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무트 | 블라디미르 바르톨 | 신에 대한 도전을 넘어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불러온 파멸
블라디미르 바르톨의 『알라무트』는 슬로베니아어로 쓰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당시 용감하게 좌파와 우파의 전체주의를 똑같이 거부한 반체제적인 인사로 찍힌 작가 블라디미르 바르톨은 검열을 속이고자 하산을 주인공으로 한 모험소설을 택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면서 책은 나오자마자 사장되었고, 1967년 작가 사망 전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블라디미르 바르톨은 치밀하게 구성한 가상의 역사 뒤에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정치 현상을 묘사하는 속임수를 씀으로써, '산중 노인'이라 불리는 이른바 하산 이븐 사바라는 무시무시한 인물을 통해 현대의 '완벽한' 독재자들의 초상을 그리려 했다. 작가 스스로 세 명의 모델인 스탈린, 히틀러, 무솔리니에게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고백했다고 했으니, 독자들은 소설 『알라무트』를 감상하면서 위의 세 인물과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세 독재자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서문’의 설명을 보고 세 명의 인물과 어울리는 인물 세 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면 내가 제대로 못 보았을 수도 있겠다. 반대로 독자는 하산 이브 사바라는 인물에서 그 세 명의 독재자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겠다.
『알라무트』이 늦게나마 발견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거기에 한국어로까지 번역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못 끌었던, 이슬람 자살테러의 시초와 배경이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작가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자신의 작품에서 보여준다고 하더니 역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많은 역사소설이 있지만 11세기 이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아니 중동이나 이슬람 문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한국어로 번역된 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영미나 프랑스, 러시아, 일본 작가들이 주류이면서도 그 지역들에서 좋은 문학 작품과 인기있는 작품 대부분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본 책 중에 이슬람 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은 나지브 마흐푸즈의 『게벨라위의 아이들』 정도인 것 같다. 뭐 이 작품도 정확히 이슬람 문화라고 하기에는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이집트가 오래전부터 서구의 세력 아래에 놓여 있어서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는 상당히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탄 테러도 자주 발생하나 보다. 아무튼, 비주류도 좋아하는 난 가끔 남미 문학에서도 진주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사벨 아옌데가 그런 진주 중 하나다.
이제 암살자의 기원, ‘아사신 Assassin’을 창조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인물인 이스마일교파의 최고 지도자였던 하산 이브 사바가, 왜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실행했던 이유와 그 배경을 알아보려고 그가 지배했던 11세기 이란 북부로 떠나보자.
<قلعه الموت - panoramio / mehrad afkham / CC BY-SA> |
1092년 봄 이란 북부, 부하라에서 팔려온 어린 처녀가 카라반과 함께 낙타 쌍봉 사이에 있는 가마에 실려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서 호라산 북부 지역을 거쳐 엘부르즈산맥 자락에 이르는 옛 군사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가마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에 대해 불안과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는 큰 키에 말라깽이 소녀 할리마가 타고 있었다.
그렇게 할리마는 비밀스러운 곳에 도착하고,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미리암의 안내로 미녀들이 즐비한 정원으로 안내되었다. 깡마르고 엄격한 인상의 여자 아파마가 마중나왔고, 이 정원에 거주하는 모든 처녀의 친구 아흐리만 치타도 있었다. 할리마는 유리 모자이크 천장에서 무지갯빛이 비쳐드는 둥근 천장이 높은 방에서 목욕하고, 긴 여행에 지쳐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고 처음 보는 맛있는 과일들을 맛보며 저마다 팔려온 기구한 사연의 아픔을 간직한 처녀들에게 둘러싸여 즐겁게 지내고, 새 옷을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다 생각하는 할리마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부터 처녀들을 위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루 일과를 보낸 할리마는 그날 있었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어리둥절했다. 운율에 맞춰서 말하는 빨강 터번을 한 우스꽝스러운 아디의 코란 수업,몸이 고무처럼 유연한 무용 선생 아사드,괴상하게 차려입고 사랑의 기술과 성교육을 하는 아파마,베일에 싸인 미리암,처녀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흑인 환관들. 오래전부터 미지의 세계를 꿈꿔오면서 경이로운 모험을 해보고 싶지 않았던가! ‘정말 잘됐어.’ 하고 속으로 말하면서 할리마는 잠을 청했다.
할리마가 그런 우여곡절 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인의 낙원에 이른 것과 같은 시기에 검은색 당나귀를 타고 널찍한 군사도로로 접어드는 젊은이 아바니가 있었다. 아바니의 할아버지 타히르는 사바에서 이스마일 분파를 설립했던 분이었다. 겉으로는 알리를 숭배했지만, 비밀리에 셀주크 족의 군주를 타도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지만, 배신자 때문에 발각돼 대재상 니잠 알 물크의 명에 따라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했고 분파는 흩어졌다. 아바니는 아버지의 명으로 할아버지의 친구였던 분이 운영하는 천연의 요새 알라무트 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에선 이스마일파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바위를 깎아 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성이 우뚝 솟아 있었다. 수염은 짧고 살집이 좋은 흰 터번을 쓴 50대의 미누체헤르 중대장을 만나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온 자신의 사정을 말했다. 타히르의 손자라는 말에 놀라는 중대장은 타히르가 자기와 최고 지도자의 친구였다며 환대하는 아부 소라케 데이(지도자라는 호칭)에게 아바니를 안내했다. 아바니는 이븐 타히르(타히르의 아들이라는 뜻)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페다인으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 페다인은 최고 지도자의 명에 따라 맹목적으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이스마일교도의 최정예 병사였다.
다음 날 아침부터 기병대의 돌격훈련에 이어 검 다루기, 창던지기, 활쏘기 훈련 등 고된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 중 깡마른 거인에 눈초리가 매서운 압둘 말리크 데이의 맨손으로 수직 암벽 타기나 기절할 때까지 숨 멈추기 훈련은 이븐 타히르 뿐만 아니라 모든 생도에게도 고된 훈련이었다. 거기에 뜨겁게 달궈진 숯불 위를 맨발로 걷는 훈련은 두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단련이었다. 이러한 육체적 훈련이 전부가 아니었다. 비쩍 마른 험상궂은 표정을 가진 늙은 전도사 이브라힘 데이의 아랍어 문법 수업, 아부 소라카 데이의 시아파 역사 수업, 땅딸막한 그리스인 의사 알 하킴의 인체 구조의 기능과 각 지역 및 국가의 문화 예절에 대한 수업 등 정신적 훈련을 위해서도 다양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븐 타히르는 동료로부터 알라신에게 천국의 열쇠를 받았기 때문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알라무트의 수장인 하산 이븐 사바 최고 지도자에 대해 들었다. 그러나 천국의 이것저것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븐 타히르는 혼란과 의혹에 빠져 있었고 그런 그를 동료는 이해하지 못했다. 독특하고 엄격한 계율이 지켜지고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자급자족을 하는 조직화한 세계. 내부로부터 통치를 받는 세계. 이븐 타히르에게 이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었다. 미래에 대한 초조감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런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과 동료에게 지지 않아야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이븐 타히르는 어느새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할리마는 짐승이든 사람이든 심지어 그 심술궂은 아파마조차 관대하게 장난과 변덕을 받아주자 그런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런 당돌한 할리마의 첫 희생양은 사라였다. 첫날부터 할리마와 같이 지내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 흑단처럼 반들거리는 검은 피부의 사라는 할리마가 미리암을 좋아하는 걸 눈치채고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그런 사라는 할리마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둘 사이를 눈치챈 미리암에 의해 사라는 벌을 받고 할리마는 미리암과 한 방에서 같이 지내게 되면서 더욱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다녔다. 한때 기독교도였던 미리암과 지내면서 할리마는 미리암과 더욱 친해지고 거기에 개인 교수까지 받고, 그녀의 과거까지 들었다. 며칠 후 할리마는 정원을 돌아다니다 덤불 뒤에서 사라와 흑인 환관 무스타파가 아파마가 가르쳐준 비법으로 성적 쾌락을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지만 입을 꼭 다무는 것으로 사라에게 진 빚을 갚기로 했다.
알라무트의 새로운 질서에 빠르게 적응한 이븐 타히르는 어느새 우등생들 속에 끼어 있었다. 고된 수업과 기진맥진하게 하는 훈련, 정신 단련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페다인들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들은 지도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고 명령에 대처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이스마일파를 위한 봉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아부 소라카 데이가 강의한 세이두나(하산 이븐 사바)가 직접 기록한 전기는 생도들에게 경이로운 세이두나의 일생에 감동하게 하였다. 위업이나 위대한 희생으로 두각을 나타내야만 최고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고, 영화로운 천국을 보상으로 결혼이나 술, 여성이 금지된 금욕 된 생활을 해야 할 운명의 페다인들이었다. 그래서 이븐 타히르는 밤만 되면 시달려야 하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시로 달래고 있었다.
"금령은 엄격한데 인간의 본능은 나약하기 짝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지?" - 이븐 타히르.
알라무트의 최고 지도자 하산 이븐 사바는 2년 전 술탄의 명으로 메흐디 대위가 지키고 있던 알라무트 요새를 점령했다. 이븐 사바는 간단하게 술책을 부려 금화 오천 냥으로 성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술탄은 이븐 사바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산은 알라무트에 정착한 뒤로는 셀주크 왕조를 쓰러뜨릴 기둥으로써 페다인 양성 학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아부 알리 최고 데이외에는 아무도 안 만났다. 명령도 그를 통해서만 전달했다. 그런 하산이 데이들에게는 답답했다. 하산은 두 딸은 아부 소라카에게 맡기고 나서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하산의 친아들 호세인은 징계로 강등되어 쿠지스탄의 하산이 신뢰하는 후세인 알케이니 최고 데이가 점령한 요새 주르 굼바단에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좋지 않았다. 강등 조치에 호세인은 더욱 비뚤어지고 고약하게 변해갔다.
한여름의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전 사령관이자 하산이 예전에 박해받을 때 넉 달 동안 숨겨준 아불 파젤 노인이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요새로 달려왔다. 아불 파젤은 학자의 방을 연상시키는 검소하게 꾸며진 곳에서 아무리 봐도 예순 살로 보이지 않는 보통 키의 보통 체격의 하산을 만났다. 혈기 넘치는 몸짓 생기 있는 안색, 총기기 흐르는 눈빛 꿰뚫어보는 듯 예리한 눈초리는 예전에 최고 지도자가 유머가 넘치고 묘하게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었음을 상기시키게 했다. 그는 라이의 무추페르 사령관이 최고 지도자에게 전하는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 그 정보는 다름이 아니라 술탄의 명에 따라 아르슬란 타쉬가 하마단에서 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알라무트로 진군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아불 파젤은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하산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수성을 선택했다.
인근 요새의 지도자들이 최고 지도자를 찾아와서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해 회의를 했다. 키 작은 늙은 여자의 곱살한 모습 같은 아부 알리 최고 데이의 주재로 진행된 회의에서 선발대인 튀르크 기병대는 아부 알리가 기습하고 미누체헤르는 요새 방어를 하기로 하고, 압둘 말리크는 성의 식량 비축을 위해 여자와 아이들은 카라반과 함께 라이의 무추페르에게로 피신하기로 했다. 내심 즐거워하는 하산은 전쟁에 대비해 내일 페다인 임관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생도들은 술탄의 진격소식에 뱃속까지 파고드는 불안이 영웅적 행동을 상상하면서 점차 흥분과 잔인한 기쁨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산과 대재상과의 관계: 하산은 60여 년 전 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이스마일파 교리를 배우면서 아버지는 의혹을 사지 않으려고 하산을 니샤푸르로 보내 수니파의 레피크(평신도인 라시크 위의 계급) 무바피크 에딘의 지도를 받게 했다. 훗날 대재상이 되는 니잠 알 물크와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오마르 알 하이얌을 만났다. 이들 세 명은 순나(이슬람교의 교조인 마호메트의 언행과 교도들이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의 잘못된 점과 지지자들의 무지를 깨닫고, 찬탈자들을(셀주크 족) 타도하고 이스마일파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그들 중 먼저 성공한 사람이 두 친구가 참된 교리를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하산은 알리의 추종자들 속에서 그 방법을 찾았고 반대로 니잠 알 물크는 셀주크 족을 섬기고 있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오마르 하이얌은 잃어버린 자유를 한탄하면서 온 세상을 비웃고 있었다. 그 후 니잠 알 물크의 소개로 술탄의 궁정에 들어간 하산은 술탄의 거대한 제국의 세입과 지출 명세서 작성에 40일이면 된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술탄 앞에서 보고서를 읽다가 보고서 사이에 가짜 명세서가 끼워진 걸 보고 당황해 우물우물 말하다가 궁정에서 쫓겨난다. 그건 니잠의 짓이었고, 그 이후 두 사이는 원수가 되었다. 하산의 성공을 믿으려 하지 않는 술탄에게 니잠은 예전에 하산을 비방했다고 고백하면서 이스마일파의 수장은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을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고, 술탄은 니잠을 대재상 자리에서 해고하면서 단시일 내에 하산을 제거하라고 명했다. 빈 재상자리는 니잠의 정적이자 하산과 내통하면서 같은 실리를 추구하고 있었던, 니잠의 정치적 정적인 왕비의 서기관이 임명되었다. 왕비와 서기관은 술탄에 대한 영향력 싸움의 적인 니잠 알 물크가 제거되자 그동안 협력해온 하산을 버렸다.
하산의 방은 도르래 시설로 승강기처럼 아래로 내려갔다. 승강기를 통해 내려간 하산은 몰래 환관 아디가 노를 젓는 거룻배를 타고 유리정자로 가 미리암을 만나 건배를 하며, 20년 동안 품은 비밀을 미리암에게 털어놓았다.
“우리가 이스마일의 아들이자 알리 혈통의 8대손인 알 마흐디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궁금했었지. 그러다 밤의 정적 속에서 내가 기다리는 구세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 어느 해 이스마일파 교도 아부 네즘 자라즈가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지. ‘알리와 마흐디의 이야기는 예언자의 사위를 숭배하고 바그다드의 시아파를 미워하는 평신도들에게만 기적이지, 칼리프 알 하킴처럼 코란은 머리가 정상이 아닌 사람들의 산물이라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아니다. 진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걸 할 수 있다. ' 나는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어. 예언자가……. 머리가 정상이 아닌 사람이라니! 예언자의 사위 알리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마흐디의 신성한 임무에 대해 내가 배웠던 것,구세주의 강림과 관련된 신비가 가득한 훌륭한 그 교리가 평범한 신도들을 위해 지어낸 신화에 불과하다니! 나는 분노의 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어. ‘그렇다고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속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지만,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지. 자네는 우리가 튀르크족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가? 바그다드는 그들 편이고,민중은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가? 그래서 알리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에서는 성인이라는 거야. 우리는 술탄과 칼리프에 대해 봉기하도록 민중을 선동하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오직 그뿐이야.' 내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고 말았지. ”
“이십 년 동안 어릴 적 신화에 대한 향수, 마흐디의 강림에 대한 확고한 믿음, 예언자 계승에 관한 엄청난 비밀들을 가슴 깊이 간직해왔다. 군중에게 진리를 전파해서 인류를 착각으로부터 해방해 주자는 계획에 반대하는 이스마일교 지도자들은 나를 경계하기 시작하더군. 그래서 민중에게 직접 그들이 믿는 것은 모두 가짜라는 걸 증명하겠다고 외치면서 그들이 지어낸 얘기와 거짓말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진리에 굶주려 죽을 것이라고 설파하다 욕설과 돌팔매질을 받았지. 평신도들은 자기들도 의심이 들긴 하지만 영원히 불확실한 것으로 방황하거나 헛된 반대를 고집하기보다는 확실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다고 대답했지.”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 화제는 지식의 가능성에 관한 검토였지. 오마르는 이렇게 주장하더군, ‘그래, 맞아. 마호메트는 대중의 행복을 바라셨지만 대중의 치료할 수 없는 어리석음도 알고 계셨어. 오로지 연민 때문에 마호메트는 이승과 저승에서 괴로워하는 온갖 시름에 대한 대가로 천국을 약속하셨던 것이야.' ‘그럼 마호메트는 왜 수많은 사람이 그의 교리 때문에 죽을지언정 신화에 따르는 걸 허락했다고 생각하나?’'나는 사람들이 훨씬 저속한 동기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서로 죽인다는 걸 마호메트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마호메트는 그럭저럭 지상에서의 행복을 약속해주고 싶어했지. 그걸 이루고자 마호메트는 대천사 가브리엘과의 대화를 지어냈던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의 행복도 약속했던 것인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저항할 수 없게 만들었지!’ 그때 나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고 나서 말했지. ‘오늘날은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약속 하나만으로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갈 사람은 더는 없는 것 같은데.' ‘민중도 나이를 먹고 있고, 천국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무뎌지고 있어서 더 이상은 예전의 흥분을 일으키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나태함 때문에, 새로운 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는 천국을 믿지 않아.’ ‘그러니까 자네는 이 시대에는 사람들을 자기편에 끌어들이려고 대중에게 천국을 설교하는 예언자는 실패할 거로 생각하는 건가?’ 오마르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지. ‘물론이지. 같은 불길은 두 번 타오르지 않고, 시든 튤립은 다시 꽃을 피우지 않는 법이니까. 민중은 작은 기쁨으로 만족하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줄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예언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야.' 쉽게 말하더군. 맞는 말이야. 민중은 신화와 부질없는 말을 좋아하고, 무분별함 속에서 방황하기를 좋아해. 오마르는 술을 따르고 있었지. 그 순간 내 가슴속에 강력하고 엄청난 계획이 떠올랐지. 세상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 인간의 맹목성을 한계에 이를 때까지 시험해보는 것! 힘의 절정에 오르기 위해서 그걸 이용하고,세상 사람들에게 예속되지 않는 것! 신화를 구현하는 것! 아주 먼 훗날까지도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도록 신화를 현실로 바꿔놓는 것! 인간에게 엄청난 시험을 하는 것!”
“그다음에 어떻게 했느냐고? 신화를 현실로 만들 가능성을 궁리했지. 마침내 나는 알라무트에 오게 되었어. 신화는 생명을 얻었고, 천국이 만들어졌고,이제는 손님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지."
하산은 미리암과 헤어지면서 천국에 있는 듯이 처신해야 한다는 것을 처녀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 미리암의 임무라고 강조하고, 어길 때에는 참수에 처할 거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유리정자에서 여전히 화장으로 떡칠한 아파마가 하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산은 정원에서 손님 접대에 대해 당부를 하고 정원을 떠났다. 하산에게 많은 말을 들은 미리암은 하산의 정신을 사랑하면서도 그가 두렵고, 이미 조금은 증오하고 있었다. 그 날밤 미리암의 침실에서는 술탄의 공격 소식에 산이 무너지는 듯 느끼는 미리암과 짜릿한 공포를 느끼는 할리마가 잠들고 있었다.
다음 날 페다인 생도들 모두 무사히 임관시험을 마치자 하산은,
“이제 생도들을 임관할 시간이 되었으니 어서 가보게. 자,이것이 그들이 선서해야 할 맹세문일세. 엄숙한 순간임을 강조하면서 영웅적인 순교에 대해 열렬히 설교하여 젊은 영혼들을 고양시키고,열정을 선동하고,결의를 다지도록 하게. 그리고 그들이 불복했을 때는 무시무시한 벌과 함께 파멸시키겠다고 위협하게! 페다인들을 주축으로 강력한 체제를 세우려고, 내가 구상한 신봉자의 개념에 맞춰 그들을 교육해서 본성을 고치고 목표를 바꿔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꿈꿨는지 몰라. 마침내 그 순간이 왔어!”
라고 말하며 더 큰 작전을 위해 페다인을 아끼라고 명령했다.
최고 지도자의 궁전 내 회의실에서 생도 모두의 임관식이 거행되었다. 이븐 타히르는 꿈을 꾸는 기분으로 두 손으로 기를 받아들고 나서 페다인들의 선두에 가서 섰다. 인생의 절정을 상징하는 순간은 어느덧 사라지고,가슴 깊이 스며들었던 감미로운 느낌이 차츰 쓰라린 고통에 굴복했다. 황홀한 순간이 불현듯 사라져버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깨달았다. 방금 경험한 덧없이 짧았던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하산은 성 뒤쪽의 정원에서 미리암과 아파마를 만나 내일 저녁 정원의 밤을 천국처럼 신비한 모습을 가지도록 꾸미라는 명령을 내렸다. 처녀들은 손님들 앞에서 진짜 천국이라고 천국의 여인임을 목숨을 걸고 연기를 해야 했다.
하산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이십 년.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현실로 만들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다. 신화 같은 인생을 위해서. 청년기에는 공상 속에 살았고, 중년기에는 지적 탐구에 열중했다. 그리고 지금 말년에는 그의 오랜 꿈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수천 명 신도의 수장이었다. 아직은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다. 온 세상의 권력자들과 군주들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가 현재 꾸미는 계획은 그걸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과 나약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계획.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계획. 치밀하게 계산된 신중한 계획. 하산은 불현듯 그 치밀한 책략이 수포로 돌아갈 만한 소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혹시라도 계산착오를 했다면? 하산은 깊은 강물의 유혹에 홀리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체제는 모든 적,필요하면 전 세계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강력해져야 하네. 그래서 우리 체제가 이승의 일들에 대한 최고 의회 같은 것이 되어야 해. 하지만, 우리가 그 목적을 이루려면 우리 신도들이 미친 듯이 죽고 싶어해야 하고, 대신에 우리는 그들을 저승으로 보내면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야 하네. 물론 결말을 그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 우리가 허락하는 모든 죽음은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득을 가져와야 하니까. 이상이 내 계획의 골자이자 내가 오늘 자네들에게 밝히는 유언일세."
"알라신의 작업실에 들어가 늙고 병든 그분의 일을 내가 계속 하고 싶단 말일세. 그러고는 그분과 겨루는 거야. 진흙을 다시 빚어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거야."
마침내 하산은 페다인의 첫 암살 임무를 이븐 타히르에게 준다.
이렇게 하산은 인간의 본성과 나약함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계획을 세워 인간이 만든 최초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천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짜 천국을 이용해 자신의 페다인들을 죽음도 불사하는, 죽음을 간절히 원하게 하여 암살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알라신을 대신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그는 끈질긴 노력 끝에 그 소망을 이루고야 말았고, 그의 견고한 세계는 훗날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에게 함락될 때까지 166년 동안이나 살아남았다.
이 작품에서 하산은,
“우리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를 위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에 전념할 수 있다. 그게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라고 말했다. 이미 그에게 진리는 무의미해졌으며, 진리는 단지 대중들을 현혹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대중들에게 제공될 잘 포장된 미끼에 불과했다. 하산 자신이 곧 진리였고, 하산은 대중들의 수준에 맞추어 ‘달콤한 진리’를 창조해 자신의 세력을 형성하고 견고히 다졌다. 어떻게 보면 현대의 사이비 종교의 시작과 세력확장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하산은 체제의 계급별로, 추종자들을 만족하게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지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추종자들 대부분은 그 불충분한 우화에 만족하고 있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까다로운 추종자들에게는 경이로운 비유로 코란을 설명하고 있지.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도자는 주저치 않고 코란과 이슬람에 대한 믿음이 헛된 것임을 입증해주지. 그 이상으로 파고드는 사람은 어떤 종교든 진실과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의 가치가 동등하다는 걸 깨닫게 되지. 결국, 극소수의 사람만이 모든 교리와 모든 전통을 부정하는 최후의 원칙에 입문할 수 있는 것이야. 가장 용기 있고 가장 힘 있는 추종자가 갖춰야 하는 것이 바로 그 단계에 이르는 것이지. 그때부터는 발을 내디딜 단단한 땅이 없어도,걸음을 인도하는 지팡이가 없어도 인생행로를 가야 하니까. 따라서 그 원칙이 폭로되더라도 효력을 잃지 않으니까 염려할 필요가 없지. 어차피 대다수 사람은 원칙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니까."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는 종교도 지식과 믿음의 정도에 따라 계급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하산의 말대로 종교인 중에서 그 원칙과 숨은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 중의 소수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진화론 관련 책에서 이런 말을 본 적이 있다. “만약 지금까지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21세기에 생겼다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거다.”라고. 종교는 과학의 빈틈을 파고들어 대중의 무지를 이용해 지금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하산은 대중이 신화를 좋아한다는 점, 어렵고 애매모호한 진리보다는 대중의 눈앞에 확실하게 보이고 잡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진리’를 좋아한다는 점을 깨닫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그들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추어 체제를 구성하고 완성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맞춤 진리’’맞춤 교리’’맞춤 신화’ ‘맞춤 기적’을 생각해낸 것이다.
하산은 의식 수준이 낮을수록 예언자의 기적이나 신화에 더 열광하고 그 맹목적인 힘으로 체제가 유지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어느 종교인들의 행동을 보면 너무나 예리한 지적이지 않은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생각난다. 쉽게 말해 종교는 대중이 우매하다 보니 지도자들이 만든 신화나 전설에 쉽게 휩쓸리고, 천국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점을 간파한 독재자나 소수 권력자의 지배를 받아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르톨은 11세기 하산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했던 시기의 독재자들을 풍자하고, 하산을 따르는 신도들을 통해서는 20세기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맹목적으로 빠진 어리석은 대중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둘 모두를 통해 2차대전 당시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전체주의를 말했다. 이렇게 그 당시 주류였던 전체주의 속내를 하산을 통해 풍자할 정도의 의식이 깨어 있었으니 반체제적인 인사로 분류되어 그의 작품이 빛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하산이 회상하는 하산과 그의 친구 오마르의 대화를 살펴보자.
“.......오마르는 이렇게 주장하더군, ‘전적으로 결정적인 지식이란 있을 수 없어. 우리의 감각이 거짓말을 하니까. 하지만, 감각은 우리를 둘러싸는 것들과 우리의 이성이 알아차리는 것 사이에 있는 유일한 매개체들이지.’ 나는(하산) 이렇게 응수했지, ‘데모크리토스와 피타고라스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거야.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불경하다고 비난하면서 신화로 사람들을 고양 시켜준 플라톤을 격찬했지.' 오마르는 이렇게 말을 받았지. ‘군중은 어느 시대나 그랬지. 군중은 불확실성을 꺼리기 때문에 어찌나 차원이 높은지 확증을 주지 않는 완전한 지식보다는 명백한 거짓말을 더 좋아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야. 대중을 위한 예언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모를 대하듯, 자식을 대하듯 행동해야 하네. 신화와 부질없는 말로 그들을 고양시켜야 하니까. 그 때문에 지혜는 언제나 대중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네.'”
불교의 진리는 ‘자비’, 가톨릭과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될 수 있다. 단순하고 간결한 걸 좋아하는 대중들을 위한 이 얼마나 명확하고도 확실한 진리란 말인가. 기독교의 순교자 만들기와 신화 만들기는 단순히 신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들을 현혹하기 위한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산)하지만, 마호메트는 대중의 행복을 바라셨지.' ‘그래, 맞아. 마호메트는 대중의 행복을 바라셨지만 대중의 치료할 수 없는 어리석음도 알고 계셨어. 오로지 연민 때문에 마호메트는 이승과 저승에서 괴로워하는 온갖 시름에 대한 대가로 천국을 약속하셨던 것이야.'”
천국과 지옥은 실존한다기보다는, 천국으로 신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지옥으로 공포와 두려움을 주어서 신자들을 완벽하게 손아귀에 넣기 위한 하나의 술책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예수가 한 말이 아니라 중세를 지배했던 교회와 영주들이 결탁하여 노예나 다름없었던 신자나 백성을 착취하기 위해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성서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그 시대를 지배했던 지배자의 욕망과 오만이 고스란히 스며들고 번지면서 예수가 말했던 조건 없는 ‘사랑’의 초심을 잃어갔다.
아무튼, 교회는 중세를 거치면서 타락했고, 대중들에게 만족감을 주려고 마련한 ‘쇼’였던 마녀 사냥으로 그 타락과 광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악에 유혹에 빠지는 건 쉬어도 헤어나오기는 어렵다. 마약처럼 악의 달콤함은 뼛속까지 파고들며 영혼까지 병들게 하기에 한번 맛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은 그 자리를 막연한 천국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서 종교를 지배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산)오늘날은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약속 하나만으로 기꺼이 죽음을 향해 달려갈 사람은 더는 없는 것 같은데.' ‘민중도 나이를 먹고 있고, 천국에 대한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무뎌지고 있어서 더 이상은 예전의 흥분을 일으키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나태함 때문에, 새로운 것에 매달려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더는 천국을 믿지 않아.’
그럼, 이제 천국과 지옥의 효과는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아직 가끔 우리 동네 장날에 시장에서 “하나님 믿으면 천국 갑니다.”라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이 있기에,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이제는 그 천국이 가지고 있었던 달콤한 유혹의 맛은 많이 엷어졌고, 그 빈자리는 현대적이고 실속있는 것들로 채워졌다. 바로 ‘나’ 또는 ‘가족’의 성공을 위한 기회와 연줄이다. 신은 믿지 않아도 자신이나 가족의 성공은 믿는다. 아니 믿고 싶을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판단 아닌가.
바르톨의 작품이 지금에서야 빛을 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자살폭탄 테러의 예언이다. 하지만, 하산은 죽음을 달콤하게 여기는 페다인들을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군주급 제거에만 사용했다.
“자신의 머리가 위험하다는 걸 아는 군주는 더 순순히 양보를 하지.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세상의 모든 군주를 휘어잡는 사람이 패권을 차지하게 되고. 하지만, 강력한 수단이 있어야 그 두려움이 효과적이 될 수 있네. 막강한 보호를 받는 군주들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갈망하는 존재들밖에 없네……. 그들을 단 한 방에 시간과 공간을 정복하는 자객으로 만들고자 말일세. 그들은 곳곳에 두려움과 공포의 씨를 뿌리고 다닐 것이며, 그 대상은 군중이 아니라 왕관을 쓴 군주들이란 걸 잊지 말게.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권력가들은 모두 죽음의 공포에 떨게 되지."
하산은 군주들을 목표로 자객을 보내 깔끔하게 끝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했다. 하산은 대중들을 계몽이 필요한 무지한 존재들로 보고, 자신의 세력 형성을 위해 이용하긴 했지만, 죽여 없애 버려야 할 무가치한 존재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전후에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는 그 목표가 무차별적이고 대부분 희생자가 민간인이었다. 한마디로 참혹했다. 20세기에 벌어졌던 전쟁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끔찍한 전쟁이 2차대전도 아니고 한국 전쟁이었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이 더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그렇게 증오스럽다면 하산처럼 깔끔하게 주요 인물들을 공격하라고 말하면 너무 선동적인가? 아무튼, 암살자와 자살테러의 원조격인 하산은 그렇게 생각했고 행동했다는 것이다.
하산과 오마르가 대중을 지도해야 할 의식 수준이 낮은 개체로 봐왔던 것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식으로 대중을 보는 점이 없지 않아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가진 게 있으면 사람은 자기만족과 자만을 넘어서 쉽게 오만에 빠진다. 이들은 지식의 겉만 핥고 지식인인척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지식인은 배우고 못 배우고의 차이가 종잇장만큼이나 얇다는 것을 알기에 배우면 배울수록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듯이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의 미덕을 배운다. 여기서 잠시 이주한의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에서 정의되는 지식인의 면모를 살펴보자.
“자신을 전체 중 일부로 보고 구체적인 삶의 의미를 물으며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약자에게 눈과 귀가 열려 있는 사람이다. 터부와 금기에 도전하는 삶이 지식인의 책무이자 운명이다. 지식인은 공동체가 처한 삶의 고통과 질곡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대중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은 경쟁을 통해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이해하고 통찰해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저명한 지식인'이 곧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 촘스키.
책을 보면 볼수록 궁금해지는 건 더 많아지고 호기심의 욕구는 끝이 없다. 천재가 죽을 때까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 해도 한 인간이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을 수는 없다. 우린 그 중 일부인 극히 적은 지식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실로 자신이, 아니 인간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뭔가 아는 것이 나오면 우쭐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역시 나도 그 수많은 어리석은 인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다. 이런 블로그도 그런 인간 욕구의 발로나 다름없다. 아무튼, 이런 문제에는 책을 멀리하는 대중들의 책임도 있다.
아주 오래전 우리 조상이 인간인 자신을 본떠 완벽한 신을 창조한 이유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부족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한 존재인 신을 찬양하면서 그러한 인간의 나약함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신을 생각하며 인간의 부족함을 메우고 일보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고 신의 권위에 도전할 때에 바로 문제가 생긴다. 신의 퀴즈 두 번째 시즌 마지막 편의 주제도 이것이었다.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이들은 신을 대신해 자신이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오만과 자신만이 옳고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독선과 독단 때문에 주변에 엄청난 불행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작품 중에서 신이 되고자 자살을 결심하는 인물이 떠오른다. 이렇게 인간의 오만함으로 신이 되고자, 또는 신을 넘어서고자 할 때, 오만함은 그 극치에 다다르고 그 오만함은 곧 파멸을 불러온다.
블라디미르 바르톨의 『알라무트』에서 특별한 교훈 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지 어느 독재자의 광적인 기질의 생성과 그 원인, 실천과 그 결과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교훈보다 더 많은 걸 남겨주었다. 종교 체제든 국가 체제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역사에서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뭔가 섬뜩한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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