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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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스티브 잡스 | 성공 신화가 아닌 한 사람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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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스티브 잡스 | 성공 신화가 아닌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

게이츠는 잡스의 경영방식이 왜 표준이 되기에는 그 적용에 한계가 있는 독특한 사례인지 설명했다. “어쩌면 당신 책은 ‘모방하지 말아야 할 비법(Don’t Try This at Home)’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게이츠가 농담조로 한 말이다. “결국, 스티브처럼 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개자식’ 측면을 마스터하는 셈이에요. 다만 ‘천재’ 측면은 놓치고 있다는 게 문제지요.”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방식으로 회사를 경영할 때의 한 가지 단점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저지와 제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조직이 되기에 십상이죠.” (p589)

죽음이 불러오는 관용

조금이라도 인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은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헐뜯거나 비방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앙갚음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죽은 사람의 결점을 들춰내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림칙하다. ‘좋은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 죽은 사람의 단점과 결점을 감싸주기는커녕 그것을 굳이 들추어내는 자신이 옹졸하고 비겁해 보인다. 설령 죽은 사람이 생전에 큰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죽은 사람의 잘못을 산 사람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너그럽지 못하고 관용이 부족한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 같아 추하다. 죽은 사람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일지라도 그 대상이 이미 죽었음에도 죽은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것은 스스로 소인배임을 만천 한에 알리는 것과 다름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 사람은 죽은 사람의 잘못이나 결점은 보통은 육신과 함께 땅속에 묻어두기를 원하고, 대신 죽은 사람과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좋은 점만, 혹은 죽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비난함으로써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꽤 남은 산 사람의 명예나 입이 더럽혀지는 것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사람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히틀러 같은 인류의 적은 예외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어느 정도는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특히 죽은 사람과 함께 많은 일을 하면서 좋은 감정 나쁜 감정 다 맛본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한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마련이고, 죽은 사람이 유명인이라면 그런 심정은 더욱 깊어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쁜 감정보다는 좋은 감정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워야 추억이라 말할 만하며, 그러하기에 죽은 사람과 핏발을 세워가며 논쟁했던 일이나, 서로 욕을 주고받으며 격렬하게 말싸움을 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미화된다. 죽음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고, 죽음은 공공연하게 동정과 관용을 불러온다.

오해에 대한 해명인가? 아니면 감상적인 미화인가?

내가 굳이 이런 졸렬한 소견을 밝힌 이유는 브렌트 슐렌더(Brent Schlender), 릭 테트젤리(Rick Tetzeli)가 『비커밍 스티브 잡스(Becoming Steve Jobs)』를 공저하면서 참고한 자료 중 상당 부분이 스티브 잡스 사후에 진행된 인터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 그것도 잡스와 함께 성공의 샴페인을 함께 터트리고 일부는 실패의 쓴잔을 함께 마신, 그래서 그들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평가내리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잡스와 죽이 잘 맞았던 사람들이고, 몇몇은 잡스에게 재능을 인정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잡스와 함께 창의적인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만약 잡스를 얼간이라고, 개자식이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자식이 죽은 부모를 비난하는 것처럼 께름칙한 일이다. 설령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그 대상이 일부에서는 영웅처럼 떠받들어지는 대단한 인물이라면 웬만한 용기와 각오 없이는 어렵다. 한편으로 그들은 잡스와 함께, 혹은 잡스 밑에서 세상이 놀랄 일을 해낸 사람들이고, 덕분에 명성과 부도 거머쥔 사람들이다. 그 자부심은 비할 데 없으며, 그 자부심은 잡스에 대한 추억과 기억에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영향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브렌트 슐렌더가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듯, 『비커밍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를 ‘반은 천재, 반은 얼간이로 살다간’ 인물로 각인시켰다고 여겨지는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이 쓴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든 책이다. 고로 독자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을 당부시키고자 변변치 않은 변론을 펼쳐보았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아이작슨의 책보다 슐렌더의 책이 잡스를 신격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세상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처럼 띄워주는 눈꼴 시린 면이 더 많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 모든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만약 이 두 책을 모두 읽어볼 요량이라면 아이작슨과 슐렌더의 책을 모두 읽어본 나로서는 아이작슨의 공식 전기를 먼저 읽고 슐렌더의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무래도 잡스가 살아생전에 집필을 부탁한 아이작슨의 공식 전기가 잡스에 대한 미화와 감상적인 추억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다.

성공 신화가 아닌 한 인간의 성장 이야기

공식 전기(아이작슨)에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는 진짜 잡스가 아니라는 기치 아래 쓰인 『비커밍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했던 동료들이 기억하는 잡스를 최대한 살리려는 노력의 하나이자, 한편으로는 공식 전기의 등장하는 강박적인 통제 욕구를 지닌 독재자 같은 잡스가 아니라 협력과 상호소통을 중시하는 지휘자로서 잡스를 기억하려는 시도다. 비록 잡스가 혈기왕성했던 청년 시절, 그리고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개자식’ 같은 면모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고, 그런 개인적 성품의 결점을 그대로 이어갔던 넥스트(NeXT)에서의 실패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인간적 결점을 집요하게 들춰내는 것만으로는 훗날 침몰해가는 애플을 위기에서 건져 올릴 뿐만 아니라 이제 막 기사회생한 애플을 재조직하고 조련해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이끌게 될 잡스의 놀랍고도 성공적인, 누군가는 ‘신화’라고도 칭송하는 그런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다. ‘개자식’처럼 굴었던 청년 시절의 잡스라면 당연히 천지가 개벽할 그런 일을 일궈내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는 기어이 해냈다. 그것은 잡스가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얼간이가 아니라 실패의 교훈을 깊이 새길 줄 아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애플에서 자신을 쫓아낸 사람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집념이 다소 엿보이는 회사였던 넥스트의 실패를 통해서, 그리고 심드렁하게 인수한 픽사에서 자신의 ‘현실 왜곡장’을 간단히 물리치고 창의적 사고를 최상으로 운영하는 자신들만의 문화로 똘똘 뭉친 픽사 팀원들을 경험하면서 잡스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슐렌더는 그런 교훈이 없었다면 훗날 애플에서 펼쳐진 위대한 2막도 없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슐렌더는 잡스가 넥스트를 직접 경영하면서 실패를 맛보고, 픽사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로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렇지만 현실에 큰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확실하게 변화해 나갔고, 그럼으로써 위대한 기업가의 자질을 갖출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잡스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위한 창의적인 도구를 생산한다는 대의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열정은 그대로 간직한 채, 좀 더 신중해졌고, 기꺼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급진적인 방법이 아니라 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며, 예전처럼 팀원들의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조화와 화합을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쉽게 말해 잡스는 고단한 여정 속에서 엄청나게 성장하고 변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기에 애플의 느리면서도 조심스러운 부활도 가능했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래서 한 사람의 성공 신화가 아니라 ─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법한 ─ 한 사람의 성장 이야기로써 『비커밍 스티브 잡스』를 어필하고 있다.

Becoming Steve Jobs by by Brent Schlender, Rick Tetzeli
<Steve Jobs and Bill Gates by Joi Ito, CC BY 2.0>

잡스의 인간적인 매력이 미치는 경계선

보기에 따라서는 잡스의 변화는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었을 때 응당 갖추게 되는 성숙함과 노련미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슐렌더도 인정하듯 잡스가 애플 복귀 이후에도 감정적 충동이나 변덕, 무례한 언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 사람이 허물을 벗듯 자신의 천성을 온전히 벗어던질 수는 없다고 믿는 나는 잡스가 개과천선했다기보다는 노련해졌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응당 얻게 되는 평범한 노련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정도로는 침몰하는 애플을 구해낼 수는 없다. 내가 볼 때 그 노련함은 어차피 약점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 없다면, 장점을 극대화하여 약점으로 말미암은 피해를 극복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압착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작가 짐 콜린스(Jim Collins)가 언급한 잡스의 가장 큰 장점인 ‘쉼 없는 몰두’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참고로 콜린스는 쉼 없는 몰두는 회복력의 원천이며, 자기 동기부여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제대로 알고자 하는 탐구심,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내겠다는 열망,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겠다는 목적의식을 연료로 삼는다.

잡스의 ‘쉼 없는 몰두’가 가장 열정적으로,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 작용했던 곳은 당연히 그의 일터다. 잡스는 진정 자신이 하는 일을, 그리고 그 일과 관계된 모든 것을 사랑한 남자다. 안타까운 점은 그 경계가 지독히도 확실하게 그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즉, ─ 사람이건 물건이건 ─ 일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에는 자상하고 친절한 잡스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판단이 들면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잡스가 될 수도 있다. 애플로 복귀한 잡스를 도와 함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동료들이 시간이 흘러 쓸모가 없어지거나 재능이 고갈되는 것처럼 보이자 그들과 거리를 두면서 소원한 관계를 끌어낸 것도 잡스였고, 초창기 차고 모임에서부터 애플에 합류한 친구이자 애플 창업구성원인 대니얼 콧키가 정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톡옵션을 받지 못하게 한 것도 잡스였다. 그리고 잡스의 마케팅과 비즈니스 실력을 발동시킨 장본인이자, 어쩌면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애플도 없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던 천재 엔지니어링 워즈니악과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원한 관계를 이어나간 것 역시 잡스다. 이런 점을 보면 잡스의 인간적인 매력이 미치는 범위가 극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즉, 잡스에게 재능을 인정받거나, 혹은 잡스의 인간적 결점을 요령껏 피해가거나 인내할 수 있었던 사람들, 그래서 잡스와 함께 애플의 성공 이야기를 완성해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잡스와 잡스의 배려와 관심이 미치는 경계선 밖으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기억하는 잡스가 같을 수는 없다. 전자의 사람들은 잡스를 자신에게 기회와 더불어 명성과 부를 가져다준 영웅이자 친구로서 추억될 것이고, 후자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능력을 입증할 기회마저 박탈한 ‘개자식’으로 잡스를 기억할 것이다. 아마 이 중간 어디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잡스의 진짜 모습이 어려있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간다는 것

그 사람의 됨됨이를 몇 마디만으로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하고 명확한 사람이 있고, 긴 설명으로도 부족한 복잡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 중 어떤 사람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잡스는 복잡한 성격과 더불어 그 복잡성을 배가시키는 변덕과 기벽까지 갖춘 사람이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잡스를 읽고 있노라면 잡스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 기인이자 간웅인 조조(曹魏)가 떠오른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인재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그러한 인재라도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면 순욱 같은 공신이라도 내치는 조조의 몰인정은 앞서 얘기했던 잡스와 워즈니악 등의 소원한 관계를 보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몇몇 인물에 대한 분노나 복수심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누그러트리지 못하는 질긴 적개심을 보면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江靑)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잡스의 성격이 어떠한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런 것은 잡스의 비범한 재능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나 같은 소인배가 성공한 사람을 씹으면서 위안으로 삼을 때 써먹는 가십거리 정도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비커밍 스티브 잡스(Becoming Steve Jobs)』가 강조하는 것은 잡스가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끝까지 견지할 수 있었던 자신감과 자기 확신, 그리고 그것을 모종의 창의적인 과정을 거쳐 현실에 투영해 우리가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두뇌로 작용할 수 있는,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놀라운 뭔가를 창출할 수 있게 만든 창조력과 부단한 열정을 돋보이게 하는 비범함이다. 또한, 여기저기 널린 소소한 아이디어들에서 미처 남들이 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러한 아이디어들을 한데 모은 다음 그것들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갈고 닦고 집대성해 엄청난 결과물을 창조해내는 창의적인 과정과 능력이야말로 잡스만이 할 수 있는 특출난 재능이다. 이런 재능에 비하면 그의 인간적 결점은 사소한 문제이고, 실재로도 사소한 문제였기에 잡스는 만인이 기억하는 혁신가이자 위대한 기업가로 남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개자식’이겠지만 말이다.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의 배짱과 포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동과 결단력, 부럽고 시기심을 유발시키고도 남는 재능, 여기에 남부럽지 않은 가족 관계와 훌륭한 인간관계를 가진 누군가의 전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소갈머리 좁은 나의 마음은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끓어오르고 황당하게 부아까지도 치민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전기적 삶을 살아간 사람의 발자취와 공적이 투영된 폭넓고 화려한 스펙트럼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삶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난 기업가도 아니고, 그런 것은 꿈도 꾸지 않지만, 짧고 굵직한 삶을 살아간 잡스의 삶은 쓸쓸한 뒤안길 같은 나의 초라한 삶을 반추시킨다. 잡스만큼 분명하지는 않을 것이고, 잡스만큼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나에게도 내 인생에 크고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난 그것을 찾지 못했다.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염치 불고하고 꿋꿋하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고 여기며 나는 오늘도 자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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