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 메이지의 스승?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
일본인과 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인식의 간격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福沢諭吉のアジア認識―日本近代史像をとらえ返す)』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安川壽之輔)가 인용한 운노 후쿠주의 절묘한 표현을 빌린다면 벌렁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심각하다. 그 간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에 대한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살펴보면 된다. 일본에서는 민주주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최고액권 지폐의 초상 인물이기도 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정부와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으로 불리며 극찬을 받는 언론인이자 계몽가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 즉 한국이나 중국, 대만에서는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제국주의 확장론자’,‘우리나라의 근대화를 파탄시킨 우리 민족의 적’ 등으로 평가받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들통난 후쿠자와 유키치의 진짜 정체는 ‘계몽가’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닌 - 이런 평범한 수식어조차 그에겐 과찬이다 – 바로 변덕스러운 ‘선동가’다. 그는 지식인의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의 명성과 지식을 악용하여 일본인을 선동하고 세뇌시킴으로써 일본의 침략 전쟁과 학살, 사유물 강탈, 식민지배 등의 뒷받침되는 사상적 근거와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가 주장한 신선한 사과를 ‘썩은 사과’로 변질시키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제공하였다.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그럴듯한 거짓 명분을 세워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본 군인은 태연하게 학살과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고 그 일말의 책임 의식이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대로 아시아인을 섬멸하는 것은 ‘돼지 사냥’하는 셈 치면 되니까.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근대적 추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일본인들의 현실지각, 도덕적 태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 등을 마비시키는 상황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시 프레임의 변화, 바탕 교체 효과, 사람의 악의 길로 내모는 상황의 힘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만행은 그가 죽고 난 후 벌어진 남경대학살, 그리고 홀로코스트나 베트남 전쟁, 최근에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일어난 미군의 학대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예는 명망 받는 지식인일수록 그 사회적 책임감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왜 인간들이 밖에서 볼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한 일을 태연스럽게 저지르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한 지시 프레임이나 상황을 제공한 후쿠자와 유키치나 나치 같은 선동가를 찾으면 된다.
<후쿠자와 유키치 /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평가는 독일처럼 역사적 뉘우침이 전혀 없으며 희생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아직도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한 일본에 대한 적대감 수치를 더 증가시키는 꼴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적 신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그를 여전히 신봉하는 일본은 아직도 아시아 맹주의 자리를 넘보는 것일까. 역사가 늘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묵인 아래 진행되는 일본의 재무장을 두 눈 뜨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이런 와중에 제2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등장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끝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는 방대한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의 사료를 직접 인용하여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비판하는 방식으로 집필된 책이기 때문에, 나 같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당시의 역사적 전개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가 논증하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다소 헤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했듯 일본과 다른 아시아인 사이의 역사인식 간격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인식에 대한 체계적인 해명을 통해 조금이라도 메우는 것에 있을 것이다.
Original Title: 福沢諭吉のアジア認識―日本近代史像をとらえ返す by 安川 壽之輔
전 생애에 걸친 후쿠자와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언제나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늘 변함이 없었다”, “지금의 나, 옛날의 내가 마치 두 사람 같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변절이야말로 그의 생명이라고 특징지은 바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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