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12시진(长安十二时辰, 2019) | 볼 수 있다면 봐라, 후회 안 한다
<18,000여 명의 출연진, 70에이커 세트장 건설의 위엄> |
노자의 생애를 최초로 조명한 중국 드라마 「노자(老子传奇)」에 대한 글을 쓰면서 배우들의 연기는 개차반이었지만, 나름 공들인 세트장은 볼만했다고 조금은 칭찬했었다. 오늘 소개하는 드라마 역시 象山影视城(Xiangshan 영화 및 텔레비전 도시)에 70에이커(가로세로 4.4km 정도 되는) 면적의 세트장을 별도로 신축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또한 장안의 위대함은 곧 중국의 위대함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듯 당나라의 화려하고 번화한 옛 장안을 근사하게 재현했다.
「장안12시진」 같은 잘 만들어진 중국 사극을 볼 때 느끼는 사실은 특수 효과가 제아무리 뛰어나도 실물만 못 하다는 것. 이처럼 드라마를 촬영할 때마다 ─ 모방과 복제의 나라답게 ─ 역사적 장소의 복제품을 계속 건설하는 중국은 언젠간 고대 도시와 현대 도시가 공존하는 기묘한 나라가 될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장안12시진‘ 시즌2 같은 대작 드라마 「풍기낙양(风起洛阳, 2021)」도 추천!
<영웅은 박하잎을 즐겨 씹는다?> |
하지만, 「장안12시진」은 거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촬영장 건설에 소비된 돈을 단 한 푼이라도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듯 연기, 연출, 의상, 분장, 액션, 스토리텔링, 촬영, 소품 등 규모가 큰 것에서부터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다. 이미 천년도 훨씬 전에 역사의 한 장으로 마무리된 당나라의 번영이 재차 꽃 피우려는 듯한 출연자들의 아름답고 화사한 의상은 눈이 부시다 못해 부러울 정도다.
<강철 체력 장소격 역을 맡은 레이자인(雷佳音)> |
영화 산업에 있어 세계적 지배력은 개인적 창의성과 독보적인 스토리텔링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 할리우드와 그에 맞서 ‘헝디엔으로 오세요. 더욱 저렴하고 노력이 적게 듭니다!’라고 마치 시장 한복판에서 '골라 골라'를 외치는 장사꾼 같은 사람들에게나 더 잘 어울리는 구호로 맞선 중국의 영화 산업에 대해 모두가 우려했지만, 결과는 중국의 기적 같은 경제 성장처럼 중국의 영화산업도 세계의 예상을 뒤엎었다.
한마디로 「장안12시진」은 중국 영화산업의 과거와 현실과 미래가 모두 담긴 작품이다. 역사가 없는 미국으로선 엄두가 안 나는 드라마이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대나무로 제작되었다?> |
특히 쓸데없이 돈과 땅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냐고 우려할 만한 여지가 없지 않았던 중국의 세트장 건설 붐은 중국식 발전 전략의 한 대목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일단 만들어놓고 보자. 그러면 누군가는 그걸 가지고 쓸만한 뭔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창의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억지로 머리를 쥐어 짜내며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상상력에 보탬이 될만한 재료를 먼저 만들어놓고 보는 것, 즉 흩어진 레고블록으로 이것저것 만들다 보면 뭔가 색다른 것이 나온다는 것!
점점 더 기술에만 의존하려는 할리우드와 세트장 건설 붐에 이은 기술 • 인적 투자로 작품성과 스토리텔링에도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국의 헝디엔. 훗날 누가 세계 영화 시장을 지배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사는 이 자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
물론 여기엔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라올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때때로 드라마 「노자(老子传奇)」처럼 세트장은 훌륭한데 연기는 엉성한 균형이 잡히지 않은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모든 면이 다 형편없는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중국은 해내고 만다. 많은 사람이 중국의 수많은 아류작을 비웃으며 비열한 만족감을 충족시킬 때 난 한 편의 대작을 감상하며 중국 영화산업의 발전과 부흥을 축하하련다. 사실 위대한 작품은 단 하나면 족하다. 노벨문학상 하나로 그 나라의 문학적 역량을 빛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드라마 이야기는 하지 않고 쓸데없는 글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마보융(马伯庸)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로 제작한 「장안12시진」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장안이라는 대도시에서, 그것도 당나라의 큰 명절인 상원절(정월대보름) 날 하루 사이에 벌어지는 테러 사건을 다루고 있다.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는 세트장과 햇빛 속에서 하늘하늘 춤추는 먼지마저도 당나라 것을 구해왔을 것 같은 정성스러운 재현력은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그것보다 개성 만점의 캐스팅,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궁중 음모나 권력 다툼을 다룬 드라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조차도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궁중 암투의 묘미, 여기에 장면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볼거리와 빠른 전개는 보는 사람이 무엇에 비중을 두던 모두에게 흡입력 있는 사연을 제공한다.
자질구레한 말을 듣기보다는 볼 수 있다면 일단 봐라. 후회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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