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밀실과 박사들 | 모리 히로시 | 추리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적당한 난이도
그에게 범죄란 새로운 수학 문제일 뿐!
사이카와와 교고쿠도(교고쿠 나쓰히코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는 기본 표정이 한쪽은 쌀쌀맞은 무표정이고, 한쪽은 험악한 인상이라는 점에서는 좀 다르지만,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과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armchair detective)이라는 점에선 비슷하면서도, 한번 터지면 청산유수의 능변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교고쿠도와는 달리 사이카와는 과묵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한다는 점에서는 또 다르다. 아마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언행을 중시하는 사이카와에겐 사람에게 씌운 저주 같은 것을 풀어내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요설일 것이다.
범죄를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이카와 같은 유형은 기계적인 트릭을 간파해내는 명철한 이성과 과학적 지식은 뛰어나지만, 부족한 감정이입 능력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어서인지 동기를 밝혀내는 대는 젬병이다. 설령 동기를 밝혀낸다고 해도 그의 수학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F가 된다(すべてがFになる)』에서도,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冷たい密室と博士たち)』에서도 그는 ‘범죄 동기’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를 풀어 답을 제시할 수도 있고 그 풀이 과정도 설명할 수 있지만, 왜 그런 문제를 냈는지, 왜 그 문제여야 했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능력은 「스타트랙」의 스팍만큼이나 둔감하고 어설프다.
그가 범죄, 그중에서도 밀실 트릭을 대하는 태도는 수학자가 지금껏 풀어보지 못한 새로운 수학 문제를 마주쳤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호기심이 발동하면 매달려서 풀면 되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안 풀어도 그만이다. 시험장에 들어선 입시생이 아닌 이상 문제를 꼭 풀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처럼 그에겐 형사처럼 반드시 범죄를 해결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 그가 일상의 업무를 소화하고 남는 자투리 시간을 소비해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이유는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과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만인과 공유해야 한다는 과학자의 책임감이다.
그가 트릭을 풀어내는 방정식에는 범죄를 일으켜야만 했던 가해자의 딱한 처지나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변수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선과 움직임 하나하나는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의 행동처럼 수학적으로 계산될 수 있는 상수일 뿐이다. 그는 주어진 상수에 주변 상황의 변수를 더하거나 곱한 다음 일어날 수 없는 일로 빼거나 나누어 트릭을 계산한다. 한마디로 사이카와는 내가 본 탐정 중 아마도 가장 냉철한 지성과 가장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동기에 천착하지 않고도 사건을 ─ 정확히 말하면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 해결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교고쿠 나쓰히코(京極 夏彦)의 ‘백귀야행(百鬼夜行, 교고쿠도)’ 시리즈가 인간의 고삐 풀린 욕망이 잉태한 망상과 집념, 편견, 공포, 두려움, 애증 등의 불완전한 감정으로 얽히고설킨 삶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느낌의 추리소설이라면, 모리 히로시(森博嗣)의 ‘S & M’ 시리즈는 등장인물 대부분이 냉철한 지성을 지향하는 이공계 사람들이라 그런지 범죄가 불러오는 감정적 동요에 휘말리는 정도도 덜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장광설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을 매혹시키는 간결하고 우아한 수학적 해결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금속 표면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느낌의 추리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수학 문제 푸는 듯한 사이카와> |
사이카와가 ‘사고 기계’라면 모에는 ‘정보 수집 기계’
안락의자 탐정이라지만, 가만히 앉아있다고 해서 정보가 제 발로 탐정의 뇌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탐정을 대신해서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교고쿠도 같은 경우는 그의 주변에서 파리처럼 왕성하게 왱왱거리는 주변 인물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면, 사이카와에겐 모든 남자가 군침을 흘릴만한 미모와 지성, 여기에 넘치는 재력까지 소유한 모에가 있다. 사이카와보다 젊은 만큼 호기성도 더 왕성한 모에는 모처럼 일어난 흥미로운 사건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사이카와를 보채고 부추기는 선동꾼 역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날렵한 스포츠카를 타고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조수 역할도 도맡는다.
하지만, 보통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의 조수라 하면 평소에는 헛소리나 아둔한 행동으로 바보 취급당하다가 千慮一得(천려일득: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들어줄 만하다는 뜻)이라는 말처럼 어쩌다 한번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요긴한 말 한마디 정도 내뱉는 것 가지고 자신이 마치 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잔뜩 으스대는 다소 덜떨어진 사람을 연상하기 쉽지만, 모에는 정반대라 할 수 있다. 모에의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은 사이카와조차 따라갈 수 없다.
본격적인 문제 풀이 단계에 도입하기 단계까지는 사건 해결에 게으르다고, 아니 무관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카와는 모에의 보챔을 잔뜩 받고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모에가 모아온 정보들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인제야 사이카와라는 ‘사고 기계(The Thinking Machine)’는 겨울잠을 자고 동굴 밖으로 나온 곰처럼 무관심의 동굴에서 이성과 지성으로 빛나는 광명의 세계로 떠밀려 나온다. 상황의 급박함에는 아랑곳없이 느긋하게 기지개를 켠 ‘사고 기계’는 보란 듯이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끝에 마치 수학 선생이 문제를 풀지 못해 어리둥절해 있는 제자들에게 ‘아니 이런 간단한 것도 풀지 못해 어디 대학 간판이라도 볼 수 있겠어?’라고 꾸짖으며 칠판에 해법을 척척 적어나가는 것처럼 사건을 풀어낸다. 사이카와라는 ‘사고 기계’에 모에가 수집한 ‘정보’를 입력하면 마치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당연히 뭔가가 나오는 것처럼 답이 나오니 두 사람의 짝짜꿍은 신의 경지다.
사이카와의 문제 풀이 과정은 교육 방송에 등장하는 선생들과는 달리 친절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되려 건방져 보이지만, 애초에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이라 그렇게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문제를 풀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지, 한두 마디도 아까워하는 짠돌이 교수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나름 친절하게 문제 풀이 강의를 해주는 것조차 감지덕지한 판에 어찌 그를 탓할 수가 있을쏘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감사하게 새겨듣자.
<독자의 추리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적당한 난이도> |
독자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적당한 난이도
초고 완성 시기로는 『모든 것이 F가 된다』보다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이 3개월 빠르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때문에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모리 히로시의 등단작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읽은 독자가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을 선택할 때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작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대놓고 드러난 상태에서 ‘선택’에 ‘망설임’이라는 귀찮은 녀석이 옭아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 현대적인 밀실 트릭을 맛볼 수 있는 추리소설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모리 히로시의 작품들은 추리소설 애독자로서는 놓치기 아까운 소설이다. 또한, 전작 『모든 것이 F가 된다』보다는 흠집도 더 뚜렷하고, 밀실 트릭 구성의 교묘함이나 기발함도 좀 떨어지지만, 전체적인 수준을 놓고 보면 충분히 읽어줄 만한 작품이다.
나 같은 우둔한 독자도 밀실 트릭을 어느 정도 간파했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트릭이 너무 허술한 것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할 기미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선생님이 제시하는 해법에만 의존했던 내성적인 학생에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희망과 기회를 제공하는, 그래서 오히려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도저히 풀 수 없어 보이는 너무 어려운 문제보다는 ‘어, 이 정도면 나도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는 도전 정신을 자극할 수 있는 적당히 어려운 문제가 두뇌 계발에도 좋고, 재미도 좋지 아니한가.
『차가운 밀실과 박사들』의 적당한 난이도는 그동안 오만한 탐정들에게 참패만 당해왔던 의기소침해진 많은 독자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도전 정신을 화끈하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래서 약간은 시들어진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적절한 계기가 될 것이다.
덮은 책을 다시 흩어본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괜찮은 추리소설인 것은 마지막 책장을 덮음으로써 모든 것을 알았음에도 다시 몇몇 페이지를 흩어보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이카와의 강의가 불충분했다기보다는 재확인하고 싶을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명료했다는 모순적인 의구심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재확인한다는 것, 그것은 풀리지 않는 의혹과 더불어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여운이 진득하게 가미된 미련을 의미한다. 풀리지 않는 의혹이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의심이든, 아니면 독자의 부족한 이해력 때문이든 한번 덮은 책장을 다시 열어젖히게 하는 힘은 아무 책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다시 흩어봄으로써 얻은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범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 중에 은연히 드러나는 범인의 무거운 감정과 계획대로 범죄를 완료했을 때의 가벼워진 마음이 적절한 암시로 텍스트 속에 용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리한 독자는 이 문장들만으로도 범인을 색출해낼 수 있다면 그들이 꾸민 밀실 트릭 역시 쉽게 간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즉, ‘x’와 ‘y’ 중 ‘x’를 구했다면 ‘y’를 구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또한, 건물 구조나 그 내부 실내 배치가 밀실 트릭을 위한 무대로써 설계되었다는 점도 명확히 드러난다. 괜히 ‘구조도’를 첨부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체가 발견되는 ‘준비실’에 창문이 없다는 점은 너무 노골적이다.
그런데도 노예처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스스로 뭔가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사고를 맹렬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미약하게나마 부추기는 긍정적인 맛에 다음 작품도 보고 싶다. 살아 있는 생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냉혹한 사이카와와 걸려오는 전화를 매번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다는 당돌한 모에가 어떤 식으로든 맺어질 거라는 부러움과 질투가 부채질하는 기대감도 한몫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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