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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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높은 성의 사내 | 투사는 역사의 산물?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review rating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나치 제국 시대의 뉴욕>

알다시피 이 드라마는 ‘소설가를 꿈꾼 철학자?’ 혹은, ‘철학자를 꿈꾼 소설가?’ 필립 K. 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나의 책 리뷰 제목 『만약 2차 세계대전이 추축군의 승리로 끝났다면?』에서 알 수 있듯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고, 그만큼 흥미로운 전쟁사의 결과를 뒤집은 가상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SF소설의 대가답게 평행현실, 평행우주 이론과 요즘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타임슬립이 양념처럼 적절하게 첨가되어 있다.

소재만 놓고 보면, 손바닥에서 올챙이가 뛰어놀 수 있을 정도로 땀을 흥건히 고이게 하지만, 정작 내용은 음모 • 첩보가 주를 이루며, 첫인상이자 첫 대면인 시즌 1은 마치 현대인의 슬리피슬립(sleepyslip)한 삶을 조롱하듯 굼벵이처럼 게으르게 전개된다. 하지만, 중도에 이탈하지 않고 남은 시청자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시즌 1 말미부턴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하니 ‘감상’이 아니라 ‘선잠’으로 일관하더라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자. 고진감래라 하지 않던가!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일본 제국 시대의 샌프란시스코>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합기도를 배울 정도로 일본 문화에 동화되어 가던 줄리아나>

천성이 속고 속이거나 경쟁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아니면 당최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질투 때문에 그런 건지 아무튼,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정치’ 장르를 싫어하고 정치에 역병처럼 따라붙는 ‘음모’나 ‘권모술수’를 역병처럼 멀리하는 나로서는 좀처럼 재미를 붙이기 어려운 드라마임에도 시즌 3 초반까지 봤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모로 대단한 드라마라는 말이다.

여주인공 줄리아나 역을 맡은 루퍼트 에반스(Rupert Evans)의 알쏭한 매력과 품위 있는 연기 (어쩌면 지나치게 우아함을 드러내는 것이 드라마 분위기와 어긋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믿을만한 연기력은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고풍스럽게 재현된 1960년대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와 각각 미국의 일본 점령지역(서부) 및 독일 점령지역(동부)을 담당하는 헌병대장과 (미국의 이완용이라 할 수 있는) 나치친위대장의 비중 있고 주목할만한 역할 역시 흥미롭다.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그녀는 ‘높은 성의 사내’에게 선택받는다, 왜?>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예술가에서 직공으로, 그리고 저항군으로 거듭나는 프랭크>

무엇보다 이 드라마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나라를 잃었건 말건 크게 개의치 않고 개인의 안녕과 생존에만 몰두하는 딱히 비난하기 어려운 한 개인의 보신주의가 (예를 들면 줄리아나의 애인 프랭크) 본의 아니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순식간에 무너지는, 그러면서 특별히 죄를 지은 것이 없는데도 경찰 앞에만 서면 괜히 기가 죽는 우리처럼 평범하고 소심했던 한 사람이 과격한 저항군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고 괴로운 과정을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이 다 숙연해질 정도로 (조금 지루했다는 점만 빼고는) 통찰력 있게 연출했다.

마치 드라마는 위대한 투사는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과 사회의 복잡한 조합의 산물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대의에 대한 숭고한 헌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대의적인 투쟁이 시작될 수도 있음을 관객의 심장에 칼을 꽂듯 주장하는 듯하다.

고로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는 음모, 첩보, 가상 역사물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수작이다.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도대체 이 영화가 무엇이길래 나치는 가혹하게 탄압하는 것일까?>
드라마 리뷰 |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 | 투사는 역사의 산물이다?
<미국인으로서 나치친위대장이 된 스미스, 미국의 이완용이랄까?>

원작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에서 다른 현실(즉, 2차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이 패망한 작금의 현실)의 존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영화(‘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이며 영화광으로 알려진 히틀러는 출처가 묘한 ‘메뚜기’ 시리즈를 열심히 수집하고 관람하면서 동시에 악랄한 친위대를 동원하여 금지한다. 왜? 점령당한 미국인들에게 약간이라도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메뚜기’ 영화가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처럼 순전히 허구라고 해도 점령당한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봄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약간의 가능성에서 희망을 품는다. 과거 노예제도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국주의의 가혹한 통치가 흑인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기인하는 희망, 때론 혁명의 불씨가 되었던 희망에 인류가 수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필설로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농민이나 노동자들에게 주입한 것도 어려운 사상이 아니라 그런 희망이었을 것이다.

의지박약하게도 시즌 3에서 중도하차하고 말았고, 그것은 전체적으론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한 편 한 편이 기다려질 만큼 임팩트 있는 재미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영화나 드라마를 기분 전환용으로 찾는 내겐 적절하지 않은 드라마였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잘 만든 드라마라는 생각엔 주저하지 않고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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