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Bottom of the Water, 2023)
평점이 없다?
마음에 드는 소재의 공포영화를 발견하면, 일단 IMDB 평점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평점이 좋으면 기대치가 증가하고, 평점이 낮으면 호기심이 증가한다. 이래저래 결국은 보게 된다는 것. 그런데 「물귀신(Bottom of the Water)」 같은 경우 아예 평점이 없었다(지금은 꽤 있지만)!
2024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는 약 55억 2천만 명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시대에 평점이 단 하나도 없는 영화를 발견하는 것도 매우 보기 드문 인연이리라, 라는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앞뒤 재보지 않고, 이판사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한편으론 설마 내 눈이 썩어 문드러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안고, 수류탄을 들고 적진을 향해 홀로 돌진하는 군인 같은 속세를 초월한 굳센 기상으로 감상을 시작했다. 뽑기 장난감 앞에 똥 싸듯 쭈그리고 앉아,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똥이든 뭐든 뭔가 나오겠지, 하는 희망을 품은 아이처럼 씩 웃으면서.
수몰민들의 절절한 한 맺힌 사연?
영화는 시작하자 중후하고 애절한 허스키한 음성으로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준다. 댐 공사로 인해 수몰 예정인 어느 마을에 사는 한 아이가 어느날부터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한없이 무작정 기다린다는, 오장육부가 끓는 물에 데쳐지는 듯한 고통과 목 위로 물이 차오르는 절박함으로 관객을 상심하게 만드는 절절한 이야기를.
추리 소설을 좀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와 ‘군인’, ‘댐 공사에 동원된 엄마’ 등의 단서를 조합해서 엄마가 군인들에게 성폭행당한 다음 살해되어 댐 공사 현장에 암매장되었다, 이후 엄마가 ‘물귀신’이 되어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주인공들은 엄마의 시신을 찾아내고자 댐을 폭파한다, 이렇게 전개되는 장렬한 최후를 상상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는 것.
아무튼, 「물귀신(水殺鬼)」은 매우 슬프고 매우 안타까운 그런 영화다. 그 가슴을 짓이겨놓는 구구절절한 사연에 눈물을 폭우처럼 쏟아붓고 나면 잠시나마 가슴의 묵은때가 씻겨 내려가는 통쾌한 기분과 함께, 누가 감히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하는 비분강개 같은 기운이 제멋대로 솟는다.
아,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
친숙하고 슬픈 물귀신
수살귀(水殺鬼), 즉 물귀신은 사고, 살인, 자살 등으로 강, 호수, 바다에 빠져 죽어 환생할 수 없는 해로운 악령을 말한다. 그들은 물속을 돌아다니며 살아있는 사람을 유인하거나 직접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희생양을 구해야, 그래서 어떻게든 묵은 원한을 풀어야 구천을 떠도는 처량한 신세에서 벗어나 성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물귀신」은 그러한 민속 신앙을 바탕으로 거북이가 달려가듯 천년만년 세월아 네월아 전개된다.
‘물귀신’은 워낙 유명한 귀신이어서 그런지 무섭다기보단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도 분위기를 ‘공포’보다는 ‘슬픈 사연’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고, (RPG 게임에서 많이 접하는) 오행 원리로 귀신과 맞선다는 설정을 통해 신선한 긴장감을 북돋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줄거리도, 배경도 갑분싸~
영화 줄거리는 둘째치고, 그래도 ‘시골’을 배경으로 한만큼 정겹고 구수한 풍경을 간간이 화면에 잡아줄 것 같았는데, 나의 맹랑한 기대를 단칼로 베어버리는 살풍경한 풍경들이 난데없이 난입하는 바람에 갑분싸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영화의 ‘슬프고 안타깝고 무거운’ 분위기의 여운을 잃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시골 풍경이란 것이 이다지도 살벌하단 말인가? 아무래도 한 ‘경치’ 하는 중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 눈높이가 하늘을 찌를 듯 쓸데없이 높아진 것 같다.
내 빈약한 육체처럼 깡마른 시냇물, 거품이 일렁이는 것이 도저히 물고기는 낚이지 않을 듯한 더러운 저수지 등 영화를 빙자한 댐으로 인한 자연 파괴와 도무지 자연과 조화를 이룰 생각이 없는 한국의 주거 문화를 고발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주아주 살짝궁. 설령 내가 물귀신이 된다고 해도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싶지도 않고, 이런 더러운 물에 빠져 죽고 싶지는 더더욱 싫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배경이 좀 그럴듯한 장소에서 촬영했으면 참말로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 때문에 목이 메이고 가래침이 튀어나온다.
끝으로 AI가 추천하는 슬픈 여운을 남기면서도 공포의 요소를 잘 살린 영화 몇 편을 소개한다. 「물귀신(水殺鬼)」 때문에 기분이 심상치 않게 꿀꿀해진 사람은 아래 영화로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GPT-4o가 추천하는 슬픈 공포영화
1. 바바둑(The Babadook, 2014): 이 영화는 슬픔과 두려움을 독특하게 결합한 심리 공포영화로, 남편을 잃고 아들과 힘겹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녀가 집에서 미스터리한 존재를 느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슬픔과 공포가 교묘하게 얽혀 있어 감정적으로 무거운 여운을 남깁니다.
2. 렛 미 인(Let the Right One In, 2008): 스웨덴 영화로, 외로운 소년과 수수께끼의 소녀 뱀파이어의 우정을 그립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 감정적으로 깊고 슬픈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고립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3. 유전(Hereditary, 2018):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와 그로 인한 공포의 연쇄를 다룬 영화로, 슬픔과 공포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그로 인한 심리적 공포를 강렬하게 묘사합니다.
4. 파라노말 액티비티(Paranormal Activity) 시리즈: 특히 첫 번째 영화는 가족 내의 관계와 상실의 공포를 다루면서 심리적 긴장을 추구합니다. 일상적인 배경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 현상이 주는 두려움이 돋보입니다.
5.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2017): 전형적인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죽음 이후의 존재와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느리고 묵직한 감정의 흐름이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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