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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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자연인으로서의 시작은 공존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 자연인으로서의 시작은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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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불평등의 부당함을 고발한 반항아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Diacours sur l`origine de l`negalite parmi leshommes)』에는 불평등의 기원뿐만 아니라 루소가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 인류의 정신적 발달과 감정의 변화, 자연상태에서 사회화 상태로의 전환, 사회와 법률의 기원, 정치적인 사회의 성립과 폐해, 진정한 자유의 가치, 이성과 본성의 관계,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린 언어의 발달 등 다소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는 루소의 관념과 사색이 담겨 있다. 루소는 본문에서 밝혔듯이 이 모든 설명을 가설과 추리로만 해결했으며 생물학적이나 고고학적 등의 과학적 증거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당시의 과학적 발전 수준으로는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루소는 모든 문명의 혜택을 버리고 불평등을 거의 느낄 수 없으며 영향도 거의 없는 자연상태에서 살았던 자연인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도 자연인에서 지금의 문명인으로의 자연스러운 진화는 인정하지 않았다. 루소는 자기완성 능력이나 사회적인 미덕 등 인류 문명의 여러 가지 기술과 발전이 자연인의 타고난 능력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으며, 문명의 진보를 위해서는 외부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자연인에서 현재의 문명인으로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암시나 다름없다. 루소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신’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인류는 원시 상태로 남았으리라는 것이다.

루소가 진화를 인정하지 않고 신의 개입을 선택함으로써 어느 한 편으로는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불평등의 부당함과 폐단을 과학적 자료의 지원 없이 혼자만의 사색과 추리로 정확하게 지적했으며, 그 최초의 기원을 인류의 원시 상태로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문명의 발전과 불평등의 심화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힌 셈이다. 한편, 「원주」에서 다양한 인간을 연구하려면 현지 조사를 우선해야 한다는 루소의 주장은 인간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여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인간이던 인간은 모두 같은 정념과 같은 악덕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러 민족의 특징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던 당시 철학자들의 불합리함을 반박함으로써 문화의 상대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루소의 사상은 훗날 인류학의 토대가 되었다.

Entrance south of Jean-Jacques Rousseau's Desert, Seyssinet-Pariset, Isère.
<Entrance south of Jean-Jacques Rousseau's Desert, Seyssinet-Pariset, Isère / Wikimedia Commons : Hélène Rival / CC BY-SA>

프랑스 대혁명을 예고?

이런 논지를 제쳐두고라도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정말로 위대한 점은 곧 일어날 ‘피’의 대혁명을 예견한 점이다. 당시 절대군주의 억압과 부패한 귀족 밑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던 민중의 고통을 몸소 느끼며 불의에 분노하고 있었던 루소는 이 불평등의 마지막 종착점이 전제정치라고 말하면서 이 괴물(전제정치)이 모든 것을 삼켜 버려 인민은 이미 통치자도 법률도 갖지 못하게 되고 오직 전제군주만을 갖게 되었으며 풍습이나 미덕도 사라졌고, 성실이나 의무도 없으며 남은 것은 극도로 맹목적인 복종만이라고 전제정치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리고 이 귀착점에서 한 바퀴 돌아서 모든 개인이 다시 평등해지는 사회로 돌아갈 것인데, 그 길은 새로운 변혁들이 일어나 정부를 완전히 해체하거나 이것을 합법적인 제도로 접근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 변혁에는 폭력을 동반한 혁명도 정당하다며 루소는 사후에 있을 프랑스 대혁명을 예견한다. 독재자를 죽이거나 퇴위시키는 폭동도, 독재자가 신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제멋대로 처리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행위이다. 힘으로 지탱한 정부는 그것을 타도할 수 있는 것도 힘뿐이다. 한마디로 힘으로 일어선 정부는 힘으로 쓰러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시민의 아들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전제정치의 억압과 방탕하며 나태한 귀족들 아래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체험할 수밖에 없는 약자로 평생을 방랑 속에서 고독하게 보낸 루소는 글의 힘으로 그 불평등을 타파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했을뿐더러 당시로써는 혁명적이자 반항적이고 도발적인 자신의 사상으로 말미암아 그는 방랑자에 도피자라는 꼬리가 하나 더 붙으며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자연인을 예찬한 루소는 끝없는 박해를 피해 그 자신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고독한 자연인’, 자연이 명령한 간소하고 일정한 고독한 생활양식을 지켜나가는 최선이자 최소의 삶으로 회귀하여, 인류의 악덕을 버리고 그 지식도 버림으로써 태고의 원시적인 순진성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마치면서...

여전히 일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결국엔 모두에게 풍요로운 삶과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향하고 있다. GDP 상으로 부자가 된 나라들은 지구행복 지수상으로는 매우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루소의 말대로 자연에 폭군처럼 군림해온 인류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기후변화라는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으며 빈부 격차와 기아는 전염병처럼 확산하고 있다.

설령 루소가 갈망했던 자연인이 된다 하더라도 루소가 생각했던 것처럼 완벽한 고독과 문명으로부터의 이탈은 어려울 것 같다. 루소의 말처럼 자연에 폭군처럼 군림해온 인류 덕분에 자연인이 살아갈 터전이 될 자연 대부분은 이미 문명에 잠식당하고 심각하게 오염되었으며, 곧 있으면 기후변화가 익숙한 자연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토지 사유, 경작 등 자연에 대한 미미한 착취로 시작한 불평등은 강탈에 가까운 착취가 이루어진 산업화 이후로는 해소되기는커녕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고착화 되었다. 고로 무모하게 생태계의 한계를 시험해 보지 않으며 지구상의 다른 생명처럼 자연과 공존하고, (쉽지는 않겠지만)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필요한 만큼만 분배되는 사회야말로 불평등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지 않을까. 이 어려운 문제를 인류가 해결할 수 있다면 이것과 무관하지 않은 또 다른 인류의 고질적인 문제들인 기후변화, 에너지, 물 부족, 기아 등의 문제들도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인류는 준엄한 자연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자연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 인류 스스로가 멸종되어버리는 일이라는, 인류사의 모든 근원을 뒤집어버리는 뼈 아픈 성찰을 씹어 삼켜야 할지도 모른다.

Original Title: 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by Jean-Jacques Rousseau
이 설명으로부터 당연히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없으나 우리의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발전으로부터 그 에너지를 얻어 성장하며, 마침내는 소유권과 법의 제정에 의해 항구적이 되고 합법화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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