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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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이 저택의 유령 | 감정의 기억 속에 갇힌 불행한 영혼들

Drama review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SP1 | Unfortunate souls trapped in the memory of em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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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이 저택의 유령(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 감정의 기억 속에 갇힌 불행한 영혼들

Drama review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SP1 | Unfortunate souls trapped in the memory of emotions
<이야기는 이처럼 훈훈한 분위기에서 시작하지만...>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영국의 어느 한 시골인 ‘블라이(Bly)’에 있는 중후한 고택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애처로운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의 후속작이다.

피로 술을 빚고 시체를 안주로 삼는 애들 장난 같은 왁자지껄한 유령 이야기가 아니라 전작처럼, 아니 전작 이상으로 태산을 얹어놓은 듯 묵직하고 마리아나 해구처럼 깊이가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Drama review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SP1 | Unfortunate souls trapped in the memory of emotions
<블라이 저택>

또한, 증상을 먼저 묘사하고 막판에 가서야 그 원인을 설명하는 플롯이라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인정사정없는 혈투 같은 가볍고 자극적인 볼거리는 찾아온 시청자에게 초 • 중반부는 선잠을 유도하는 수면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고로 때에 따라선 50분 정도되는 한 편의 상영 시간이 끝날 때 ─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 비몽사몽 상태에서 단박에 깨어나는 (수업 시간 내내 졸다가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잠이 확 달아났던 것 같은) 기적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체는 참으로 신비롭다!

Drama review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SP1 | Unfortunate souls trapped in the memory of emotions
<세월에 녹아 버린 얼굴과 기억>

하지만, 에피소드 7편 이후에서야 펼쳐지는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지금까지 숱하게 치렀던 졸음과의 싸움이 결코 헛된 저항이 아니었다는 뿌듯함뿐만 아니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감동,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 음각으로 새겨질 듯한 비감하고 처량하고 심금을 그득하게 울리는 여운을 남겨준다.

그렇다 해도 마지막 만찬이 아무리 진수성찬이었다고 해도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도 길고 지루했던 것은 사실이다. 등장인물들의 그 고색하고 비루먹을 사연들이 작당이라도 한 듯 구구절절 늘어서서 사이좋게 갈마들며 눈꺼풀을 짓밟는 지루함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심심풀이 놀잇거리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Drama review | The Haunting of Bly Manor (2020) SP1 | Unfortunate souls trapped in the memory of emotions
<두 아이의 당돌한 연기도 볼만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슬픔 때문일까? 아이들처럼 굴다가도 다중인격자처럼 한순간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당돌하고 깜찍하면서도 섬뜩한 뭔가를 지닌 블라이 저택의 두 아이, 밤마다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 자국처럼 블라이 저택에 진흙 발자국을 남기는 정체불명의 존재, 신실하고 선량하지만 따분한 가정부,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는 성실한 요리사, 불행한 성장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식물에 의지하게 된 거친 정원사, 거울에 비친 죽은 약혼자의 환영에 시달리는 새 가정교사, 형에게 절교당하고 나서 조카들이 사는 블라이 저택에 발길을 끊은 동생.

평범하지 않은 상처와 평범할 것 같은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블라이 저택’이라는 접점에서 일상을 공유해가는 사연이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나름 볼만할 수도 있지만, 부산스럽고 으스스한 유령 이야기를 기대한 나 같은 사람들에겐 진실에 대한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중후반까진 그들 주변을 바람처럼 에두르는 기묘한 이야기는 공포보다는 혼돈과 지루함을 준다. 한마디로 어렵게 풀어나가는 드라마? 또는, 이럴 때만큼은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상당한 두뇌 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연무 같은 혼란을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게 해소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 때문에 고진감래라는 격언을 썩 먹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드라마다.

끝으로 보통은 현생에서 풀지 못한 골수에 사무치는 원한이 죽은 자를 이승으로 돌아오게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전작처럼 유령에 대한 통념을 다시 세운다. 근성과 집념이 죽은 자를 이승에 붙들어 놓을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만의 소우주를 창조해 그 안에서 죽은 사람을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기억 속에 가둬 놓는다고. 그래서 블랙홀처럼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은 유수처럼 흐르는 세월에 의해 기억과 얼굴이 마모되다가 결국 자신이 누군지 조차 잊은 채 대상과 목적을 상실한 아스라한 감정만 남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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