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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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전 | 유쾌한 좀비 문화에 대한 담론

Zombie dictionary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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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사전 | 김봉석 외 | 유쾌한 좀비 문화에 대한 담론

종교적으로 생각한다면, 좀비는 일종의 부활이다. 성경의 묵시록에서 종말이 오면 죽은 자들이 깨어난다고 했다. 죄 없는 자들은 하늘로 들어 올려 천국으로 향하고, 지상에는 영혼 없는 죄지은 자들만이 남는다. 살아 있는 시체란, 바로 그들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생각한다면, 바로 우리들 현대인이 천국으로 가지 못한 '살아 있는 시체'인 것이다. 조지 A. 로메로의 좀비 3부작에서, 좀비는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한없이 가련하면서도 포악한 살인자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종종 광기의 지배를 받는 우리들. 좀비 3부작이 심오하면서도 예리한 문명 비판으로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다. (『좀비사전(김봉석, 임지희 공저)』, 115쪽)

공포물 ‘마니아’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공포 영화를 즐겨 보고 그중에서도 ‘좀비(Zombie)’가 등장하는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좀비의 유래에 대해 궁금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이 『좀비사전(김봉석, 임지희 공저)』.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좀비에 대한 모든 것 - 인물, 음악, 만화, 영화, 소설, 게임 – 을 일반적인 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정리했으며, 그 행간에는 팥빙수 위에 얹힌 다채로운 고명처럼 저자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명쾌한 비평이 살포시 묻어 있어 자칫 딱딱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사전’을 맛깔스러운 별미로 둔갑시킨다.

Zombie Dictionary by Kim Bong-seok and Im Ji-hee
<바로 우리가 원하는 세상!>

얼핏 생각하면 좀비는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에이리언(Alien, 1979)에 등장하는 괴물처럼 영화의 순수한 창작물로서 대중화된 크리처로 보일지도 모르나, 사실 좀비는 나름 역사적 근거가 있는 괴물로서 그 시원은 부두교의 주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부두교 주술로서의 좀비는 영화처럼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것은 아니고, 독 같은 강력한 약을 먹여 마치 죽은 것처럼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한 다음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다시 약을 먹고 깨어난,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한다. 부두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상자를 의지력이 없는 노예로 만든 다음 부려 먹었다는 속설이 있으며, 이런 주술을 행하는 흑마술사를 보커(Bokor)라 부른다. 애니메이션 『죽은 자의 제국(屍者の帝国, 2015)』에서는 시체를 과학의 힘으로 부활시켜 노예 노동처럼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며, 과학적으로도 가사 상태에 빠지면 산소 공급이 중단되어 뇌세포가 파괴되기 때문에 보커의 약을 먹고 오랫동안 가사 상태에 빠졌다면, 깨어난다 하더라도 좀비 같은 무뇌충 인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좀비를 최초로 영화의 소재로 사용한 작품이 빅터 핼퍼린 감독의 「화이트 좀비(White Zombie, 1932)」이며, 지금같이 사람을 물어뜯고 물린 희생자가 다시 좀비가 되는 캐릭터로 정착된 것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부터다.

많은 좀비물이 자극적인 폭력성과 잔혹성, 단발적인 오락성에 기인한 상업적 성공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사실이지만, 몇몇 작품들은 그런 영민한 상업성 속에 사람의 분노와 차별, 폭력성, 인류의 종말 등 다양한 주제를 내포하기도 한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은 일찍이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2 - 시체들의 새벽(George A. Romero's Dawn Of The Dead, 1978)」에서 무의식, 무뇌충 상태에서도 쇼핑몰로 몰려드는 좀비를 통해 소비지상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현대인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 좀비물을 사회적 • 정치적 주제로까지 끌고 갔다.

우리의 질긴 살과 내장, 푸석푸석한 뇌를 지독히도 갈망하는 ‘좀비’가 실제로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좀비 워크’, ‘대(對) 좀비 훈련’, ‘좀비 경제’, ‘좀비 PC’ 등 어느덧 ‘좀비’라는 단어는 (사람을 포함한) 사람이 참여하는 문화와 그에 관련된 물질 등의 부정적인 상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다 ‘좀비 사회’, ‘좀비 국가’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저 살점을 물어뜯기만을 갈망하는 좀비에게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일까. 그것도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뭔가를 품은 두려움과 연민이 고루 썩인 불안한 시선으로 말이다. 숨 막힐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품위나 체면 같은 겉치레는 쓰레기통에 처박고 오직 식욕에만 충실한 단순무식한 삶을 살아가는 좀비가 부러운 것일까? 아니면, 이 염병할 세상이 좀비로 가득 차도록 저주라도 한바탕 퍼붓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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