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 장야신 | 그는 영웅인가 간신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조는 대혼란과 대분열의 역사를 끝내는 데 혁혁한 공적을 세운 인물이다.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하게 급변하고 이에 따라 끊임없이 인재들이 곳곳에서 배출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영웅이 바로 조조인 것이다. (p26~27)
이보다 더 ‘조조’를 자세히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한때 간웅(奸雄)의 대명사이자 악당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조조(曹操)를 의심할 바 없는 일세의 영웅으로서 재조명하고자 그의 모든 것을 총망라한, 그리고 조조를 주제로 다룬 저작으로는 장야신(張亞新)의 『조조(品曹操)』를 넘볼 수 있는 것은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감히 장담하고 싶을 정도로 조조의 포부만큼이나 원대하게 구성된 역작이다. 책 대부분을 조조의 전기에 할양하고 있지만, 전기가 끝나는 뒷부분에는 조조의 세계관과 성격, 조조에 대한 시대별 평가 등을 분석한 해설을 따로 첨부함으로써 조조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끌어올리고 있다. 루쉰(魯迅)의 말대로 조조는 어떻게 평가해도 ‘최소한 영웅’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조 주변에는 영웅에 버금가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많은 인재가 왕성하게 활동했거나 조조와 대립하며 경쟁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영웅적 삶을 살아간 인물의 전기를 즐겨 읽는 독자에게 꿀단지 같은 달콤한 유혹일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어떠한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영웅을 배출하고, 어떠한 인물이 어떻게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여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조의 일생 자체가 삼국 시대 중 가장 극심했던 혼란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를 즐겨 읽는 독자에게도 진지하게 호소할 수 있는 명저다. 조조의 관점으로 본 또 한 권의 ‘삼국지’인 셈이다.
하지만, 개나 소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소설 삼국지’에서 표독스럽게 그려진, 즉 문학적 상상력으로 완성된 간사하고 음흉한 조조를 떠올리며 이 책을 건드리다가는 큰코다치기에 십상이다. 왜냐하면, 장야신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조조의 참모습은 문학이 그려낸 조조와는 완전 딴판이기 때문이다. 조조에게 간사하고 음흉한 면모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실을 알고 나면 그것은 단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조조는 진짜 조조의 단점을 집대성하고 극대화해 창조한 허구 속 인물일 뿐이며, 진짜 조조는 그보다 장점이 많은 인물이다. 조조에게 다재다능한 재능이 없었다면, 그리고 원대한 포부가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북방 통일의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겠는가? 혼란과 전쟁이 이처럼 들끓었던 난세에 자신의 능력만으로 한 세력을 일으켜 세워 북방을 평정했다는 이 사실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는 ‘최소한 영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원수마저 부하로 받아들인 조조의 용인술
그렇다고 조조가 자행했던 수많은 만행이 사라지거나 용서되는 것은 아니며, 그의 공적으로 상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상쇄되어서도 안 된다. 조조는 자신의 다재다능한 재능 탓인지 사람을 죽이고 부리고 살리는 일, 즉 한없는 관대함과 한없는 포악함 모두를 즐겼던 종잡기 어려운 성품의 소유자다. 일례로 조조는 아버지 복수를 위해 서주를 정벌하면서 아버지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백성 수만(혹은 수십만) 명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진순신(陳舜臣)의 소설 『제갈공명』에서 제갈량은 숙부를 따라 고향을 떠나 양양으로 향했는데, 그때 하비를 지나가면서 조조의 만행이 나은 참담한 결과와 마주치게 된다. 조조의 만행은 닭과 개 한 마리마저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 광경은 그대로 제갈량 마음속 깊이 각인되고, 그럼으로써 그는 조조 같은 사람은 천하를 통일할 자격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누구보다도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던 제갈량이었기에 조조의 만행은 평생 잊히지 않았으며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짓이었다. 소설 『제갈공명』은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조조에게 가지 않은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한다. 조조가 대업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용인술의 대왕’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인재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아끼고 적재적소에 활용한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인 것은 분명하지만, 조조의 사디스트 같은 가학적 행동을 즐기는 듯한 난폭한 성정에 질린 나머지 스스로 조조를 외면한 이들도 적지 않다. 만약 조조가 그러한 성정을 다스려 좀 더 많은 인재를 포용할 수 있었다면, 그래서 제갈량마저도 포섭했더라면 분명히 삼국 역사의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튼, 아버지에 대한 복수에 미친 나머지 무고한 백성을 학살했던 조조가 불과 7년 후(200년) 장남 조앙(趙鞅)뿐만 아니라 조카, 그리고 신임하던 호위 무사 전위(典韋)를 전사하게 하였던 원흉인 장수(張繡)의 투항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원소와의 대격전을 앞둔, 그래서 단 한 명의 무사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사사로운 원한을 마음에 두지 않는 넓은 도량을 온 천하에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포용력을 만천하에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고 해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 날뛰던 7년 전과는 달리 복수심을 자제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군을 아군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조조의 영웅적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인재를 아끼는 마음은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었다. 이후 조조가 정권을 잡고 나서 펼친 인재 등용 방침에서도 알 수 있듯 재능만 있다면 귀천의 구애 없이, 심지어 품행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천거할 수 있다는 조조의 철학이자 원칙이다. 제갈량 역시 나라나 군주에게 이롭게 충성하는 데 인재를 천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러한 이치는 조조에게도 마찬가지였었나 보다. 조조의 용인술은 그가 대업을 이루는 데 가장 큰 힘이 된다. 또한, 건안 5(200년)년 이전의 일은 일절 논하지 말라고 명할 정도로 조조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을 지양했는데, 인재 등용 방침과 과거의 과실을 문제 삼지 않는 태도에서 조조의 도량이 드러난다. 일례로 관도 대전 후 조조가 원소군이 남긴 전리품 중에서 자신의 부하가 원소와 내통한 내용을 담은 서신을 불태웠다는 일화는 유명한데, 이는 조조가 말만 앞세우는 소인배가 아니라 실천력을 갖춘 진정한 영웅임을 보여준다.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선 조조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사악한 조조와는 달리 실제 조조는 죽은 장수나 병사의 의지할 데 없는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보살피거나, 전란으로 고통받는 백성의 안타까운 처지를 시를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측은지심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조조의 정치에서도 동한 말기 급부상한 호족 세력의 착취와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조조의 대민 정책이 사회를 안정시켜 백성의 지지를 끌어내고, 더 나아가 통일 전쟁에 동원될 병사나 군량 등의 자원을 확보하려는 먼 안목에서 비롯된 치밀한 계략일지라도, 남발하는 선거 공약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고 농업 경제 및 사회 질서를 회복하여 사회 발전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조조의 순수한 의도를 외면하거나 깎아내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비록 일시적인 충동이나 분노에 휩싸여 잔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일도 적지 않고, 한나라를 손에 넣는 데 방해되는 자는 순욱이나 최염처럼 공을 많이 세운 자라도 엄벌을 비껴갈 수 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모반에도 극단적으로 대처한 조조였지만, 과실로 공적을 덮기에는 조조의 공적이 너무나 크다. 그리고 이 책이 누누이 강조하듯 그의 공적 대부분은 그 스스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그는 영웅이다.
품행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관찰력과 임기응변 능력, 기민함과 지혜, 지략, 노련함, 과감한 행동과 여타 영웅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학적 및 예술적 재능까지 겸비한 조조의 다재다능함만큼은 역대 어느 영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단지 조조의 몇몇 행동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불쾌함과 분노를 자아낸다고 해서 ‘조조는 한낱 악인에 불과할 뿐’이라는 그릇된 판단 속에 덮어두는 것만큼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은 없다. 왜냐하면, 조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적 결점을 안고서도 강철 같은 의지와 영웅적 기개로 원대한 포부를 밀어붙여 대성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조조를 앞에 두고 몇 가지 인간적 결점을 물귀신처럼 붙잡고 늘어져 끝끝내 깎아내리는 것이 어찌 역사를 바로 보고,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의 올곧은 태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은 굳이 긴 시간을 들여 이 책을 읽는 수고는 일찌감치 접어두고 그저 소설 삼국지나 보면서 시시덕거리면 그만이다.
<한때 중국에는 조조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났었는데> |
결점을 안고 대업을 이룬 조조에게 반하다
내가 조조를 좋아하는 이유는 역대 어떤 영웅보다도 희로애락이 분명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매우 인간적인 영웅이라는 점이다. 조조의 감수성이 처녀처럼 예민할 땐 주인을 밥 먹듯 배반하는 여포를 죽일 때조차 동정심에 젖어 들었다. 만약 이때 옆에 있던 유비가 깨우침을 주지 않았더라면 여포의 생명은 몇 년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랬다면 삼국 역사의 판도가 또 어떻게 달려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런 조조에게 내가 심히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 역시 ─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 이런 말 하면 웃기지도 않겠지만 ─ 내가 만약 조조처럼 한 국가를 다스리는 독재자가 된다면, 조조처럼 그때그때 기분이나 감정에 따라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일을 꽤 즐겼을 것이다. 그래서 조조를 보면, 조조를 읽으면, 조조를 생각하면 ─ 조조와 나의 실제 능력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지만 ─ 왠지 내가 군웅할거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아 말하기 부끄러운 짜릿한 흥분감에 젖어 든다.
사실 조조는 평범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명확하고 뚜렷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가 아니라 매우 복잡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기에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장야신의 역작 덕분에 비교적 쉽게 조조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조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마치 장남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조조를 읽는 이의 가치관이나 사상, 성격, 나이, 시대, 성향에 따라 생성되는 조조의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런 식으로 각개격파된 조조의 이미지가 객관적인 조조의 이미지라고 볼 수는 없지만, 보는 이에 따라 무수한 조각으로 나뉜 조조의 이미지들의 교집합과 합집합 속에 진짜 조조가 살아 숨 쉬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곧 다방면에 걸친 토론과 연구를 통해서만이 진짜 조조를 복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조를 읽을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조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난세를 살았다는 점이다. 난세를 살았기에 변덕스럽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한 그의 성품이 북방을 통일하는 대업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때론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다르게 해석하면 조조의 인간적 결점이 전국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을 수도 있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조조의 인간적 결점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을는지 고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를 들어 원소를 격파하고 그 주변 오랑캐까지 토벌하면서 승승장구를 달리던 조조는 잠시 교만함에 빠지는데 하필 이때 관도대전만큼이나 중요한 적벽대전을 치른다. 제갈량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진 인재라도 교만함에 빠진 사람이라면 쓸모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군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로 교만함을 경계했는데,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교만함이다. 조조는 잠시 교만함에 빠진 나머지 정세를 자신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적벽대전에서 승리를 놓침으로써 천하를 삼분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써 살아생전에 전국 통일을 이루겠다는 포부 역시 물거품이 되었다. 좀 더 일찍 통일되었더라면 전쟁도 그만큼 일찍 종결됨으로써 백성의 고생도 그만큼 더 줄었을 것이니 적벽대전의 패배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고금에 보기 드문 알차고 재밌는 책이지만, 오탈자가 이렇게 많은 책도 고금에 보기 드물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인명이야 그렇다 쳐도 날짜처럼 역사적 사실과 직접 관계된 글자에서 오탈자가 발생하면, 독자는 잘못된 정보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하게 교정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문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느냐 몇 번이나 구글을 뒤졌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조조의 영웅적 기개와 원대한 포부, 조조가 꿈꾸던 이상, 조조가 추구하던 사상과 인간적 면모를 조조의 실제 삶과 실제 행적 속에서 발췌한 이 책을 놓친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라도 있어서 고금에 보기 드문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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