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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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 평전 | 부정할 수 없는 통치의 달인

당 태종 평전 | 자오커야오, 쉬다오쉰 | 부정할 수 없는 통치의 달인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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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과 당 태종이 공업을 이룬 이유

장펀톈(張分田)의 『진시황 평전(秦始皇傳)』과 자오커야오(趙克堯) • 쉬다오쉰(許道勛)의 『당 태종 평전(唐太宗傳)』을 연달아 읽고 ‘뭘 쓸까?’ 하고 호두 같은 뇌를 담은 머리통을 이리도 굴려보고 저리로도 굴려보고 있는 찰나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 황제는 폭군의 대명사, 다른 황제는 명군의 대명사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두 황제가 난세를 평정하고 중국을 통일한 이유엔 사뭇 비슷한 점이 꽤 있다는 흐뭇한 발견이었다. 그렇다면 제후국 반열에 가장 늦게 올라선 진나라가 전국 시대(戰國時代)를 종결시키고 명실상부한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설할 수 있었던 이유와 수나라 말기 군웅 쟁패 시대에 늦게 기병한 이연 • 이세연 부자가 중국을 재통일한 이유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진시황이 진나라 역대 제왕들이 이룩한 공업을 계승했듯 이연 부자는 수나라 말기 농민 대반란의 성과를 계승했다. 진시황과 당 태종 둘 다 인재를 임용하는데 뛰어났으며 논공행상이 공정했다. 이 부분은 당 태종보다 진시황이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는데, 당 태종은 분봉제도를 완전히 철폐하지 않았고 음직도 허용했다. 이에 반해 진시황은 분봉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행했으며 황제의 자식이라도 공이 없으면 관직과 작위를 주지 않을 정도로 논공행상이 엄격했다.

또한, 진시황과 당 태종 둘 다 간언을 극구 장려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정도가 역대 어느 황제들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이 점은 진시황보단 당 태종이 한 수위다. 진시황은 간언한 신하를 죽이는 경우가 간혹 있었고, 말년으로 갈수록 나날이 교만해지고 그 정도가 심해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진시황은 심기를 건드리는 간언을 참지 못하고 자주 화를 냈으며 이 때문에 황궁엔 황제를 속여서라도 총애받으려는 신하들만 남았다. 반면에 당 태종은 낙양의 건원전을 보수하려는 자신을 망국의 폭군 수 양제보다도 못하다고 비판한 장현소를 꾸짖기는커녕 “내가 깊이 생각하지 않아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탄식하며 건원전 보수 명령을 거둬들일 정도로 현명했다.

물론 당 태종도 혁혁한 공업을 이룬 많은 독재자가 그랬던 것처럼 말년엔 간언을 꺼리고 독단적 결정이 심해지는 등 ‘교만’이라는 노쇠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 정도가 또다시 농민 반란이라는 망국의 화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기에 ‘정관의 치(貞觀-治)’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두 황제의 말년을 상상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진시황도 말년에 (당 태종처럼) 정도껏 교만하고, 정도껏 사치를 부렸으면 장자 부소(扶蘇)를 태자로 책봉하는 일도 미루지 않았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2세대 만에 나라가 망했다는 비웃음은 면했을 것이다.

드라마 「당태종 이세민(唐太宗李世民), 1994」
<드라마 「당태종 이세민(唐太宗李世民), 1994」(출처: douban)>

능력만 중시했던 진시황과 달랐던 당 태종의 인재 등용

내가 볼 때 군주로서 혁혁한 공업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이자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 중 하나는 현재(賢才)를 알아보고, 그 현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진시황과 당 태종뿐만 아니라 ‘용인술의 대왕’으로 불린 조조와 중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되는 강희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군주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세상 모든 일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런 허다하고 잡다한 일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므로 군주가 인재를 등용하고 배치하는 능력은 명군으로 남고 싶다면 필수라 하겠다. 하지만 진시황의 진나라는 2대에서 망했고, 당나라는 ‘정관의 치’라는 치세를 시작으로 약 300년간을 이어 나갔다. 진나라가 2대에서 망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자리에선 인재와 관련된 부분만 언급해 보겠다.

진시황과 당 태종 둘 다 인재 등용에 비범한 재주를 가진 군주인 것은 분명했으나 두 사람의 인재 등용엔 눈에 띄는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진시황은 오직 ‘능력’만을 중시했던 반면에 당 태종은 ‘능력’과 더불어 ‘덕행’도 중시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시황의 왼팔이라 할 수 있는 이사(李斯)와 (훗날 진 2세 황제가 될) 호해(胡亥)의 사부 조고(趙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사와 조고 둘 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인품은 그에 못 훨씬 미쳤는데, 두 사람은 시황제가 살아 있을 적엔 황제의 눈치를 보느냐 감히 딴생각을 품을 수 없었지만, 진시황이 죽자마자 본심을 드러내 망국의 길을 활짝 열어젖힌다.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가 2대 만에 망한 이유 중 하나는 조고를 호해의 사부로 임명한 진시황의 인사 실책이라 할 수 있겠다.

호해 곁에 이사와 조고가 있었다면, 당나라 2대 황제 이치 곁엔 장손무기(長孫無忌)와 저수량(褚遂良)이 있었다. 이치는 영민함과 용맹스러움과 과단성이 부족한 유약한 성격이라는 탐탁지 않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전적으로 장손무기와 저수량 같은 원로 공신들의 강력한 지지 덕분에 당나라 2대 황제가 되었다. 보통 유약하고 경험 없는 태자가 원로 공신들의 지지로 황제가 되면 (강희제 즉위 직후 오배가 그랬듯) 원로 공신들이 권력을 전횡하는 폐단이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랬다면 당나라 역시 (당 태종이 평생에 걸쳐 근심했던 대로) 2대 만에 망하는 수모를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치를 지지한 공신들이 권력을 장악했음에도 당나라가 2대 만에 망하지 않았던 이유는 당 태종이 신임한 장손무기, 저수량 같은 인재들이 근본적으로 충직한 신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당 태종은 감히 용의 역린을 불러일으키는 간쟁조차 너그럽게 소화할 정도로 자기반성 의식이 투철한 황제였다. 군주는 존귀하고 신하와 백성은 천하다는 사상을 근본으로 삼는 전제군주제도에서 지존인 황제가 천한 신하 앞에서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끝까지 자기 잘났다고 밀어붙이는 파렴치한 대통령도 있는데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죽으면 죽었지 자기 잘못은 끝내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당 태종은 그야말로 성군이라 할만하다.

드라마 리뷰 | 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 2019) | 볼 수 있다면 봐라, 후회 안 한다
<드라마 「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의 한 장면>

통치의 이치와 다스림의 묘미

인재 등용의 이치와 묘미를 깨우치는 능력은 황제에게만 요구되는 자질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기업가에도,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에게도 가장 필요하면서도 절실한 능력이라 하겠다. 특히 5천만 국민의 민생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직을 이력서에 멋들어지게 써넣을 한 줄의 경력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한 오늘날 한국 대통령을 보면 정말이지 『진시황 평전』과 『당 태종 평전』과 장야신(張亞新)의 『조조(品曹操)』를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헌납하고 싶다.

하지만, 인제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통령은 경력을 쌓는 자리도 아니고, 뭔가 새로운 일을 경험하는 자리도 아니다. 바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겠는가. 현재 한국 대통령의 상식 밖의 언행을 보면 무능함에 치가 떨리고, 무지에 소름이 돋는다. 사실 바보가 뭔 잘못일까? 바보가 바보인 줄 알면서도 치켜세우고 추종한 그런 사람들이 문제이자 세상을 난세로 이끄는 원흉이다.

아무튼, 당 태종은 ‘뛰어난 용인술과 놀라운 포용력으로 제왕의 전범이 된 통치의 달인’이라는 책의 부제목이 전혀 과장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모범적인 황제였다. 이 책엔 질박하면서도 절묘했고, 엄정하면서도 관대했던 당 태종만의 통치의 이치와 다스림의 묘미가 용이 천하를 향해 조심스럽게 포효하듯 맹렬하면서도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당 태종 일생에 대한 두 공저의 통찰력 있는 분석과 비판은 리더라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통과 의례적인 통치의 기술이자 역사를 읽음으로써 세상의 이치를 깨치고 싶은 독자에겐 진득한 호기심을 풍족하게 채워주는 지식의 열매다. 문장을 곱씹고 그 의미를 되새김하고 그럼으로써 역사를 상상하는 과정은 푹 익은 바나나를 먹는 것처럼 마냥 달지는 않지만,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것 같은 달짝지근한 청량감이 막힌 변기를 뚫듯 뇌 속을 시원하게 휘저어 줄 것이다.

끝으로 옛 비판과 중화인민공화국 시대 마르크스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비판을 고루 참고한 이 책은 이전에 읽은 『진시황 평전』과 용호상박을 이루는 명저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에 실제로 백성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박진감 있게 느낄 수 있는 묘사나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아마 이런 것은 영웅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서의 한계이지 않을까 싶다). 당나라 시대의 번영은 흔히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시)의 화려함으로 대변되곤 하는데, 특히 드라마 「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의 눈부시도록 화려한 촬영 세트장을 보면 실제로는 어떠했는지 더욱더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관의 치’를 살았던 백성들의 실제 생활상을 알고 싶다면, 또 다른 책을 찾아 편력해야 할 것인데, 어떤 책이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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