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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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장편 SF, 완전사회(完全社會) | 문윤성

완전사회(完全社會) | 문윤성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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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해진 남성은 말살된다!

진화생물학적인 견지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성은 진화적으로 한 번만 도약하면, 즉 정자 생성 능력 하나만 생겨나면 자웅동체가 될 수 있으므로 남성보다 진화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우수하다고.

그렇지만 자연선택은 어느 종이 특정 기능을 갈망한다고 해서 얻게 되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 같은 것이 아니다. 진화사에서 새로운 갈래를 뻗어나가라면 강력한 선택압이 작용해야 하는데, 지구 동물계 대부분이 자웅이체인 것을 보면 호모 사피엔스 여성이 자웅동체로 진화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과학 기술로 현재의 여성을 자웅동체 비슷한 존재로 변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가령 수컷 없이 정자(精子)를 무한히 복제한다던가, 아니면 난자만으로 아기를 만드는 기술이 생기면 된다.

이런 생태계를 거스르는 번식 기술이 사람에게도 적용될 정도의 실용화 단계까지 발전한다고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과학적 탐구와 기술 축적을 위한 실험실에 국한된 이야기다. 불임 치료 등의 특수한 목적이 아니라면 진화의 토대를 뿌리째 흔드는 기술이 인류 사회에 보편화되는 것엔 무엇보다 남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내가 성 관계없이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면 남편은 무어라고 대꾸할까? 아마 대부분 남편은 잠시 얼빠진 얼굴을 보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 후 푸짐한 욕설과 함께 분노의 주먹을 날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어찌하여 남성이 소멸한 사회라면 어떨까? 이런 막다른 환경이라면 인류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난자만으로 아기를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로 문윤성의 SF소설 『완전사회(完全社會)』처럼 말이다. 내 이야기와 소설이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에선 기술이 먼저 구축되고 그 기술로 인해 불필요해진 남성이 말살된다.

남성은 사라져도 성 분쟁은 남는다

한국 창작 SF 문학사상 최초의 성인용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지성인이라면 한두 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뿌듯하게 공상했을 법한 이상 사회의 조건으로 남성의 소멸을 상정한다. 남성이 소멸하면, 혹은 남성성이 사라지면 인류는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

일단 ‘여인 천하’에서는 ‘성 선택’으로 인한 모순과 갈등이 없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고려하는 남성이 제거되니 전쟁이나 테러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는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문윤성이 묘사한 ‘여인 천하’, 즉 진성(眞性) 사회는 전 세계가 통일된 하나의 국가로서 의식주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물질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사회다. 정말 좋지 아니한가?

하지만, 남성이 사라졌어도 여성으로서의 성 본능은 남아 있다. 이것은 누군가 ‘남성’ 역할을 맡음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남성’을 거부하는 진성 사회의 건국 이념을 생각하면 반동이며 퇴보다. 정부의 탄압과 가혹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불법 섹스를 즐기는 ‘께브’들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께브’들에 대한 반동으로 번식 • 성과 관련된 모든 기능을 제거한 중성화 인간 ‘두버무’가 등장하여 스스로 멸종의 길을 걷기도 하고, 일부는 본성에 따라 자웅 사회로의 회귀를 희구한다. 진성 사회는 남성이 제거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줄 알았던 ‘성 분쟁’이 재등장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진통을 겪는다.

남성적 횡포는 합리적으로 제거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남성 자체의 말살은 여성에게도 이롭지 못했다. 남성은 사라져도 성의 분쟁은 남았다. 이것이 161년이란 긴 수면 끝에 깨어난 20세기를 대표하는 과거의 특사 우선구 눈에 비친, 겉으로는 완벽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진성 사회의 내부 갈등이다.

여성만 존재하는 미래 사회

구세대를 대표하는 ‘완전 인간’ 우선구의 수난사

일단 ‘여인 천하’라는 설정이 남성의 마초적인 섹스 판타지를 주책없이 부추기고, 우리의 주인공 우선구에게도 그런 흐뭇한 기회가 찾아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이상야릇한 공상에 빠져 팬티를 축축하고 찝찔하게 적실 소재거리를 찾아온 것이라면 잘못 찾아와도 한참 잘못 찾아왔다. 20세기가 선정한 완전 인간답게 우선구는 백만 미녀들의 교주가 되는 위기 아닌 위기 상황에서 고결한 인격을 발휘해 스스로 탈출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고난 속에서 많은 것을 깨우친 옛 선인들처럼 과거가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을 푸드덕 떠올리고 파드닥 깨우친다. 그의 사명이란 다름 아닌 미래의 인류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룩한 일이다.

이런 계몽적 설정이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 마음속 한구석에 이슬처럼 맺어지는 감상이나 여운을 물을 탄 우유처럼 다소 밋밋하게 만들지만, 이 소설이 쿠바 사태가 인류에게 경고한 3차 세계대전의 위기감과 아찔함이 생생히 남아 있던 1965년에 발표한 작품임을 생각하면, 그렇게 맥 빠질 일도 아니다. 그것보단 20세기의 유일한 생존자 우선구가 161년 후의 미래이자 여인 천하인 진성 사회에서 겪는 수난사는 예수만큼 파란만장하지는 않더라도 가히 볼만한데, 예를 들어 우선구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완전 인간으로 추천한 20세기의 수많은 지성인이 161년 후 우선구가 구세대의 문제 인물이자 지명 수배 중인 탈옥수가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읽다 보면 저도 모르게 방귀 뀌듯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되고, 드라마 같은 영상물로 제작하면 (특히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진성 사회 사람들을 미소년 배우들이 여장남자로 연기하면 대단히 볼만한 것이다!!!) 나름 재밌고 신선하게 보일 미래 세계도 준비되어 있으니 간단하게 읽을거리는 충분히 될 것이다.

냉장 캡슐에 보관된 인간

미래를 예견한 작가의 공상력

SF 장르이니만큼 공상과학적인 측면을 빼놓을 수 없는데, 소설에서 등장하는 미래 지향적 기술은 인터넷도 없고 읽을만한 과학 서적도 거의 없던 시대임을 고려하면 가히 놀랍다. 특히 사람을 늙지 않고 보존할 방법으로 냉동이 아닌 냉장을 선택한 것은 특이하다. 『삼체』로 아시아 최초로 휴고상을 탄 류츠신도 냉동 보존을 선택했고, 영화 「스타워즈」에서 한 솔로는 냉장이 아닌 냉동된다. 많은 SF 작품에서 냉동 기술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구현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한편으론 이야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풀어나가기가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술적인 세부 설명 없이 그냥 ‘얼렸다’, 그리고 ‘해동했다’라고만 말해도 다들 알아들으니까. 반면에 사람을 0도에 가까운 저온 상태에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려면 지속해서 영양을 공급해 줘야 하고 대소변도 해결해야 하며, (정상 상태보다는 매우 더디겠지만) 피가 통하는 상태로 오랫동안 누워만 있으므로 욕창도 방지해야 하는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꽤 많다. 문윤성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회전 운동하는 침대와 몸에 들어가면 기화되면서 영양분은 흡수되고 배설물인 공기는 체외로 방출되는 고체 공기 음식을 고안해 낸다. 실현 여부를 떠나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다.

또한, 소름 끼치는 것은 진성 사회의 발생적 근간인 난자만으로 아기를 만드는 기술이다. 작가는 순전히 상상만으로 만든 기술이겠지만, 2004년 일본 도쿄농업대 고노 도모히로(河野友宏) 교수팀은 한국 바이오 벤처기업 마크로젠과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난자만으로 새끼 쥐를 태어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작가는 과연 이를 예견했을까?

이런 놀라운 공상력과 비교하면 세련되지 못한 문장과 멋없는 말투는 그렇게 큰 흠은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나처럼 한 구절 한 구절을 탐미하듯 ‘읽는 재미’를 중시하는 독자에겐 다소 아쉽기는 하다. 반면에 라이트 노벨 같은 초등학교 정도 수준의 단순한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에겐 시원하게 읽힐 것이다.

한국 SF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어떤 수준까지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문윤성의 『완전사회』는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에 비하면 이야기의 깊이, 필립 K. 딕 작품에 비하면 철학적 깊이가, 하오징팡(郝景芳)의 『고독 깊은 곳(孤独深处)』에 비하면 문장력과 감수성 등에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평가가 다소 가혹한가? 지금은 잘 안 쓰이는 시대적 틈새를 상기시키는 단어들이 풋풋하고, ‘여인 천하’라는 단성(單性) 사회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성(sex)’에서 찾아낸 것이 번득이는 아이디어인 것은 사실이지만, 옛것이고 선구적이라고 해서 무작정 추켜세울 수는 없는 법, 그리고 리뷰는 정직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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