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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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 지구의 고아 인류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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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칼 세이건 외 | 지구의 고아 인류가 자신을 되돌아보다

원제: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by Carl Sagan, Ann Druyan
우리는 많은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를 파괴시킬 지경에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로 보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는 벼락부자가 된 종이 무대 장치를 바꾸고 다른 종을 멸종시키며,그 후 스스로도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일이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640쪽)

인류라는 고아의 이력이 담긴 족보를 찾아서

그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인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두 명의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과 앤 드루얀(Ann Druyan)이 ‘엄밀한 과학성과 무궁한 상상력’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질문이면서도 굳이 깊이 따지고 들어가고 싶어하지는 않는 불편한 진실이자, 혹시라도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과 환상이 깨질 수도 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험은 유령의 집처럼 두려움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멀고도 긴 미지로의 여행이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서 단절되어 우리의 기원으로부터 멀리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억 상실이나 전두엽 절제술 때문이 아니라, 생명이 더듬어 온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우리와 우리의 기원 사이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름이나 태어난 곳을 적어놓은 출생기록 한 장 없이 문앞에 버려진 갓난아이와도 같다. 유전적 배경이 어떠한지,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우리는 이 고아에 대한 모든 기록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33~34쪽)

이 한 권의 책은 인간이라는 고아의 이력이 담긴 족보다. 그러나 오래된 고서가 그렇듯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벌레와 세월이 갉아먹은 흔적으로 족보에 적힌 글씨는 흐릿해지고 종이는 너덜너덜하다. 그러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텅 빈 공간만이 남는다. 이제 저명한 과학자 두 사람은 그곳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한다. 새롭게 쓰인 잊혀진 인류의 조상에 대한 놀랍고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한 그들의 기록은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령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더라도 여전히 그것이 사실임은 변함없다.

<Australopithecus afarensis /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1997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 CC BY-SA>

인류 미래에 대한 구원을 염원하는

두 과학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인류 세계의 힘의 균형추 양극단에 소련과 미국이 자리 잡은 냉전체제가 한창이었다.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계는 핵전쟁으로 자멸할 수도 있는 3차대전 위기에 맞서고 있었다. 극단에 선 민족주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군비 확장 경쟁,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전쟁 등 전 지구에 걸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그 해답을 찾으려고 두 과학자는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양피지와 죽간에 기록된 인류사를 훨씬 뛰어넘어 그들은 최초의 인류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의 선조와도 기우한다. 결국, 두 사람은, 오늘날 인류가 자신이 쳐 놓은 올가미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의 아득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알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의 집필은 두 과학자의 인류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절실한 구원을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집필을 끝냈을 땐 다행히도 냉전은 종결되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전 세계적 문제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었다. 폭력과 전쟁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고, 되살아나는 국가주의,어리석은 지도자,교육의 황폐,가족의 붕괴,환경 파괴,종의 멸종,인구 증가 등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던 숱한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무한한 이기심, 문명으로도 잠재우지 못한 공격성,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용솟음치는 질투심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영장류의 세계에서도 만연하다. 또한, 영장류의 세계에서도 우정,이타심,애정,성실,용기,지능,발명,호기심,예측 등 흔히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겨져 왔던 많은 특징을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다른 동물과 친척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다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기심과 폭력, 그리고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와 다른 동물이 친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매일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다른 동물의 멸종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하고 반성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두 가지가 무한하다고 했다. 하나는 우주이고 다른 또 하나는 바로 사람의 어리석음이다. 사람이 정말 다른 동물보다 우수한 종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그렇게 우러러보고 찬양하는 신이 자비롭듯 사람 역시 자비롭게 다른 동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지능은 사리사욕을 채우고 번식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모든 생물이 공존할 길을 찾는 해법에 더 많은 능력을 할당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지금처럼 같은 종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종에게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과 자연에 대한 가혹한 착취가 그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가 멸종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과거 5대 멸종의 뒤를 이은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지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높은 지능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면, 그래서 경이로운 생명의 기원을 찾아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얻은 소중한 지식이 호기심과 이기심의 충족으로만 끝나고 마는 인류의 오점은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어느덧 과학교양도서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는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과학 분야의 고전인 『코스모스(Cosmos)』 등을 통해 자연과학의 대중화에 자신의 경력과 노력을 바친 칼 세이건의 또 다른 역작이다. 외계생물학의 선구자였던 그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 외계 생명체를 향한 지구의 각종 정보와 메시지를 담은 황금 레코드판을 탑재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SF 영화 『콘택트(Contact, 1997)』 원작의 저자이기도 하다.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60여 개국 5억여 명이 시청하기도 했던 『코스모스』가 지구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인류의 이해와 연구를 담은 명작이라면, 그가 『코스모스』에서 지칭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안에서 일어난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인류의 기원과 고찰을 ‘엄밀한 과학성과 무궁한 상상력’으로 풀어쓴 또 하나의 명작이 바로 이 책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본문만 거의 700쪽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오히려 그 700쪽마저도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나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한 장 한 장 모든 페이지가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쉴 새 없이 자극하고 유발하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꾸준히 등장하는 실험과 연구 사례는 잠시 한눈을 파는 독자를 다시 책으로 붙들어 매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한층 더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 된 칼 세이건이지만, 그가 인류를 위해 남긴 이 책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갈구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인류의 악질적이고 악마적인 기질로 몸살을 앓는 지구와 그 위에 공존하는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독자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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