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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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하우스의 유령 |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The-Haunting-of-Hill-House-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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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 |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

힐 하우스의 목석 위에는 한결같이 정적이 깔려 있으며
그곳에서 걷는 게 누구든 그들은 함께 걷는다

유령 하면 뭐가 떠오를까? 원한, 복수, 죽음, 공포, 깊은 상처, 오싹함, 악마, 저주 등 어째 기분 나쁜 잡탕들만 떠오른다. 정말로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유령과 마주친다면 바지에 오줌을 싸는 추태까지는 부리지 않더라도 오금을 펴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기는 할 것이다. 왜? 아마도 그것은 유령이라는 불확실하고 불명확하고 불안정한 존재에게 한순간 엮이게 든 자신의 예측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유령이 불행을 안겨줄지, 죽음을 선고할지, 아니면 평생에 걸쳐 지속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저주를 내릴지 두렵다. 그냥 지나쳐갔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아는 유령이란 존재는 마주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낸 유령은 그저 사악하고 사악하기만 한 존재다.

혹시라도 유령에게 해코지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혹시라도 유령과 마주칠까 하는 두려움은 흐릿하고 모호했던 유령을 사람처럼 육체가 있고 삶이 있는 현실성 있는 캐릭터로 재생산한다. 그래서 유령은 사람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하는가 보다. 그래서 유령은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이 문득문득 현실 속에 투영된 착시현상일 뿐이라고도 하는가 보다.

하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이런 통론을 거부한다. 드라마는 유령은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애타게 보고 싶은 사람이 유령이라고 말한다. 두려움의 대상과 보고 싶은 사람, 이것은 완전히 정반대다.

The-Haunting-of-Hill-House-2018

죽도록 보고 싶은 사람을, 혹은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난다는 것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아니면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위중한 일인지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기존의 대중매체가 우리에게 착실히 심어 놓은 유령에 관한 좋지 않은 선입관도 있겠지만,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만나는 것이 당사자에게 가져다줄 심리적 영향력을 제삼자로서는 가늠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고 싶은 사람을 유령으로라도 봐서 행복해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망상이라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까? 현실과 꿈과 환상의 경계가 그 사람이 믿고 있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분주히 오가는 착각 속에서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을 때, 본인이 행복하다면 망상이든 꿈이든 상관없지 않을까?

The-Haunting-of-Hill-House-2018

아무튼, 힐 하우스의 유령(The Haunting of Hill House, 2018)은 지금까지 보아온 유령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각도로, 다른 시선으로, 다른 방법으로 유령의 존재론적인 방법론과 그 방법론이 한 가족의 운명에 미치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얽히고설킨 실타래 풀듯 복잡하게 풀어나간다. 유령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를 떠나서, 유령의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도 유령은 사람에게, 그리고 한 가족에게 때때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드라마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유전적 정신질환을 단체로 앓는 한 가족의 비극과 그 비극으로 말미암은 가족 관계의 끝없는 추락과 갈등 속에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뿐이라는 매우 진부한 메시지를 되새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그냥 흘려들을 법한 유령 이야기가 한 가족의 애증 • 애착 관계를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깊이 있고 심오한 진행이 신선하기는 하지만, 뭔가 대단히 자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을 기대한 시청자에겐 소화제나 두통약을 찾게 할 정도로 꽤 철학적이다.

The-Haunting-of-Hill-House-2018

드라마에 나오는 힐 하우스(Hill House)는 동양으로 따지면 흉가, 혹은 귀신 들린 집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설령 유령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힐 하우스 같은 대저택이라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내가 이담에 죽어 유령이 된다면, 힐 하우스 정도라면 기꺼이 들러붙을 의향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한국의 도시는 유난히 괴담이 싹을 트지 못하는데, 그것은 귀취(鬼趣)가 깃들만한 고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운 격조 있는 집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누가 아파트 같은 곳에 들러붙어 귀신 노릇 하고 싶겠는가? 그럴 바엔 차라리 지옥으로 떨어지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힐 하우스(Hill House) 같은 집 하나 정도는 있을법하고, 힐 하우스 같은 집에서 유령과의 불가항력적인 인연으로 전전긍긍하는 가족들도 있을법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것을 있을법하지 않다(설령 제작한다고 해도 과연 몇 사람이나 보려나?) 연기, 스토리텔링, 연출,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만족시키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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