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 | 뛰어야 제맛인데 말이야!
"'예정된 종말을 미루고 있다', 토마스도 그 말을 자주 했지" - 아바
내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액션영화는 볼 때는 재밌지만, 보고 나면 (그 영화가 엄청나게 재밌었더라도) 잠시 감흥에 젖을 뿐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많은 사람이 많은 시간, 다양한 재능과 돈을 투자해 제작한 영화지만, 관객에게 인상적인 인상을 남기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뿐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영화 제목 정도는 기억에 남을지도 모르지만, 몇 달이 지나면 삶의 온갖 잡다한 경험들처럼 망각의 무덤 속에 파묻힌다. 가끔 TV나 인터넷의 대중매체를 통해 재발견되는 바람에 기억의 시냅스가 반딧불처럼 반짝 켜지는 때도 있겠지만, 그래 봤자 하루살이 기억이다. 대부분 영화는 그렇게 인생처럼 허탈하게 관객의 망각 속으로 스러진다. 이것이 비단 액션영화에 한해서일까?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가 수천 편에 이르지만, 액셀 문서로 정리한 ‘영화목록’을 펼쳐보지 않으면, 제목조차 떠올릴 수 없는 영화가 대부분이니 망각의 힘은 인정사정없다.
내가 영화와는 별 상관없는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Maze Runner The Death Cure, 2018)」를 감상하면서 지난 이야기가 어떠했는지를 좀처럼 머릿속에서 끄집어낼 수 없었던 내 기억력의 퇴화에 대해 너무 속상하고 상심한 나머지 화풀이 삼아 몇 마디 주절거려 본 것이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것일까? 지금까지 본 수천 편의 영화가 남긴 단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이 콜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머릿속에 들러붙어 산처럼 쌓인 덕분에 도무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래전에 본 영화라도 감명 깊게 본 소수의 작품들은 제목을 보면 한 컷 정도는 떠올릴 수 있으며, 비교적 최근에 감상한 것들은 더 많은 컷을 떠올릴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비록 지난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리고 ‘메이즈 러너’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나처럼 지난 이야기를 잘 떠올릴 수 없어도 나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화이니, 나 같은 예비 치매 환자가 있더라도 감상 전에 너무 떨 필요는 없다.
영화는 인적없는 대지를 내달리는 기차와 맹렬하게 질주하며 기차를 추적하는 자동차로부터 시작한다. 기차에는 악명 높은 위키드 사의 실험실로 보내질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지닌 청소년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민호도 다른 면역자들과 함께 있었다. 민호의 친구인 토마스, 뉴트, 프라이는 저항 운동가들의 도움을 얻어 멋지게 객차 하나를 탈취하는 데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이 탈취한 객차에 민호는 없었다.
열차의 종착지는 위키드 기지가 있는 곳이자 한때 찬란했던 인류 문명을 대변하는 듯한 웅장한 빌딩들이 방벽 속에 응집한 ‘최후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것은 삼엄한 경비로 보호받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동료는 민호 구출 작전을 반대한다.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기였기에 민호 한 명 때문에 많은 사람을 희생할 수 없었으며, 곧 배를 타고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삶이 기대되는 새로운 땅으로 이주할 계획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토마스가 아니다. 토마스와 뉴트, 프라이는 밤을 틈타 다른 동료 몰래 아지트를 출발해 방벽으로 가로막힌 도시를 향해 떠난다. 그런데 그들은 뜻밖에도 죽은 줄 알았던 갤리를 만난다. 갤리는 방벽 밖에서 반란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인류 역사의 오랜 반목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재확인할 수 있다. ‘최후의 도시’를 둘러싼 방벽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이스라엘을 허리띠처럼 졸라맨 ‘분리 장벽’과 미국과 멕시코를 악의적으로 가로막은 ‘국경 장벽’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좀비 영화에서 (아, 이놈의 빌어먹을 기억력!!!) 깊고 넓은 해자로 둘러싼 ‘최후의 도시’ 역할을 하는 고층 빌딩을 본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식의 갈등과 대립, 분류는 디스토피아 풍의 영화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편에는 ‘메이즈 러너’라는 제목과 명성에 어울리는 ‘죽으라 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동적이고 스릴 넘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별 감흥 없는 평범한 영화다.
마지막으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무지막지한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인류에게 면역자는 구원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영화처럼 이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가진 자들이 만약 백신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할까? 아니면 백신을 무기로 남은 인류를 지배하려고 들까? 인류 문명의 마지막 흔적이자 가진 자들의 마지막 보루였던 ‘최후의 도시’는 디스토피아 영화답게 결국 무너지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그리 길지 않았던 인류의 과거를 기억과 마음속에 묻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그래서 완벽하게 디스토피아 장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제임스 대시너가 쓴 원작의 결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영화가 고만고만하니만큼 원작을 읽어볼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지만, 원작의 결말도 이렇게 싱겁게 끝나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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