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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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평전 | 그는 왜 폭군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을까?

진시황 평전 | 장펀톈 | 그는 왜 폭군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을까?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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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공포영화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역사는 잔혹하고 비겁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항변도 못 하는 죽은 사람을 다구리 놓는 비겁한 짓을 사디스트처럼 즐길 뿐만 아니라 확인 사살하듯 새로운 것 없는 진부한 비판을 잊을만하면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승에서 이승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역사적 사실만을 토대로 날을 세운 논리정연한 비판 정도는 악몽 정도로 여기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인신공격으로 핏발을 세우는 이도 왕왕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대부분 안 좋은) ‘무언가’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여 속담이나 경구처럼 통용되기도 한다.

사람이 관여하는 일이 다 그렇듯 역사 역시 경로의존성이 크기 때문에 한 인물에 관해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된 평가는 시멘트처럼 굳어져 ‘학계 정론’이라는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뒤집는다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만큼이나 큰 변혁과 용기를 요구하므로 죽어가는 사람을 되살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한 번 악인으로 낙인찍히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혹은 부처님이 내림하여 모든 중생이 구원될 때까지 악인으로 남아야 한다.

그런 역사의 희생자 중 가장 대표적인 예가 ‘폭정’과 ‘폭압’의 아이콘인 진시황이라고 한다면, 놀란 토끼 눈을 할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겸연쩍게도 장펀톈(張分田)의 『진시황 평전(秦始皇傳)』을 읽기 전까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한 역사적 인물에게 타르처럼 꺼분꺼분하게 들러붙은 부정적인 평가는 비판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치 공포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악마를 보는 듯한 잔인한 호기심을 부추긴다. 그래서 자극적인 쾌락을 좇아 위험한 곳만 골라서 다니는 모험가처럼 악명에 쏠리는지도 모르겠다. 악인의 평전은 그 자자한 악명만큼이나 짜릿한 전율과 잔인한 쾌락을 제공할 여력이 충만하므로 나 같은 무지몽매한 독자는 역사의 ‘부당함’ 같은 것은 개의치 않고 오직 폭력의 쾌락을 좇는 더듬이에 의지하여 나방이 촛불로 달려들 듯 악명에 귀의하게 된다.

이런 상스러운 이유 반, 그리고 나머지 반은 역사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으로 『진시황 평전(秦始皇傳)』을 찾았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진시황을 소재로 생성한 AI 이미지

혁혁한 공업에도 그는 왜 폭군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을까?

진시황의 포학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정도여서 지금은 수학 공식 같은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포학하기만 한 군주가 2백 년 동안 혼란스럽게 이어져 온 전국 시대(戰國時代)를 종결시키고 명실상부한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를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의심을 해본다면, 진시황의 악명엔 진실보다는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과 오해와 사심에서 비롯된 곡해와 과장이 더 많을 것이라고 추리해 볼 수 있다.

진시황의 성격이 거칠고 포악하기만 했다면, 여러 신하를 의심하고 시기하기만 했다면, 나아가 토사구팽을 일삼았다면, 그는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는커녕 연이은 겸병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라는 타이틀을 획득하는 일은 어림도 없다.

군주로서 그가 이룬 공업은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마오쩌둥이 “수백 대에 걸쳐 진나라의 정치와 법령이 시행되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판적이든 긍정적이든 진나라가 남긴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마오쩌둥의 말대로 진나라는 현대 중국의 기원이라 할만하다. 진시황은 짧지만 굵은 역사를 남겼다.

그렇다면 진시황이 이룩한 혁혁한 공업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폭정’과 ‘폭군’의 대명사가 되어야만 했을까? 진시황에 대한 악의적인 평가는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비롯되어서 어떻게 굳어졌을까? 더 나아가 초나라, 제나라도 아닌 4대 제후국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았던 진(秦)나라에서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가 나온 필연성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진나라 역사를 되짚지 않을 수가 없고, 진나라 역사를 되짚는 것은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이다. 또한, 진나라가 6개국을 평정하고 중국을 통일한 공로엔 강한 군사력이 한몫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강한 군사력은 강력한 지도력과 든든한 경제력에서 나오고, 이런 지도력과 경제력은 그에 걸맞은 정치력과 사회 제도와 사상이 정비되어야만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폭압’과 ‘폭정’의 달인이라 불렸던 진시황이 해냈다.

효웅의 기질과 폭군의 기질을 두루 갖춘 난세의 영웅

바로 앞 단락 끝처럼 대충 넘겨짚어도 장펀톈의 『진시황 평전』이 다루는 역사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방대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괜히 천 페이지가 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한 군주에 대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진(秦)나라,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군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을 폭넓게 다루는 통사다. 읽기도 전에 겁에 질릴만한 스펙트럼과 분량과 무게(대략 2kg)지만, 제국과 영웅의 흥망이라는 중국 고대 정치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객관성을 유지하는 신중함이 돋보이는 책이니만큼 역사서를 간간이 읽는 독자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진시황을 향한 ‘폭정’과‘ ’폭압’이라는 비난의 근거가 되는 사실들을 확실하게 꼬집으면서도 그런 비난이 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수 없다는 이유 역시 확실하게 논증하는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본 진시황은 조조처럼 효웅의 기질과 폭군의 기질을 두루 갖춘 난세의 영웅이라 할 수 있다. 진시황을 또 다른 폭군 아이콘인 걸왕 • 주왕과 함께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진시황에 대한 실례이자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무지의 오만이다. 만약 그가 아방궁을 짓지 않고, 불사약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일찍 부소를 태자로 책봉했더라면 그는 분명히 중국이 자랑하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삼황오제와 함께 진시황을 넣어 ‘사황육제(四皇五帝)’라는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것이다.

두껍기만 하고 실없는 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시황 평전』은 역사 지식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제한된 사료로 역사를 해석하고자 때 어떻게 객관성을 유지하고 어떻게 결과를 끌어내는지 등에 대한 역사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역사는 공정해야 하고, 공정해야만 진정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진정한 사서라 할 수 있다.

시진핑, 푸틴을 소재로 생성한 AI 이미지

러시아 • 중국의 새 황제, 그들은 교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현재의 문제를 이전 정권 탓으로 돌리고, 또한 이전 정권이 잘한 점은 감추고 잘못한 점만 들춰내면서 새 정권의 정당성을 과대 선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진시황에 대한 악명 역시 이런 정치적 술책에서 비롯되었다. 한나라가 진나라 제도 대부분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진나라를 부정하면서 시작된 ‘진시황에게 폭군과 폭정 프레임 씌우기’ 역사는 2천 년이나 지속되었으니 인제는 그만할 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의 상식 사전 속엔 ‘진시황 = 폭군 + 폭정’이라는 공식이 버젓이 기재되어 있다.

중국 군주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써 무력을 숭배했고, 그에 따라 (툭하면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쟁을 반복할 정도로) 인명을 천하게 여겼다. 그리고 성공한 군주는 공을 세운 후에는 초창기만 못했고 말년에는 청년기만 못했으며 공적이 클수록 날로 교만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비단 중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많은 독재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배포, 판단력, 능력, 관용 등 거의 모든 면에 걸쳐 젊었을 때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말년에 크고 작은 오류로 비참한 흑역사를 남겼다. 마오쩌둥이 그랬고, 스탈린도 그랬고, 박정희도 그랬다. 그렇다면 블라디미르 푸틴과 시진핑은 다를까? 뇌의 퇴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진시황 시절과 달리 두 사람이 세계 정세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새 황제 탄생은 실로 큰 걱정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튼, 진나라 역사가 단명한 것은 군주라면 당연히 경계해야 할 교만 때문이다. 당 태종이 ‘정관의 치(貞觀-治)’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를 이룬 것은 진시황의 교만과 사치를 반면교사로 삼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작금에 시진핑 주석이 중국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하려고 한다. 그가 권력 욕구를 절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중국의 비상하는 국력이 교만의 씨앗이 된다면 말년으로 치닫는 그의 통치는 중국에 복보다는 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은 과거 그랬던 것처럼 목적을 이루는 데 무력을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인명을 천시한다는 점에서 주변국에 사는 우리는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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