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1부 | 류츠신 | 좋은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첫사랑을 회상하듯, 옛 편지를 다시 읽듯
사랑하는 연인과 사별하는 애절한 고통과 심금을 그득하게 울리는 여운을 한 아름 음미하며 류츠신(劉慈欣)의 『삼체 3부: 사신의 영생(三体Ⅲ: 死神永生)』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친 것은 삼체 1부와 2부를 다시 읽고 싶다는 욕구다. 보통은 책을 읽고 나면 감흥이 채 사라지기 전에 글로 뭔가라도 남겨야겠다는 타성에 살짝 물든 우울한 의지가 발동하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저 읽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가슴 한쪽에 웅숭그리고 있는 이별의 슬픔을 연인이 남긴 오래된 편지를 읽고 또 읽는 것으로 치유하려는 불행한 남자의 몸부림과도 같다.
『삼체 1부』를 다시 펼쳐 들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다는 것에 대한 소박한 기쁨과 책을 읽기 전 따뜻한 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소소한 흥분을 오랜만에 다시 느낀다. 이럴 때만큼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소감을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고맙고 다행일 수가 없다.
좋은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삼체』 1부부터 3부까지의 독서 간격이 꽤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기억력이 조루 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류의 미래에 어떤 운명과 시련이 닥칠 것인지를 대강 알고 있음에도 『삼체 1부』는 새로운 기분으로 읽혔다. 이것은 좋은 소설은 읽을 때마다 다른 감흥을 줄 것이라는 나의 견해와도 일치하지만, 한편으론 ‘삼체’는 평범한 책들의 평범한 최후처럼 한번 읽은 다음 책 무덤에 묻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작품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거의 새 소설을 읽는 것과 진배없는 재미를 느낀 것도 의미 있지만, 이것보다 더 짜릿한 경험은 2부와 3부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복선과 마주칠 때다(이것은 세 권 모두 읽은 부지런한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특히 우주가 긴 시간 속에서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딩이(丁儀)의 예견은 차원 공격으로 종말을 맞는 태양계의 비참한 운명을 시사한다(류츠신은 이미 이때 태양계의 종말과 그 과정을 구상한 것일까?).
3부작 중에서 인류의 현재를 기술한 1부의 전체적인 스케일은 우주의 시작과 진화와 죽음, 그리고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예고하는 3부에 비하면 대단히 협소하다. 하지만, 스케일이 작기 때문에 세밀함을 논할 수 있으며, 그 세밀함을 철옹성처럼 둘러싼 탄탄한 구성과 과학적 논리는 탄복을 자아낸다. 그리고 막 싹 트기 시작하려는 문학적 때깔도 눈여겨볼 만하다. 벌써 몇 번째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한 SF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여태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를 읽지 않은 불운한 독자가 있다면, 지금 당장 1부를 펼쳐 보아라. 당신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었던, 아슴아슴 상상했지만 윤곽을 제대로 잡지 못해 우련했던 우주의 모든 궁극적인 것들이 마치 역사를 기록하듯 세 권의 책에 담겨 있다. 그것은 마치 천재인지 정신병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과학자가 마구 떠들어댄 괴이하고,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신비롭기만 한 이야기들을 사명감에 불타는 한 작가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진지하고 엄숙하게 정리한 신화 같다.
<드라마 '삼체'에서 선위페이 역을 맡은 리샤오란(李小冉)(출처: douban)> |
한 사람이 인류를 배반하는 것
『삼체』 1부엔 1부 나름의 사연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속한 인류와 문명에 대한 배반이다.
문화대혁명으로 아버지를 잃고 절망한 예원제(葉文潔)가 세상에 대한 복수로 인류의 운명을 삼체 문명에 버리다시피 내맡겼다면, 삼체 문명의 감청원 1379호는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획일적이고 메마른 문명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삼체 문명을 배반한다. 결과적으로 먼 훗날 두 문명을 잉태한 두 항성계 모두 사이좋게 파국을 맞이함으로써 예원제와 감청원 1379의 바람은 절반 정도는 들어맞게 된다.
한 사람이 인류를 배반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고, 이 시각에도 예원제처럼 사회가 저지른 불의나 억압 때문에 세상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세상을 원망하고 세상에 복수심을 품게 되는 원인이 어디 예원제가 경험했던 그런 일뿐이겠는가? 살인 사건을 일으키는 여러 동기 중 사소한 언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듯, 사람은 별것 아닌 일에도 흑심을 품고 살의를 내비치기 마련이다(그러나 이를 어쩌나? 복수심은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호혜에 입각한 협동적인 사회를 위해 진화한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인 것을).
인간에 대한 절망과 증오심으로 세상에 복수하겠다는 예원제의 의지가 홧김에 하는 말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는 실제적인 복수행위로 이어지는 그 순간은 마치 달빛도 숨죽인 깜깜한 한밤중에 목 없는 귀신을 마주친 것 같은 오싹함이 전신을 찌르르 마비시킨다. 그때만큼은 믹서기로 갈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밉고 가증스럽지만, 예원제가 겪은 고통과 시련을 생각하면 그녀를 맹렬히 비난하던 손가락과 혓바닥은 얼떨결에 벌거숭이 마초들이 바글대는 남탕에 들어간 알몸의 여자처럼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쩔쩔맨다.
만약 아무 죄도 없는 내 가족이 갖은 모욕과 치욕을 받으면서 개죽음보다도 못한 죽임을 당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 죄악스러운 모든 것들이 한낱 대중의 천박한 오락거리로 바쳐졌을 때, 과연 난 세상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린 예원제의 행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공감이라는 고차원 감정을 지닌 한 종으로서 그녀의 복수 의지를 가슴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아무리 우연일지라도 현실에선 예원제 같은 기회는 절대 오지 않는다. 설령 예원제처럼 인류를 증오하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3차대전을 일으키는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혼자만의 의지로 전 인류를 멸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류츠신은 예원제의 경우뿐만 아니라 청신(程心, 3부에 등장하는 검잡이로 인류와 태양계의 운명이 그녀의 선택 하나에 달려있게 된다)에게 인류의 운명을 맡겨버리는 불가해하면서도 이례적인 설정을 고집한다. 왜 그랬을까? 그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반사회주의적 성향 때문에? 아니면, 극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소설적 특징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정답은 작가만이 알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원제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먼 훗날의 인류와 태양계의 운명을 도박판 위를 굴러다니는 주사위를 멋쩍게 바라보는 판돈 정도로 만들어버린 그 선택 하나 때문에 『삼체』 2부와 3부가 빚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삼체’ 시리즈는 어떤 면에선 지독하도록 염세적인 3부작이다. 그래서 내 취향에 찰떡처럼 딱 달라붙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삼체 1부 | 류츠신 | 외계 지적생명체, 인류의 구원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삼체 2 암흑의 숲 | 류츠신 | 엄밀한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이 일궈낸 놀라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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