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스토리 | 짐 배것 | 지성 밑에 숨은 인간성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 쪽이 훨씬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존의 이론에서 무언가가 틀렸다는 뜻이고,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쪽에 이미 100달러를 걸었다.” (『퀀텀 스토리』, 607쪽)
지금부터 약 110년 전,그러니까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 대다수 물리학자는 1900년 영국과학진흥협회(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1831년 설립)의 강연석상에서 “이제 물리학은 정점에 도달했고,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관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뿐”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의 말에서 드러나듯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거의 종착역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그러나 자연은 이러한 인류의 오만을 조롱하듯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꿀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난해한 화두를 대수롭지 않게 하나 툭 던진다. 그것은 바로 열역학의 대가 막스 플랑크(Max Planck)를 통해 서막이 열린 양자역학(quantum mechnics)이었다.
양자역학의 기반 형성에 초석을 쌓는 데 이바지했던 아인슈타인(Einstein)조차 훗날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불확정성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만큼 양자역학은 과학자들에게 낯선 학문이었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할 만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그 자신이 양자역학의 한 부분을 창조하다시피 했으면서도 양자역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위대한 석학들조차 때론 거부감을 느끼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거시적인 세계에 사는 우리에겐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져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양자역학은 어느덧 우주를 기초하는 물리학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입자 가속기들의 눈부신 진보와 활약으로 힉스 입자를 발견함으로써 양자역학 이론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되었다. 이제 양자역학은 진지하게 세상의 기초와 원리에 대해 사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닥트리게 되는 이론 중의 이론이다.
물리적 실체와 통상적인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불확정성이라든지, 누군가 입자를 관측하는 순간 입자의 파동성은 붕괴하면서 거시적인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고전물리학의 측정 가능한 입자로 변하고, 그 붕괴한 입자와 양자적으로 얽힌 다른 입자와의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건 상관없이 파동성이 붕괴한 순간 유령 같은 원거리 작용으로 붕괴 정보가 전달된다는 등 사실 일상적인 상식을 크게 벗어나는 양자역학에 관심을 둔 독자는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는 이 난해한 이론을 일반인에게 권할 적당한 이유를 찾는 것도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렇다고 책 중간마다 종종 등장하며 골머리를 앓게 하는 수학적인 내용에 지레 겁먹거나 깊이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짐 배것(Jim Baggott)의 『퀀텀 스토리(The Quantum Story: A history in 40 moments)』는 막스 플랑크를 시작으로 한 양자역학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춘, 양자역학의 110년 역사를 다루는 책이니만큼 당연히 양자역학이 책 중심에 말뚝박고 거만하게 버티는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퀀텀 스토리』는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는 양자역학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과 이해를 갖춘 독자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차피 나처럼 양자역학과 맞붙어서 이길 자신감이 없다면 일찌감치 패배를 시인하고 과감하게 초점을 양자역학의 이론에서 약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으며 진정한 가치 또한 알 수 있다.
『퀀텀 스토리』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양자역학을 둘러싼 수많은 과학자의 도전과 좌절, 고뇌와 투지, 협력과 견제. 시기와 질투 등 양자역학史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던 중요한 사건 40가지를 통해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냉철하고 이지적인 모습에 대한 일반 사람들이 품는 모종의 경외심은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없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성정 앞에서 자연스럽게 걷힌다. 매사 엄숙하고 진지한 학자적 삶에서도 툭하면 이론으로 예측한 입자의 발견 여부를 둘러싸고 내기를 하던 철부지 소년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들에 대한 이유 없는 경계심을 느슨하게 한다. 양자역학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희비를 맛보거나 엇갈던 그들의 웃음과 눈물, 승리와 실패, 유명과 무명의 삶에서 독자는 어느덧 친근함과 동정심마저 느낀다. 이들의 삶은 일반적인 삶과는 유리된 이론물리학이라는 배경과 실험실이라는 장소에서 활동한다는 것만 빼고는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는 ‘이론’, ‘실험’, ‘학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알게 모르게 대중과의 괴리감을 형성했던 과학자들의 배일을 한 꺼풀 벗겨 내고, 대중매체를 통해 가끔 보도되는 과학 분야의 성공적인 업적 뒤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경쟁, 쓰라린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역경의 순간을 조명함으로써 그들의 다사다난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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