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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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 최고가 아니면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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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 | 최고가 아니면 쓰레기!

“그의 인생과 성격에는 극도로 지저분한 부분도 있어요. 그게 진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들을 눈가림하려 해서는 안 돼요. 스티브는 조작이나 왜곡에 능하긴 하지만 놀라운 이야기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들을 다 있는 그대로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p11)

대비되는 두 개의 전기

한국어로 번역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전기는 두 책이 있다. 하나는 오늘 리뷰를 쓰는 책이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그해에 출판된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스티브 잡스(Steve Jobs)』, 다른 하나는 브렌트 슐렌더(Brent Schlender), 릭 테트젤리(Rick Tetzeli)가 공저하고 비교적 최근인 2016년에 나온 『비커밍 스티브 잡스(Becoming Steve Jobs)』다. 사후 5년 사이에 두 권의 전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 살아생전이나 사후에나 ─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무척이나 두툼한 두께의 책으로 전기가 출판되었음에도 5년 후 또 다른 전기가 나왔다는 점은 첫 번째 전기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 스티브 잡스가 어딘가에서 벌떡 일어나 ‘쓰레기’라고 고함치며 태클을 걸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면 그를 제외하고 ─ 유가족이나 애플의 처지에서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었나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두 책의 대비되는 선전 문구가 이러한 추측에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이작슨 책의 광고 문구는 ‘스티브 잡스의 육성이 담긴 유일한 공식 전기’라고 선전하고 있으며, 슐렌더와 테트젤리의 책은 ‘스티브 잡스의 가족과 애플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자서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사실 아이작슨의 전기는 2004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까지 이어진 잡스의 끈질긴 요청 끝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을 잡스의 ‘공식 전기’라고 인정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광고 문구 속에 버젓이 ‘공식 전기’란 말을 쓸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이작슨의 책에 묘사된 잡스의 이미지가 잡스를 곁에서 지켜보아 왔던 가족이나 동료들에게는 영 탐탁지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그 반대의 목소리, 혹은 아이작슨의 책에 묘사된 잡스와는 뭔가 다른 잡스의 이미지(유가족이나 동료들이 보기엔 잡스의 진짜 모습에 더 가까운)를 담은 것이 『비커밍 스티브 잡스』라고 볼 수 있다.

고로 아이작슨이 쓴 전기에는 잡스의 부탁으로, 그리고 작가와 잡스의 대화를 토대로 지어진 자서전에 가까운 전기라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고, 『비커밍 스티브 잡스』에는 스티브 잡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간직된 잡스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추측하에, 먼저 출판된, 그리고 잡스의 직접적인 요청으로 완성된 아이작슨의 책을 먼저 선택했다.

우연히 잡스의 전기를 찾게 된 이유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가까이서 구경하는 일조차 없었던 내가, 그리고 지금까지 애플 제품의 폐쇄성을 심술궂은 노인네의 똥고집으로 넘겨짚어 왔던 내가, 애플 제품의 혁신성이나 창조성을 거론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에 겨운 일이자 재미도 없는 일이다. 몇 자 적어보려고 손가락과 머리를 쥐어짜도 한 마디조차 끄집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애플 제품에 대한 지식 역시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한 10여 년 전쯤에 AMD 샘프론 시스템에 해킨토시를 잠깐 사용해 본 기억이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진 스티브 잡스가 죽은 줄도 몰랐다!

그렇다면,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적도 없고, 애플의 폐쇄성을 탐탁지 않게 여겨 왔던 내가 왜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그 직접적인 원인은 시답지 않게도 스위즈(石毓智)의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이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에서 스위즈는 중국인에게 특히 부족한 창의성, 창조력을 거론하면서 툭하면 그 비교 대상으로 스티브 잡스를 왕왕 거론하는데, 그런 식으로 스위즈의 책 속에서 스티브 잡스를 엄청 대단한 인물인 양 언급하는 것을 계속 읽다 보니 주책없는 호기심이 여지없이 발동해버렸다. 그렇게 해서 앞에서 거론한 스티브 잡스의 전기 두 책을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 것이다. 참 단순한 이유이지만, 이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 호기심을 이어주고 지속시켜 주는 지적인 맛과 그 지적인 맛이 간혹 일깨워주는 지적인 유쾌함 때문에 난 책을 읽는다.

인간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어떤 사람일까?

50살이나 먹은 남자가 마트에서 스무디를 파는 할머니에게 스무디가 형편없다며 계속 잔소리를 퍼붓는다면, 당신은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정의감이 넘치면서도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라면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전에 바람처럼 달려가 할머니 편을 들면서 용감하게 그 남자와 맞설 수도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진상부리는’ 재수 없는 손님이라고 ‘퉤’하고 침을 뱉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진상부리는’ 사람 중 하나가 스티브 잡스다. 물론 이 한 편의 일화로 잡스의 인품을 무엇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일화는 잡스의 괴팍한 성질이 한번 발동되면 상대를 매우 잔인하게 몰아붙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튼,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며 ‘노인네가 일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냐’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동정한다. 애초에 할머니를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아무리 스무디가 맛이 없을지라도 그렇게 함부로 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항상 ‘최고의 것’ 아니면 ‘쓰레기’라는 엄격한 이분법적 사고로 일관됐던 잡스에겐 당연히 어느 마트에서나 팔 법한 고만고만한 스무디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평소대로 솔직하게 ─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생각을 배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필터가 자신에게는 아예 없다고 잡스가 인정한 것처럼 ─ 형편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형편없는 제품, 혹은 형편없는 사람을 그 당사자 앞에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형편없다고, 혹은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로 잡스다. 가식과 체면치레에 신경 쓰느냐 솔직할 기회를 놓쳐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오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면 잡스의 무정할 정도로 솔직한 성정은 눈여겨볼 만하다.

형편없는 스무디 이야기에 한때 동거했던 여자가 낳은 딸을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잡아뗀 이야기, 그리고 그 딸이 어느덧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할 때, 단지 초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참석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보태면 잡스의 잔인하고 매몰찬 성품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이나마 짐작이 간다. 아이작슨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옹졸하고 무례하고 자기중심이고 잔인하고 심술궂고 버르장머리 없는 잡스의 괴팍한 성격에 치를 떠는 몇몇 순간이 있다. 정도가 심할 때는 역겹기도 하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지만, 이런 고약한 인간의 도움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형편없는 것일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아무튼, 세계적인 명성과 거대한 부를 거머쥔, 그리고 끝내주게 잘 나가는 IT 기업인 애플의 CEO가 고작 마트에서 파는 스무디 품질 때문에 마치 한국의 지긋지긋한 진상 손님처럼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모습은 인간적으로 참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 책에는 잡스의 괴팍한 성격에 곤혹스러워하는 아이작슨의 심정과 그래서 잡스의 모난 성격을 조금이라도 둥글게 빚어 보이려는 노력의 흔적이 간혹 엿보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야 하는 전기인 이상 더 이상의 덧칠이나 각색은 작가 자신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워낙 잡스라는 인물이 더없이 괴팍하고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심정을 소유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보니 그런 잡스의 성격을 미화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보다 반발이 더 거셀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극단적인 성격을 하릴없이 바라보면 자기애성 성격장애, 조울증, 사이코패스 등등 각종 정신병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나마 이런 잡스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례하고 거칠고 잔인하게 보이는 잡스의 언동에는 결코 악의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는 것, 그래서 남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고 그것을 즐겁게 지켜보는 심술궂은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잡스의 처지에서는 순진한 소년처럼 자신의 심정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말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동료들이 있었기에 그들과 함께 잡스는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었으리라.

잡스의 재능은 분명 비범하지만, 다른 위인들도 그러했던 것처럼 그 역시 모든 영역에서 비범할 수는 없다.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이 한 말처럼 잡스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거나 하는 사회적 배려는 없다. 그 점은 아이작슨 역시 숨기지 않는다. 대신 잡스는 인류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일이나 인류의 진보, 인간의 손에 훌륭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에 깊이 관심을 쏟았다. 그것이 잡스가 남기고 싶어 한 유산이었고, 우리가 잡스의 전기를 읽어야 하는 대단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현실 왜곡장’, 매력? 아니면 비난?

어찌 되었든 그는 ‘미학과 기술’,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서 한발도 양보하지 않은 채 자신의 우아하고 놀라운 창의성에 과학기술, 예술적 감각, 그리고 완벽주의를 접목해 엄청난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그의 수많은 인간적 결점에도 그가 그토록 놀라운 업적으로 세상을 혁신시키며 인류를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완벽함에 대한 지고한 열정과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맹렬한 추진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천려일득(千慮一得)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천 번을 생각하면 한 번은 쓸모가 있다는 말이다. 고로 이 세상에는 무수한 아이디어가 무수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하늘 저 멀리 반짝이는 별빛처럼 점멸하고 있으며, 그중에는 분명 애플 제품 같은 혁신적인 제품에 깊이 새겨진 창의성에 버금가는 아이디어들도 번득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살다 보면 누구나 괜찮은 아이디어 한두 개쯤은 생각해 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일인과 동시에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잡스가 애플에서 비난과 욕을 먹어가면서, 즉 온갖 갑질과 진상을 부리면서도 그의 혁신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창의성으로 응축된 아이디어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고, 그러다 어느덧 손으로 느끼고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제품이자 가전제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격이 떨어지고 예술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실용적인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이룬 제품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하고 순결한 광채를 뽐내며 세상에 막 태어나는, 드라마처럼 가슴 뭉클한 장면은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나로서도 정말 잊지 못할 감격을 안겨주었다. 그런 감개에 젖어 들 땐 나모 모르게 (자존심 상하게도) 평소 애플에 가졌던 못마땅한 점들은 몽땅 잊어버리고 그저 아직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나의 한심한 인생에 한탄을 내뿜을 따름이다.

때론 독재자처럼 밀어붙이고, 때론 사디스트처럼 직원들을 못 살게 닦달하는 잡스였지만, 세상을 뒤집어 엎을만한, 그렇게 우주 전체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킬만한, 그래서 신나는 일이 되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개구쟁이 같은 열망과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적 열정에 블랙홀처럼 빨려들 수밖에 없었던 잡스의 동료들은 그것이야말로 잡스의 매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히틀러 같은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로 상대가 정신을 못 차리게 온갖 거짓과 진실, 압박과 회유, 비난과 칭찬으로 상대나 팀원을 요리하면서 순간의 현실을 자기 뜻대로 왜곡하는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고 하는 잡스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현실 왜곡장’은 잡스를 괴팍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자 때론 사기꾼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오로지 한 가지 일에 무섭도록 집중하도록 만드는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낳기도 했다.

그 집중력에 소비자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통제하려고까지 드는 잡스의 ‘빅브라더’ 같은 성향이 강력하게 결합하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엔드투엔드 방식으로 통합된 간단하면서도 엄청난 제품을 완성했다.

Steve Jobs by Walter Isaacson
<matt buchanan / CC BY>

최고가 아니면 쓰레기!

사실 아이디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혹은 책을 읽는 도중에, 혹은 꿈꾸는 것처럼 멍하게 딴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등 (잡스는 회의 중에 파워포인트를 펼치는 것은 얼간이 같은 짓이라며 대화를 강조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어느 순간 반짝하고 떠오를 때가 많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머리를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쥐어 짜낸다고 해서 기발한 뭔가가 쉽게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잡스의 예술가적인 직관력은 그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앞서 잠깐 언급한 『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에서 스위즈(石毓智)는 중국인은 직관적 사고력이 좋아 문학, 역사, 철학 방면 분야는 나름 발전할 수 있었지만, 번뜩이는 생각이나 제품이 적지 않았음에도 추상적 • 논리적인 과학 체계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까닭에 현대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는데, 이와는 달리 잡스의 성공에는 직관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잡스의 혁신 철학은 추상적인 면에서도 월등했다. 하지만, 애플 Ⅲ에 순전히 미적인 이유와 자신이 소음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냉각팬을 달지 않아 토스터로 만든 것이나 넥스트의 참담한 실패 사례를 보면 잡스의 직관력이 언제나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잡스의 창의적인 고집대로 일을 밀어붙여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넥스트의 사례처럼 실패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그 자신이 누군가 발명해 놓은 제품들로 이로움을 만끽했던 것처럼 자신도 세상에 이로운 유산을 남기고 싶다는 고상한 동기와 그것을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에 거듭된 실패와 추락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자신의 아이디어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색깔로 세상을 밝히는 빛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에 중국인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뒤진 것은 번뜩이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동기와 열정과 열망이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부족했던 것이리라.

흥미롭게도 잡스의 괴팍한 성벽 중에 잡스가 혁신을 이뤄낼 수 있게 공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놀랍게도 이분법적 사고관이라 할 수 있다. 일명 흑백논리다. 간단하게 말해 잡스에게 세상 모든 것은 ‘최고가 아니면 쓰레기’로 아주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다. 사람도, 물건도, 음식도, 아이디어도 그런 기준으로 평가했다. 그런 연유로 마트에서 할머니가 팔던 스무디는 당연히 ‘쓰레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최고’와 ‘쓰레기’로 분류하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오직 애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시 말해 예술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선 채로 완벽을 추구하는 우아한 제품을 잉태하는데 톡톡히 한몫해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만약 어떤 제품을 출시하려는데, 예정된 기능을 모두 넣고 예정된 가격으로 제날짜에 맞춰 출시하기가 어렵다고 할 때, 보통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라고 부르는 타협을 한다. 즉 몇 가지 기능을 제거해 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출시 날짜와 적정 가격에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잡스의 철칙은 ‘타협하지 마라’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아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까지 관여했으며 작은 나사에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지나칠 땐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누군가 가져오는 것마다 끊임없이 ‘쓰레기’라고 질타했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공방 같았지만, 완벽한 제품을 세상에 내놓겠다는 잡스의 열망에 공감할 수 있었던 애플 직원들은 결국에는 견뎌냈고(당연히 견디지 못한 직원들은 짐을 싸고 떠났다), 잡스의 울타리 안에서 잡스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그리고 잡스의 철칙과 철학, 열정까지 전수 받으며 온 힘을 다한 끝에 그들은 최고의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것

잡스가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재밌게도 사람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집착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나 판단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재밌는 것은 과학과 기술로 먹고사는 업계에 몸담았던 잡스의 삶도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적절한 식단과 박하 카스티야 비누만 있으면 땀도 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믿었던 잡스는 쓰레기 주위를 윙윙거리는 파리처럼 자신의 주변을 감싸도 도는 고약한 냄새에 주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를 정도로, 어떤 기업인은 잡스가 씻고 오기 전엔 만나지 않겠다고 모욕할 정도로 목욕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것처럼 세계의 규칙은 개의치 않고 자기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였다. 처음으로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수술과 화학요법을 거부하고 민간 치료에만 의존했는데, 그러한 민간 치료 중에는 놀랍게도 심령술도 있었다. 잡스는 의사들이 자신의 몸을 열어보는 것이 싫었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보통 사람이 통상적으로 외과수술을 겁내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지나친 통제 욕구에서 기인한 복잡한 심리가 적용된 일종의 거부감은 아니었을까? 의사들은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때 바로 수술을 받았다면 암의 전이도 막고 잡스도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히피, 반문화, 반항아, 밥 딜런, LSD, 선불교와 명상, 금식과 극단적 채식주의, 맨발 등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그의 기벽과 괴팍하면서도 독특한 사고방식을 말해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삶과 평범하지 않은 사고방식이 잡스를 평범하지 않은 길로 이끌었던 것일까?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잡스의 성공과 실패는 스파크처럼 번쩍 일어난 직감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무모해 보일 정도로 저돌적인 추진력이 섣부른 도전으로 이어져 실패를 불러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얻은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한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 국가가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흔아홉 번의 실패 후라도 단 한 번의 혁신이 먹혀들어 간다면 그 모든 실패를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점에서 우리, 그리고 우리 사회는 좀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이것이 네이버가 구글이 될 수 없었던 이유다!).

당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혁신적인 분야에서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은 우리와 뭐가 다를까. 물론 그들은 머리도 좋고 (흥미롭게도 그들의 부모들은 박사,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지적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분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미래를 내 손으로 창조하고 싶은 열망, 그리고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추진력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차이를 보이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그 사람조차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준이야말로 세상을 뒤집어엎을 만한 뭔가를 창조하는 사람과 그것을 그저 사용하고 소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구분 짓는 것은 아닐까? 그 기준이 일반적인 상식과 일맥상통한다면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받을 수는 있을망정 혁신가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을 남들과 다르게 보지 않는 이상 그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하거나 창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세상을 상식적인 수준에서밖에 보지 못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그래서 현실이 만족스럽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뒤집어엎고 뛰어넘을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더라도 무슨 용기로, 무슨 열정으로 실행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진정한 혁신은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과감한 창의성과 그것을 현실화하는 기지와 용기가 발휘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혁신가는 반항아이자 혁명가이자 이단아자 도전자이다. 그래서 이 방면에는 성공한 사람이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어느 사회든 반항아로, 혹은 혁명가로, 혹은 이단아로 사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거니와 문화에 따라서는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도전이 매번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잡스가 중국에서, 혹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툭하면 능력이나 업무와는 상관없는 개인적이거나 도덕적인 결점까지 시시콜콜하게 들춰내어 인신공격을 가하는 한국과 중국의 문화로 볼 때, 마트에서 일하는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결혼도 하지 않고 낳은 딸을 인정하지 않는 잡스를 몰인정하고 파렴치한 자로 낙인찍은 나머지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박탈하지는 않았을까?

아이작슨의 책을 읽으며 내내 부러웠던 점은 잡스가 엄청난 인간적 결점과 기벽을 안고 있었음에도 잡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허용했던 미국 사회의 관용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도덕적 인간적 결점이 기업 경영에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또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능력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조조도 사소한 결점 때문에 인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그렇게 변명한다고 해도, 설령 능력주의가 대세라고 해도 인간적으로 망나니 같은 모습을 자주 보인 잡스가 크고 작은 불똥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철학을 완성해 가는, 마치 고집 센 수도자가 고행을 쌓아가는 것 같은 모습은 인재를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인재가 가진 인간적 결점과는 별개로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받아줄 줄 아는 사회의 포용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제갈량처럼 능력과 성품을 고루 갖춘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그런 사람이 혁신적인 일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점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잡스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거기에도 이분법적 사고가 작용했을까? 그렇다면 잡스의 눈에는 우리가 살고 그가 살고 그의 가족과 동료가 사는 이 세상이 ‘최고’로 멋지게 보였을까? 아니면 ‘쓰레기’처럼 최악으로 보였을까? 애플이라는 회사가 건재하고, 또한 그 회사가 생산한 최고의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잡스가 세상을 떠날 무렵엔 이 세상이 ‘최고’로 멋지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편, 『비커밍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는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까? 스티브 잡스,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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