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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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적인걸(通天狄仁杰, 2017) | 적인걸을 김전일처럼 굴리면?

드라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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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살인×심리 트릭×궁중 음모… 추리광을 사로잡는다

황후가 된 무미랑

적인걸전(神探狄仁杰前传, 2010)」의 시대적 배경이 대략 적인걸(630~700)의 50대 전후, 즉 당나라 고종(高宗, 628~683) 말년부터 무측천이 황제로 등극 후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통천적인걸」은 적인걸이 과거(명경과)에 급제한 후 변주(汴州, 현재의 개봉)의 법률 관련 하급 관리로 첫 관직을 시작하는 30세(660)부터 무미랑이 황후가 되는 시기(665)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두 드라마가 ‘역사 드라마’라 칭할 정도로 역사의 정수를 진지하게 담은 것은 아니므로 지레 식겁할 필요는 없다. 특히 「통천적인걸」은 밀실 살인 사건, 범인은 우리 중에 있다, 범인은 왜 불가능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나? 등 추리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심리 트릭을 포함한) 각종 트릭이나 설정이 (그런 트릭의 완성도 유무를 떠나) 주요 이야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추리광에겐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다. 스케일 큰 음모를 배경으로 한 연속된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역사 속 명판관을 김전일처럼 굴리기’ 프로젝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추리 요소로 가득하다.

역사적 정확성은 ‘적인걸이 이걸 보면 웃을까, 눈살을 찌푸릴까?’ 수준이지만, 시청자는 ‘어쨌든 재밌으면 장땡!’하며 고종의 ‘머리 아픈 정국’과 무미랑이 서서히 권력의 묘미를 깨우쳐가는 ‘궁극의 권력 게임’ 사이에서 적인걸이 증거 찾느라 밤새 똥줄을 타는 모습에 재미를 느끼고,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애간장을 태워주면 그만인 것이다.

한마디로 「통천적인걸」은 진지한 사극보다는 두뇌 게임 쇼처럼 즐길 수 있는, 적인걸이 청년 시절부터 천재 추리력의 싹수를 보였다는 팬픽(fanfic) 같은 재해석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적인걸(디렌지에, 狄仁杰)

적인걸과 모용청

적인걸 역은 가수 겸 배우 임가륜(任嘉伦)이 맡았다. 2011년 한국에서 한중 합작 그룹에서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팀장, 메인 댄서와 래퍼를 맡았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데뷔하지 못하고 귀국한 후 처음 촬영한 드라마가 바로 「통천적인걸」이다. 그런데 훈훈한 외모가 어딘지 낯익다 했더니, 바로 「금의지하(锦衣之下, 2019)」에서 육역 역을 맡았던 그 지랄스럽게 잘생긴 배우다. 다만, 2년의 세월이 살짝 느껴질 정도로 연기 감각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태.

무공은 거의 못 하지만, 혁박술이라는 전설의 신기와 민첩한 두뇌 회전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적인걸은 여러 번의 파격 승진을 거부하고 (백성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이상주의자다운 젊은이의 객기로) 변주의 하급 관리를 고집한다. 웬만해선 웃음과 태평한 표정을 잃지 않는 그이지만, 사부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모용청 앞에선 너무나도 쉽게 멘탈이 붕괴하는, 한마디로 고집 있는 로맨틱한 청년.

「금의지하」의 육역이 ‘잘생김+연기’ 패키지였다면, 임가륜의 적인걸은 연기력보다 얼굴로 버티다가, 캐릭터 자체의 매력에 구원받은 사례라고 할까나.

무미랑(武媚娘)

무미랑과 적인걸

훗날 무측천이 되는 무미랑 역은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의 대책 없는 명랑 캐릭터 이대보를 연기한 자오준얀(焦俊艳)이 맡아 열연했는데, 그녀는 (개인적으로 볼 때) 이 드라마에서 가장 돋보이는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다. 그녀는 ‘절제된 눈빛 한 번으로 무측천의 운명을 예고했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선량하고 초탈한 비구니 시절부터 위압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 황후로 거듭나기까지 단 한 프레임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연기 내공을 선보인다. 특히 선량함 뒤에 감춘 야망, 말 없는 장면에서도 흘러나오는 권력의 기운은 마치 차가운 겨울 호수 아래 흐르는 거대한 강을 보는 듯하다.

역사의 평면적 기록을 넘어 "이거… 역사 속 무측천은 실제로 이랬을지도?"라는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속 무미랑은 과거의 남성우월주의적인 역사관의 가장 큰 희생자였던 무측천에 대한 재해석이랄까. 무미랑이 그저 운이 좋아서 일개 궁녀에서 중국 최초의 여황제로 등극했겠는가? 절대 아니다. 그저 난폭하고 잔인하기만 해선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없다. 무미랑이 딸 안정 공주의 죽음(그녀가 일부러 죽였는지, 혹은 자연사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부족함. 드라마에선 왕 황후의 계략으로 죽은 것으로 나옴) 같은 비극마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냉철함과 동시에 적인걸 같은 인재를 아낄 줄 아는 명석함을 두루 갖췄기에 훗날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로 단순화할 수 없는, 권력자로서의 고독과 역량을 두루 갖춘 무측천의 다층적 면모를 섬세하게 구현해 냈다.

고종 이치(李治) vs 복왕 이태(李泰)

고종 이치와 복왕 이태

고종 이치 역은 주아휘(瞿澳晖), 친형 복왕 이태 역은 왕유(王雨)가 맡았다.

드라마에서 고종은 황후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황제로, 복왕은 온화하고 총명한 풍류남아로 묘사된다. 하지만, 역사는 이와 반대다. 학문에 뛰어난 이태는 태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태자 이승건(李承乾)의 모반 후 황위 계승 경쟁에 휘말려 유배되는데, 이후 특별한 정치적 업적 없이 생을 마감했다(652년). 드라마는 ‘만약 복왕이 황제가 되었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활용해 극적 긴장감과 가상 역사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종은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고구려 정벌(668년), 법전 편찬과 행정 개혁, 장손무기(長孫無忌) 제거, 왕 황후 폐위 등 내면에는 강한 정치적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 드라마에서 고종을 약한 황제로 묘사한 것은 복왕의 야심과 무측천의 강렬한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말년에는 건강 악화로 어쩔 수 없이 무측천이 정사를 주도했지만, 생전까지 그녀를 효과적으로 통제한 황제가 고종이었다. 결코 드라마처럼 물렁물렁한 황제는 아니었다는 것.

모용청(慕容清)

적인걸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의 여자 모용청

고모의 뒤를 이어 약왕산장의 장주가 된 모용청 역은 무심히 쏘아보는 표정이 매서운 칸칭쯔(阚清子)가 맡았다.

‘모용’이라는 성을 듣고 대뜸 떠오른 것은 김용 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에 등장하는 왕조 부흥을 꿈꾸는 귀공자 모용복(慕容復)인데, 모용청의 운명도 모용복과 사뭇 비슷하다. 둘 다 고모의 손에서 자랐다는 것,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 고수라는 것, 연인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 등. 모용청은 모용복의 여성 버전이랄까? 고모의 뒤를 이어 장주라는 권력을 잡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없다는 고뇌. 마치 모용복이 아버지의 유산에 얽매인 것처럼 그녀도 가문의 운명에 짓눌린다.

모용청은 적인걸에게 끝끝내 모든 걸 주지 않는 신비스러운 여자로 남는다. 두 사람의 키스 신은 무려 4번이나 등장하지만, 그 키스마저도 사랑과 복종과 운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용청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입술은 닿아도 마음은 멀어질 수 있다는 것! 적인걸이 마지막까지 그녀의 마음을 읽지 못한 건, 애초에 그녀 자신도 자신의 진심을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애잔함이 찻잔에 남은 찻잎처럼 씁쓸하게 남는다. 운명을 거부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다지도 고난의 행군이 될 줄이야, 그 머리 좋은 적인걸도 몰랐던 것이리라.

아무튼, 모용청의 운명은 모용복처럼 패배한 야망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비남릉(飞蓝绫), 비홍건(飞红巾) 자매

적인걸을 사모하는 남릉 홍건 자매

어찌어찌 인연이 되어 적인걸의 조수가 되는 남릉 • 홍건 자매 역은 리루오지아(李若嘉), 관설잉(关雪盈)이 맡았다. (두 사람에겐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앞서 소개한 모용청/무미랑이 SSR급 5성 가챠라면, 비자매는 SR급 4성급 정도 되려나?

아무튼, 한 사람은 차분하고 한 사람은 왈가닥인 것이 성격도 외모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허우대가 멀쩡한 적인걸이 무공을 못 하는 걸 보고 사사건건 ‘바보 서생’이라고 놀리지만, 힘이 아닌 머리로 적을 제압하는 모습에 매혹당하면서 적인걸을 따르게 된다. 한때 도적이었던 만큼 무공도 출중한 두 사람의 합류는 적인걸 처지에선 쌍포를 얻는 격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다 적인걸을 좋아하게 되면서 가뜩이나 모용청 때문에 마음고생 심한 적인걸의 로맨스는 더더욱 복잡미묘하게 전개된다.

이 두 사람의 출현은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액션의 운치를 더하는 한 수라고 볼 수 있다. 「통천적인걸」이 다른 드라마의 액션과 다른 점은 대역 배우가 아닌 본인들이 직접 소화한 액션 연기 장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홍건 역을 맡은 관설잉은 무용부 출신답게 유연한 몸놀림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쌍검 액션을 멋지게 보여준다. 이 때문에 줄거리와는 별도로 애쓴 흔적이 역력한 액션 연기도 볼만하다.

역사적 고증? 관심 없어! 추리 오락물의 참맛을 즐기면 되는 거야

쌍검을 휘두르는 홍건

진지한 사극과는 거리가 멀지만, 주요 등장인물이나 전체적인 배경은 역사적 맥락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으므로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알고 보면 더욱 재밌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중국 시대극이다. 다만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중국 역사와 관련된 부분은 잘못된 정보가 많으니 중국어 위키백과나 바이두 백과를 참고하자.

로맨스도 상투적으로 달달하게만 흘러가지 않아 거부감이 없으며, 액션 역시 위에서 말한 대로 이 정도면 신경 많이 썼다고 볼 수 있다. 의외로 또우반 평점은 낮고, 개연성, 연기력 등 그에 합당한 이유야 있겠지만, 이 정도 수준의 액션과 추리 요소를 갖춘 시대극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리고 막장 드라마도, 진지한 사극도 아닌 역사라는 맥락을 장판처럼 떡하니 깔아놓고 그 위에서 자유분방하게 노는 상상력의 승리를 즐길 수 있는 시청자라면 추천하고 싶다. 누구의 말대로 적인걸이 등장하는 작품치고 재미없는 것은 없기도 한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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