때 강한 표현이나 자신의 감정이 개재된 정서적인 표현들을 주저 없이 사용한다. 그래서 무측천은 그녀가 남긴 위대한 업적은 무시되고 음탕하고 잔인한 군주로만 알려진 때도 있었다. 람세스 역시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며 자신의 기념물을 남기는 대만 전념한 폭군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래서 신학자 케네스 키친은 “람세스 2세의 행동과 태도를 우리 자신의 사회적 가치들에 비추어서 교만하고 과대망상적이라는 식으로 쉽게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그런 면들은 우리 문화가 아니라, 그의 문화의 표준과 이상에 해당하는 것들과 비교해봐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람세스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하려면 일단 그 시대를 알아야 하고 그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와 자료들은 거대한 빙산의 단편적인 조각뿐이다. 그럼에도, 조이스 타일드슬레이는 그 불완전한 조각들에서 완전한, 완벽한 하나의 사실은 아닐지라도 놀랍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인간 람세스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퍼즐 조각들이다. 그리고 이 조각들을 가지고 한 편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완결짓는 것은 역시 독자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황제의 자리를 탐낸 무측천은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고 낙서(洛書)를 위조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하늘의 뜻'에 들어맞음을 알리고자 낙양에서 전례 없는 배낙수도(释洛受圖) 행사를 거행해 자신을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했듯이 람세스 역시 전설을 이용해 자신이 나라를 통치할 운명을 타고난 신의 아들로서 최소한 반신적인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는, 위대한 통치자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 사용한 편법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덟 남매를 둔 어느 부유한 미망인이 남긴 유언이다.
저는 이집트의 미망인입니다. 저는 여덟 아이를 키웠고, 그 아이들에게 제 신분에 걸맞게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춰줬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늙고 나니, 제 자식들이 더이상 저를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재산을 저를 모시는 아이들에게 줄 겁니다. 저를 소홀히 대하는 자식들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을 겁니다. (『람세스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 중에서)
이 유연을 남긴 미망인이 죽은 지 적어도 3천 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많은 부모가 같은 문제로 낙심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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