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역사 수메르 | 김산해 | 인류 최초의 역사 왜곡?
SF 소설에서 고대 역사로 점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공상과학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류 최초 역사인 ‘수메르(Sumer)’라는 단어가 90번, 수메르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신 ‘엔키(Enki)’라는 단어는 119번이나 언급되고, 엔키의 이복형제이자 신들의 제왕인 ‘엔릴(Enlil)’도 한 번 등장한다. 이유는 소설 속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신경 언어학적 바이러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스노 크래시』에서 수메르 문명은 이 ‘신경 언어학적 바이러스’ 때문에 멸망하고, 이 언어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전 인류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때까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 온 인류의 언어를 여러 갈래로 나눈 존재가 여호와다.
그렇다면 정말로 수메르 문명은 바이러스 때문에 멸망한 것일까?
정말로 그랬다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때 이렇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언론이나 작가들이 가만 놔뒀을 리는 없다. 아마도 ‘수메르 바이러스와 인류의 멸종’ 운운하며 주인의 손바닥 안에 든 뼈다귀를 보며 왕왕 짖는 개처럼 신나게 떠들어댔으리라.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도 수메르 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한시라도 빨리 애인의 옷을 발가벗기고 사정의 쾌감을 얻으려는 발정 난 남자처럼 유희나 전희 같은 탐구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한다. 브라우저를 닫으면 잊어버리고 마는 수박 겉핥기식의 얕은 정보일 뿐이다.
알다시피 지성을 갈망하는 호기심 왕성한 호모 사피엔스라면 곧 잊힐 얄팍한 앎만 가져다주는 맹목적인 ‘결과’보다는 창조력의 원천이자 지적인 유희를 가져다주는 사고적이고 탐구적인 그 ‘과정’에 더 집착이 간다. 이런 배움이야말로 뇌세포에 누룽지처럼 눌어붙는 진정한 앎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래서 관련된 책이 있나 검색했고,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며 다른 지역 도서관을 방문했고, 그곳엔 내 독서 기준으론 출간된 지 얼마 안 되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신간이라 할 수 있는 『최초의 역사 수메르』가 ‘조당(弔堂)’에서 누군가에게 읽혀 성불하게 될 날만 기다리는 책들처럼 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인터넷 서점에서 ‘수메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서 예상한 것은 외국인 학자가 쓴 번역서다. 고대 문명 도굴의 역사는 제국주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고고학 같은 돈도 안 되고 명성도 못 얻을 것 같은, 그래서 정부 • 기관 • 기업으로부터의 지원도 변변치 않을 학문에 일생을 바치는 학자가 한국엔 있을성싶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인류 최초의 문명, 최초의 신화, 최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를 주제로 다수의 책을 집필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아마존에서 ‘Sumer’로 검색하면 더 많은 책이 검색되지만, 대중의 관심이 적은 주제라서 그런지 한국어로 번역된 책은 없다.
고로 최소 한국에서만큼은 ‘수메르 = 김산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아득히 먼 과거에 벌어진 최초의 역사 왜곡
『최초의 역사 수메르』는 몇 가지 단점을 제외하곤, 읽기도 쉽고 재미도 있는 역사책인데, 우선 단점을 먼저 언급하자면 다소 감정적이고 거친 말투다.
인류 최초의 문명 • 역사를 (서구학자의 해석을 답습한) 서구학자의 시선이 아닌 한국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은 도굴의 역사와 수메르가 멸망한 원인을 ‘제국주의’ •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실패’와 연관 지어 비판하는 의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 점은 ‘따라 하기’가 아닌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분석과 해석이라는 점에서 응당 치켜세울 만하다. 하지만, 분노가 느껴지기까지 하는 신랄한 비판과 감정적이고 격한 문장은 차분함과 냉철함이라는 사관의 미덕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사실 저자의 분노 서린 비판은 ‘제국주의’ • ‘한국의 과거사 청산 실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변두리일 뿐이다. 그 분노의 메인 표적은 이씬(isin) 왕조의 필경사 누르-닌슈부르가(Nur-Ninšubur) 남긴 「수메르 왕명록(The Sumerian King List)」의 명백한 역사 왜곡에 있다. 고로 『최초의 역사 수메르』의 집필 목적은 「수메르 왕명록」이 왜곡하고 말살한 진짜 수메르 역사를 복원하는 데 있으며, 그것은 최초의 역사가인 라가쉬(Lagaš) 필경사들이 남긴 라가쉬-움마의 에덴 전쟁사(‘에덴’이라는 비옥한 땅을 두고 250여 년 동안 진행된 전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르-닌슈부르는 왜 역사를 왜곡했을까?
이쉬비-에라(Išbi-Erra)는 혼란스러운 수메르를 평정하고 이씬 왕조를 세웠다. 문제는 그가 수메르인이 아니라 수메르 북서쪽에 있는 마리 출신의 악카드(Akkad, 아카드)인이라는 것과 정당한 절차가 아닌 배신으로 왕권을 찬탈했다는 데에 있다. 누르-닌슈부르가 역사를 왜곡한 이유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역사를 왜곡한 이유와 다를 바 없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역사 왜곡의 파렴치한 의도와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점토판에 적힌 설형문자를 독자적으로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수메르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일생과 열정을 바쳐온 사람이니만큼 그에게 있어 ‘수메르’는 고국인 한국 다음으로 소중한 제2의 고향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수메르 왕명록」의 역사 왜곡은 남의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B.C.E. 1817년이라는 아득히 먼 과거에 벌어진 역사 왜곡에 이를 갈고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중국과 일본의 (여전히) 진행형인 역사 왜곡을 망부석 보듯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국인으로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첫 장부터 마주치게 되는 역사 왜곡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인상 잔뜩 찌푸린 사람과 대면하듯 다소 낯설고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마치 누르-닌슈부르가 눈앞에 나타나면 바로 한 대 갈길 듯이 주먹을 불끈 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엔간한 추리소설보다 재밌는 고대사
수메르 문명은 무려 4,500년(B.C.E. 6500년에서 B.C.E. 2004년) 동안 유지되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제국 멸망사의 본보기라도 되려는 것처럼 내부의 반란과 외세의 침략을 견디지 못해 멸망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새삼스러운 격언이 징그럽기만 하다. 한편으론 인류 최초의 역사서가 전쟁사였다는 사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문명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역시나 인류는 전쟁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나 보다’ 하는 씁쓸함을 영 지울 수가 없다.
『최초의 역사 수메르』를 읽고 나면 앎에 대한 욕구를 해소했다는 개운함보다는 새로운 앎이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는 지적 호기심이 다음 책을 어떤 책으로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을 일으킨다. 내가 늘 말해왔듯, 좋은 책은 독서 릴레이의 흐름을 끊지 않는 데 있다.
아무튼, 책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몇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팽이치기하듯 뱅뱅 맴돌고 있다.
『스노 크래시』의 히로가 던진 질문처럼 정복당하지 않은 민족은 없고, 정복당한다고 언어가 사라지지는 것도 아닌데, 왜 수메르어는 사라진 것일까?
(라가쉬 필경사들이 B.C.E. 2600년에서 B.C.E. 2334년에 벌어진 에덴 전쟁사를 기록하기 훨씬 전인) 5,500년 전에 우루크에서 인류 최초의 문자가 출현했지만, 왜 다른 도시의 필경사들은 라가쉬 필경사들처럼 역사 이야기로 전개될 만한 ‘문자 사료’를 남기지 않았을까(그들은 대부분 회계장부나 다름없는 경제 문서만 남겼다고 함)?
수메르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놓친 것은 아닐까?
남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어찌 되었든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다.
인류 멸망 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 고고학자가 나치가 남긴 기록만을 발견한다면, 외계인 고고학자가 해석하는 2차세계대전과 우리가 아는 2차세계대전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클 것이다. 만약 라가쉬 필경사들의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나치가 남긴 문서만을 발견한 외계인 고고학자처럼 실제 일어났던 사실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사를 파헤치는 재미는 우리가 알게 되는 진실이 ‘발견’과 ‘발굴’의 역사와 해석의 판결에 따라 춤추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데에 있다. 또한, 고대사는 빈약할 수밖에 없는 사료와 물증의 부족 등으로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는 만큼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명탐정처럼 독자의 날카로운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엔간한 추리소설보다 재밌고,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것이 고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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