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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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 이병창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 이병창 | 지성을 끌어당기는 철학을 찾아!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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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어렵지 않으면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이병창의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는 철학사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이와 태산 같은 무게감을 느끼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얇은 책이지만, 철학의 난해함을 뼈저리게 느끼기엔 충분한 책이다. 그 많고 많은 책 중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선택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판타지 같은 맹랑한 이론으로 학문의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해 놓고는 서로 ‘멍군이요 장군이요’ 하며 북 치고 장구 치는 철학자들의 철면피함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을 ‘난해한 학문’ 정도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는 변변치 못한 나의 지성에 울분이 정수리까지 치솟은 나머지 다음과 같은 황당한 생각도 든다. 애초 철학이란 학문은 남들보다 뛰어난 사고력 외엔 달리 두각을 나타낼 것이 없는, 즉 오직 지성만 발달하고 육체적 능력은 평균보다 떨어지는, 혹은 사냥이나 전쟁 같은 육체노동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활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닐까? 마법사가 현란한 주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벌어먹듯, 철학자는 현학적인 세 치 혀로 사람들의 혼을 쏙 빼 먹는 정신노동으로 벌어먹는다. 철학자의 이론이 어렵고 아리송할수록 사람들은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지성에 탄복하게 되고 철학자의 목은 나날이 뻣뻣해진다. 반면에 철학자의 연설이 너무 알아듣기 쉬우면 사람들은 시시하다고 돌을 던진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철학이 어렵지 않으면 어디에다 쓰겠느냐고 말한 것은 아닐지 싶다.

애초 철학, 예술 같은 비물질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농경시대의 축복이자 저주인 축적과 잉여의 결과라는 점에서 패배자의 기죽은 변명 같은 내 주장이 완전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더 위안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복잡하듯, 그런 인간의 삶을 파고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송두리째 뒤집어엎어 근원을 설명하려는 철학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인간의 삶에 정답이 없듯 철학에도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기에 끝없는 사고의 비상과 넘치는 지성의 유희만 남는다. 정답이 없기에 철학의 밥줄은 영원하다.

공원 벤치에서 책을 읽는 남자, 카툰

치매도 예방하고, 지성의 유희도 느끼자, 철학 합시다!

나에게 뭔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철학’을 찾았는가 하면 다름이 아니라 김영민의 『인간의 글쓰기 혹은 글쓰기 너머의 인간』을 읽고 나니 명색이 천 권을 독파한 내가 그동안 철학을 너무 소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 태만함에 자괴감이 들어서다. 물론 대단치 않은 내가 무슨 재주로 철학을 소외시키나? 그렇다고 어두컴컴하고 외진 곳에 볼썽사납게 모여 있는 노숙자들처럼 도서관 구석에 옹색하게 모여 있는 철학책들은 ‘읽어주세요’하고 사시사철 열려 있는 것은 사실이니 철학이 나를 소외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의 근성 없는 지성이 철학을 두려워한 것이 정답일 것이다.

아무튼, 나이를 먹을수록 떨어지는 근력을 향상하기 위해 스트레칭이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하듯, 나이를 먹을수록 감소하는 뇌세포의 추이에 따라 나날이 퇴보하는 독해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독서인이라면 가끔은 철학을 읽는 것도 좋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한여름에 삼계탕으로 몸보신하듯, 책 읽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에 읽기 가장 어려운 철학을 읽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편이다. 삼계탕으로 살찌운 뇌세포에 철학으로 기를 불어넣자. 치매도 예방하고, 지성의 유희도 느끼리라. 혹시 모르지, 등 뒤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벤치에 앉아 고상하게 철학책을 읽고 있는 당신의 머리에서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지성미에 홀딱 반하는 누군가가 생길지도.

생각하는 남자 조각상 위에 있는 두꺼운 책, 로댕,

당신의 지성을 끌어당기는 철학을 찾아!

이병창의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는 말 그대로 (철학의 ‘철’자는 잘 모르더라도 철학의 위상 정도는 아는 진짜 교양인 앞에서) 아는 척할 수만 있을 정도로 철학과 역사, 철학과 예술의 관계를 중심으로 현대 철학사의 중요 발자취들만 추린 것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워낙 철학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난해하고 난해한 열 마디 중 단 한 마디만 이해해도 道라도 깨우친 듯한 뿌듯함이 밀물처럼 차오른다. 어느 틈엔가 범상한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결코 오고 갈 수 없는 범상치 않은 사유의 유희에 엉기적엉기적 장단을 맞추려는 나를 발견한다. 이때만큼은 ‘아, 이런 맛에 철학을 읽는구나’하는 어쭙잖은 우쭐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런 기쁨은 곧 닥칠 암호 같은 문장들 앞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 틈새로 기다렸다는 듯이 졸음이 스며든다. 시냅스 • 뉴런 신호 전달 체제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는 철학이 졸음을 몰고 오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신통방통한 것은 책을 덮는 순간 졸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체는 철학만큼 알쏭달쏭하다.

그런데 아는 척하는 것도 뭔가 통하는 것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선시대로 워프해서 상대성 이론에 대해 아는 척하면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것처럼 ‘라이트 노벨’이니 ‘자기 계발’이니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책 같지도 않은 책들이 도서 시장의 주류가 되려는 한심한 시대에 철학 운운하면 무슨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왠지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돈벌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철저하게 외면받는 철학의 빈사는 철학이 어렵지 않으면 어디에다 쓰겠느냐고 언중을 우롱하는 과도한 자만심이 불러온 인과응보일까? 아니면 빈사지경에 이른 철학은 물질적 풍요함에 반비례하는 정신적 빈곤함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상징일뿐일까?

철학자들의 논리가 어렵게 들리는 것은 단지 인간의 복잡한 삶을 헤집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은 철학은 시대의 위기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전(反轉)과도 같은 이상을 품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 상식 같은 것들을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지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편집증적인 의심에 정열을 쏟아붓는 철학.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 판타지라면 그 상식을 생산하는 틀 자체를 혁파하는 것이 철학이지 않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철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철학의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철학의 정수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철학자들이 남긴 발자취를 보며 그들이 저기서 와 이리로 갔다고 하는 것 정도만 알아도 큰 수확이다. 그 형형색색의 발자취 속에서 당신의 지성을 확 끌어당기는 철학 이론 한두 가지 정도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피서객들이 남긴 무질서한 발자국 속에서도 예지나 세상의 이치를 간파한답시고 덤비는 것이 사람이다. 하물며 일목요연하고 정연하게 정리된 이 한 권의 철학 속에서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면, 그야말로 백치 중의 백치다.

지금으로선 후설의 현상학, 그람시의 헤게모니, 보드리야르의 욕망 이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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