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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4.

[책 리뷰] 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 마오의 대기근(프랑크 디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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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가 인도한 생지옥

Original Title: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1962 by Frank Dikötter
국가가 전부이고,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인의 가치는 노동 점수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되고, 흙을 나르거나 벼를 심을 수 있는 능력으로 결정되었다. 농촌에서 농민들은 가축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은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할 존재였고 그 모든 것은 공사에 대가가 따랐다. 이 음울한 계산의 논리적 귀결은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도태시키는 것이었다. 굼뜬 사람, 비실비실한 사람, 여타 비생산적 분자들의 무차별적 살해는 노동을 통해 정권에 기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체적 식량 공급을 증가시켰다. 폭력은 식량 부족을 다루는 한 가지 방식이었다.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p438)

인류 정치사상 최악의 인재, 대기근

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서 민간인을 포함한 총 사상자는 대략 5,000만 명에서 7,000만 명으로 잡고 있다. 전쟁 기간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 9월 1일부터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한 1945년 9월 2일까지로 대략 5년이었다. 그런데 전쟁도 없었고 내전도 없었음에도 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민간인만 4,500만 정도가 사망한, 아마도 인류 정치사에서 최악의 인재(man-made calamity)라고 불릴만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야심 찬 프로젝트 대약진(大跃进: Great Leap Forward)이 불러들인 대기근(大饥荒: Great famine)이다.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겠다는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적 공상에서 발아한 대약진은 한마디로 중국에서 가장 남아도는 자원인 6억의 노동력으로 자본을 대체하여 소련처럼 급진적인 산업화를 이루어내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였다. 그러나 동방원정과 유대 볼셰비즘 말살로 아리아 민족을 위한 지상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히틀러의 지독한 ‘의지’가 독일에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온 온 것처럼, 자신의 생애에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기필코 건설하겠다는 마오쩌둥의 의지에서 싹튼 대약진 역시 중국에 전무후무한 파괴를 가져왔다. 대약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대량 살상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 목적에 반하게도 농업과 무역, 공업, 운송 등 중국의 산업과 경제에도 유례없는 피해를 줬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4,500만 명이 아사해가고 있을 때 권력의 중심부 사이를 비밀스럽게 오간 말과 그 당사자들의 냉혹한 행위들에 대한 완전한 그림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베이징의 중앙당 기록 보관소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지금까지 국가나 중국 공산당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체면을 깎아내리는 크고 작은 불쾌한 사건들이 철저하게 은폐되어 온 것처럼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진실을 호도하거나 감추기에 바쁜 것 같다. 역사와 인민 앞에 공산당의 책임을 온전히, 그리고 떳떳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4,500만 명을 조기 사망시킨 대기근과 수억 인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준 문화대혁명의 절대적 책임을 공산당이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억압으로부터 인민을 해방시키겠다는 혁명 이념으로 정권을 장악한 공산당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참혹한 결과 앞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류는 인정하면서도 히틀러나 마오쩌둥이 그랬던 것처럼 교묘하게 책임은 회피한다.

감춰진 잔혹사를 폭로하다

랑크 디쾨터(Frank Dikoter)의 인민 3부작 중 두 번째인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 중국 참극의 역사 1958~1962』은 역사학자가 접근할 수 있는 최상, 최신의 자료로 완성된 수작이다. 이 책은 대기근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를 파괴했던 대약진의 구조적인 토대가 어떻게 세워지고 어떻게 지속하였는지를, 그리고 그렇게 자리 잡은 토대 위에서 파괴 위에 파괴를 거듭하고 시체 위에 시체를 쌓아가면서도 무오류를 확신하는 마오쩌둥의 의지와 그를 숭배하는 당원과 인민으로부터 광적으로 뿜어져 나온 동력이 어떻게 대약진을 유지시켰는지를 면밀하게 파헤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제시된 증거들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겠다는 다수의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이들의 야심과 맹목, 탐욕에서 출발한 강압과 공포, 체계적인 폭력이 대약진 운동의 토대였음을 밝힌다. 그럼으로써 대기근은 인재(人災)였을 뿐만 아니라 조기 사망자 대다수가 기존에 알려진 사실대로 아사, 혹은 굶주림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사망원인 즉, 대약진 동안 100만 명에서 300만 명이 자살로, 그리고 적어도 250만 명은 맞아 죽거나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감춰진 잔혹사(残酷史)를 드러낸다.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의 지독한 공통점

실 히틀러, 마오쩌둥, 스탈린 등 20세기 ‘위대한 독재자’들은 그 누구보다 인민들의 목숨을 파리목숨보다 더 하찮게 여겼다. 아마 그러한 절대온도 같은 냉혹한 성정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불가결한 자질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마오쩌둥과 히틀러는 참으로 닳은 점이 많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각자 상정한 유토피아를 향한 두 사람의 꺾일 수 없는 ‘의지’와 ‘집념’은 현실을 생지옥으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에서 치러지는 희생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히틀러가 수많은 병사의 죽음을 민족의 생존을 위한 ‘영웅적 투쟁’에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희생이자 대가라고 주장했듯, 마오쩌둥 역시 대약진의 희생자들을 혁명의 대의를 위해, 미래에 약속된 유토피아를 위해,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희생되어야 할 소모품으로 여겼다. 두 사람 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으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편집증적으로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에 바빴다. 히틀러가 모든 잘못을 유대인 탓으로 돌린 것처럼 마오쩌둥은 봉건 세력, 수정주의자, 반동분자, 반혁명 분자 등 (거듭된 숙청으로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적성 계급 탓으로 돌렸다. 또한, 아랫사람들이 등 뒤에서 벌이는 짓들을 히틀러는 모른다고 믿는 ‘지도자 신화’라는 후광 속에서 (적어도 스탈린그라드 전투 전까지는) 히틀러가 비난의 화살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마오 역시 ‘위대한 조타수’로서 오직 인민의 복지만을 염려하는 인자한 지도자로 그려지는 데 성공했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천재성과 무오류성을 확신했다. 그래서 제아무리 논리적이고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지라도 두 사람의 언행과 정책에 대한 비판은 전혀 먹혀들지가 않았고, 감히 지도자의 심기를 건드린 비판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마오쩌둥이 히틀러보다 나았던 점이 있다면 철저하게 자국민들에 (비록 그들은 세상 그 누구도 겪지 못한 공포에 떨고 고통에 짓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지만) 한해서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과 6억 인민을 가지고 사회주의 실험 놀이에 한창 빠져있었던 덕분에, 이 기회를 틈타 대만과 한국은 경제 발전을 가속할 수 있었다.

한편, 제3제국의 모든 층위에서 이루어진 의사소통에 구조적으로 진실이 왜곡되었던 것처럼 중국은 대약진 시기에 망령에 가까운 마오쩌둥 실험에 장단을 맞춰주느냐 온 나라가 오로지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등의 수치를 날조하고 조작하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나치당원들이 히틀러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었어도 히틀러가 원하고 좋아할 만한 일들을 알아서 계획하고 추진한 것이 나치의 동력원이었다면, 규정량, 할당치, 목표량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겠다는 공산당원들의 잔인한 보신(補身) 의지가 대약진의 동력원이었다. 나치가 국가에 짐이 되고 밥만 축낸다는 잔혹한 논리로 불치병, 정신병, 선천적 질병을 앓는 환자를 안락사시킨 것처럼 대약진 시기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엄혹한 논리로 아이, 병자, 노인은 잔학무도한 생존경쟁에서 학대를 피할 수 없었다. (다른 점도 많겠지만) 어딘가 닮은 점이 있는 두 독재자 밑에서 인류사에 지워지지 않을, 그리고 지워져서도 안 될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파괴적인 재앙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오싹하기 짝이 없다.

한국 전쟁의 영웅 펑더화이의 몰락을 불러온 대약진

약진이 모든 지도층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1957년 하반기에 시작된 치수 사업 맥락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 ‘대약진’이 막상 시작되었을 때 당의 제2인자인 류사오치는 마오쩌둥의 비전을 받아들였지만, 중국에서 마오쩌둥 다음가는 권위를 가진 저우언라이와 경제 전문가 천윈(陳雲)은 마오쩌둥의 경제 정책을 반대했다. 하지만, (권위와 보신 앞에 장사가 없듯) 두 사람은 자리를 보전하고자 마오쩌둥의 끈질긴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1959년 루산 회의에서 한국 전쟁의 영웅이자 국방부장이었던 펑더화이(彭德怀)는 마오쩌둥에게 조심스럽게 대약진의 참상을 알리고 비판하는 편지를 전했다가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쫓겨나고, 루산 회의에서 펑더화이를 지지했던 다른 이들도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한편, 1961년 4월 류사오치는 거의 40여 년 만에 고향을 방문했다가 실제로 목격한 참상에 충격을 받고는 (아마 그는 참상을 눈앞에서 보고도 외면할 정도로 모진 사람은 못 되었나 보다!) 이때부터 대약진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다. 이후 류사오치는 농민들은 ‘30퍼센트는 천재요, 70퍼센트는 인재’라고 말한다며 대기근의 원인을 명확하게 중앙 지도부로 지목하면서 마오쩌둥의 심기를 건드린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대기근의 참상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뒤였기에 마오쩌둥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침묵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거나 상대를 용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대약진의 참담한 실패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곧 실추된 자신의 위신과 권위를 회복하고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또 하나의 거대한 실험을 일으킨다. 그로 말미암아 중국은 대약진의 충격에서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또 한 번 혼란과 고난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이번에는 대약진의 실패를 거울삼아 급진적인 산업화가 아니라 대중 선동을 선택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일으킨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아이가 겨우 일어서려는 찰나에 다시 크게 한방 얻어맞고 진흙탕 속으로 굴러떨어진 격이니, 어찌 인민들에게 잠시의 평안함이 허락될 수 있었겠는가? 이때는 감히 ‘위대한 조타수’에게 반기를 든 펑더화이와 류사오치도 죽음을 면치 못할 터였다.

파국의 시대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적나라함

지막으로 파국의 시대에 인간 행동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이 책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고 프랑크 디쾨터는 설명한다. 그 어떤 공포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잔혹한 짓들이 이 책에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굶주린 아이가 먹을 것 좀 훔쳤다고 우물에 빠트려 죽이고, 먹을 것을 훔친 소년의 아버지에게 자식을 산 채로 땅에 파묻게 하고, 어느 엄마는 여덟 살 딸아이 몫의 배급 식량을 빼앗아 자기 자식을 굶겨 죽이기도 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것은 죽은 사람조차 그냥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천운이었고 길거리에 그냥 방치되는 것은 보통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소년처럼 사소한 경범죄를 저질러 맞아 죽은 사람들은 다른 재료와 함께 솥에 넣고 끓여진 다음 거름으로 재활용되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적군도 아닌,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에게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런 만행이 한 두 마을에서만 있었던 특이 사례가 아니라 중국 전역에 걸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일상사의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 우리는 숙연한 역사 앞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위기 앞에 또다시 서게 된다. 한편으론 훗날 문화대혁명 중에 일어나게 될 만행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이 책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전쟁이나 내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 정도의 인구가 단 4년 만에, 그것도 단 한 사람의 의지와 그를 뒤따르는 어떻게든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고 자리를 보전해 보겠다는 사람들의 흉물스럽고 천박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조기 사망했다는 무참한 진실 앞에선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역정조차 곧바로 허탈한 감정으로 식어버린다. 마주해야 할 진실이 너무나 참혹했을 때, 그래서 당황할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무정하게도 그 저주받은 시기에 태어난 그 사람들의 저주받은 운명을 탓하고야 마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논리와 이성이 마비된 무상함에 빠져든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스리고 분노를 풀어보고자 제법 긴 글의 리뷰를 쓰고 난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심란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밝히기를 꺼렸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마오의 대기근(Mao's Great Famine)』도 엄청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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