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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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 대가의 평작, 그래도 나름 읽는 묘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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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 대가의 평작, 그래도 나름 읽는 묘미는 있다

노리코가 다시 물어봐도 그는 “지금은 소요 시간만 알고 있으면 돼”라며 설명하지 않았다.

버릇이 또 나왔네.

이번엔 화도 나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사키노 씨는 가끔 의미 있는 척 행동하는 버릇을 고치면 훨씬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노리코는 그 말만 해 두었다. 역시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턱을 쓰다듬으며 다쓰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p464)

대가의 평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리뷰를 쓰는 올해가 2019년이니까 60년 하고도 더하기 1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松本 清張)의 소설 『푸른 묘점(蒼い描点)』 이 세상에 선보인 지 말이다. 시대와 언어, 문화의 장벽을 초월하여 다양한 독자에게 다양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명품 소설 ‘고전 문학’에는 60년의 세월쯤은 대수롭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나날이 기교와 트릭이 발전하고 논리적으로도 정연해지고 과학적으로 엄밀성까지 갖추어 가는 미스터리 장르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현대적이고 세련된 추리소설에 익숙해진 독자가 60여 년 전에 완성된 추리소설에서 요즘의 잘 만들어진 추리소설과 같은 전율이나 감흥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 고로 제아무리 마쓰모토 세이초라 해도 그의 모든 작품이 현대에 와서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때때로 『푸른 묘점』처럼 그의 명성에 조금은 걸맞지 않은 작품들도 다수 존재한다.

누군가는 이런 작품들은 작가에게 홀딱 반한 마니아들이나, 혹은 작가의 대표작 몇 권에 푹 빠진 나머지 잠시 분별력을 잃은 독자가 아니라면 찾아주지 않는 낙엽처럼 빛이 바랜 쓸쓸한 작품들이라고 냉철하게 분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면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마쓰모토 세이초처럼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비록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작품일지라도 읽어보면 나름의 묘미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작가의 명성에 혹한 한 독자의 동정적인 비평이 다분히 섞인 과장으로, 혹은 추종자들의 맹목적인 떠받듦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들이 극찬을 받은 유명한 작품들이니만큼, 그런 대표작들이 발하는 후광이 짙게 드리운 그림자에 평작들이 애꿎게 묻혀버렸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푸른 묘점』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감히 평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벌써 무덤 속으로 묻어버리기에는 어딘지 아까운 소설이다. 고로 너무 많은 기대는 걸지 않고, 그렇다고 삼류소설 쳐다보듯 너무 경솔하지는 않은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마치 신인 작가를 대하듯 『푸른 묘점』을 읽는다면,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을 것이다.

단점에도 흡입력을 발하는 묘한 책

솔직히 말해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마쓰모토 세이초의 명성 때문이다. 뭐 읽을만한 추리소설 없나 하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동네 도서관의 ‘일본소설’ 쪽 책장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 그만 딱 『푸른 묘점』하고 마주치고 말았다. 커피숍이나 지하철, 버스 등의 공공장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흠칫 놀라는 기색과 그 상대가 매력적인 여성이었을 때 느낄법한 당황함이 적절히 혼합된 그런 기분이었다. (도서관 출입 초창기에 읽었던 책이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에 『점과 선』을 인상 깊게 읽은 나로서는 우연히, 아니 운명적으로 마주친 『푸른 묘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소매치기가 두둑해 보이는 지갑을 가로채듯 서가에서 책을 낚아챘다. 사정이 그러했기에 당연히 실망도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포함한 모든 소설이 지향하는 허구적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푸른 묘점』은 우연을 지나치게 남발한 나머지 일부 상황은 억지스럽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뛰어난 기교를 자랑하는 요즘의 추리소설에 비하면 빈약해 보이는 트릭과 어딘지 모르게 늘어지는 구성, 거북이처럼 느린 전개는 일부 독자에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작가의 명성에 실망하는 탄식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탄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실망감을 내비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단점들만 늘어놓으니 상당히 재미없는 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막상 읽어보면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대가의 명성에 압도된 나머지 객관적인 비평을 내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다. 정말 그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단점은 『푸른 묘점』을 읽는 누구나 명확하게 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다. 그것은 저 찬찬한 상공에 떠 있는 태양처럼 자명하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도 나를 지지한다. 그럼에도, 정말 신묘한 것이 앞서 언급한 단점들은 이 책을 읽게 되면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만, 그런 단점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데도 따분하기는커녕 쉽게 책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게 하는 마력이 『푸른 묘점』에는 있다.

Blue Painting by Kiyoharu Matsumoto
<푸른 묘점 by 마쓰모토 세이초)>

약간은 억지스럽기까지 한 추천의 글

앞서 언급한 단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나를 이 책 앞에 껌딱지처럼 붙들어 매 놓았을까? 명시한 단점들이 척력으로 작용함에도 무엇이 이것을 능가하는 인력으로 작용한 것일까? 재미있게 읽은 것은 분명히 사실인데, 막상 그 점을 밝히려고 하니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잡지사 편집자로 일하는 두 젊은 남녀 사키노 다쓰오(崎野竜夫)와 시이하라 노리코(椎原典子)의 아마추어 탐정 놀이가 신선했을까? 아니면, 수사와 탐문 차원에서 이곳저곳 여행하는 두 사람의 발자취가 추리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취를 자아냈던 것일까? 아니면, 그물처럼 얽히고설킨 사건의 복잡한 인과관계가 흥미로웠던 것일까? 혹은, 두 주인공의 탐정 놀이에서 은연중에 싹 트는 사랑이 뭔가를 기대하게 하였던 것일까? 일본 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鍵のかかった部屋, 2012)」에 등장하는 변호사 세리자와가 탐정에 대해 입버릇 토로하는 불만 불평처럼 추리의 진척 상황을 감추며 거들먹거리는 다쓰오 앞에서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 노리코가 귀여웠나? 그것도 아니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극 중 인물들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정답은 이 모두일 수도 있고, 전부 다 아닐 수도 있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성의 없고 무례한 답변이자 나의 무지함으로 북을 치고 장구를 치는 격이다. 내 말이 정 미덥지 못하다면 직접 『푸른 묘점』을 펼쳐보시라.

한편,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들이 범죄의 사회적 동기에 중심을 둠으로써 ‘사회파 미스터리’의 시발점을 제공한 업적과는 별개로 대중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허물어트린 대범한 작가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문장력이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보통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이 문장력이지만, 텍스트를 읽는 재미를 유난히 중시하는 나에겐 『푸른 묘점』의 기대 이상의 문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특히 그런 감흥은 두 주인공이 사건 수사를 위해 도쿄를 떠나 지방으로 내려갈 때 두드러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처럼 독특하고 뛰어난 품격 높은 문장력이라고까지는 치켜세울 수 없지만, 그래도 텍스트를 읽는 재미를 풍기기에는 나름 괜찮은 문장이라고 내심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노리코는 다쓰오와 수사를 같이하게 되면서 다쓰오를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가 조금씩 조금씩 애정 어린 관심으로 번져가면서 사랑스러운 처녀로 영글어가는데, 이런 노리코의 풋풋한 심정 변화를 담은 언행을 문장에서 직접 느껴보는 것도 나름 괜찮다. 그리고 1950년대 말임에도 대중교통이 제법 잘 갖추어진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삼은 점도 과거에 대한 어쭙잖은 향수에 젖어 든 내겐 또 하나의 흥밋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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