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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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지구 | 한국인은 언제 세상을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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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지구 | 한국인은 언제 세상을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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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 참말로 오래간만이다. 고만고만한 영화들을 애써 감상하느냐 시큰둥해진 감개가 뭉친 근육이 풀리듯 무량하게 풀린 기분이다. 덕분에 뻑뻑해진 눈도 호강했다. 역시 SF 영화의 진미는 영영 도달할 수 없는 염원과 상상으로 그윽한 미래를 영상으로나마 경험하는 재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한다는 개괄적인 줄거리는 ─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영화 • 드라마 • 책 등을 통해서 수없이 접해본 사람들에겐 ─ 그 누가 이야기를 새로 써도 진부할 수밖에 없는 소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그리고 감상을 마치고 나서도 그런 흠을 떠올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 흡입력 강한 특수 효과야말로 「유랑지구(流浪地球)」를 추천하는 요소라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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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가 진부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대부분 「유랑지구(流浪地球)」의 특수 효과는 인정한다. 그만큼 특수 효과는 뛰어나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내겐 화려함에 치우치지 않은 진중한 특수 효과도 만족스럽지만, 인류를 구출하는 방법의 그 기발함은 무더위로 축 늘어진 팔다리를 순간 팔딱이게 하는 짜릿한 뭔가를 일어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한 가지 더 가볍게 보태자면, 지금까지 봐온 수많은 스크린에서 지구를 구한 영웅들은 죄다 서양인이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반감을 품은 사람이라면 중국인이 지구를 구하는 것은 나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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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든, 환경 오염으로든, 외계인 침공으로든, ‘유랑지구’처럼 태양의 이변으로든 기타 등등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구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인류의 멸종을 피하는 방법으로 우린 우주선을 이용한 탈출을 즐겨 이용해왔다. ─ 그 누구도라기보다는 ─ 난 지금껏 지구라는 행성을 우주선으로 개조해 태양계를 벗어난다는 상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한 데스 스타(Death Star)를 보는 듯했다. 하나는 인류 구원의 희망을 품은 개척 우주선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는 행성 파괴 무기를 실은 무시무시한 우주선이지만, 상상력의 극치라는 점에서 둘은 통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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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기발한 소재를 착상했을까 싶어 알아봤더니 다름이 아니라 걸작 SF 소설 『삼체(三體, three-body)』의 작가 류츠신(刘慈欣, Cixin Liu)의 원작 소설이 존재한다고 한다. 역시 싹수가 훤한 작가에게서나 나올법한 싹수가 있는 상상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비평처럼 전반적인 이야기 흐름이 빼어난 특수 효과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평범한 것이 흠이긴 하지만(류츠신의 한 작품이 걸작이라고 해서 나머지 모든 작품이 걸작이 될 수는 없는 법!), SF 영화이니만큼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우주여행의 꿈을 품은 철부지 소년으로 만드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위세를 맹렬하게 드높여주는 특수 효과에 비중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한 편의 영화 때문에 중국 SF 영화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면 지나친 과찬일지도 모르지만, 이렇다 할 SF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영화를 생각해보면, ‘유랑 지구’는 질투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것은 ‘네이버 영화‘의 낮은 평점으로써 중국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편견과 함께 드러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특수 효과 팀에 한국인이 두 명씩이나 참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한국인이 세상을, 아니 이 우주를 구하는 영상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놓친 것이 있나? 아, 우뢰매!

영화는 목성에서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벗어난 지구가 새로운 항성을 찾아 2,500년의 우주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2,500년의 기나긴 여정을 「스타 트렉(Star Trek)」 같은 SF 드라마로 만나보는 것을 기대하며 살짝 흥분한 기분으로 갈겨 쓴 오늘의 영화 리뷰를 끝마치련다. 아, 그리고 한때 주성치의 명콤비로써 막무가내로 포복절도시키는 코믹 연기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오맹달을 다시 스크린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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