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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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暗獸) | 미야베 미유키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괴담의 탈을 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책 리뷰 | 안주(暗獸, あんじゅう) |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
review rating

괴담이 슬퍼도 괜찮은 걸까?

지어낸 이야기이건 실화이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온갖 세상만사에는 눈물을 비 오듯 흘리게 만드는 슬픈 이야기가 무척이나 많다. 그만큼 사람 사는 것이 신산하고 피곤하고 각박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는 호모 사피엔스만의 유별난 감정이입 능력, 그리고 여기에 예민한 심금과 풍부한 감수성이 영구와 땡칠이처럼 허물없이 어우러지면 우리의 눈물은 대체로 마를 날이 없다. 나처럼 감수성이 좀 예민한 사람은 눈물을 재촉하듯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에 시동이 막 꺼진 자동차 밑에서 잠시 추위를 피하려는 고양이만 봐도 눈물을 조록조록 흘린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무형 • 유형의 모든 무기를 육체와 정신에서 완전히 떨쳐낼 수 있다면 사람은 한없이 연약한 동물이다.

그래도 그 모든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면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위해서도 기꺼이 눈물을 흘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봤자 모두 살아 있는, 과학적으로도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세상에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론 어딘가엔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유령이나 요괴 따위로 이토록 슬픈 이야기를 만두 빚듯 맛나게 지어내는 작가가 또 어디 있을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재밌게 읽어주게 말이다.

책 리뷰 | 안주(暗獸, あんじゅう) |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
<한국판 표지에선 사라진 구로스케(제작진 중 단 한 사람도 책을 안 읽었다는 것?)>

달을 보고 노래하는 이치를 벗어난 존재에 대해

일본에선 오랜 세월 사람의 손에 사용되어 충분한 기가 깃든 물건은 때로 요물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황석영의 소설 『낯익은 세상』에서 쓰레기로 뒤덮인 현실의 꽃섬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밭을 갈고 고기를 낚으며 사람이 살았던 옛 꽃섬을 이어주는 것은 사물에까지 깊숙이 스며드는 사람의 정(情)이다.

사물에까지 정(情)을 투영하는 조상들의 애틋한 관습은 물건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알뜰한 지혜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하지만, 생명이 없는 물건에까지 정을 주는 사람의 불가사의한 심성은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의 소설에선 이치에 맞는 세상과 이치에서 벗어난 세상을 연결해주는 의미 있는 연결고리이다.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그 간절함이 현신한 안주(暗獸, あんじゅう), 즉 구로스케는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신도 아닌 세상 이치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존재다. 구로스케는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약해질 대로 약해지다가 끝내 소멸하고 마는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구로스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기를 어루만지듯 자신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가도 부부의 손길이 자신의 (그에게도 그러한 것이 있다면) 생명을 야금야금 갈아먹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퇴치하고 피해야 할 요물이 아닌 생명이 있는 따스한 존재로 받아준 가도 부부의 애틋한 마음이 구로스케 같은 요괴에게도 통했을까? 그렇다면 통성명도 할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손도 마주 잡을 수 없는 세상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와 세상 이치에 안주(安住)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은 서로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그 간절한 마음, 즉 정(情)에 있다고 대답해도 되지 않을까?

사람의 이치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구로스케가 높은 가지에 올라가 달이 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하는 모습은 약간의 상상력과 일말의 인정머리가 남아 있는 사람에게 애달픈 마음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이것만큼이나 애달픈 것은 사람을 그리워할 만한 정이 깃든, 그래서 구로스케 같은 세상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를 허용할 만한 그런 고풍스러운 집들이,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은연히 살아갈 수 있는 어둠이 이젠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구로스케 같은 존재는 미신과 더불어 과학과 문명에 의해 사장되어 가는 퇴물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러함으로써 왠지 우린 냉정한 세상 이치에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치대로 굴러가는 세상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어 보여 보기 좋다. 하지만, 이치에서 벗어나려는, 그럼으로써 일탈의 해방을 누리려는 여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니 갑갑하다. 이치란 것이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만능은 아닐 터, 그런데도 모두가 이치로만 따지려고 들면 서로 잘났다고 티격태격하는 꼴이 아닌가? 피곤하고, 정(情)도 떨어진다. 각박하다.

책 리뷰 | 안주(暗獸, あんじゅう) | 미야베 미유키(宮部 みゆき)
<지금도 누군가의 상상의 나래 속에서 구로스케는 노래하고 있겠지>

마음을 졸이기보단 푸근함을 기대하며

구로스케는 죽었을까? 죽었다고 단정 지으면 가뜩이나 울적한 마음에 못을 박는 격이니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애초에 생명이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없으니 죽었다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그럼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집이 사람을 그리워해 구로스케를 만들 수 있었다면, 구로스케를 그리워하는 우리의 정념으로 구로스케를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시대의 구로스케를 현대에 부활시켜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구로스케는 어디에서 누구를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빛 공해에 시달리면서도 우린 여전히 어둠은 귀신처럼 쫓아내야 할 불길하고 두려운 것으로 여긴다. 이치에 갇혀 사니 이치에서 벗어난 존재가 어둠 속에서 은둔하고 있으리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한다. 상상력의 빈곤, 판타지의 종말, 정(情)의 고갈, 메마른 정서. 오늘도 구로스케는 어둠 속에서 야멸찬 인간 세상을 흠칫 훔쳐보며 가도 부부와 살았던, 구로스케의 인생 중 가장 행복했을 것 같은 그 찰나의 세월을 그리워한다. 이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며.

요괴 • 저주 • 복수 이야기는 보통은 마음을 졸이고 전율을 기대하며 읽는 것이 관례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이야기는 정반대다. 요괴 • 저주 • 복수 등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의 이야기는 두려움과 공포에 전율하는 소름 따위는 돋게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 세상 이야기 같은 기괴한 이야기가 기습하듯 전해주는 예상치 못한 따스한 감정은 담석처럼 굳은 우리 마음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 고사리잎처럼 갈라진 틈으로 포근하면서도 처량한 눈물이 흘러나온다.

사랑스러운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야기하는 사람도 사랑스러워진다면, 나는 미야베 미유키를 사랑해야 할 듯싶다. 그것도 무척이나 말이다. 결국 이렇게라도 닭살이 돋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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