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5

,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 앤드루 호지스 |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책 표지
review rating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SF라는 장르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앨런 튜링(Alan Turing)’이라는 과학자는 몰라도 ‘튜링 테스트(Turing Test)’라는 말은 꽤 들어봤을 것이다. 「더 머쉰(The Machine)」, 「엑스 마키나(Ex Machina) 같은 인공 지능을 소재로 한 SF영화에서 인공 지능의 합격 여부를 결정짓는 테스트에 사용되는 테스트가 바로 이 ‘튜링 테스트’다.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사람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시험으로써 인공 지능이 세상에 선보이기 전에 의례 통과해야 하는 성년식 같은 것이다. 하지만, 튜링 테스트를 인공 지능의 지적 기량을 판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약간 빗나간 해석이다. 그것은 (튜링 테스트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튜링이 제안한 ‘성별 맞추기’ 게임에 대한 튜링의 설명에서 알 수 있다.

이 게임은 질문자가 작성된 답변만을 토대로 다른 방에 있는 두 사람 중 누가 남성이고 여성인지를 추측하는 것이다. 남성은 질문자를 속이려 하고, 여성은 질문자가 자기 말을 믿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모두 “제가 여자입니다. 저 사람 말은 듣지 마세요!” 같은 주장을 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중 하나를 기계로 대체했을 때 질문자가 이들을 구별할 수 없다면 공정하게 말해 기계가 생각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튜링의 주장이었고, 이 게임이 튜링 테스트로 발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튜링 테스트는 인공 지능의 ‘지능’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생각’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었던 셈이다.

지능은 지식, 생각, 감정, 인지, 학습, 언어, 마음, 느낌, 감각 등 사람의 뇌가 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총괄한 고차원적인 무언가이고, 이 중에서 튜링이 염두에 둔 것은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정도였지만, 이것이 어찌어찌하여 ‘기계도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로 비약한 이유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꼬박꼬박 증가하는 컴퓨터 성능으로 인해 인류가 컴퓨터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004년 런던의 레딩 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에서 실시한 연구에서 자신은 우크라이나의 13세 소년이라며 사람 심판관들을 속여 넘기는 일에 성공함으로써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최초의 컴퓨터가 이미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작금에 이르러서는 ChatGPT 같은 대화형 인공 지능 챗봇을 통해 인공 지능과 사람 간의 의미 있는 대화도 가능하다. 인공 지능이 논문 • 광고 문안을 작성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작사 작곡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처럼 여겨지는 것이 요즘이다.

당시엔 충격적인 신선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되었던, 그리고 처음에는 반농담처럼 시작되었던 튜링의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계는 지능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조금씩 조금씩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물론 이런 비약에 가까운 확장은 현재의 인공 지능이 ‘생각한다’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고, 내 생각엔 인공 지능이 글을 쓸 수 있다면, ‘생각한다’라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좋든 나쁘든 블로그에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의 색스빌 가든에 있는 앨런 튜링의 조각상
<영국 맨체스터의 색스빌 가든에 있는 앨런 튜링의 조각상(Paul Hermans,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신을 믿지 않는 괴짜 동성애자 과학자

아무튼, “기계가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기계는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모방 원리에 기초한 지능을 갖춘 기계에 관한 심오한 탐구와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범용 컴퓨터의 구상으로 컴퓨터 공학과 인공 지능 분야의 원대하고도 담대한 주춧돌을 쌓은 사람이 앨런 튜링이다. 그의 공로는 그의 성(姓) ‘튜링’이 ‘튜링 머신(Turing machine)’, ‘튜링 테스트’ 등 컴퓨터 분야에서 (아마도) 영원히 사용하게 될 보통명사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어느 정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으로 앨런 튜링의 삶이 다른 유명 과학자들처럼 순탄했으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무뚝뚝한 태도와 긴 침묵, 말을 더듬는 새된 목소리,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웃음소리,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이상한 습관, 퉁명스러움, ‘만화 속에 나오는 과학자’ 같은 외모 등등 성격적으로 괴짜였다는 점은 둘째치고 그가 동성애자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의식적으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은 동성애자를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까지 했던 당시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면, 그의 ‘자살’로 판정된 때 이른 죽음에 얽힌 비극의 전모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앨런은 지극히 평범하기를 원했고, 일상적인 것을 좋아했지만, 남자 방에 매력적인 남성 사진들이 걸려 있는 것만 봐도 기겁하는 사회에서 신을 믿지 않는 동성애자가 평범한 영국인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웠다. 특히 튜링처럼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모 아니면 도식으로 행동하고, 타협하는 기술이 거의 제로였던 사람은 더더욱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앤드루 호지스(Andrew Hodges)의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Alan Turing: The Enigma)』은 ‘과학자의 전기’ 외 다른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즉, 사회적 신분이 있고 수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동성애자의 지능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에 의해 꺾이고 파괴되어 가는지를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지능이 사회적 환경에 제한받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사회과학적 탐구로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왜 한국에선 어렸을 때 천재라고 인정받았던 인재들이 구글이나 텔레그램을 창조한 사람들처럼 큰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도 떠오른다.

수학자가 쓴 전기이고, 또 주인공이 수학자이다 보니 ‘수학’과 관련된 내용이 아주 풍부하고 세밀하게 다뤄진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이 책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숫자만 보면 수면제를 퍼먹은 듯 졸음에 겨워하는 나 같은 독자에겐 앨런 튜링이 ‘과학자로 살아왔던 삶’보다는 ‘지능의 유희를 즐기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던 한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무게 중심을 두고 읽는 것이 그나마 덜 지루하고 조금 더 흥미로울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숨은 공신, 앨런 튜링

튜링의 삶 중에서 가장 순조로웠고, (나처럼 숫자만 보면 질겁하는) 독자에게 달콤한 휴식처럼 흥미진진했던 시기는 뭐니 뭐니 해도 튜링이 블레츨리 파크에 있는 정부신호암호학교에서 일했던 시기일 것이다. 튜링은 2차세계대전 중 암호 해독자로 일하면서 독일군 암호 시스템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중심인물로 활약했는데, 이 시기를 집필한 부분은 암호 해독을 두고 벌이는 독일군과 연합군 측의 복잡하면서도 긴박한 두뇌 전쟁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암호 해독 관련한 내용은 대부분이 극비 취급을 받는지라 2차세계대전을 다룬 역사서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전쟁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득템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후줄근한 차림의 이상한 과학자를 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블레츨리에서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듯, 그 이후 2차세계대전의 실상을 대중에게 알리는데 헌신한 역사가 중 연합군의 승리를 블레츨리와 연관 지은 사람도 아직 보지 못했다. 아시아 ·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전세를 빠르게 역전하는 데 암호 해독이 큰 공이었듯(더불어 쇼와 육군이 암호를 경시한 덕분), 유럽 전장에서 연합군 승리에 보이지 않는 1등 공신 역시 암호 해독이었다.

그렇다고 대중이나 역사가의 무정함과 편협함에 튜링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추리소설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에 등장하는 천재 범죄자 마가타 시키 박사가 더 높은 차원에서 범죄를 즐긴 것처럼 암호분석 작업을 직업적 업무 이상의 차원에서 즐겼을 것이 분명한 튜링에겐 지능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 자체가 최고의 보상이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블레츨리에서 일했던 때가 그의 길지 않은 인생 중 그의 지능이 외부 압박이나 사회적 • 정치적 간섭 없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된 유일무이한 시기였을 것이다. 튜링은 소극적으로나마 전쟁에 반대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지능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가장 행복했던, 혹은 만족스러웠던 시기를 전쟁 덕분에 보낼 수 있었다니, 이 역시 운명의 아이러니한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프롬프트: 앨런 튜링, 튜링 테스트, 생각하는 기계, 인공지능, 인상주의

미스터리한 앨런 튜링의 죽음

류츠신(劉慈欣)의 SF소설 『삼체(三體) 1부』에서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절망적인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물리학자 양둥(楊冬)은 어렸을 때 수학 공식을 보고 아름다운 꽃을 보듯 ‘이 공식은 정말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숫자나 공식을 보는 눈이 남다른가 보다. 이들은 절도 있게 늘어선 공식을 보고 갑자기 뇌가 땅으로 꺼지는 듯한 현기증을 일으키거나 폭풍 같은 수면 욕구를 느끼는 대신 보통 사람으로선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우아함이나 아름다움에 푹 빠진다.

무신론자이자 동성애자였으며 괴짜에다가 마라톤을 즐겼던 앨런 튜링도 수학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는 추상적인 관계나 기호를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물건을 대하듯 매우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으로서 수학과 공학, 논리와 물리 사이의 경계를 극복하는 데 지능을 쏟아붓는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괴짜’라는 딱지 때문에 치른 역경은 그의 때 이른 죽음이 시사하듯 ‘누구나 살면서 이런저런 역경을 겪지 않는 사람이 있나?’라고 치부하기엔 부당하고도 비극적이었다. 동성애자라는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럽고 불쾌한 딱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의한 사회 스킬(Social skill) 중 창의적 사고를 제외한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능력, 효과적인 의사소통, 대인 관계 능력의 빈곤함은 튜링의 지능이 꽃을 피우려고 할 때마다 고엽제처럼 싹을 죽였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움에 극심하게 타들어 가다 보면 높은 지능도 별 도움이 안 되는가 보다. 오히려 높은 지능은 자존심을 강철처럼 굳건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다가 어느 순간 제풀에 뚝 꺾이면서 자신을 무너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짧은 견해는 튜링의 죽음이 자살이었음을 확신했을 때나 들어줄 만한 이야기다. 자살로 판정된 튜링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양둥의 죽음만큼이나 미스터리이다.

양둥은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바로 자살하지 않고, 새 직장을 얻고 결혼을 계획하는 등 누가 봐도 새출발하려는 시점에서 느닷없이 자살했다. 튜링도 동성애라는 중대한 외설 행위로 화학치료와 1년 보호관찰 처분을 판결받은 직후가 아닌 그로부터 2년이나 지난 후 어떤 조짐도 없이 갑작스럽게 자살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집에는 영화표를 포함해 새로 구매한 것들이 있었다. 그는 비록 부치지는 못했지만, 6월 24일 (튜링은 6월 10일에 사망) 왕립협회 행사에 참석한다는 서신을 작성했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컴퓨터 사용도 예약한 상태였다. 동성애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고, 벗어날 수도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낙인에 괴로워하고 문명이 발전해도 문드러질 줄 모르는 인습에 절규하다 죽었다고 생각하기엔 죽은 시기가 알쏭했고, 당시의 일상도 평범해 보였다. 혹시 매카시 방식의 빨갱이 색출 작업에 휩쓸리는 것이 두려웠을까? 혹은 다소 황당하게도 실수로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베어 먹고 죽은 것일까? 양둥이 물리학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절망하여 자살했다면, 튜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지능적 무력감에 절망하여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튜링은 오래전에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PC에서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고 그 소프트웨어로 이미지와 문서를 불러와 편집하고 저장하고 이 모든 것이 2진수로 이루어지며 주기억장치에 저장되어 CPU에 의해 논리적으로 처리되고 최종 결과물은 보조기억장치에 저장된다는 사실은 튜링 기계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컴퓨터 같은 장치를 사용하는 한 튜링에게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비록 보잘 것 없지만 광고 수익(Ad revenue)은 블로거의 콘텐츠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강장제이자 때론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즐거움입니다

Share:

0 comments:

댓글 쓰기

댓글은 검토 후 게재됩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정독하신 후 신중히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