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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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 크래시(Snow Crash) | 닐 스티븐슨

스노 크래시 | 닐 스티븐슨 | 코로나 다음은 신경 언어학적 바이러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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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묘사하는 가상 세계의 두 가지 특징

공상과학소설이 묘사하는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 기반의 허구적 세계를 다룬 일반 소설처럼 인류사(또는 현실)와의 연속성 • 연관성을 고려해 볼 수 있는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로 말이다.

후자는 주로 (스타워즈의 유명한 오프닝 자막인) ‘오래전 머나먼 은하계에’ 등으로 시작되는 SF소설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소설에서 묘사되는 세계는 인류사와 연속성 • 연관성이 없거나 희미한 것이 특징이다. 고로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문명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세계는 다중 우주론의 다중 현실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한편으론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로 참신한 맛이 있다. 독자의 공상력을 신랄하게 자극하고, 현실 도피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전율 넘치는 작품들이지만, 작가의 과감하고 도발적인 창의성과 과학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밋밋하거나 허무맹랑한 삼류 소설로 전락할 수 있다.

전자는 대체 역사 소설처럼 일어날 법한 진정성과 현실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후자보다 좀 더 진지하게 읽힐 수 있는 깊이 있는 SF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작가는 현실과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 왜냐하면, 인류사 • 현실과의 연속성 • 연관성을 고려하려면 인류사와의 인과관계를 적절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공상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현재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길고 긴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완성하려면 과학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 • 사회 • 문화 등의 분야별 지식도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면, 작가의 의도를 크게 엇나간 삼류 판타지 소설로 읽힐 수 있다.

지금까지 읽은 SF소설 중 전자에 근접한 작품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다. ‘삼체’에서 묘사되는 ‘미래’는 3부작이라는 장편에 걸맞게 인류사에서 가지를 쳐 나간 또 다른 현실로부터 부지런히 나름의 역사를 쌓아가는 열정과 노력의 대단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삼체’의 3부는 지구 연대로 18903729년이 후의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그 ‘미래’는 ‘오래전 머나먼 은하계’처럼 생소한 세계가 아니라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지금까지 읽은 SF소설 중 후자에 근접한 작품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은 필립 K. 딕(Philip K. Dick)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이다.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가 주연한 불후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언젠가 닥칠지 모를 (당신과 나처럼 진화적인 관점에서) 자연적으로 잉태된 생명체와 (인간의 기술로 잉태된) 복제 생명체와의 윤리적 • 도덕적 쟁점을 다루고 있다.

적당히 현학적이고 적당히 읽을 만한 문장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스노 크래시(Snow Crash)』의 어떤 부류일까?

『스노 크래시』는 ‘삼체’처럼 아주 긴 시대, 혹은 아주 먼 미래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핵심 소제가 ‘수메르 문명’과 ‘바벨탑 신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스노 크래시』에 등장하는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의 탄생 과정은 ‘수메르 문명’과 ‘바벨탑 신화’에서 단순하게 소재를 빌린 것이 아니라 잘 쓰인 역사 소설처럼 역사와 신화의 빈틈을 재치 있게 낚아챈 다음 그 빈 곳에 독창적인 해설을 가미했다는 점에서 매우 신박하다. 그 현학성은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彦) 소설에 등장하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대뜸 떠올리게 할 정도로 요란하기도 한데, 모처럼 뇌의 휴식을 취하고자 가벼운 소설을 찾은 독자라면 청천벽력 같은 지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런 만큼 기대 이상으로 읽을거리가 풍부해서 좋다.

이뿐만 아니라 『스노 크래시』는 SF소설 같은 장르소설에선 간과되기 쉬운 문장력도 보통 수준 정도는 갖춘 작품이다. 마치 ‘읽고 싶으면 읽고, 읽기 싫으면 책을 덮으면 그만 아니냐?’라고 허세를 부리는 듯한 냉소적이고 강단 있는 말투와 과장되고 조소적인 묘사는 나름의 ‘읽는 재미’가 있다.

PC 매거진 - 1992년 6월
<PC 매거진 - 1992년 6월(출처: 구글 도서)>

2008년이 아닌 1992년에 출간되었다!

사이버펑크(Cyberpunk) 사회를 다룬 『스노 크래시』가 출판된 연도는 2008년이 아닌 1992년이다. 1992년이면 PC 잡지에 인텔이 486SX 시대를 개막했다는 광고가 실리기 시작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선 윈도우 3.1을 출시하는 해이다. 그 이듬해에 친구 집에서 (그 당시엔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살만한) AT(286) PC로 ‘남북전쟁’이란 게임을 했던 기억도 있다.

만약 이때 『스노 크래시』를 읽었더라면 주인공들이 현재의 VR 헤드셋 비슷한 고글을 착용하고 3D로 구현된 가상현실인 메타버스(Metaverse)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양한 아바타(Avatar)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꽤 벅찼을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3D 기술과 광대역 네트워크로 구현된 가상현실을 이해시키는 일이 조선시대 사람에게 PC와 휴대폰 기술을 이해시키는 일만큼이나 애를 먹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요즘 젊은 세대에게 새 휴대폰 기능을 설명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스노 크래시』의 기술적 창발성을 음미하고 있노라면, 이 재미나고도 놀랍도록 흥미진진한 책이 2008년에서야 한국어로 번역된 이유 중 하나는 소설 속 세계와 현실의 엄청난 기술적 괴리감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턱대고 소귀에 경을 읽어주기보다는 소가 조금이라도 경을 알아들을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만약 내가 1992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래서 이 SF소설을 서문에서 언급한 ‘인류사(또는 현실)와의 연속성 • 연관성을 고려해 볼 수 있는 세계’라는 억지스러운 기준으로 분류했더라면 ‘가상현실’이라는 놀라자빠질 개념으로 인해 전자가 아니라 후자로 분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메타버스’가 현실적인 기술로 내려앉았다는 점에서 후광을 발하기는 어려우므로 후자가 아닌 전자로 분류한다.

완전한 개인적 추측이지만, 아마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S & M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개념을 떠올리면 그도 이 책을 최소 한 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 광고를 보면서 라면을 먹는 남자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가 뭐 별거 있나?

『스노 크래시』는 바이러스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이 해석하는 바이러스 개념은 작금의 인류를 괴롭히는 코로나/독감 바이러스 같은 생물학적인 바이러스보다 더 확장된 개념이다. 인간의 두뇌를 숙주로 사용하고 DNA뿐만 아니라 언어 정보를 복제하며 일련의 행동까지 변하게 할 수 있는 바이러스. 그것은 일명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라고 불리고, 한편으론 ‘문명 바이러스’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지는 바이러스와 마약과 종교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게 뭐냐는 후아니타의 냉소적인 질문에서 잘 드러난다. 종교, (마르크스주의 같은) 사상, 가짜 뉴스, 가십, 소문, 광고 등이 전파되는 과정과 원리는 바이러스처럼 인간의 머릿속에서 복제된 한 조각의 언어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각종 바이러스에 몸서리를 치고 인터넷이라는 정보 홍수에 잠식되어 사는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바이러스가 넘치는 바이러스 홍수 속에서 사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언어와 지역으로 인한 문화적이고 지리적인 장벽이 기술과 교육과 경제 때문에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독교』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는 바벨에 사는 노아의 후손들이 대홍수 후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시작하는 것에 노하여 그 사람들에게 방언을 쓰게 하였고, 이 때문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아니한 노아의 후손들은 의사소통할 수 없게 되어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스노 크래시』는 ‘바벨탑 신화’로 언어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 덕분에 수메르 문명을 붕괴시킨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이 멈추었다고 말한다. 즉, 전 인류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인류는 수메르 문명처럼 진즉에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여호와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발상이 매우 께름칙하기는 하지만, 다음 책을 ‘수메르’ 관련 책으로 결정짓게 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다.

사실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가 뭐 별거 있나? 멀게는 공산주의 • 나치 • 파시즘 • 제국주의 • 우생학 같은 사상이 인류를 전쟁 • 학살 • 차별 등의 혼란과 파괴의 혼돈으로 빠트렸던 사실을 잊은 사람은 없다. 마오쩌둥 말 한마디에 수억 인민이 요동치고 대륙이 통째로 들썩였던 중국의 현대사는 어떠한가? 가깝게는 언론과 인터넷에 유포된 오염된 정보와 가짜 진실에 현혹되거나 선동된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도 하지 않을 사회적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일이 다반사다. 일상적으론 광고나 먹방을 보고 부지불식간에 솟구치는 식탐을 참지 못해 기어코 뭔가를 먹고야 말았다면, 이 역시 광고라는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 영향 때문 아니겠는가? 나 또한 ‘책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그것을 ‘책 리뷰’를 통해 전파하는 숙주 노릇을 보란 듯이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류가 예전보다 똑똑해졌다고 말하지만, 그 지나친 똑똑함이 자만과 자기기만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또한 사람들은 ‘똑똑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똑똑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복제 능력이 뛰어난 정보 숙주 노릇을 하게 된다. 수메르 문명을 붕괴시킨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가 또다시 등장하여 인류 문명을 붕괴시키는 일이 닐 스티븐슨만의 공상만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참고로 수메르 멸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신경 언어학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라 엘람 연합국(자그로스 종족 동맹군)의 침공이었다. 수메르와 엘람은 지금의 이라크와 이란으로 보면 된다. 그 두 나라는 인류 문명 시작 때부터 앙숙이었고, 그 머나먼 선조 때의 앙금을 아직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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