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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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F가 된다 | 삼중 밀실 미스터리

모든 것이 F가 된다 | 모리 히로시 | 삼중 밀실 미스터리에 취하다

책 리뷰 | 모든 것이 F가 된다 | 모리 히로시 | 삼중 밀실 미스터리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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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추리소설」에서 이어져 옵니다.

이공계 미스터리의 냉혹하고 냉철한 논리

‘이공계 소설가’라는 특이한 호칭을 얻은 (따지고 보면 『삼체』의 류츠신, 『기억나지 않은, 형사』의 찬호께이, 그리고 수재들만 모인다는 칭화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고독 깊은 곳』의 하오징팡 역시 이공계 소설가다)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는 어떠했을까?

일단 외딴 섬, 그 외딴 섬 안의 창문 하나 없는 연구소, 그리고 그 연구소 지하 2층이라는 삼중 밀실트릭을 완성하는 핵심 키워드를 처음 접했을 땐 ‘그것은 쌍둥이였다!’만큼은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 그렇구나!’ 하는 탄사 어린 감탄까지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의 논리적 비약을 혹평하기에 앞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곰곰이 되새기며 이것이 마냥 터무니없는 결말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땐, ‘억’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것은 녹이 슨 태엽처럼 두뇌 회전이 원활하지 못했던 나의 무능함에 대한 탄식이자, ‘밀실트릭을 이런 식으로도 깰 수 있구나!’ 하는 찬사다.

삼중으로 잠긴 밀실트릭을 여는 열쇠는 소설 전반에 걸쳐 많이는 아니더라도 상상력을 다소 곁들인 추리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는 분포되어 있었다. 특히 뛰어난 계산력과 세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그러면서도 천생 세상 물정 모르는 갑부집 아가씨이기도 한 니시노소노 모에의 관찰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이카와 교수의 추리는 상당 부분 모에의 뛰어난 관찰력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모리 히로시의 작품은 ‘S(사이카와) & M(모에)’ 시리즈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그 열쇠가 만들어진 숨겨진 배경 이야기를 추리해 낼 단서는 끝내 찾지 못했다. 내가 놓친 것인지, 아니면 이에 대한 단서까지 제공하면 독자가 쉽게 밀실트릭을 깨지는 않을까 하는 작가의 승부 근성이 작용한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끝내 사이카와 교수조차 당해내지 못한 마가타 시키 박사의 천재성과 그 천재성이 두루 발휘된 ─ 과학적으로는 냉철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적으로는 냉혹하다고밖에 평가할 수 없는 ─ 범죄 구성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만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범죄를 감정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이유에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엄격하게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이공계’ 미스터리의 특징일까? 아무튼, 내가 삼중 밀실트릭을 푸는 열쇠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사이카와 교수의 말대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이것은 추리소설에 몰입한 독자가 빈번하게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소설 속에 풍덩 하고 푹 잠겼을 땐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현상 아닐까? 세상 모든 시름을 내던지고 잠시나마 한눈을 팔 수 있는 정신의 완만한 이완이야말로 우리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닌가!

책 리뷰 | 모든 것이 F가 된다 | 모리 히로시 | 삼중 밀실 미스터리에 취하다
<마가타 박사 연구소(출처: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

이공계 작가가 구현한 소설 속 진풍경

이공계 작가가 쓴 소설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F가 된다』에는 중간중간 SF적인 요소도 언뜻 보인다. 최근 대중화되기 시작한 VR(가상 현실, 내가 본 기억은 없지만, 1990년대 일본이나 미국의 오락실에는 있었다고 함) 게임에서 눈의 시선으로 마우스 기능을 대체하는 기술이 등장한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10에 비교적 최근에 도입된 ‘아이 컨트롤’이다. 이 기술은 ALS, 루게릭병과 같은 신경근육 질환으로 물리적인 마우스나 키보드 조작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술이다. 소설 속 가상 현실 게임은 참여한 인물이 넥슨의 카트라이더처럼 카트를 타고 3D로 시뮬레이션 된 거리를 돌아다니며 다른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간단한 것이다. 당시 출시된 VR 게임인 ‘버추얼리티(Virtuality)'라는 오락실용 VR 게임기와 ’세가VR‘의 그래픽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사이카와 교수가 사실적인 거리 표현에 놀라 자빠지는 것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지금의 우리가 본다면 대학생들의 습작 정도도 못 되는 그래픽 품질에 망연자실하고도 남는다. 물론 그 당시 기술로는 그것은 획기적인 수준이었음을, ‘버추어 파이터’, 혹은 ‘터미네이터’ 세대는 통감할 것이지만 말이다.

여기에 TV도 안 보고 신문도 안 읽고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이카와에게 이상적인 직장이라 칭찬받는, 개인 간의 접촉을 최대한 잘라낸 극단적으로 폐쇄적이고 극단적으로 개인적인 마가타 연구소의 근무 환경을 더하고 나면, 작가의 이공계 경력이 소설의 물리적 환경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으론, 작가의 이공계 경력이나 이공계 기질이 등장인물의 가치관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이카와 교수와 마가타 박사다. 두 사람은 철두철미하게 이공계적인 사고방식에 함몰된 사람들이라 그런지 상통하는 면이 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막연한 질문에도 단어를 설명하는 전자사전처럼 간단명료하게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명석하고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인 사이카와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는 지금과 같은 개인 간의 불필요한 물리적 접촉과 이동이 완벽하게 절제됨으로써 에너지 소비도 최소한으로 억제되는, 그렇게 철저하게 개인화된 가상 현실의 세계다(이것이 진즉에 실현되었다면 코로나 팬데믹 사태도 덜 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상 현실은 인간성을 확보하려는 인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목적이 합리적이라면 살인도 용납된다는 두 사람의 가치관은 기괴하다 못해 섬뜩하다. 전쟁과 학살의 광기로 붉게 얼룩진 20세기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살인의 합목적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개인성에 묶어 두려는 두 사람의 가치관은 그나마 나은 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편적인 도덕성이 무의미해져 가는 요즘엔 오로지 개인적 관점에서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만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득세하여 난세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사이카와 교수와 마가타 박사의 돌출적인 가치관은 오히려 인간적 감정이 배제된 기계적인 사고방식이 가져온 씁쓸한 폐해를 반추할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 리뷰 | 모든 것이 F가 된다 | 모리 히로시 | 삼중 밀실 미스터리에 취하다
<모에와 사이카와(출처: 드라마 「모든 것이 F가 된다」)>

교수와 여제자, 그다음 이야기는?

보통의 추리소설은 사람은 마구 죽어 나가더라도 탐정의 인간적인 면모를 내세워 시체 더미 위에 평화의 깃발을 세우듯 가시지 않는 살인의 충격과 그 충격에 동요하는 감정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이카와 교수에게 살인은, 그것도 밀실살인은 그저 유별난 수학 문제를 풀 흥미로운 기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게 누가 죽었는지, 아니면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만약 사이카와 혼자서만 사건 해결에 나선다면 정말이지 지금까지 읽어 본 그 어떤 추리소설에서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가장 삭막하고 가장 쓸쓸한 수수께끼 풀이 시간이 될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곁에는 모에가 있다. 사이카와 교수가 시체 더미라면 모에는 그 위에 꽂힌 평화의 깃발이다. 추리소설에 등장한 탐정들치고는 독특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교수와 여제자(한때 전라 연기로 화제가 되었던 연극 제목이 떠오른다)’는 감정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서로 부족한 점을 상호 보완하면서, 한편으론 계속되는 모에의 질문 공세와 그에 맞선 거침없는 사이카와의 답으로 독자를 진실 탐험이라는 유구의 시간으로 끌어들이는 경이로운 미끼다.

이로써 모리 히로시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되지만, 그가 작가로 데뷔할 때 준비된 원고 중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은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일부러 ‘S & M’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준비했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1편보다 후속편이 더 뛰어난 작품은 매우 드문 일인데,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면 다음 작품에 손을 대기가 껄끄러워진다. 물론 밀실트릭이라는 보편적인 미끼가 있고 지금은 그것을 읽고 싶다는 자옥한 욕망이 내 마음에 잔뜩 끼어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완성도의 차이가 나는지 궁금해서라도 다음 떡밥을 물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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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2014) | 범인 찾기가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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