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 헤드 빌리지(牛首村, 2022) | ‘공포마을’ 3부작의 종착지
‘공포마을’ 3부작의 종착지, 「옥스 헤드 빌리지(牛首村)」
「하울링 빌리지(犬鳴村)」, 「수해촌(樹海村)」 등 ‘공포마을’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다. 처음엔 ‘소머리 마을’이라는 제목에서 뜨끈뜨끈한 ‘소머리 국밥’이, 그다음엔 소머리 국밥 맛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이, 마지막으로 뭔 내용인지까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 ‘곤지암’이란 공포영화로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연상 작용 때문에 다소 혼미스러웠지만, 아무튼 소머리 국밥에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먹은 것 같은 맛도 괜찮고, 적당히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런 ‘슬픈’ 공포영화가 바로 「옥스 헤드 빌리지(牛首村)」다.
「옥스 헤드 빌리지(Ox Head Village)」는 앞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실존하는 유명한 심령 장소가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 장소는 아직 구글 맵스(36°46'33.7"N 137°27'26.8"E)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ホテル坪野(츠보노 호텔)’. 1970년대 초 일본의 고도성장기 막바지 레저 • 관광 시절 개발 붐에 편승해 지어진 이 호텔은 (투자 유행의 막차를 탄 사람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1980년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내며 거품 경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파국을 맞이한다. 거품 경제 붕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수많은 폐허 중 하나인 이 호텔엔 영화에서 볼 수 있듯 폭주족이나 비행소년의 아지트로 활용되었고, 건물 내부에는 파괴되거나 낙서 흔적이 있다고 한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1996년 호텔을 방문한 것으로 여겨지는 소녀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가 24년 후인 2020년에 호텔과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사실.
한마디로 공포영화 무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장소다.
호러와 미스터리의 결합?
일단 이 영화의 특징은 미쓰다 신조 소설처럼 ‘호러’에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주인공 카노와 렌이 우연히 본 심령 동영상에서 발견한 (카노와 꼭 빼닮은) 시온을 찾아 여행하던 도중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야마자키의 차를 얻어 타고 츠보노 호텔로 갈 때 마주치는 ‘거리의 꽃(路傍の花,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장소)’과 카노와 렌이 호텔을 살펴보고 있을 때 야마자키가 물웅덩이를 통해 보는 무서운 환영, 그리고 카노 주변에서 전광석화처럼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들. 이 모든 것들이 무언가를 추리할 수 있는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창의력이 고갈되어서 그런지, 제작 기한에 쫓겨서 그런지, 아니면 촬영에 지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나름의 절도 있는 테마가 중후반부에 들어서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식으로 마치 타임슬립 하듯 이야기가 붕 건너뛰는 전개 때문에 빛을 많이 잃는다는 것.
냉혹한 인습과 원한의 비극적 교차
일본 전통에 좀 익숙한 관객이라면,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복선 덕분에 어떤 좋지 않은 인습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사달을 불러올지 대충 추리해 볼 수 있겠다. 즉, 마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지역적이고도 반강제적인 인구 정책의 하나로 분에 넘치는 아이를 (노인을 산에 버리는 우바스테야마姥捨て山처럼) 신에게 돌려보낸다는 마비키(間引き, 솎아내기)라는 인습과 그로 인한 원한이 잇달아 일어나는 의문사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이 좋아 ‘신에게 돌려보냈다’지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사방이 꽉 막힌 구덩이에 아이를 던져 넣어 아사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인데,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외롭고 쓸쓸하게 굶어 죽는 것만큼 원한에 사무치는 일이 또 어딨을까! 산 사람 좀 덜 굶주리겠다고 아이와 노인들을 내다 버렸다가 지금은 ‘저출산’으로 고심하고 있으니, 업보로다.
히로히토가 개전도, 종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변명했듯 마을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 이런 영화에는 지난 일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원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장면이 등장할 법도 한데 천황의 나라라서 그런지 참회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이 없다. 중일전쟁 • 태평양전쟁을 시작한 것처럼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왜 이러냐, 우리도 마음 아프다, 우리도 피해자다, 그걸로 끝. 하기야, 오야붕이 잘못한 것 없다고 버티는데 그 시다바리들이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게 더 분수에 넘치고 웃기는 일이지.
요즘 태평양전쟁 관련 책을 좀 봐서 그런지 말도 안 되는 감상이 새치기하듯 잠시 제멋대로 펼쳐졌다.
사연 있는 슬픈 공포영화
중후반에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순간 이동하는 듯한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 전개가 있었지만, 마지막 절벽에서의 하이라이트는 나름 압권이었다. 그 절체절명을 보는 순간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대로 끝나도 되는 건가’하는 긴장과 불안과 초조함이 무너지는 아파트처럼 엄청난 기세로 나를 덮쳤는데,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옆에서 자고 있던 강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뚝 끊어질 정도로 순간적으로 주변의 소리가 압살되었다. 엄청난 긴장감이었다. 그 긴박한 장면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지나고 나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 강아지 코 고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정겹게 들려왔다.
IMDB 평점은 뜻밖에도 영화의 소머리 탈처럼 처참하다. 아마도 그런 낮은 평점은 ‘무서운 것’만 기대한 나머지 ‘사연 있는 공포’를 음미할 수 있는 미각이 소등된 상태로 영화를 관람한 시청자의 다소 무심해진 감성이 빚어낸 실망의 표출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비주얼이나 줄거리 등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얼마 전에 감상한 「물귀신(Bottom of the Water)」 때문에 ‘사연 있는 공포’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낮아진 덕을 봤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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