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 레이첼 카슨 | 그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Original Title: Silent Spring by Rachel Carson
진실을 밝혀야 할 과학이 ‘이익과 생산이라는 현대적인 신을 섬기기 위해’ 타협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과학계와 산업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카슨은 이렇게 물었다. “과학단체가 무언가 이야기할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진정한 과학의 소리인가 혹은 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리인가?” (p340)
곡식이 자라는 밭과 풍요로운 농작물 사이에 자리 잡은 목가적인 마을이 있다. 마을은 시골 인심만큼이나 넉넉한 폭을 가진 들길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고, 길가를 장식한 다양한 나무와 꽃들은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철마다 바뀌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사람들의 귀는 행복했으며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차갑고 맑은 물이 넘쳐 흐르는 하천에는 언제나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렇게 몇 해가 무난하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축들은 시름시름 앓다 죽었으며 농부들의 가족도 앓아누웠다. 의사들도 병의 정체를 알지 못해 당황했다. 그리고 마을과 그 주변에는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그 많던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새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간질여주던 풍요로운 지저귐도 사라졌고, 죽음과도 같은 정적만이 엎질러진 물처럼 그곳을 뒤덮었다.
그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침묵의 봄(Silent Spring)』 첫 장에서 우화를 통해 표명한 ‘침묵의 봄’은 아마도 이런 ‘침묵’일 것이다. 봄이 와도 새들은 지저귀지 않는다. 장마철 한 차례 비가 오고 난 후 맞는 밤의 정적을 앙증맞게 깨트리던 카랑카랑하면서도 은은한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을로 들어서는 늦여름 밤에 아늑한 자장가처럼 우리를 포근하게 재워주던 찌르레기도 울지 않는다. 자연을 뒤엎은 정적. 그것은 앞으로 닥칠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알리는 폭풍 전야나 다름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레이첼 카슨이 걱정한 ‘침묵의 봄’은 아직은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용감하고 진실 어린 목소리가 당시 무분별한 화학방제로 말미암은 참혹한 자연파괴에 침묵하거나 외면했던 대중과 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난 사람들이 간혹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한 사람이 역사를 바꿨다’라고 무언가를 치켜세우는 것을 지나친 과장이라며 반신반의했었는데, 레이첼 카슨과 그녀의 마지막 저서 『침묵의 봄』은 그런 나의 의심에 종지부를 찍는 ‘팩트’가 되었다. 그녀와 이 책은 진실로 그런 칭송을 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
인류가 자연을 숭배하던 시절의 조상은 자연 앞에서 겸손했다. 그들은 자연이 돌아가는 자세한 작동 원리는 몰랐지만, 자연에는 조화와 질서가 존재하며 그 균형이 깨지지 않아야 자연이 건강하다는 것과 그래야 자신들도 건강할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인지할 정도의 지혜는 충분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보다 보이고 만지며 느낄 수도 있으며 실제로도 삶을 지속시켜 주는 온갖 혜택을 주는 자연을 숭배한 것은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에 대한 겸손함을 오만함으로 타락시켰다. 사람이 뭔가 좀 배우면 우쭐거리듯, 인류는 과학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그 위대한 힘 앞에 경건한 마음을 갖기보다는 촐랑대며 과학의 힘을 과시하기에 바빴다. 자연을 정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되먹지 못한,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은 환상을 품었다. 그 결과 자연이 가르쳐 준 자연방제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을 조급한 마음과 과학에 대한 맹신, 그리고 눈앞의 이익에 굴복하여 무분별한 화학방제를 시작했고, 그 참담한 결과는 『침묵의 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레이첼 카슨 같은 선지자 덕분에 이 책이 출판될 당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바람 나게 뿌려대던 DDT 같은 악명 높은 화학물질은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여전히 지구 생명의 역사는 생명체와 자연과의 상호작용의 역사라는, 그리고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는 은밀하면서도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있다는 인류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산다. 이런 망각과 과학에 대한 맹신으로 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인류는 떠올리기조차 싫은 ‘침묵의 봄’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침묵의 봄’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침묵의 봄’을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여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다 만약 그들이 과거의 기록이 담긴 미디어들을 접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은 ‘침묵의 봄’이 아니라 활력과 생동감이 넘치는 ‘생명의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를 원망할까?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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