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룡 천하제일청백리(于成龙, 2017) | 늦은 출사에 해 저물 줄 모른다
<과거를 보러 온 장길인, 우성룡, 류진양(뒤는 마부 석옥림)> |
45세(1661년)라는 늦은 나이에 관직에 올라 66세(강희 23년, 1668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장 청렴한 관리에게 주는 상 탁이(卓异)를 무려 세 번이나 받은 전설적인 관리 ‘우청천’ 우성룡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중국에서 그는 세상 가장 청렴한 관리(天下廉吏第一)로 명성이 자자하며, 관리 생활을 하며 오직 두부와 무, 청경채 등만 먹었다고 하여 우채소(于青菜)라고도 불린다.
왕조가 바뀌는 격동의 시기라지만 이런 인재가 45세까지 등용되지 못했다니, 정말로 중국에선 메시가 밭을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관리 우성룡의 첫 번째 난관 사덕창, 주윤발인 줄 알았다!> |
사익과 연줄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리 사회에서 상관과 유력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대로 공명정대하게 법을 집행하는 일을 관직 생활 내내 고수한 것도 찬사를 받을 일이지만,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형편임에도 검소한 생활을 몸소 실천하고자 고기를 절제하는 금욕은 육식에 환장한 현대인에겐 아마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더욱 존경스럽다.
우성룡이 쌓은 업적이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행실조차 그토록 깨끗하다니, 드라마를 감상하는 내내 믿기지 않는다. 어쩔 땐 ‘미화가 일언반구도 없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위키백과 내용이 진실이라면 이런 의구심을 떠올린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다.
<우성룡의 손오공이자 공문 아전, 류진양> |
따지고 보면 인류사 통틀어서 우성룡 같은 모범 중의 모범이라 할 만한 공직자가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다. 그뿐만 아니라 장엄하고 찬란한 역사를 부침의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멸망하지 않고 현대까지 꾸준히 이어 온 나라가 중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 어디 또 있을까?
우리가 간간이 마주치는 중국의 몰상식함을 아무리 비난해도 중국의 역사는 지울 수 없다는 점에서 참으로 부럽다. 그런 연유로 중국 드라마는 역사, 시대극이 유난히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역사가 없는 미국으로선 이런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대신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드라마로 과학 선진국의 위용을 뽐낸다.
<설마 저 머리가 가발은 아니겠지?> |
드라마 「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에 등장한 배우들도 그러했지만, 「우성룡(于成龙)」에 출연한 남자 배우들은 앞머리는 깎고 뒷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변발을 위해 부분 삭발을 감행했다.
어떻게 보면 의상, 세트장, 소품 모두 ‘가짜’라고 볼 수 있는데, 왜 머리 모양만큼은 가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짝퉁’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그러하니 더더욱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삭발이 배우들의 작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것인지, 강제인지 알 수 없지만, 드라마를 찍을 때마다 머리를 밀면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청나라가 아닌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는 출연이 좀 어려울 것 같다. 그 예로 극 중에서 우성룡의 손오공인 류진양 역을 맡은 배우 수경(修庆)은 2015년, 2016년에만 각각 세 작품씩 출연했지만, 2017년엔 오직 「우성룡(于成龙)」 한 작품에만 출연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8년엔 다시 두 작품에 출연했다.
<우성룡 일당의 부엌을 책임지게 될 석옥란> |
<바탕화면으로 사용해도 좋은 드라마 배경> |
중국 시대극의 볼거리 중 하나는 드넓은 대륙이 뽐내는 다채로운 절경과 지역적 특색을 잘 살린 촬영 세트다. 녹색보다 흙색이 더 두드러져 얼핏 보면 황폐해 보이는 산시성의 수묵화 같은 정경은 차분하고 고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밀림처럼 숲이 우거진 광시성(실제 촬영 장소는 장쑤성, 아니면 항저우로 추측됨)의 녹색 물결은 잿빛에 압살당해 색의 아름다움을 잊을뻔한 도시인의 가련한 눈을 정화해준다. 우성룡이 태어나고 자란 시골 마을의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목가적이고 소박한 정경은 무료 이미지 사이트인 픽사베이(pixabay) 같은 곳에 공유해도 손색이 없다.
한편으론, 중국의 고질적인 병폐인 도시와 벽지 간의 물질적 격차가 「우성룡」 같은 시대극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세트로 활용될 수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시대극이 봇물을 이루는 중국 드라마 사정을 보면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 한 장면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사진 촬영에 놀란 시골 아낙네를 보는 듯> |
중국 드라마는 대체로 편수가 길다. 일본 드라마가 짧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면, 중국 드라마는 만만디(慢慢的)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반면에 미국 드라마는 한 시즌에 포함된 편 수는 몇 개 안 되지만, 인기가 있다 싶으면 시즌을 연장하는 재주를 부린다. 일단 첫 번째 시즌을 내놓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다음 시즌을 제작할지를 계산하는 것 같다. 역시 수익에 민감한 나라다운 신중한 발상이다.
아무튼, 중국 드라마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본 • 미국 드라마처럼 한 편으로 사건 하나를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닌 한 사건으로 네다섯 편 이상씩 끌고 가는 「우성룡」 같은 드라마는 완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지루한 기색은 느낄 수 없다. 아늑한 배경과 부정 • 부패를 저지른 탐관오리들을 일망타진하는 우성룡 일당의 용감무쌍한 활약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한 사람이 바보짓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웃는 선에서 끝나지만 한 관리가 바보짓을 하면 백성이 고생한다.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주변 몇 사람이 고생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한 관리가 죄를 지으면 나라의 기둥이 휘청거린다. 시진핑 주석이 이 드라마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강희제처럼 우성룡을 문무백관의 모범으로 삼아 중국의 긴 역사만큼 끊이지 않고 답습된 관리의 부정 • 부패를 척결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간접적 표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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