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三体, Three-Body, 2023) 시즌1 | “너희는 벌레다!”
<과학자 왕먀오와 형사 스창> |
류츠신(劉慈欣)의 소설 『삼체(三體)』를 두 번씩이나 읽으면서 "이건 꼭 드라마로 나와야 해!"라고 내심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과학 기술이나 이론을 비중 있게 다룬) "SF 장르 특유의 난해함뿐만 아니라 ’기초 이론 발전의 종말‘, ’우주 문명의 생존과 도덕 법칙‘ 같은 철학적 심오함을 시청자에게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일 뿐이었다. 내 감히 주장하건대, 드라마 「삼체」는 「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즉 중국 드라마의 대작 반열에 오를 작품 중 하나이다.
원작을 읽었다면 드라마는 더 쉽고 재밌게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고,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마치 BBC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친절한 설명은 작품의 묘미를 느끼고 이해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혹시라도 느껴질 과학적 난해함을 무마시키는 배우들의 흡입력 강한 연기와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감미로운 OST, 그리고 깔끔한 연출과 원작에 충실한 각색과 군더더기 없는 특수 효과 역시 이 드라마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마디로 중국이 마음먹고 만들면 제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삼체 | 류츠신 | 외계 지적생명체, 인류의 구원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삼체 2 암흑의 숲 | 류츠신 | 엄밀한 과학적 상상력과 풍부한 문학적 창작력이 일궈낸 놀라운 소설」
「삼체 3부 | 류츠신 |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SF 소설」
「삼체 1부 | 류츠신 | 좋은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삼체 2부 | 류츠신 | 암흑의 숲, 페르미 역설을 해석하다」
‘저격수와 농장주’ 가설
<2차원 지능의 위대한 발견을 바라보는 저격수> |
인류 문명 수준과 삼체 문명 수준의 엄청난 틈은 ‘저격수와 농장주’ 가설로 표현된다. 그중 저격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저격수가 과녁에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과녁의 평면에 2차원 지능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과학자가 자신의 우주를 관찰한 결과 ‘우주에는 10센티미터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격수가 잠깐 흥에 겨워 아무렇게나 한 행위를 우주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믿은 것이다.” (출처: 소설 『삼체(三體)』)
삼체 문명이 보기에 인류 문명은 2차원 속에 갇힌 벌레 수준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듯 유리창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책상 위를 기어가는 벌레 등 클로즈업된 곤충 화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처음엔 우리 주변의 널리고 널린 벌레들을 보는 것처럼 의미 없는 장면 같아 보이지만, 삼체 문명이 인류에게 던진 한마디 “너희는 벌레다!”와 같이 생각해보면 괘씸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그들과 인류의 기술 격차는 그만큼 어마어마하다.
그렇다고 80억 벌레들이여!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인류가 모기나 바퀴벌레 같은 해충을 박멸하고 싶지 않아서 박멸하지 못했나? 벌레로서 자긍심을 가져라. 시즌2와 시즌3에선 지렁이가 밟히면 꿈틀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요동칠 정도로 발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본 과학의 삶
<어렸을 때 이미 수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양둥> |
반복되는 곤충의 클로즈업 화면은 인류 같은 저차원 문명의 인지적 한계를 은유한다. 삼체 문명이 인류를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도끼와 화살로 사냥하는 침팬지 모습에 흥분하는 인류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시 시작은 그렇게 초라했으나 지금은 달과 화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문명을 누리고 있다. 삼체 문명도 이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지금의 인류 문명 수준은 삼체 문명과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보잘것없지만, 인류가 산업 혁명 이후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기까지의 폭발적인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삼체 함대가 지구에 도착할 400여 년 후에도 삼체 문명이 인류 문명을 압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삼체는 지구의 기초 과학을 현재 수준으로 동결시켰고,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과학자들은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절망적인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이다.
많은 SF 장르가 미래적이고 가시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삼체’는 과학자들의 시각에서 과학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신선하다. 물론 우리 같은 직관/감정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의미를 그들만큼 통한하게 깨우칠 수는 없지만, ‘삼체’를 통해 기초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정도는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종족을 배신하다?
<종족을 배신한 1379호 감청원과 예원제> |
‘삼체’엔 종족을 배신한 두 명이 등장한다. 인간들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광기와 탐욕 때문에 인류를 배신한 예원제(葉文潔)와 황량하고 적막해서 삼체 문명을 배신한 1379호 감청원이 그들이다. 신을 배신한 자, 가족을 배신한 자, 동료를 배신한 자, 왕을 배신한 자 등은 숱하게 봐왔지만, 종족을 배신한 자가 있었을까? 아니 애초 그런 짓이 가능하기나 할까?
예원제와 1379호 감청원의 경우는 이들의 배신이 종족의 멸망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적생명체는 종족을 배신하는 무시무시한 선택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인류의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끝이 없는 전쟁 위협과 극단적인 국가 이기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절망한 나머지 예원제와 같은 선택을 내리겠는가? 아니면 부질없는 것으로 드러날 확률이 매우 높은 ‘희망’을 다시 한번 품어보겠는가?
1급 배우가 출연하는 1급 드라마?
<지구가 이 지경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못할까?> |
열악한 행성 환경 때문에 미학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를 모두 배제한 채 종족의 모든 역량을 오직 문명의 생존만을 위해 쏟아붓는 삼체 문명이 극단적인 전제주의를 선택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들은 혹독한 우주 환경과 싸우느냐 인류처럼 종족 간의 파벌 싸움 같은 것을 벌일 틈조차 없다. 그렇다면, 지금 만약 인류가 삼체 문명보다 조금 못한 외계 문명과 대립하게 된다면 국가 간의 대립과 분쟁을 중지하고 온 인류가 단합하여 외계 문명과 대치하는 신파극이 벌어질까? 아니면 지구 삼체 조직처럼 구원파, 강림파, 생존파로 갈라져 지긋지긋한 파벌 싸움을 벌일까?
아무튼, 3차세계대전이든 10차세계대전이든 지리멸렬하게 인간끼리 싸우다 멸종하는 것보단 고등 문명 앞에 원샷 원킬로 깔끔하게 멸종당하는 것이 초등학생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졌을 때처럼 할 말도 있어 좋고, 폼도 난다. 동족끼리 싸우다 멸종해버리면 이 얼마나 꼴불견인가!
끝으로 「삼체(三体, Three-Body)」는 형사 스창(史強) 역을 맡은 유허웨이(于和伟)와 기자 무싱 역을 맡은 양롱(杨蓉) 등 국가1급배우(国家一级演员)와 2급배우가 등장하는 1급 드라마로 중국에 선입관 없는 드라마 시청자라면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다(참고로 또 다른 1급배우로는 첸다오밍(陈道明)이 있다). 아마도 소설 삼체 2부와 3부는 드라마 시즌2와 시즌3로 진행될 것 같은데, 시즌1이 이 정도면 나머지 두 시즌도 기대해볼 만하다. 시즌2는 2026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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