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 이주한 | 노론 바이러스의 실체를 찾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노론사관’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노론사관은 식민지사관의 연장선에 있는 실체 없는 유령들이다. 입으로는 식민사관을 극복을 외치지만 머리로는 끊임없이 반복하는, 이런 노론의 후예임을 부정하는 노론의 후예들이 학문 권력을 형성해 권력을 틀어쥐고 학계의 금기 사항을 만들었다. 한 술 더 떠 우매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지배한 역사학계를 비판하고 나선 사람이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이다. 하지만, 이덕일은 비판에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이런 이덕일에 대한 비판이 아닌 신랄한 비난과 인신공격에 나선 학자들이 있다. 바로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의 저자이자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인 이주한이 노론사관의 사수자라고 지목한 서울대 국문과 교수 정병설, 성균관대 한문학 교수 안대회, 한신대 교수 유봉학,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 오항녕이다. 내가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지은이 이주한이 제시한 그들의 주장 중 몇 문장만 살펴봐도 내가 왜 그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은이가 인용한 그들 주장의 원문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조금 아쉽긴 하다. 고로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간략히 살펴보자.
정병설은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 비판의 근거는 어이가 없게도 정병설이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100퍼센트 진실이라고 믿는 데 있었다. 아랫글을 한번 보자.
『한중록』은 자전적인 사실의 기록이다. 허구로 읽어달라고 쓴 글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 달라고 쓴 글이다. …… 어떤 사람이 자기 글을 진실로 믿어달라고 해도, 독자들은 순순히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중록』도 마찬가지다. 혜경궁은 자신의 글에 한 점 거짓도 없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 혜경궁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더 과하게 하고 있다. …… 혜경궁은 이렇게 강하개『한중록』의 진실을 주장한 것이다. …… 이런 항변에도 불구하고 『한중록』은 계속 후인들의 의심과 비판을 받았다. 혜경궁이 힘주어 진실이라고 주장할수록, 독자들은 글을 쓴 의도를 생각하며 의심했다. (정병설, 「한중록은 진실의 기록인가?」, 「권력과 인간」,네이버 카페 문학동네, 2011년 1월 5일)
글을 쓴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여 달라고 쓴 글이면 의심이나 비판 없이 믿어야 한다는 게 정병설의 주장이다.
역사서나 자서전이든 시대의 기록이 담긴 글들은 그 기록을 남긴 목적이야 어찌 되었건 후대들이 자신의 기록을 믿어달라는 간절함은 한결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다 믿어줄 거라면 역사가라는 학문은 필요가 없다. 그냥 사료수집이나 정리하는 서기 몇 명이면 충분하다.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한국전쟁을 예를 들어보자. 한국전쟁을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는지 기록한 문서가 딱 두 건이 있다고 치자. 북한 측 자료는 남한이 먼저 침공했다고 주장하고, 남한 측 자료는 북한이 먼저 침공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다면 과연 우리는 이 두 주장에서 어떤 주장이 진실인지 알 수 있을까. 문서를 여자의 친필로 정성을 다해 작성하고, 아주 애절하게, 노태우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유행어였던 “믿어 주세요” 같은 호소하는 문구가 들어가 있으면 그 문서가 진실인 건가?
사료 비판은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지은이의 말대로 그들은 사료 비판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인류의 문명은 인간의 끊임없는 의문과 호기심을 토대로 발전해 왔다. 의문을 가질 수 없다면 학문(學 배울 학, 問 물을 문)도 닦을 수 없다. 거기에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 외에는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에 빠진 사람이라면 학문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논쟁이나 토론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한국 최고 대학이라는 곳에 버젓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외부에서 강제로 유입된 학문과 지식의 제도였기 때문에, 대학은 제도로만 존재했지 한국의 문화와 철학의 이념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서보명, 「대학의 몰락」)
"대학은 계급과 브랜드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호자가 돼 수익과 특권의 관리에 매달린다." (한겨레 신문, 2011년 6월 28일)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전태일 일기, 1969년 12월 31일)
정병설의 다른 주장도 보자.
이덕일의 저술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세상이 알아주는 역사 저술가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독자의 감정에 영합한 데 있다고 본다. …… 종전의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는 역사 저술에서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감동이다. 이런 감동을 만들어 대중에 다가가고자 했으니,그가 제시한 논거 하나하나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정병설,「길 잃은 역사 대중화」, 「역사비평」, 2011년, 봄호, 354쪽)
감동적인 역사책은 저질책, 그런 역사책을 읽는 대중은 우매한 것들, 이런 뉘앙스가 느껴진다.
감정은 인간에게는 이성보다 더 친밀한고 진화론적으로도 이성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시스템이다. 철학이 발견되어서 사람들이 이성을 맹신한 나머지 감정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 판단도 내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지만, 불완전한 인간은 세상의 아주 극히 적은 일부의 정보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판단에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을 자극해 감동을 준 역사책은 가짜 역사책인가? 대중들이 어설픈 논리나 앞뒤도 맞지 않는 억지 주장에 감동하는가? 만약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고 눈물을 흘릴 때, 바로 그 순간에 밖에 있던 누군가 극장에 입장한다면 새로 막 들어온 사람은 그 클라이맥스만 보고는 처음부터 영화를 보던 관객처럼 감동할 수는 없다. 이는 결정적인 느낌이 든 그 장면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장면의 앞뒤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설득력 있게 매듭을 지어야 비로소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음악이나 영화, 책 등 문화나 예술 작품을 수시로 접해보고 깊이 감동해본 사람이라면 내 부족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덕일은 대중이 하고 싶었던 말을 가려운데 긁어주듯 시원하게 말해 준다. 그리고 대중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리고 있었던 색안경을 제거해 준다. 이렇게 얻은 대리만족과 색안경 제거로 새로 얻은 탁 트인 시야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차근차근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것이 자신의 이론과 다르다면, 이덕일에게 인격적인 비난으로 공격할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반론을 펼쳐 이덕일처럼 대중을 감동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도 보자.
정조의 측근에서부터 북학과 서학이 대두하여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정조는 정학을 강조하며 반정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보수에서 혁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향이 엇갈리며 갈등하였지만, 이미 변화의 길로 들어선 조선 사회는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시대로의 대전환을 이루어갔다. 이 흐름은 정조의 서거 이후 전개된 19세기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면면히 지속되었다. 정조 시대 개혁을 이끌었던 세력이 분열하는 가운데 그들 중 일부가 세도가가 되어 정권을 장악하였으며 정조 시대 이래의 새로운 흐름도 확산되는 추세였다. (유봉학, 「개혁과 갈등의 시대-정조와 19세기」,신구문화사, 2009년,5쪽)
정말 위험한 주장이다. 정조시대 개혁을 이끌었던 세력 일부가 세도 정치 세력이 되어 정조의 개혁의 흐름을 확산시켰다고 한다. 그럼 그렇게 개혁이 잘 되어가던 나라였기에 노론의 이완용이 팔아먹어서 작위와 은사금까지 받을 수 있었던 건가? 더불어 유봉학은 학사,석사, 박사 모두 역사학으로 학위를 딴 이덕일 소장에 대해 “역사학자도 아닌 사람이 역사학자 행세를 한다”라고 인신공격까지 한다.
그리고 식민사관 역사의 일화도 보자.
다른 한번은, 분명치는 않으나, 민족주의 역사학인가,실증주의 역사학인가에 관하여 검토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교학부장 고윤석 교수도 포함된 네댓 명의 중년. 노년의 교수가 내방하였다.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일제 때 경성 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樹呆和〕선생님인데,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 하는 것이었다. (김용섭,「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지식산업사, 2011년,768쪽)
쓰에마쓰는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 편찬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고, 한국 주류 식민사학자들의 직계 스승이기도 하다. 김용섭의 다른 글에는 ‘이 00 선생’이 일본의 덴리 대학(군국주의 시절 군국주의를 지원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한국 문화재를 가져갔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도 그곳에 있다.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고 경성제국대학 교수로도 재직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가 약탈해간 유물도 그곳에 있다.)에 가서 덴리교 도복을 입고 일본 민족주의 종교의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거기에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애”,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라는 기막힌 말도 등장한다.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사편수회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로 살아남아서 전국의 사학과를 지배하고, 온 국민의 역사관을 지배해왔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노론사관의 다양한 주장에 대해 요목조목 꼬집은 시원한 논박과 역사가와 지식인의 사명, 식민사관의 뿌리와 역사가 나오니 꼭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이 책을 통해 역사와 역사학, 역사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내 고정관념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고,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잊고 있었던 질문을 되새길 수 있었다. 책 전반에 등장하는 비난과 비판, 그리고 비판에 대한 비판의 명쾌하고 명석한 논리는 정당한 논쟁이 무엇인지, 그런 논쟁을 위한 준비물은 무엇인지 등 논리의 기본적인 요령을 일깨워주고 이것은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도 좋은 내용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기존역사관에 과감히 도전을 하고 나선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대 이들의 인기를 질투하는, 남 잘되는 거 못 보는 기존 역사관 사수자들과의 힘겨루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에 제시된 이덕일을 비판하는 주장의 논리와 근거는 너무나 형편없었다. 그들이 그렇게 과거를, 실증된 과거의 사실조차 부정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거기에 얼마나 큰 이득이 숨겨져 있기에 깔끔하게 지난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당당하게 논박하고 나서지 않는 걸까.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나마 의리와 명분은 지킬 줄 알았고, 잘못이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탄핵을 받으면 관직에서 물러날 줄 아는 염치는 있었다. 그러다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나마 있었던 염치나 의리도 사라졌고, 지금처럼 오직 이해관계에 따라 상대를 몰아붙였고, 결국 상대방의 목숨까지 요구하는 치졸하고 역겨운 굶주린 아귀들의 싸움터가 되어버렸다. 이미 성현의 가르침은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권력과 재산에 눈이 먼 그들은 관용과 배려, 타협의 정신, 즉 세상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겠다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 기본이자 지식인의 필수 덕목인 관용과 타협의 정신이 배제된, 학자 같지도 않은 그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그냥 웃고 넘겨야 하는 일인가. 아직도 그들이 한국 학계의 주류라는 말은 큰 충격과 불안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고, 많은 학생이 그들의 밑에서 수학하고 있다니 아찔할 따름이다. 이런 소위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횡포에 적절하게 맞서고 우롱당하지 않으려면 대중들은 일단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도 한 사람의 책이 아니라 여러 학자의 책을 골고루 읽어야 이 책에 등장하는 일부 학자들처럼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이 생긴다. 거기에서 지혜의 샘의 근원이 되는 분별력을 키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학교 다닐 때 모든 국서 교과서에 나왔던 이이 십만양병설의 진실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신봉승의 『조선정치의 꽃 정쟁』에서는 그저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지 않았다고만 나오고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90년대 판본, 알고 보니 최근에 다시 나온 것 같은데, 내용이 수정되었는지는 모르겠다)에서는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이이가 주장했다고 나온다. 나는 처음으로 백지원의 『조일전쟁』에서 김장생의 행장과 「선조수정실록」에서만 언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즉 김장생이 구상해 송시열이 구체화했고, 노론 후예 학자들이 국정 교과서에 실었다는 지은이의 주장이다.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으시면 꼭 읽어보시길.
오래전에 쓴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지금 이렇게 글을 옮기면서 예전 리뷰를 다시 흩어보니 (참고로 위 글은 2012년 06월 30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 같은 신선함이 언뜻 느껴지면서도 ‘참으로 조악한 글이로구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내뱉어진다. 유치한 것은 둘째치고(뭐 이것은 요즘 글도 마찬가지지만) 쓸데없이 길기만 하고 요점이 없다(이것도 역시 나아진 것이 없으려나?).
아무튼,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을 읽을 무렵에는 조선사 관련 책을 좀 읽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이덕일 계열의 역사관에 특별한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러한 이유는 남들 다 하는 것은 남들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싫고, 남들이 ‘YES’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옳더라도 왠지 ‘NO’라고 말하고 싶고, 다수가 따르는 주류보다는 소수가 따르는 비주류를 선호하는 청개구리 같은 반항심에 소심한 반사회적인 기질이 접목된 내 특유의 성질이 기존 사관을 뒤집어엎으려는 이덕일 사단의 역사관에 나름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역사는 정체성의 핵심이다. 정체성은 개인과 집단, 민족의 뿌리다. 왜곡된 정체성으로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 누구든, 어느 민족이든 자랑스러운 과거도 있고 부끄러운 과거도 있다. 그것을 덧칠하거나 거짓으로 꾸미면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열고, 진실을 모색해야 건강한 정체성으로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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