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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1.

[영화 리뷰] 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Karaoke-Crazies-2016-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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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에서 피어나는 가련한 난초 같은 영화

세상에는 참 엿 같은 영화들이 많다. 사람을 생선 토막 내듯 난도질하는 영화부터 보여줄 듯하면서도 결국 아무것도 안 보여주는 영화, 그리고 떨어지는 연기력을 어떻게든 외모로 메꾸어보려고 갖은 발광을 다 하는 배우들이 작당하는 영화까지, 엿 같은 영화라도 그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천차만별이니 세상은 참 엿 같은 곳이다.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도 엿 같은 영화다. 할 일 없이 온종일 스마트폰 화면만 마주 보며 마치 무뇌충이라도 되려는 것처럼 뇌 속을 깡그리 비우는 와중에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마음속에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엿 같지만,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나의 정서를 한층 더 두텁고 깊게 짓누르는 감개를 무량하게 주입한다는 점에서 엿 같다. 그리고 기자 • 평론가의 평점도 내게는 엿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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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하늘이 점지한 운명인가. ‘중독노래방’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과 그 면도날 같은 비밀에 깊게 파인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고통을 남몰래 감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뭔가에 홀린 듯 모여든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익숙한 피고름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외로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해서 외로움이 덜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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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얼음 덩어리가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따뜻해지지 않듯 외롭고 고독하고 남모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단합 대회라도 열듯 한곳에 모인다고 해서 덜 외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치유된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서로의 상처 구멍을 들여다보는 연민 어린 행위 자체가 잊은 듯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면서 이제라도 막 아물 것 같았던 상처를 헤집어놓는 자학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기억이란 녀석은 그렇게 때때로 우리를 배반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인내해 온 고통을 덮을 수 있는 더 큰 고통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영화처럼, 그리고 알다시피 세상은 이들이 행복해지도록 그냥 놔두질 않는다. 왜? 세상은 참으로 엿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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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은 보란 듯이 하늘을 독점하고 있는 중국산 먼지들이 멋들어지게 장식해놓은 우중충한 하늘처럼 한순간 나의 마음을 우울함의 극락으로 밀어 넣는다. 한편으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내세울 것도 없는 듯한 자신들의 삶에 도취해, 그리고 그것만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기고만장한 채 타인의 상처를 드잡이하듯 흔들어놓는 다수를 향해 울분을 금치 못한다.

왜일까? 내가 그 다수에 끼지 못한 패배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영화 속 인물들을 향한 지극한 동정심 때문일까?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영화가 그렇게 끝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시무룩해진 나의 기분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람처럼 감당할 수 없는 암담함에 짓눌려 살려달라고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그리고 그 뜨거운 감상이 채 식기 전에 사라지고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상념을 두서없이 써 내려가고 있자니 뭔가 체한듯한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묘하게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어제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중독노래방(Karaoke Crazie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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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

[영화 리뷰] 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 썸니아(Before I Wake, 2016)

Before I Wake 2016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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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낳은 또 다른 고름, 악몽

"그때 내가 (방아쇠를) 당겼다면 당신의 남편도 다른 사람들도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당신이…. 내가 못한 걸 할 수 있을지 몰라요" - 웰란

아이가 꾸는 꿈이 그대로 현실로 재현된다는, 그리 기발하지는 않은 소재를 다뤘음에도 공포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과 관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비교적 명확하게 풀어냄으로써 나름 독창적인 감흥을 자아내고 있는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새로 입양한 아이 코디의 새엄마 제시는 코디의 악몽 속에 갇혀 있는 트라우마를 쫓는 탐정이 되는데, 그럼으로써 그녀는 코디 친모의 죽음이 아이에게 남긴 씻어낼 수 없는 기억이 단편화와 인상화라는 망각적 변용을 거쳐 끝내 악몽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낸다. 그렇게 아이의 악몽은 끝난 것처럼 보이고, 두 사람의 운명은 화창한 봄날을 맞이한다.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그것보다 조금 더 약간은 슬프면서도 결말은 해피한 공포영화다. 다르게 말하면, 확실히 무섭지도 않고, 확실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코디의 악몽을 두루뭉술하게 에두른 것이 아니라 명징하게 추적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렇다. ‘악몽은 다름 아닌 우리 현실에서, 그것도 나의 삶, 나의 고통, 나의 슬픔, 나의 상처, 나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우리는 꿈속에 등장하는 뜻밖의 물건, 상황, 인물과 맞닥트리면서 괜히 놀라곤 하는데, 사실 이들을 역추적해보면 대부분이 (영화 속 코디처럼) 삶에서 받은 여러 인상의 과도한 변용과 예측할 수 없는 단편화가 가져온 결과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변용이 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단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결국 꿈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꿈을 꾸는 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상할 수 있는 한계점 내로 한정되어 진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컴퓨터’와 연계된 꿈은 꿀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뭐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영화 「썸니아」 는 아버지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잠자는 코디를 권총으로 죽이려는 아찔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하지만, 뭔 바람이 불었는지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꽝’ 열리면서 남자가 놀라는 바람에 코디는 무사히 그날 밤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나 도리상으로나 아이를 총으로 쏴죽이려 했던 남자에게 코디를 계속 맡길 수는 없는 법. 코디는 입양을 희망하는 젊은 홉슨 부부의 집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홉슨 부부는 불행한 사고로 아들 션을 잃어버린 가슴 아픈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 코디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세 살에 엄마를 여의고 어떤 연유로 여러 가정을 전전한 코디는 아이답지 않게 홉슨 부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가 가져온 짐이라곤 달랑 네모난 상자 하나. 코디가 방에 없을 때 침대 밑에 숨겨놓은 상자를 우연히 발견한 제시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나 뚜껑을 열어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나비에 대한 책과 함께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아직 고삼도 아닌데!) 각성제. 그날 코디에게 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제시는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잠을 자는 게 싫어서 각성제를 먹는다는 코디는 자신이 잠들면 ‘캔커맨’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고 고백한다. 코디는 사뭇 진지하지만, 그냥 캄캄하고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한 제시는 조금만 이해하면 무서운 게 사라진다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코디의 걱정을 잠재우려고 한다.

Before I Wake 2016 scene

코디를 잠재우고 거실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부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어디선가 갑지가 날아든 가지각색의 나비가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하지만, 나비는 갑자기 날아든 것처럼 부부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남편과 함께 신비한 현상을 겪자 제시는 용기를 내어 어젯밤에 션을 본 일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제시에게 그 일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했던 경험이었다. 다음 날 부부는 더욱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나비와 함께 이번에는 죽은 아들 션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로 두 사람은 코디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어렴풋이 추측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션의 사고 장면, 즉 아이의 발이 약간 위로 들려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아 제시가 아이의 발을 잡고 들어 올려 익사시킨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녀만 그 충격으로 집단 정신치료를 받는 것이 아닌지 상상해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디의 꿈은 처음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나비로 시작한다. 그러던 것이 부부가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션으로 옮겨가는데, 이것은 코디가 (또다시 버림받지 않고자) 부부에게 잘 보이려는 무의식이 꿈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션으로 연기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나날이 갈수록 그것이 부담되니까 ‘캔커맨’을 등장시켜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것은 아닐까? 이러면 잘 보여야 할 사람도 사라지니까 말이다. 결국, 코디는 새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데, 새 부모는 그런 코디의 애처로움은 외면한 채 코디가 가진 희귀한 재능만을 탐낸 비극적 결과가 사람들의 실종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면서 「썸니아」 리뷰를 마친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썸니아(Before I Wake,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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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10.

[영화 리뷰] 결말은 진부할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아름다운 ~ 묘성인(Meow, 2017)

Meow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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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진부할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아름다운

"엄마, 아빠 돈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난 우리 가족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 오유유

동물을 의인화하여 제작한 가족용 오락영화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만큼 유치하고 진부한 값싼 감동만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고만고만하고 그저 그러한 영화들도 비일비재하지만, 그래서 (최소한 나에게서 만큼은)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은 노파심에 쉽게 선택의 손길이 가지 않는 장르이지만, 그런 연유로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른 「묘성인(喵星人 Meow, 2017)」이지만, 아, 정말이지 전혀 유치하지 않고, 전혀 엉성하지 않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전혀 억지가 아닌, 그러한 CG와 연기, 이야기, 영상의 따사로운 조화로 마치 생각지도 못한 소소한 행운을 맛난 듯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이 영화는 가족용 오락 영화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걸쭉하게 되새김해준다. 그것은 빌어먹게도 눈물 콧물로도 모자라 허탈함까지 쥐어짜 내는 억지웃음과 억지감동이 아니라 샘솟듯 솟아오르는 자연스러운 감개가 오장육부를 휘감고 감치는 감동 중의 감동이다. 아무튼, 「묘성인」은 꿀꿀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꼭 꿀꿀하지 않더라도 유쾌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자리에도 만점인 영화다.

「묘성인」은 저 먼 은하계 끝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는 ‘야옹 행성’의 무자비한 침공 계획으로부터 시작한다. 야옹인들은 행성의 쇠퇴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에 야심 찬 행성 이주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 침공! 그래서 그들은 오래전에 영웅 중의 영웅들을 지구에 선발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찌 된 이유인지 수천 년간 깜깜무소식이었으니, 야옹인들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꼴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지구에서의 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조바심이 턱 밑가지 차오른 난 야옹왕은 다시 한 번 지구로 ‘야옹 전사’ 서미로를 보내기로 작정한다. 서미로는 푸른 수정처럼 빛나는 ‘비밀 병기’ 목걸이와 ‘야옹인 필살기’로 무장한 현존하는 최고의 ‘야옹 전사’이므로 오래전에 지구로 떠난 선발대의 몫까지 다하여 지구를 철저하게 섬멸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Meow 2017 scene 01

야옹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서미로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에 무사히 도착하려는 찰나에 그만 예상치 못했던 이상 기후에 휩쓸린다. 이 사고로 서미로는 왕이 그렇게도 신신당부했던 ‘비밀 병기’ 목걸이를 잃어버린다. 어느 가정집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목걸이는 그저 그런 개목걸이도 아니고, 야들야들한 귀부인 목덜미를 가려주는 호화로운 장식품도 아닌, 전사로서의 힘과 생명을 유지해주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으니 서미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구에서 이 목걸이가 없다면 서미로의 몸은 곧 분해되어 사라질 터, 하지만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분해되어 죽기 전에 가장 비슷한 생명체로 자신을 복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공중으로 분해되어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미로는 마침 ‘비밀 병기’가 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근처에서 운이 좋게도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발견한다. 정신을 곧 잃을 것 같았던 서미로는 생각하고 선택하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복제를 시작한다.

Meow 2017 scene 02

한편, 한 때 ‘신의 손’이라고 불렸던 홍콩의 은퇴한 축구 스타 오수룡은 잘 속는 철부지 같은 면 때문에 축구로 번 돈은 이미 탕진한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스타에서 직업을 구걸하는 백수로 전락한 그에겐 성질이 불 같은 아내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주여주, 장차 영화감독이 꿈인 유튜버이자 장남인 오우재, 마지막으로 한쪽 다리를 잘 못 쓰는 장애를 안고 사는 작고 귀여운 딸 오유유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 중계를 해설하는 테스트해서 참담한 실패와 비웃음을 한가득 먹고 방송국을 나온 오수룡은 축구 감독직의 성사 여부를 쥔 한 지인으로부터 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받는다. 바로 지인이 여행을 갔다 올 동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시시리를 잠시 맡게 된 것이다. 그깟 고양이 한 마리쯤이라고 가볍게 여긴 오수룡이 막상 지인으로부터 고양이를 인수받고 보니 이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돼지, 아니 돼지 같은 괴물 고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고양이가 있을 수 있을까? 평소라면 불가능했던 일일지 모르지만, 그날 오수룡이 시시리를 만난 그 운명적인 순간만큼은 가능했다. 왜냐하면, 시시리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서미로가 복제했던 그 고양이였던 것이다!

한시라도 자신의 임무를 망각할 수 없었던 서미로는 ‘비밀 병기’를 찾고자 오수룡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편, 텔레파시를 이용해 ‘야옹 카페’를 찾아가 오래전에 지구로 보내졌던 원로들을 찾아뵙는다. 서미로는 나태해진 원로들 앞에서 지구 침공의 당위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아 보지만, 이미 안락한 삶에 길든 원로들은 ‘주인만 잘 만나면 상팔자’라는 식의 심드렁한 대꾸만 할 뿐이다. 이에 격분한 서미로는 ‘지구 침공은 가족 파괴로부터’라는 선전문구를 앞세우며 자신이 직접 오슈룡 가족을 파괴함으로써 ‘야옹 전사’의 자존심을 세우기로 많은 원로 앞에서 굳세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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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성인」은 가족용 오락영화이니만큼 결말은 다소 진부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만큼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영화다. 그래서 앞서 그렇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 가며 칭찬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SF소설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문명이 존재하는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 과연 문명은 그 종말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야옹인들이나 삼체인들처럼 적당한 외계 행성을 고른 다음 그 행성에 살던 문명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문명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예정된 운명대로 비극적이지만 장엄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문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면서까지 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런 일이 정당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타인에 의해 내 행복이 파괴되어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라는 말이지 않은가?

끝으로 「묘성인」을 보고 나니 뜬금없게도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돈’일까? 아니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일까? 라고 묻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고 어리광부리는, 가장 부모를 필요로 하고 가장 크게 부모에게 의지하는 나이는 아이의 일생 중에 찰나라고. 그 몇 년 안 되는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지 않은 부모는 쓸쓸해지는 노년이 되면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인생의 현자’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담은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는 증언하고 있다. 단순한 오락 영화일지 모르지만, 보기에 따라선 썩 괜찮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썩 괜찮은 영화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묘성인(Meow,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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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0.

[영화 리뷰] 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

The Tenants Downstairs 2016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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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표현한

“그래서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 잉루

“왜 머무는 거죠?” - 주인 남자

“다른 사람과 다른 걸 두려워하니까요. 그래서 그 끝에 머물면서 꼼짝도 못 하는 거에요” - 잉루

와우, 간만에 소름끼치는 연기,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연기에 걸맞은 소름끼치는 반전을 소름끼치는 영상에 진득하게 담은 괴물 같은 영화를 만났다.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을 보노라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그 유명한 경구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가 절로 떠오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가 없지만, 「아래층 사람들」는 광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섬뜩하지만 엄연한 현실을 소름끼치는 연기, 빈틈없는 이야기, 그리고 음침한 영상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영화에는 사디즘, 카니발리즘, 동성연애, 비역질, 고문, 관음증, 씨오메이니어(Theomania), 강간, 토막 살인 등 사드 후작도 울고 갈 정도의 변태적이고 광기적인 요소가 고장 난 공중화장실 변기에 고여 있는 오물처럼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고로 잠시 광기의 역겹게 매혹적인 세계를 탐험하기에 앞서 알아서 판단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바란다. 참고로 뭇 남자들의 무른 방망이가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선정적인 장면도 다분하다.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심문실에서 한 남자가 형사 한 명을 앞에 두고 변호사 없이 자신이 겪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먼 친척으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은 남자는 세입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한다. 첫 입주자는 수상쩍은 눈빛으로 어린 딸을 바라보는 막 이혼한 왕 씨와 그의 어린 딸이었다. 두 번째 입주자는 게이 연인이다. 그다음으로 초능력에 빠져 있는 괴상한 대학생,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의 장점을 이용할 줄 아는 평범한 직장인 진소저,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즐겨 마시는 막 이혼한 체육선생 장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간 여행가방으로 가득 찬 방에서 홀로 존재감이 없이 사는 여자 잉루가 입주한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1

기가 막히게도 세입자들의 방에는 몰래카메라가 심어져 있었고, 당연히 주인 남자가 거주하는 방에는 세입자들의 모든 방을 훔쳐볼 수 있는 모니터가 일사불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임대료를 받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세입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훔쳐보면서 그들의 일상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자료가 쌓이자 남자는 세입자들의 일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생활기록부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채 새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 세입자는 존재감이 없는 여자 잉루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자는 잉루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여벌 열쇠를 사용해 그녀의 방을 수색한다. 그녀의 방에는 여전히 빨간 여행가방들로 가득했다. 한 남자가 들기 버거운 가방 하나를 막 열어 살펴보려는 찰나에 예기치 않게 잉루가 한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급해진 주인 남자는 침대 밑으로 숨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녀는 남자 앞에서 훌러덩 옷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된 다음 남자를 유혹하듯 욕조로 데리고 간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2

두 사람이 욕조로 간 틈을 타 재빨리 자기 방으로 돌아온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두 사람이 욕조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지 훔쳐본다. 놀랍게도 그가 본 것은 젊은 남녀가 욕조에서 일반적으로 행할 것이라는 상상하는 흐뭇한 것이 아니라 잔혹한 고문의 현장이었다. 남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잉루는 뭔가 고상한 취미라도 즐기듯 침착하고 차분하게 남자를 고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 남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 남자의 목은 거북이처럼 늘어난 채 화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구름 낀 어느 날, 주인 남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잉루와 가벼운 티타임을 갖는다. 소녀처럼 순수하고 조각상처럼 섬세한 미모를 소유한 그녀는 젊음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끝자락’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끝자락이란 아무런 파랑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아무 가능성도 없는 삶을 사는 거라고 설명한 그녀는 자신은 그것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말에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주인 남자는 ‘끝자락’의 경계를 넘어서게 할 대담한 계획을 세워 세입자들의 운명에 개입한다. 마치 자신이 운명의 여신이라도 된듯 말이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3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Giddens Ko(구바도)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것 같다. 영화가 매우 인상적인지라, 원작도 꼭 읽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광기를 다룬 영화나 책을 읽다 보면, 그리고 덤으로 사드 후작과 관련된 책도 읽다 보면 광인에 대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소위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즉,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직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타인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친 사람’은 ‘정상’인 사람들이 빨간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빨간색인 것은 그것이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 다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빨간색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주 어딘가에는 그것을 파란색이라 명명하는 존재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아래층 사람들」은 이런 극명할 것 같은 차이를 께름칙한 영상으로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설득한다. 당연히 보는 사람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은 우리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불쾌함 없이 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회가 내뱉듯 진단해 버리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인가? 알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정상’인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미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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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2.

[영화 리뷰] 그래도 나는 소원을 빌련다 ~ 위시 어폰(Wish Upon, 2017)

Wish Upon,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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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소원을 빌련다

"음악이 끝나면 피의 대가가 따른다."

어느 날 강아지 맥스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오니 천장에 목을 매달은 채 죽어 있는 엄마. 12년이 지나고 나서도 클레어는 엄마를 그리워할 때마다 그때 왜 엄마가 갑작스럽게 자살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Wish Upon 2017 scene 01

그러던 어느 날, 동네방네 쓰레기통을 뒤지며 고물을 줍는 클레어의 아빠 조나단은 그날도 이곳저곳의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어딘지 모르게 골동품처럼 고아한 풍취가 느껴지는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팔각형 상자를 발견한다. 조나단은 겉보기에도 멀쩡하고 그냥 내다 팔기에는 아까워서 뮤직박스처럼 보이는 상자를 딸에게 선물한다. 상자 여기저기에는 오래된 한자로 뭔가 씌어 있었고, 마침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우던 클레어는 그중 ‘소원’, ‘일곱’이라는 단어를 해독해낸다. 잠시 후 클레어는 무심결에 학교에서 자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달시 채프먼이 썩어버리면 좋겠다고, 큰 기대 없이 그저 하소연하듯 상자 앞에서 소원을 빈다.

Wish Upon 2017 scene 02

놀랍게도 클레어의 소원은 실현되었고, 이 일로 클레어는 상자에게 소원을 빌면 그것이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클레어의 첫 번째 소원이 실현된 날 엄마가 살아있을 때부터 함께 살아온 강아지 맥스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에 아랑곳 없이 클레어는 곧바로 인기 있는 남학생 폴이 자신을 좋아하게 해달라는 두 번째 소원을 빌고, 대저택에서 외롭게 혼자 살던 부유한 삼촌이 갑자기 사망하자 삼촌의 모든 재산을 자신이 상속받게 해달라는 세 번째 소원을 빈다. 멋진 남자친구에 엄청난 재산을 하루아침에 얻은 클레어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클레어는 소원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원을 빌 때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Wish Upon 2017 scene 03

소원의 대가가 무엇인지, 혹은 소원을 빌 때마다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을 때 소원을 비는 것과 소원을 빌 때마다 누군가 희생되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소원을 비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무지’라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후자는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위시 어폰(Wish Upon, 2017)」의 여주인공 클레어는 소원을 빈다. 그리고 관객은 그런 여주인공의 지나친 탐욕과 이기심에 눈살을 찌푸리고 일부는 짜증을 폭발시킨다.

그렇다면 당신이 클레어이고 소원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몰랐을 때라면 과연 어떤 소원을 빌겠는가? 클레어의 친구가 말한 대로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려는 고상한 소원을 비는데, 귀중한 소원 한 개를 소비하겠는가?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고 나서 소원에 따르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소원상자를 망설임 없이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소원 성취에 따른 대가가 영화 「위시 어폰」처럼 주변 인물이 아니라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고 해도? 여기서 고민이나 갈등을 전혀 느끼지 않고 상자를 포기한다면, 그는 군자라고 불리 울만 하고, 잠시 번민에 휩싸이다가 마지못해 상자를 포기한다면 그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며, 어찌 되든 끝까지 상자를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는 이미 괴물이다. 자, 당신은 군자인가? 괴물인가? 아니면 평범한 사람인가?

아무튼, 한 번 악마의 꾀에 넘어간 인간은 제아무리 잔머리를 굴리고 잔재주를 부린다 해도 결코 악마의 달콤한 속박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영화 「위시 어폰」은 보여주지만, 그 고지식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 평범하지 못해 지루하게까지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 영화가 공포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격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위시 어폰(Wish Upon,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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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2.

[영화 리뷰] 준수한 이야기 +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 ~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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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수한 이야기 +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

“난 쑤우리 지원할게. (사령관) 잘 감시해!” - 발레리안 소령
“어디 못 가게 해놓죠. 퍽! 퍽!” - 로렐린 하사
“ … ” - 사령관

지구에 사는 각각의 국가들이 우주로 쏘아 올린 우주선들이 하나둘씩 모여 시작된 국제 우주 정거장 ‘알파’. 그랬던 것이 28세기에는 전 우주에 사는 수많은 종이 모여 살면서 지식, 정보, 문화를 교류하며 사는 거대한 우주 정거장이 되었다. 이곳 천 개의 도시 ‘알파’를 포함한 은하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평화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사회는 사령관을 통해 발레리안 소령과 로렐린 하사에게 얼마 전 암시장 딜러에게 도난당한 무엇이든 복제할 수 있는 ‘뮐 컨버터(Mül converter)’를 찾아오라는 임무를 내린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 사랑싸움을 벌이면서도 컨버터가 고차원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시장 ‘빅 마켓’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곧바로 키리안 행성으로 향한다.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1

한편, 임무에 나서기 전 발레리안은 꿈을 통해 우주의 시공간을 가로 질러 날라온 파장의 신호를 감지해 낸다. 그것은 30년 전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 ‘진주족’에 대한 꿈이었다. 당시 자신들의 행성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집약된 진주를 캐며 평화롭게 살던 600백만의 진주족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행성 근처에서 일어난 다른 종족들 간의 싸움에 휘말리면서 불운하게도 멸종을 맞이하고 말았다. 발레리안과 로렐린 요원이 찾는 뮐 컨버터도 진주족 행성에서만 살던 생명체로서 이제 우주에 단 하나 남은 녀석이었다.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2

뮐 컨버터를 되찾는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두 요원은 오랜만에 우주 정거장 알파로 들어서지만, 그들에겐 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부터 알파 정거장 중심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방사능 지역이 감지됐는데, 해당 지역을 정찰하러 보낸 탐사선과 특수팀이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이사회는 알파에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방사능 지역을 한시라도 해결되길 바랐고, 사령관은 자신이 직접 훈련시킨 K 트론을 투입하기로 한다. 이번 작전에서 두 요원은 예상과는 달리 사령관을 경호하는 임무만을 맡는다. 하지만, 정상 회담장에서 사령관이 침입자에게 납치되고, 발레리안은 사령관을 납치한 우주선을 추격하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이에 로렐린은 자리를 지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직접 발레리안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이번 작전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두 사람은 비열한 음모에 묻힐뻔한 엄청난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Valerian and the City of a Thousand Planets 2017 scene 03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은 프랑스 공상 과학 만화 『Valérian and Laureline』을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의 연출과 그 특유의 감각으로 영화화한 작품.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고 SF 영화로서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티격태격’으로 시작해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알콩달콩’으로 마무리되는 두 주인공의 애정극,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우주 괴물의 ‘깜짝’쇼와 역시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징글맞게 생겼으면서도 귀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는 외계인의 ‘수다’쇼, 그리고 또 역시 이런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종족 간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는 숭고한 우정, 그리고 영화 「아바타(Avatar, 2009)」 행성의 화려함과는 달리 단조로우면서도 동화 같은 아름다움이 깃든 진주족의 고향 행성 등 다채로운 이야기와 볼거리가 긴 상영시간으로 말미암아 간간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는 그 틈새들을 튼실하게 메어놓고 있다. 사악한 음모를 파헤치고 정의를 되찾는 준수한 이야기에 따스하고 재미있고, 풍부한 상상력을 곁들인 이 영화는 온 가족이 함께하기 좋은 영화다.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에서 진주족이 살던 고향 행성의 불운한 결말은 먼 훗날 인류가 영화처럼 우주에 널리 퍼진 다른 종족들과 교류하게 되었을 때, 혹은 (흔히 야만인으로 불릴) 인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종족과 우연히 만났을 때, 인류의 이익(아 그놈의 경제, 경제, 경제!!! 이 지긋지긋한 ‘경제’ 논리와 성장지상주의는 먼 훗날에 가서도 인류를 옭아맨단 말인가?)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영화처럼 인류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종족의 멸종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전해준다. 지금까지 사람과 그 사람이 집단을 이룬 민족이나 국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민족과 다른 국가를 마땅히 희생시킨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상상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아마 영화가 뭔가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주고자 했다면 바로 이런 경고는 아닐까?

마지막으로, 다크서클 오지게 진 남자주인공의 게슴츠레한 눈과 늘씬하게 빠진 몸매를 비웃듯 얼굴 한복판에 우뚝 솟은 여주인공의 들창코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2017)」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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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17.

[영화 리뷰] 리듬감 있는 음악과 이국적인 영상이 볼만한 ~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

I Walked With A Zombie 1943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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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감 있는 음악과 이국적인 영상이 볼만한

"하지만 저는 좀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정확히 좀비가 뭐죠?" - 베시
"유령이면서 살아있는 시체죠" - 맥스웰 의사

캐나다에서 자란 간호사 베시 코넬은 카리브 섬에 있는 성세바스찬으로 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주인 폴 홀랜드의 아내 제시카를 돌보는 새 직업을 얻은 배시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카리브 섬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제시카는 크게 열병을 앓은 난 후로 이상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육체는 살아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숨을 쉬고 때론 걷을 수도 있었지만, 정신은 죽은 사람처럼 말도 생각도 못하는 희한한 병을 앓고 있었다.

I Walked With A Zombie 1943 scene 01

폴홀랜드는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다른 이복동생인 미혼의 웨슬리 랜드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작은 백인 공동체와 아프리카 노예 자손이 사는 성세바스찬에서는 남편에 의해 탑에 갇힌 제시카가 시동생 웨슬리를 사랑했다는 소문을 담은 노랫말이 나돌고 있었다. 한편, 조용한 밤에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과묵하고 변덕스러운 폴에게 연민을 느낀 나머지 사랑을 품게 된 베시는 제시카를 치료함으로써 그를 행복하게 만들기로 한다.

I Walked With A Zombie 1943 scene 02

베시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인슐린 쇼크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지만, 차도는 없었다. 이때 베시는 정신이 나간 한 원주민 여자를 부두교 주술사가 치료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제시는 과학적 방법을 추구하는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을 잊은 채 제시카를 부두교 주술사에게 맡겨보기로 하는데….

I Walked With A Zombie 1943 scene 03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는 부두교 주술에 등장하는 좀비의 시원에 근접한 해석을 바탕으로 만든 좀비 영화로서 원주민들의 리듬감 있는 정글드럼 소리와 이국적인 영상의 조화가 비극적인 결말과 결합하여 나름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좀비가 지금같이 사람을 물어뜯고 물린 희생자가 다시 좀비가 되는 캐릭터로 정착된 것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부터라고 볼 수 있다. 부두교 주술로서의 좀비는 독약 같은 강력한 약을 먹여 마치 죽은 것처럼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해 사람들의 눈을 속인 다음 다시 약을 먹고 깨어난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하며, 부두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상자를 의지력이 없는 노예로 만든 다음 부려 먹었다는 속설도 있다. 한편, 「죽은 자의 제국(屍者の帝国, 2015)」에서는 '죽은 자'를 좀비 노예로 길들여 부려 먹기까지 한다.

참고로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에 등장하는 간호사 베시가 언급한 인슐린쇼크요법은 만프레트 자켈(1900~57)이 1920년대 말에 사설 정신과 시설인 베를린의 리히터펠데 병원에서 일하면서 모르핀과 헤로인 중독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 발견한 치료법이다. 1933년에 빈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하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상승하고 있던 반유대주의로 뉴욕으로 옮겨온 것인데, 위험하고 극적인 이 치료법은 미국에서 19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앤드류 스컬(Andrew Scull)의 『광기와 문명』 참고). 아무튼, 베시가 당시 정신병 환자를, 그것도 어지간히 가망이 없거나 질환이 매우 심각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던 인슐린쇼크요법을 시도할 생각을 한 것은 그만큼 제시카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매우 안 좋다는 뜻이리라.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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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1.

[영화 리뷰] 배경 지식 몰라도 일단 봐! ~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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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식 몰라도 일단 봐!

“이건 오크의 세계가 아니야. 오크의 세계는 죽었어”

강력한 오크 흑마법사 굴단은 인간 세계로 통하는 차원의 문을 열어 아제로스를 정복할 계략을 진행하고, 굴단의 강력한 지옥마법 때문에 인간 세상도 곧 자신들의 고향처럼 타락하고 황폐해질 거라는 것을 아는 서리늑대 부족장 듀로탄은 인간과 협력하여 굴단을 저지할 계획을 꾸민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 2016) scene

한편, 오크의 습격으로 죽은 군인들을 조사하던 인간 세상의 수호자 견습생 카드가는 지옥마법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독자적으로 조사해 나간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를 알게 된 수호자 메디브는 카드가의 조사를 저지한다.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 2016) scene

그럼에도, 혼자 은밀히 조사하던 카드가는 차원의 문을 열어 오크를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세상의 누군가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 2016) scene

PC판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도타’를 베틀넷에서 밤새 즐기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참 세월도 무심하지. 어느덧 2017년이고 이제 2017년 개봉 예정인 스타크래프트를 보게 되겠구나.

아무튼, 자세한 배경 지식은 몰라도 압도적인 판타지적 요소와 특수 효과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다. 특히 마법 시전 효과가 그냥 화려하기만 했던 다른 판타지 영화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리얼하면서 진지하다고나 할까나?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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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27.

[영화 리뷰] 놀라운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격정적이고 황홀한 신세계 ~ 아바타(Avatar, 2009)

놀라운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격정적이고 황홀한 신세계

"넌 강한 영혼을 지녔어. 두려움도 없고 하지만 멍청해! 아이처럼 무지하지" - 네이티리

천연자원이 고갈되더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는 지구의 인류는 판도라 행성에서 새로운 자원을 채굴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치명적인 독성을 지닌 대기로 말미암아 자원 획득과 행성 탐사에 어려움을 겪던 인류는 사람과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종족 ‘나비족’과의 DNA 합성으로 탄생한 ‘아바타’를 정신적인 원격 교감으로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한편, ‘아바타’를 조종하던 과학자 토미가 사망하자 토미의 DNA로 만들어진 ‘아바타’를 조종할 사람이 없게 된다. 그러던 중 ‘아바타’ 팀은 토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자 해병대원이었던, 하지만 하반신 마비된 제이크를 찾아낸 다음 형의 뒤를 잇게 한다.

아바타 Avatar 2009_scene_01

과학자들은 제이크가 아바타 행성과 나비족에 대해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전에 해병대원이었던 점을 고려하여 탐험대원의 경호 임무를 맡긴다. 그러나 채굴 기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던 쿼리치 대령은 제이크에게 접근하여 나비족의 중심지이자 노다지 광맥인 ‘홈트리’에 대한 정보를 캐오라고 명령한다. 전 해병대원으로서 대령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제이크는 과학자들과 함께 아바타 행성을 탐험하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이 얻은 정보를 과학자들 몰래 쿼리치 대령에게 바친다.

아바타 Avatar 2009_scene_02

숲을 탐험 도중 갑자기 맞닥트린 성난 육식동물에 쫓겨 팀에게서 이탈한 제이크는 우연히 마주친 나비족 네이티리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기회로 제이크는 나비족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게 되고, 채굴 회사는 제이크에게 나비족의 신뢰를 얻어 그들을 홈트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수 있는 방편을 모색하라고 명령한다. 만약 나비족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떠나지 않을 때에는 호시탐탐 벼르고 있는 쿼리티 대령의 부대가 무력을 쓸 예정이었다. ‘아바타’와 처음 교감했을 때만 해도 대령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제이크는 나비족과 생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비족에게 끌리게 되는데….

아바타 Avatar 2009_scene_03

나와 같은 종인 인류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종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장면이 왜 그리도 유쾌하고 감동적인지. 그만큼 나 자신조차 인류에게 엄청난 염증과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일까? 굳이 식민시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역사시대에 인간이 인간에게 자행했던 행위들을 떠올려보면 먼 미래에 영화처럼 새로 발견한 행성에서 자원 채굴 문제 때문에 원주민들과 충동일 일어났을 때, 그 해결 방법의 하나로 ‘폭력’이 완벽하게 배제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런 심각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거들먹거리지 않더라도 판타지한 세계와 생동감 넘치는 영상만으로도 대단히 감동적인 영화. 마지막으로 아바타 행성의 나비족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한때 (비록 그것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자연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을 선택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지금 우리가 가는 방향이 과연 옳은 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제이크의 행위가 비록 인류에 대한 배신일지는 몰라도 인류보다 더 고귀한 생명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아바타(Avatar, 2009)」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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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 19.

[영화 리뷰] 떡칠 화장이 왜 역겹고 천박한지 ~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League of God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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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칠 화장이 왜 역겹고 천박한지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강태공

주색에 빠진 은나라 주왕. 그 뒤엔 요염하고 강력한 마력을 지닌 달기가 버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악한 힘과 음탕한 마음으로 천하를 지배하려 들었다.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League of Gods, 2016) scene 01

위험에 빠진 천하를 구하고자 강태공은 날개부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뇌진자를 세상으로 보내 난세를 구할 수 있는 ‘광명의 검’을 찾게 한다.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League of Gods, 2016) scene 02

한편, 달기의 역생주술에 걸린 강태공은 점점 나이를 거꾸로 먹어가며 기억과 힘을 잃어만 가는데….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League of Gods, 2016) scene 03

「불이신탐」에 등장한 이연걸을 보고 설마 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이제 완전히 망가지기로 작정했나? 아무튼, 떡칠 화장이 왜 역겹고 천박한지를 이 영화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영화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League of Gods, 2016)」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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