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비전(Double Vision, 雙瞳) | ‘과학’과 ‘오컬트’라는 두 마리 통닭
<무더위 속의 동사?> |
도(道)를 행하고 영단을 복용하여 신선이나 불사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동양 민간 신앙의 오래된 주제이자 생명력의 유한함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생생한 인식이 반사적으로 투영된 철학이다. 도(道)를 추구하는 것은 학문적 연구이자 개인의 수양이며 ‘불사의 존재’는 기독교가 천국을 미끼로 대중을 현혹하듯 동양의 민간 신앙이 중생을 유혹하는 종교적 판타지이다.
영화 「더블 비전(雙瞳)」은 불사신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감히 묻는다. 당신이 불사신이 되는 대가가 타인의 무수한 죽음이라면 그래도 불사신이 되어야 하는가?
감히 대답한다. 그래도 나는 불사신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변명한다. 이것은 그저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무수한 욕망 중 하나일 따름이라고.
<그녀의 사인은 그 유명한 도시 전설 중 하나인 인체 발화?> |
<어떻게 자기 창자를 빼내 곱창구이를 해도 모를 수가 있지?> |
강에 폐수를 무단 방류한 기업의 회장이 한여름 대낮의 사무실 안에서 동사하고, 추문을 일으킨 국회의원 아내가 불에 그을린 흔적조차 없는 깨끗한 집에서 타죽은 시체로 발견되고, 어느 외국인 신부는 자기 창자가 누군가에 의해 약탈당하였다는 것을 두 시간이나 모른 채 잠들었다가 사망한다.
서로 연결점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의 피해자들, 그리고 계속되는 사인 불명의 의심스러운 살인은 어느 미친 살인마가 자신의 날이 선 광기를 만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미친 욕망일 뿐인가? 아니면 고도의 목적을 지닌 지능적인 범죄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인간이 아닌 다른 뭔가가 저지른 짓인가?
<둘 다 대만 형사들로부터 따돌림당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
<이것이 바로 '이중 동공(雙瞳)'> |
동료의 부정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좌천당한 경찰 황후오투(양가휘)는 FBI에서 파견한 범죄분석가 리히터(데이빗 모스)의 통역 요원으로 이 사건에 참여하고, 두 사람은 전문가의 조언으로부터 이 연쇄살인이 평범한 살인이 아니라 종교적 목적을 지닌 살인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시사 받는다.
사이좋게 티격태격 수사하던 두 사람은 ‘이중 동공’에 대해 알게 된다. 그저 흠칫한 돌연변이가 아닌, 그리고 구미호만큼은 아니지만, 꽤 묵은 전설이 있는 ‘이중 동공(雙瞳)’을 갖고 태어난 자들은 낮엔 천리를 보고 밤엔 영혼을 본다. 또한 그들만이 ‘반인’이라는 인간도 귀신도 아닌 원죄를 저지른 자들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이번 연쇄살인과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고아한 장소에서 학살이 일어날 줄이야> |
시대극 세트장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오래된 사원을 현대적인 빌딩 내부 안으로 옮겨놓은 보기 드문 발상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것과 미신적인 것의 이율배반적인 대비를 보는 것 같아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묘한 아우라가 있다. 이 ‘아우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곧 일어날 학살로 증명된다. 이 학살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원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더 충격적이며 소름 끼치는 피의 잔상을 극광이라도 본 것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남겨준다.
<폐쇄적 인물인 황후오투 형사 역할을 맡은 양가휘> |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양의 종교를 소재로 한 컬트 영화다. 독특한 철학적 안목을 가지고 있고 과학과 오컬트적 요소를 적당히 배합한 「더블 비전(雙瞳)」은 악마를 나름의 역사와 존재 의미를 지닌 실체가 있는 악으로 표현하곤 했던 서구영화와는 달리 악마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탄생한다는 섬뜩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즉, 내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악마가 된 것이다.
낮은 수준의 공포영화는 흥건한 선혈과 내장 범벅 등의 잔혹한 장면으로 관객을 놀랠 뿐이라면, 수준 높은 공포영화는 관객을 두렵게 할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블 비전(雙瞳)」은 평범한 수준의 공포영화는 아니다. 다만, 후반부가 그때까지의 좋았던 흐름과는 달리 너무 추상적으로 벗어난 것 같아 다소 아쉽기는 하다.
한편으론, 이런 퇴폐적이고 음침한 분위기에 한껏 녹아든 양가휘의 비애 가득한 연기를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다.
끝으로 죽인 상대의 힘과 지식을 흡수하는 하이랜더나 흑마법사처럼 타인의 희생으로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9명을 희생하면 한 명의 불사신이 탄생한다고 할 때 인구 10명당 한 명의 불사신이 만들어질 수 있는 셈이다. 만약 전 세계 인구가 80억이라면 70억을 희생하면 8억의 불사신을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인데, (내가 그 8억 중 한 명이 된다면) UN이 인류를 불사신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이 지구에 8억도 충분히 많은 숫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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