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1

,

생태학의 역사 | 생태 운동의 작은 물줄기

Ecology-in-the-20th-Century-book-cover
review rating

생태학의 역사 | 안나 브람웰 | 생태 운동의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들

Original Title: Ecology in the 20th Century: A History by Anna Bramwell
모리스는 이렇게 적었다. ‘과거를 기억하는 슬픔을 간직하라. 그리고 미래가 바라보는 두려움도.’ 이 시는 어둠, 즉 생태주의자를 특징짓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예견한다. (『생태학의 역사』, p157)

읽기도 말하기도 어려운 책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샘솟듯 넘쳐흐르는 바람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그 반대로 현장에서 경찰에게 딱 걸린 좀도둑처럼 할 말이 너무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안나 브람웰(Anna Bramwell)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생태학의 역사(Ecology in the 20th century: a history)』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만큼 이 책은 일반적 수준의 교양서적을 원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너무나 난해하고 알쏭달쏭한 책이다. 학술적인 책이라고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번역이 문제인지, 혹은 브람웰의 작문 요령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당최 집중이 안 된다. 악의 없는 악동 같은 문장들이 요리 튀고 저리 튀기만 하지 도무지 내 머릿속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숙제나 과제가 아닌 이상 영영 찾을 일 없을 것 같은 책인 『생태학의 역사』를 선택한 계기는 단순하다. 생태학의 고전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와 생태문학의 고전 헨리 윌리엄슨(Henry Williamson)의 『수달 타카의 일생(Tarka the otter)』을 읽고 생태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이 책을 골라 집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 책을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그리고 내 부족한 독해력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문장을 흡입하기도 책장을 넘기기도 어려운 책이었다. 작가가 사랑하는 농촌 지역이 오염된 것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스며들었던 톨킨(J.R.R. Tolkien)(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의 저자) 작품의 생태학적 관련성과 생태학 운동의 선두에 선 작가로 추앙받는 (앞에서도 언급한) 윌리엄슨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언급되는데, 이 부분은 두 작가에 대한 친근함 때문인지 그나마 눈에 잘 들어왔다.

Ecology in the 20th Century: A History by Anna Bramwell
<지구를 망치는 주범>

생태 운동의 계보를 살펴보다

브람웰이 천명했듯 이 책 『생태학의 역사』는 실질적인 오염 문제를 고찰하지도,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생태학의 근원을 살펴보고 그 학파의 흐름을 오늘날까지 개괄적으로 추적하는 책이다. 그런 와중에 1880년부터 오늘날까지 생태 운동의 기원과 그 전개 이면에 있는 사상들을 고찰하고 생태 사상의 가장 중요한 뿌리를 보여주는 사상가들을 살펴본다. 그러한 사상가 중에는 외콜로기(Ökologie)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독일의 생물학자이나 철학자인 헤켈(Haeckel)이 있다. 또한, 현재의 생태 운동이라는 큰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의 정치적, 정신적 역사를 살펴본다. 여기에는 현재 유럽 정당정치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 녹색당이나 인간에겐 잔인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행했지만, 용케도 동물이나 숲에 대해선 다른 태도를 보였던 나치의 녹색사상이 등장한다. 나치즘의 녹색사상과 생태주의 사상 요소의 관련성에 대한 논설은 책을 읽는 내내 눈꺼풀을 무겁게 짓누르던 졸음을 달래줄 상큼한 청량제로 작용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멸종 등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실재적이며 생생한 생태학 문제에 대한 역사와 개요를 원했던 나에겐 상당한 곤혹감과 함께 실망을 안겨준 책이다. 하지만, 이것은 책 제목만 보고 내용을 대충 넘겨짚으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 내 잘못이 가장 크니 굳이 브람웰을 원망할 수는 없지만, 다만 좀 더 문학적 상상력이 풍부하고 덜 철학적이고 덜 학술적인 문체로 매끄럽게 문장을 이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마치면서...

부잣집에 놀러 간 가난한 소년이 얼떨결에 도련님의 장난감 상자를 엎지른 것 같다. 바닥에 어질러진 휘황찬란하고 값진 장난감들처럼 이 책에는 이론 생태학, 경제 생태학, 정치 생태학, 지리 생태학, 에너지 생태학 등 그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 수 있는 생태학의 다양한 하위 부류가 등장하지만, 도련님의 장난감이 결코 가난한 소년의 손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것은 생태학에 대한 나의 무지에서 비롯한 소치겠지만, 너무 자기 식대로 풀어나간 브람웰의 고지식함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필요한 이유는 ‘현실과의 타협과 권력 투쟁 속에서 생태 비판의 가치를 잃으면서 초심도 잃은 녹색당 같은 정치적 생태주의의 변질이 만약 생태주의가 비정치적 문제로 복귀한다면 초심의 가치관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여전히 반생태주의 이념과 불도저식 개발이 지배적이고 이 책에서 설명한 서구 문화 특유의 생태적 관심을 공유하지 않는 성장주의가 잠재적 지배력을 가진 한국 같은 나라에서 생태주의가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의 답을 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사는 동네를 구글 지도로 보면 과연 한국에서 ‘생태학’이라는 학문이 대학교의 학과 수를 늘리려는 명목상이 아니라 사회와 정치, 좀 더 세밀하게는 도시 발전과 도시 계획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회의가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보면 숲을 끊고 산을 파헤쳐 건물을 지은 흔적이 쥐가 감자를 갈아 먹은 것처럼 명확하게 티가 나기 때문이다. 사실 숲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자신의 살점을 갈아 먹은 쥐새끼 같은 짐승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무튼, 숲이 사라져도 슬퍼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 언젠가는 ‘침묵의 봄’ 속에서 탄식의 한숨을 내지르며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회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Share:

0 comments:

댓글 쓰기

댓글은 검토 후 게재됩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정독하신 후 신중히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