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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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귀(三鬼) | 미야베 미유키

삼귀 | 미야베 미유키 | 우리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책 리뷰 | 삼귀(三鬼) |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review rating

에도 시대를 꿈꾸게 하는 소설

‘미시마야 변조 괴담’ 이야기에 빠진 독자 중 명랑한 공상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가 묘사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에도 시대를 막 공산주의 사회를 꿈꾸기 시작한 앳된 청년처럼 남몰래 향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로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그리고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듯, 이슬만 먹고살 것 같은 오치카가 사는 에도 시대는 다음 세기에 간토대학살과 난징대학살 자행할 일본의 모습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 사는 곳 같다. 만약 지금 내 눈앞에 영험한 신령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나타나 어떤 시대의 어떤 사람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할지 3초 내로 결정하라고 윽박지른다면 두 손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느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입으로는 얼떨결에 미시마야 근처 세책(貰冊: 책 빌려주는 곳)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그 누구보다도 책 소개에는 일가견이 있을법한 나에게 이보다 적합하고 즐거운 직업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작가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다던 에도 시대는 남의 어려움 따위는 어떻게든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는 작금의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사람에 치여 사는 도시인은 타인의 참견을 관심과 소통의 소소한 발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무례한 간섭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니 낯선 사람과 말 섞는 것 자체가 복권 당첨만큼이나 드문 게 현실이다. 인연이 사라졌다. 이웃은 실종되었다. 情은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으로 사람 사귀는 일도 드물어졌다. 오직 이해득실 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사람들끼리만 끼리끼리 모이다 보니 타인에 대한 경계는 더 심해진다. 서로를 평생 안 만날 사람처럼 대하다 보니 대화로 풀 수 있는 작은 마찰과 사소한 갈등도 고소 • 고발로 이어지기 일쑤다. 물질적으론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정서적으론 피곤한 삶이다.

책 리뷰 | 삼귀(三鬼) |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인연이 살아 있는 사회

물질적으론 빈곤했던 에도 사회가 정서적으론 풍족해 보이는 이유를 작가의 말을 빌려 설명하면,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었다(거꾸로 말하면 현재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연대감이 느슨해진다는 것인데, 잘 곱씹어 보면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기근, 굶주림, 재난, 질병, 사고, 살인 등 목숨을 앗아가는 위험 요소가 주변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믿고 의지하게 하는 연대감은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연대감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호혜의 토대를 쌓을 수 있는 인연을 무시할 리가 없다. 인연이라 할 수 있는 사소한 만남이 동지를 만들고 친구를 사귀고 연인을 맞이하고 결국인 가족과 친척을 맺어주듯 연대감은 인연에서 싹트고 인연으로 확장된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는 인연이 살아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기는커녕 오히려 안약을 넣은 것처럼 시원할 것 같은 오치카가 덜 익은 호리병박 같은 아오노 리이치로를 알게 된 것도 인연이고, 두 사람의 인연이 독자의 기대와 어긋나는 생뚱맞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도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인연이 잡음처럼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사이로 휭하니 부는 아쉬움과 쓸쓸함을 가라앉히려고 도깨비처럼 나타난 간이치(『삼귀(三鬼)』에 처음 등장하는 세책 장수)도 인연이다. 그리고 ‘아귀’ 같은 히다루가미 신이 찰떡처럼 달라붙은 덕분에 맛있는 도시락 배달가게를 낼 수 있었다면 그것 또한 인연이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엔 아날로그 접촉 수단인 ‘옷깃을 스치는 인연’ 같은 것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간혹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절교 • 퇴직 • 해고’를 달랑 문자 메시지 한 건으로 대체하는 스마트 시대답게 끈기가 없고 찰지지도 않다. 반면에 작가가 꿈꾸는 에도 시대는 실루엣처럼 아롱거리는 사람 냄새가 피폐해진 내 영혼을 솜사탕처럼 포근하면서도 달곰하게 감싸고도는 것이 미녀가 이부자리 한쪽을 살포시 젖혀놓은 채 윙크하는 것만큼이나 매혹적이다. ‘정나미를 단단히 붙이고 싶은 사회가 바로 이런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나도 인연의 실타래를 마음껏 풀어 헤치고 싶다’라는 토라질 대로 토라진 희망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외로움이 고름처럼 터져 나오는 불상사로 귀결된다.

되는대로 쏟아낸 나의 몽상처럼 지금까지의 미시마야 이야기가 에도 시대에 대한 망상에 가까운 그리움을 샘솟듯 솟구치게 만드는데 나름 선전했다면 『삼귀(三鬼)』의 통절한 이야기는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이 간당간당했던 시기임을 시기적절하게 깨우쳐 주는 경고판이다. 에도 시대엔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어제까지의 세계’라고 표현했던 수렵 • 채집 사회의 고달픔이 잔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기근과 굶주림, 생산적인 일에 도움이 안 되는 아기 • 노인 • 병자를 버리는 잔혹한 관습이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지 않은 것은 향수에 젖을망정 현실 도피는 하지 말라는 작가의 일침이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에도 시대를 향한 짝사랑을 마음속에서 온전히 떨쳐내지 못한다 해도 비웃지들 말라. 현실도피자의 도락 거리가 하나 늘었다 해서 당신들에게 뭐하나 피해 가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누군가 슬픔과 고통과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모른 척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는 팔을 뻗쳤을 때 외면하지 않는 인정 같은 것이 에도 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흔했을까?’ 하는 순진한 의구심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울 수는 없지만,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 반드시 쓸모없는 일은 아니라는 믿음에서 난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를 통해 근심을 잊고 흥도 돋우고 그럼으로써 짜글거리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은 속 편한 감상에 젖어 든다. 외로운 사람들에겐 책만 한 인연도 없으리라.

책 리뷰 | 삼귀(三鬼) |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줄까?

아득히 먼 에도 시대에 빠져 약에 취한 듯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어느덧 잠에서 깬 다롱이의 말똥말똥한 눈과 마주치자, 정신이 반짝 든다. ‘아, 난 지금 집에 있구나’ 비로소 죽을 각오를 했을 때만 고백할 수 있는 통절한 이야기에서 해방된다. 비로소 살이 녹고 뼈가 가루가 되어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에서 해방된다. 비로소 원통하고 분하지만 싫지는 않은 이야기에서 해방된다.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독서삼매에 빠진 형이 사경 비슷한 것에서 헤매다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롱이는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든다. 강아지 꼬리가 일으키는 바람이 의외로 시원한 것에 놀라곤 했던 여름은 지나가고 강아지 체온이 천연 난로로 작용할 시기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다롱이는 내가 너무 책 속에 빠진 것이 걱정되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이야기하면서 살아간다. 이야기해야만 인연이 생기고, 이야기해야만 은원이 맺어지고 풀어진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옳은 일도 잘못된 일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줌으로써, 그렇게 이이기를 만들어 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덧없는 인생들이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면, 내 이야기는 누가 들어주고 내 흔적은 누가 봐줄까? 책에만 틀어박혀 지내다 보면 오우메처럼 생령이 되어 괴담의 주인공이라도 되려나? 아니면, 간타로처럼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장지문을 훌쩍 뛰어넘어 고통과 두려움 없이 저승으로 단숨에 도약하는 복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아무튼, 주인의 손에 감추어진 간식의 냄새를 맡은 개가 잠시 후 있을 만찬을 상상하면서 침을 흘리듯 도서관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책을 대출받아 고이 모셔 오는 길에 나의 뇌세포도 뭔가를 질질 흘릴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으로 얼룩진 정신병자의 독백 같은 리뷰를 매듭지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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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1. 다롱님 안녕하세요, 먼저 상관없는 지면에 질문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팀비션에 파일을 업로드 하려고 하니 파일수 제한에 걸려
    업로드가 되질 않더군요,

    지금까지 5테라 정도 업로드 한것 같은데, 더이상 업로드가 되지않고, 유료플랜 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라고 안내가 나오더군요.

    다롱님은 어떠신지요?
    결국 올것이 온것일까요?

    정성스럽게 포스팅 하신글에, 관계없는 질문을 말씀드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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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단 지금 전 업로드 됩니다(Alist+에어익스플로러). 얼마 전에 업로드 오류가 있었는데, 쿠키값 갱신하고 업로드 잘 됩니다.
      그런데 업그레이드 안내가 나올 정도면, 단순한 오류는 아니라 정책이 변경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업로드되는 것은 아마 홈페이지 접속을 하지 않아, 그래서 새 정책이 반영되지 않은 쿠키값(?)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조만간 업로드 제한에 걸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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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s://singingdalong.blogspot.com/2021/01/Free-Unlimited-Cloud.html
      위 글 댓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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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녕하세요.. 저도 질문글올려서 죄송합니다.. 바이두어떻게 처음가입햇는데 모바일보니 무슨미션을 주더라구요.. 근데 애는 어떻게 해도 용량추가가안되길래 여기에 이렇게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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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써져햇는데 뭘해도 안되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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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냥 자료를 두 번 공유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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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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