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계 | 숀 캐럴 | 자연은 처음부터 양자적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번개처럼 떠오른 영화
도서관 책장에 고른 치열처럼 가지런히 줄을 선 한 눈 가득 들어오는 책 중 이 책의 제목을 인식한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바로 내 블로그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이라는 영화다.
제임스 워드 바이러킷(James Ward Byrkit)이 감독한 이 영화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본다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남은 하나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도플갱어 괴담을 평행우주 이론에 접목한 미스터리 • 공포 • SF 영화다. ‘세계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따라 진화하는 양자 파동함수로 기술된다’라는 무슨 말인지 좀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다세계 이론을 배경으로 제작한 영화 중 이만큼 (이론을 직접 읽는 것에 비하면) 쉽고 재밌고 스릴감 있는 영화는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영화는 SF 마니아라면, 그리고 나처럼 잊을만하면 과학도서를 찾는 호기심 어린 독자라면 한 번은 꼭 봐야 할 영화다.
숀 캐럴(Sean Carroll)의 다세계(Many-Worlds) 이론에 의하면 나무의 가지처럼 분기되고 분기되는 다세계들은 서로 만날 수도 없고 서로 영향을 줄 수도 없고 서로 연락도 취할 수도 없다. 다세계를 믿는 것은 순전한 지적 재량이고, 그래서 다세계를 공상하는 것은 지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흥분되는 일이지만, 그런 제약이 있으므로 김빠지기도 한다. 만나기는커녕 서로 연락조차 취할 수 없는 세계라면, 그런 세계가 해변에 깔린 모래알처럼 제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우리와 무슨 상관이람? 아주 먼 동네로 전학 가는 절친과 헤어지기 싫은 철없는 아이처럼 마냥 토라지고 싶다.
영화는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다’라는 다세계 이론의 제약을 재치 있게 혜성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붕괴시킴으로써 ‘나’와 ‘나의 도플갱어’가 만나는 괴담을 완성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환상적이지 않으니, 공짜로 얻은 케이크가 알고 보니 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같은 가벼운 공허함과 일시적인 상실감으로 몸살이 살짝 날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은 이번 경우처럼 관련된 단어만 얼핏 봐도 기억의 심해 속에서 당장 수면 위로 팔딱 뛰어오를 정도로 인상적인 영화다. 그래서 그 어정쩡한 기쁨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다세계』를 덜컥 대출하고 말았다.
책 제목에 살짝 속았다?
아쉽게도 언젠가 그랬던 거처럼 이번에도 책 제목에 살짝 속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세계』라는 한국어판 제목과는 달리 원제는 ‘Something Deeply Hidden(깊이 숨겨진 무언가)’이고 부제 역시 한국어판과는 판이한 ‘Quantum Worlds and the Emergence of Spacetime(양자 세계와 시공간의 출현)’이다. 원제는 이렇게 솔직하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다세계’라는 공상과학적인 요소를 의도적으로 강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제를 그대로 책 제목으로 출판했다면, (부제가 없다면) 제목만 보고는 어떤 책인지 유추하는 일은 홈스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적절한 부제가 딸렸으니 망정이지 정말로 제목부터 사람을 잡는 책이다.
나처럼 다세계를 묘사하는, 그래서 SF 장르 같은 취향을 만족시키려고 이 책을 선택했다면 아주 큰 오산이다. 『다세계(Something Deeply Hidden)』는 ‘양자역학의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다세계 이론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었는가?’ 하는 양자역학 이론의 역사,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같은 비중을 가진 것으로 취급하고 근본적으로 취급하는 상대성 이론과는 달리 양자 얽힘에 의해 고정된 기하학적 형태를 가진 공간이 창발한다고 보는 양자 중력 이론 등등 프롤로그의 부제 ‘겁내지 말 것’이 날카롭게 은유하듯 충분히 겁낼만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양자역학의 철학적인 의의를 탐구하는 몇 안 되는 챕터들이 강의를 꾸벅꾸벅 졸면서 듣던 내게 휴식종처럼 반갑게 정도로 전반적으로 (나의 지적 역량엔) 벅찬 내용들로 가득하다.
군더더기 없이 순수한 이론적인 의의를 심도 있게 다루는 책이니만큼 ‘이 기회에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를 좀 더 다져볼까?’ 하는 기특한 의도에서 ‘한 번 더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현재 나의 지식과 정신 상태로는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을 읽는다고 해도 의도대로 될 것 같지는 않아 진심으로 두 번 읽기는 포기했다.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 번 더 읽어볼까?’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로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능 이론들로 가득한 것은 사실이다. 양자역학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있는 독자에게 추천해야 할 책이다.
다세계와 다중우주
다세계는 다중우주(multiverse)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우주론적인 다중우주는 일반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국소 조건들이 매우 다른 우주 공간 지역들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드라마 「익스팬스(The Expanse)」를 본 사람이나 류츠신의 『삼체 3부』를 읽은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중우주에선 기술과 능력이 된다면 서로 다른 우주 사이를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다세계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에서 벌어진 일처럼 평행세계를 붕괴시키는 아주 특별하고도 대단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다세계에서 여러 가지로 분기된 서로 다른 ‘나’들은 연락할 수도 없거니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길도 없다. 그저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은 처음부터 양자적이었고, 우주엔 오직 단 하나의 파동함수만이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논리는 세계가 우리가 보는 것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고 설명한다. 다세계 이론은 고전 물리학과 직관 물리학을 위반하는 수많은 양자역학의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과학자들의 사명은 사물들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세계 이론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최신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세상을 폭넓고 깊게, 그리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고전 물리학에 근거하는 직관적인 삶에 익숙해진 보통 사람들에겐 기괴하다 못해 허풍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어찌하냐? 이 우주는 태초부터 양자역학적이었다는 걸.
양자역학은 왜 평행우주에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고 주장할까? 약간의 뇌세포라도 활발하게 숨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적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약삭빠른 질문이다. 이 궁금증에 도전하고 싶다면, 『다세계』를 읽어보자. 그 궁금증이 속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마치면서...
졸음을 먹구름처럼 몰고 오는 책이 있다. 『다세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책, 한편으론 라이트노벨처럼 문장도 내용도 지나치게 유치한 책이 그렇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리뷰 쓰기도 어렵다. 당최 제대로 소화한 것이 없으니 배설할 것도 없다. 사정이 이러할 때 ‘그래도 뭔가를 기필코 쓰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관장제처럼 사용해 억지로나마 토해내듯 글을 쓰다 보면 오늘 리뷰처럼 책을 불구경하듯 넋 놓고 쳐다보는 듯한 잡설 중의 잡설이 되고 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자연이 양자적이라는 데 난들 어찌하냐? 파동함수의 다른 가지에 있는, 그래서 다른 세계에 있는 나의 다른 버전들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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