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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2.

[책 리뷰] 먼뎃불빛 같은 추억 속에 잠긴 비운의 사랑 ~ 백발마녀전(양우생)

White Haired Witch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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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뎃불빛 같은 추억 속에 잠긴 비운의 사랑

Original Title: 白髮魔女傳 by 梁羽生
옥나찰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절세의 용모를 지니고 태어난 몸이었다. 그리고 자기의 미모를 가장 사랑하고 아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소녀가 백발의 여인으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얼굴이 쭈글쭈글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백발 노파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당한 괴로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저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다.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 중에서)

오래간만에 무협 소설을 찾은 변변치 않은 이유

릿속이 실타래가 엉킨 것처럼 잡다한 상념과 고민으로 복잡하게 꼬여 있을 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지속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에 회의를 느끼거나 독서 자체에 염증을 느낄 때, 이럴 때 나는 무협 소설을 찾는다. 재충전 안 되는 일회용 건전지가 하릴없이 방전되는 것처럼 남은 삶의 하루하루가 무기력하게 소모되는 나의 삶에서 번뇌와 자책감에 빠지는 것마저 때론 사치로 느껴질 때, 무협 소설은 이 모든 상념과 번뇌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는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준다. 삶의 중압감으로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짓눌려 있었던 꿈을 풍선처럼 다시 부풀어 오르게 하고, 냉혹한 현실주의로 기가 팍 죽어 있던 공상의 금빛 날개를 다시금 펼치게 하는 무림의 세계는 엄연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마음과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던 번뇌의 실타래를 한올 한올 풀어주는 시원스럽고 통쾌한 무공 대결, 부족한 용기와 타고난 소심함으로 포효해내지 못했던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울분을 삭여주는 의협심이 활활 타오르는 크고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감개무량하다. 여기에 난독증으로 고생하는 사람, 책만 보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사람, 아니면 나처럼 즐겨 책을 읽던 사람 등 책과 친하고 친하지 않고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폭풍 같은 흡입력을 발휘하는 조악하면서도 단순하고 명확하고 간결한 문체도 무겁고 심란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데 한몫한다. 그렇다고 무협/판타지 소설이 독서 세계의 주요 장르가 되어서는 아니 되지만, 앞서 거론한 몇 가지 이유와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은 기분 전환 삼아 빠져들 만하다. 그래서 찾은 작품이 영화로도 유명한 양우생(梁羽生)의 무협 소설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이다. 한국에서는 『여도 옥나찰(女盜 玉羅刹_』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었지만, 중국어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백발마녀전’이 원제다.

내가 만난 최고의 女고수이자 최고의 女영웅

금까지 내가 읽어본 무협 소설이라 해봤자 김용(金庸)과 고룡(古龍)의 몇몇 작품들로 한정되지만, 사실 무협 소설 중에서 굳이 찾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내 생각으론 무협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김용을 제외하면, 고룡, 양우생, 와룡생(臥龍生) 정도 언급하고 싶을 뿐이다. 보통 무협 소설 한 작품의 분량이 일반 소설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에 거론한 작가들의 작품을 고루고루 돌려 읽는다면 평생 우려먹을 수 있으므로 기타 무협 소설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낭비다.

그런데 지금까지 읽어본 무협 소설의 주인공들은 전부 다 남자 영웅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女영웅을, 그것도 정파와 대립하는 녹림에 몸을 담은 女고수를 만났다. 무림인들은 그녀가 없는 곳에서는 그녀를 옥나찰(玉羅刹)이라 부르지만, 그녀의 본명은 연예상(練霓霜)이다. ‘나찰’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을 뜻하는데 이 앞에 아름다움을 뜻하는 구슬 ‘옥’자가 붙었으니,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 절세미녀를 이처럼 잘 표현한 별호는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보통의 무협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미녀를 빼놓을 수 없듯, 옥나찰 역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 다만, 다른 무협지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강호를 유람하다 인연을 맺게 된 여러 명의 미녀 사이에서 애증의 굴레에 빠지고, 사랑의 달콤한 갈등을 거듭하는 것에 반해 옥나찰은 단 한 명의 남자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매초 악랄한 초식을 구사하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독한 마음의 소유자이자, 무공이 고강한 만큼이나 호승심도 강한 그녀의 아찔한 애정의 과녁이 된 행운(?)의 남자는 장차 무당파의 장문인이 될 장문제자 탁일항(卓一航)이다./p>

먼뎃불빛 같은 추억으로 남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자는 녹림을 주름잡는 대도 중의 대도, 남자는 강호에서 소림사와 함께 정파를 대표하는 무당파의 장문제자. 두 사람의 배경부터 흑과 백의 구별이 선명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 차이도 그에 못지않다. 옥나찰은 자신의 무공과 미모에 대하여 자부심으로 가득 찬만큼 어떤 상황에서도 안하무인 격으로 거칠 것 없이 행동한다. 또한, 그녀는 심보가 악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그녀의 하얀 섬섬옥수가 내지르는 수단 하나하나가 매섭기 그지없지만, 흑백을 가릴 줄 알고 시비를 분간할 줄 아는 호탕한 협녀다. 반면에 탁일항은 무협 소설에서는 보기 드물게 문무를 겸비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옥나찰과의 애정 문제에서는 매사 우유부단한 태도를 선보이며 영 시원스럽지가 못하다. 한마디로 시종일관 답답한 모습을 보이면서 독자의 짜증을 부채질한다. 그뿐만 아니라 옥나찰의 걸출한 무공과 눈부신 외모에 비하면 탁일항의 무공은 그저 그렇고 외모는 고만고만하다. 한마디로 무협 소설의 남자 주인공치곤 매우 변변치 못한 인물이 바로 탁일항이다. 이런 두 사람의 대비되는 배경과 성격에서 짐작해 볼 수 있듯 두 사람의 줄타기 같았던 아슬아슬한 사랑은 결국 가슴에 사뭇 치는 처연하고 쓸쓸한 감정만 남긴 채 미완성으로 마무리된다.

옥나찰이 처음으로 탁일항을 만나게 되는 철이 없을 무렵, 그녀는 탁일항과 결합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었고,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지위나 무공의 고하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녀에겐 두 사람의 앞길을 훼방 놓는 사람은 모두가 적이었다. 그것은 세상 규칙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는 호방하고 방종한 그녀의 성격과도 일치했다. 그렇게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두 사람의 인연을 완성하려고 했지만, 관습과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는 소심하고 답답한 탁일항의 모습에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 옥나찰은 좌절에 좌절을 거듭한 나머지 꼭 탁일항과 함께 사는 것만이 최선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때는 이미 사랑의 번뇌가 가져다준 상심과 피로, 사랑과 미움의 반복이라는 시련이 극에 달한 나머지 그녀의 머리가 허옇게 세어버렸을 때이기도 하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그녀는 두 사람의 사랑을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일까? 탁일항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자기 혼자만 그를 독차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차라리 한 가닥 애련한 추억을 남기고 그것을 기억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아쉽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서로 마주 보면서도 결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아득하고 아련한 먼뎃불빛 같은 추억으로 남게 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과 쓸쓸함은 예리한 면도날이 오장육부를 스쳐 가듯 가슴 한구석을 아려 온다.

마치면서 무협 소설에 대해 한 마디

협 소설에서 무지개처럼 화려하고 번개처럼 날렵하며 태풍처럼 웅장한 무공 대결만큼이나 볼만한 것이 남녀 주인공의 기구한 사랑의 운명이다. 하지만, 보통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는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다사다난한 역정을 거치면서도 끝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또한, 그런 해피엔딩이 가져다주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사이다 같은 청량감이 텁텁한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통쾌하고 개운한 맛에 보는 것이 또 무협 소설 아닌가?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두 사람의 사랑이 태우다 남긴 시커먼 숯등걸 조각들을 보면, 『백발마녀전』 의 서글픈 결말은 울적하고 소침한 기분을 풀고자 이 소설을 탐독한 나에게 불난 데 오히려 부채질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옥나찰과 함께 한 절대 짧지 않았던 그 시간만큼은 온갖 잡다한 세상만사와 시름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홀가분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말하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몇 마디 더 한다면 무척이나 긴 내용에 비해 읽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무협 소설이다. 이것은 무협 소설만이 가지는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아무 생각, 아무 걱정 없이 텅 빈 마음과 텅 빈 정신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긴 시간을 할애하고도 영양가 없는 독서를 했다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점이다. 하지만, 독서라는 것이 지식이나 지혜, 하다못해 감수성을 자극한다거나 감개무량한 뭔가를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중과부적으로 우리를 압박해오는 지루한 시간의 중압감과 고리타분한 일상의 막막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시간과 삶의 굴레에서 잠시 비껴갈 수 있는 짬을 얻어낼 수 있는 취미 중의 하나가 바로 독서다. 그래서 독서는 고상하면서도 천박한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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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16.

[책 리뷰] 劍은 피를 흘리고, 검객은 눈물을 흘린다 ~ 다정검객무정검(고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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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를 흘리고, 검객은 눈물을 흘린다

Original Title: 小李飞刀1: 多情剑客无情剑 by 古龙
다른 사람이 베푼 은혜를 잊기란 매우 쉬운 일인 듯하나 다른 사람이 진 원한을 잊기란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엔 근심이 늘 기쁨보다 많은 법이었다. 『다정검객무정검(多情劍客無情劍, 1968) 중에서』

인생살이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설 속에서 갈래머리 손녀와 함께 강호를 떠도는 이야기꾼(說書人) 손 노인이 객잔에서 느긋하게 담배를 뻐금거리며 막 강호 이야기를 시작할라치면, 그때까진 거의 텅 비어 있던 객잔은 갑작스러운 손님들로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고 시끌벅적한 개인적인 담소들도 뚝 그친다. 객잔을 빈틈없이 채운 이들은 대부분이 강호와 연관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강호의 이야기에 자기 일처럼 귀를 곤두세운다.

이에 대해 또 한 명의 이야기꾼인 작중 화자는 강호의 일들이란 언제나 자극으로 넘쳐 있기 마련이었고 누구든지 그것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저마다 마음속에 크든 작든 억눌려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리라고 말한다. 객잔에 모여든 사람들이 강호 호걸들과 무림 기협들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이야기 속의 인물들과 동일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세속적인 슬픔과 고통으로 짓눌리고 찢긴 영혼이 흘린 피가 뭉치고 굳어 생긴 뻐근한 응어리를 한순간이나마 시원하게 풀어주는 약이 되기도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라고 이들보다 더 나은 것도 없는 것 같다. 성냥갑처럼 갑갑한 집,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지 않고는 하늘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 이런 빌딩 숲이 연출하는 위압감과 삭막함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마지못해 살아가는 우리는 무한 경쟁의 빠듯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복수와 원한, 야심으로 가득 찬 강호에서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둘 다 끊이지 않는 긴장의 연속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삶을 살아가며 패배와 죽음, 낙오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다만, 현대인은 돈을 흘리고 강호인은 피를 흘릴 뿐이다.

그래서 우린 손 노인의 이야기에 벌떼처럼 몰려드는 객잔의 손님들처럼 잊을만하면 무협지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샘 솟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사랑, 증오, 질투, 원한, 복수, 살인, 응징 등 사람을 지배하는 모든 원시적 감정을 아우르면서 통쾌하고 강렬하며 웅장하고 짜릿한 경험을 전해준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평소에 책과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도 때론 무협지를 찾는다. 그만큼 무협지는 호소력이 있는 것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의 텁텁한 갈증을 해결해 주는 시원한 맥주,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잊게 해주는 따끈한 차 한잔처럼 무협지는 삶에 지친 나머지 피폐해지고 딱딱하게 굳은 우리의 마음을 한결 시원하고 부드럽게 풀어주면서 한시름 덜어주는 시원한 맥주이자 따끈한 차 한잔이다.

첫 출수가 생사를 가늠한다

리즈 소이비도(小李飛刀)의 첫 번째 편인 고룡(古龙)의 『다정검객무정검(多情劍客無情劍, 1968)』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심환(李尋歡)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정한 검객’이자 ‘무정한 검’을 소유한 비상한 인물이다. 그의 비도는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을 정도로 빠르고 매섭다. 그러나 그는 타인을 대신해 기꺼이 자신의 눈물과 피를 흘린다. 그는 남이 자신에게 폐를 끼치게는 할망정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못할 사람이며 자신이 남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묵인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다. 이러한 그의 고결한 인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왕왕 눈물을 흘리게 하는데 바로 그것은 감동의 눈물이자 감격의 눈물이다.

총명한 소년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로 성장하면서 기인한 우연과 기연을 통해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연마함으로써 강호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로 성장하여 의(義)를 행한다는 설정이 무협지의 전형적인 줄기이다. 그러나 『다정검객무정검』의 주인공 이심환은 이미 40세, 즉 중년의 나이로 소설에 등장하며 무공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오른 단계이다. 이심환의 친구이자 기이하게 빠른 검법의 소유자인 아비 역시 강호에 첫발을 디뎠을 때 이미 20대 초반의 젊은이며 그만의 독특한 무공도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이다. 또한, 무협지에 빠지지 않는 소재라고 할 수 있는 강호의 일대 사건인 비급을 두고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쟁탈전이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무공이나 비급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다. 그래서 무공 대결을 묘사하는 부분은 매우 간결하다. 주요 인물들의 무공 대결은 한 두 초식 안에 끝난다. 이렇게 말하니 좀 싱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묘미는 독자의 눈앞에서 난해한 무공 이름들이 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어지럽게 추는 비무(比武)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건 대결을 앞두고 첫 출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팽팽한 긴장감이다. 첫 출수의 실패는 패배로, 그리고 패배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긴박한 순간을 간결한 필치로 단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의 입안을 바짝바짝 마르게 한다. 더불어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무쌍한 사건 전개도 이 책을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이다.

마치면서...

설 『다정검객무정검』은 부정할 수 없는 무협지지만 ‘무공’ 그 자체에 비중을 두기보단 천편일률적인 선과 악의 구분을 경멸하는 심도 있는 성격과 인간성을 지닌 영웅들의 복잡다단한 인간사를 그려냄으로써 기존의 무협지의 틀을 벗어남과 동시에 하늘과 땅, 끝이 있을망정 이 한(恨)은 그칠 날이 없는 강호 세계의 비정한 인간사를 완성한 특색 있는 무협지다.

이 리뷰는 2015년 8월 1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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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31.

[책 리뷰] 고전 무협 소설의 진국 ~ 소오강호(笑傲江湖, 김용)

The Smiling, Proud Wandere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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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무협 소설의 진국

원제: 笑傲江湖 by 金庸
“험한 파도에 웃음을 싣고, 물결 따라 덧없이 살아온 삶, 한 잔 술에 웃음을 담아, 모든 은원 깨끗이 잊고 살리라, 산천초목도 따라 웃누나,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 부질없어라, 소슬바람에 미소 지으며, 모든 근심 잊고 살리라, 우리네 인생은 아름다운 것, 욕심 없이 어우러져 웃고 살리라.” - 영화 「소오강호(1990)」 중에서 -

오래간만에 다시 찾은 명작

가 한두 권으로 끝나지 않는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지루함은 느끼지 않고 끝까지 재미나게 읽었던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김용{金庸)의 『영웅문(英雄門)』 아니면 『소오강호(笑傲江湖)』였을 것이다. 6편씩 3부작으로 총 18권으로 구성된 『영웅문』은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에 누군가가 가져온 것을 수업 시간에 몰래 돌려봤었고 『소오강호(The Smiling, Proud Wanderer)』는 8권 전부 구매해서 본 것인데, 오랜 세월 이사를 몇 번 거치면서 흔적없이 사라졌으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협 소설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쉽고 빠른 읽기와 부담없는 이야기, 그리고 경쾌한 재미다. 그중에서도 김용 소설의 흡입력은 가히 마약과 다름없어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일단 앞의 몇 페이지를 읽고 나면 그 뒤는 도저히 안 보고는 못 배길 정도다. 가벼운 맨손체조로 졸음과 피로를 쫓듯 고전이나 교양 도서가 몰고 온 독서의 피로도 풀고 기분도 전환할 겸 『소오강호』를 다시 보게 되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주인공이나 기타 주요등장인물의 이름 정도만 기억해낼 수 있었고, 작품의 줄거리는 거의 처음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말 오랜만에 무협 소설의 재미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뻔한 영웅담? No! No!

8권이라는 짧지 않은 분량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흐름은 화산파의 첫째 제자이자 대사형인 영호충(令狐沖)이 실전된 독고구검(獨孤九劍)이라는 최고의 검술을 익혀 무림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한다는 이야기다. 이 말만 듣고 얼핏 생각하면 뻔한 영웅담 같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중원의 광활한 대륙 위에서 펼쳐지는 영웅의 대서사시는 짜임새 있는 작고 알찬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완성된 거대하고 드높은 이야기 파도를 이루어 삽시간에 독자를 피비린내나는 혈투와 의협심이 공존하는 중원의 강호로 휩쓸어버린다. 무협 소설의 최고봉으로 추앙받는 김용의 명성에 걸맞게 작품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시종일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과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강력한 마력과도 같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다.

여기에는 웬만한 추리나 범죄 소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 서로 간의 치밀한 음모와 계략, 그리고 그 음모와 계략을 튼튼하게 뒷받침해주는 개연성 있는 구성, 여타 무협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무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명쾌한 해설, 여기에 광풍처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호의 치열한 혈투 속에서 잠시나마 휴식과 위안을 주는 주인공 영호충을 둘러싼 악영산, 의림, 임영영의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까지 있으니, 아마도 김용의 소설을 읽고 나면 다른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이 얼마나 엉성하고 조잡한지를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편의 작품에 인간의 생(生)과 사(死), 영예와 치욕, 복과 화근, 성공과 패배, 인과응보, 희로애락(喜怒哀樂) 등 인생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긴 분량에 걸맞은 장대한 규모의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이렇게 이야기가 알찬 만큼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역시 개성이 뚜렷한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특히 말대가리 같은 외모에 지능 역시 외모만큼이나 떨어지면서 입만 살아있는 도곡육선(挑谷六仙)이라는 괴상망측한 인물을 등장시켜 지나친 몰입이 가져올 수 있는 나른한 피로를 한방에 풀어주는 기괴한 웃음을 전해준다.

작품 속 중요인물 소개

기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몇몇 중요 인물들과 더불어 주인공 영호충에 대해 살펴보자.

부처님 같은 넓은 도량과 깊은 무공을 지녔지만, 세상일에는 아이처럼 순진한 소림사 방장 방증대사는 문무와 덕을 겸비한 무당파 장문인 충허도장과 초라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는 몰골로 돌아다니며 기괴한 행적을 그리는 형산파 장문인 막대선생과 함께 영호충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몇 안 되는 강호 협객 중 하나이다. 방증대사는 일월신교(日月神敎) 임교주의 외동딸 임영영이 부상당해 기절한 영호충을 소림사로 데려오자 영호충의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비급이자 소림사 최고의 무공인 역근경(易筋經)을 약속대로 전수해 주면서도 소림사 사람을 네 명이나 죽인 임영영을 적대감 없이 손님으로 정중하게 맞아들인, 보통사람들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넓은 아량과 자비를 가진 고승이다. 그는 충허도장과 함께 영호충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해주며 이들 세 사람과 함께 강호의 피비린내 나는 최후의 혈전을 막는 데 한몫한다. 막대선생은 비록 영호충과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지만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 영호충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거나, 영호충이 마교의 인물들을 친구로 사귀다 화산파에서 쫓겨나면서 정파의 눈 밖에 났을 때 영호충의 의협심과 의리만은 정파와 사파를 초월한 진정한 영웅호걸의 강직한 마음임을 알아주는, 그리고 훗날 영호충과 임영영이 결혼식을 올릴 때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지라도 자신 만은 참석해서 국수를 먹어줄 거라는 약속을 은은한 호금 연주로 지킨 대장부이다.

음흉하고 꾀가 많은 숭산파 장문인 좌냉선은 항산파, 숭산파, 화산파, 태산파, 형산파 즉, 오악검파(五嶽劍派)를 하나로 합병하고 자신은 그 오악파의 장문이 되어 무림에 우뚝 서고자 하는 야심에 찬 인물이다.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주도면밀하게 계산하고 꾸며온 음모는 겉으로는 군자처럼 행동하는 위엄 있고 근엄한 가면 뒤에 그 누구보다도 음흉한 본모습을 숨겨온 화산파 장문인이자 영호충의 은사이며 사부인 악불군의 치밀한 계획과 맞부딪치게 된다. 이 밖의 오악검파 장문인에는 마수의 사악한 계략에 넘어가는 바람에 소림사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상하고 따뜻한 항산파 장문인 정한사태와 자신의 급하고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태산파 장문인 천문진인이 있다. 비록 장문인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명성과 무공을 지닌 화산파에서 유일하게 영호충의 진심을 알아주고 끝까지 믿어주는 여장부이자 악불군의 부인인 영중칙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청성파 여창해에게 몰살당한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화산파에 입문한 귀공자 스타일의 임평지가 있다. 그는 무공은 보잘것없는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자신의 사부 악불군 못지않은 철면피에 사악한 촉수를 가진 흉측한 괴수이다.

이상이 정교(正敎)의 인물이라면, 이와 대립하는 마교(魔敎)의 인물로는 동방불패(東方不敗)의 계략에 넘어가 교주 자리에서 쫓겨나 항주 서호의 지하감옥에 갇힌, 계산적이며 포악한 성격을 가진 전(前)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이 있다. 그는 얼떨결에 자신의 흡성대법(吸星大法)을 익힌 영호충을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고통스럽고 위험한 흡성대법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비법을 미끼로 일월신교에 가입할 것을 강요한다. 임아행의 부하인 상문천은 위기에 빠진 자신의 목숨을 정사를 구별하지 않고 구해준 영호충과 일찌감치 의기투합한 인물로서 끝까지 영호충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또한, 마교의 걸출한 인물이자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강호의 인물 중 최고의 무공을 지닌 동방불패가 있다. 그는 임아행을 일월신교에서 쫓아내 서호의 지하감옥에 가두고 규화보전(葵花寶典)을 익혀 최고의 무공을 지니게 되지만, 양련정이라는 건장한 사나이를 총애한 나머지 그에게 전권을 휘두르게 하여 교단의 물을 흐려놓고 결국에는 앙련정에 대한 애정 때문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최고의 무공을 지난 고수이지만 사사로운 감정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동방불패를 보면, 보통 악당이 죽을 때 느끼게 되는 쾌감이나 기쁨보다는 진정 인생의 무상함 앞에서는 누구라도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서 짠한 애수를 느끼게 해준다. 이밖에 일월신교 영향 아래 있는 노두자, 조천추, 계무시 등이 있다. 이들은 비록 정교의 인물은 아니지만 한번 맺은 신의(信義)는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사내대장부들이다.

다정다감한 남자 영호충

자, 이제 작품의 주인공이자 남자라면 한 번쯤 꿈꾸게 되는 대장부이고 여자라면 한 번쯤 품에 안기고 싶은 다정다감한 남자인 영호충에 대해 살펴보자.

그는 고아로서 어렸을 때 악불군 부부 밑에서 키워졌으며, 부지런히 무공을 연마한 덕분에 화사판의 대사형이 된다. 의(義)를 중시하는 영호충에게는 이 두 사람이 키워준 은혜는 평생토록 저버릴 수 없는 절대적인 의무였고, 어떻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이러한 그의 충직함은 마지막까지도 독자의 마음을 꽉 움켜쥐고 놔주지 않는 답답함을 주기도 하지만, 어찌하리오. 그의 천성이 착하고 의로운 것을.

또한, 그는 영리하고 총명해서 무적의 검법인 무초승유초(無招勝有招)의 독고구검을 이른 시기에 깨우치지만, 결코 떠벌리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술을 좋아하는 호탕함 때문에 마교 사람이라도 자신과 뜻이 맞는 인물이라면 서슴없이 친구로 받아들인다. 정파 사파를 가라지 않고 의리를 지키려는 영호충은 결국 화산파에서 추출 당하면서 정교에게 배척당하는, 정파에 속한 강호인으로서는 결코 맛보고 싶지 않은 치욕을 겪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평지 가문의 벽사검보(辟邪劍譜)와 화산파의 육사제를 죽인 것도 모자라 화산파 비급인 자하(紫霞)비급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까지 덮어쓰게 된다.

이런 와중에 악불군 부부의 외동딸이자 화산 옥녀봉에서 같이 자란 영호충의 잊지 못할 첫사랑인 악영산까지도 그를 의심하다 임평지에게 시집을 가버리자 영호충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쓰라린 상처를 받게 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곁에는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항산파의 어린 비구니 의림과 괄괄한 임아행의 딸 임영영이 있어 영호충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준다.

색마 전뱅광에게 욕을 당할 뻔한 위기에서 중상을 당하면서까지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영호충에 대한 은혜 때문에 평생 영호충을 사모하게 되는 의림은 속으로 파고드는 영호충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못 이겨 고개 숙인 한 떨기 가련한 꽃처럼 시들어 간다. 마음이 따뜻한 독자라면 그녀의 순결하고 가련한 사랑에 마음 한가득 애틋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총명하고 예쁘지만, 손을 쓸 때는 매섭기 그지없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자존심 강한 임영영은 노두자, 조천추, 계무시 등을 포함한 일월신교 영향 아래 있는 많은 영웅호걸의 우러름과 공포의 대상이지만, 호탕한 영호충 앞에서만은 다른 처녀와 다름없는 부끄러움 타는 소녀일 뿐이다.

인간성은 정파와 사파를 구분하지 않는다!

렇다면 이렇게 자유분방한 영호충이 보는 정파와 사파는 어떠한가. 상문천은 영호충에게 입교를 권유하며 이런 말을 한다.

“동생 그날 동방불패가 많은 사람을 보내 내 뒤를 쫓을 때 그 수단의 악독함이란 자네도 친히 보아서 알 것이네. 만약 자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그 정자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네. 자네의 심중에는 정파와 마교의 구분이 있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수백 사람이 자네와 나를 포위해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거기에 무슨 정파고 마교가 있겠는가? 사실 모든 일이란 사람이 만든 것이네. 정파 중에는 좋은 사람만 있고 간사하고 악독한 사람이 없으라는 법이 있는가? 마교 중에는 좋은 사람은 틀림없이 적지 않으나 우리 세 사람이 대권을 장악한 다음 잘 정리를 한다면 그 잔악 무도한 패류들을 모두 깨끗이 쓸어 버리면 되는 것일세. 그러면 이 강호에 호걸지사들은 모두 반겨주지 않겠는가?”

좌냉선과 그의 수하들이 보여준 악랄함과 영호충의 사부이자 군자로 칭송을 받아왔던 악불군이 보여준 위선, 그리고 수십 년 전 화산에서 오악검파의 고수들이 무공 실력만으로는 상대가 안 되자 비열한 계략을 써 마교의 십장로를 사과애 동굴에 가둔 일들을 알게 되면서 비록 정파의 인물일지라도 잔악함과 비열함은 마교를 능가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영호충은 깨닫게 된다. 현대에 와서도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신의 가르침대로 선행을 쌓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아무튼, 인간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탐욕은 고금을 아울러 변치 않는 불변의 속성이다.

젊은 영웅 영호충은 자유분방하게 정파 사파 구분없이 자기 뜻대로 의로운 친구들을 사귀지만, 끝까지 그의 마음속을 괴롭히며 그의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바로 악불군 부부에 대한 뿌리 깊은 은혜다. 훗날 정한사태의 유언을 받들어 항산파의 장문인 자격으로 숭산 대회에 참가하는 영호충은 제자였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항산파의 다른 제자들의 체면을 무시한 채 악불군 앞에 넙죽 절하는 경거망동은 모질지 못한 그의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무공은 손에 검을 들었을 때만 무적이니 이 또한 그의 또 다른 약한 모습이다. 영웅이라고 해서 만사에 천하무적일 수는 없는 것처럼, 이렇게 장단점이 적절하게 조화된 인물이야말로 생생하게 살아서 독자의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감동과 달콤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지 않겠는가.

작품의 제목 『소오강호(笑傲江湖)』에 대해

오강호는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신교의 곡장로가 의기투합하여 작곡하고 또한 두 사람이 연주하는 칠현금과 퉁소의 합주곡 이름으로, 『소오강호』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이 유정풍과 곡장로가 연주하는 소오강호라는 곡(曲)에 그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형산파의 명망 있는 무림인인 유정풍은 금분세수(金盆洗手) 의식을 통해 강호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으나, 오악검파의 맹주인 좌냉선의 명을 받들고 온 그의 제자들은 유정풍이 마교의 곡장로와 왕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정풍을 배반자로 낙인찍은 것도 모자라 그의 가족을 금분세수에 참석한 전국에서 모인 군중이 보는 앞에서 참혹하게 몰살한다. 두 사람은 정파 사파의 도리를 떠나 오로지 음률 하나만으로 의기투합한 막연한 사이였고, 그러한 만남은 강호의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었으나, 정파와 마교는 양립할 수 없다는 편견과 아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대다수 무림인은 그를 정파의 배반자로 생각했다.

사랑하던 가족과 아끼던 제자들의 시체들이 즐비한 집을 곡장로의 도움으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유정풍은 형산성 밖 황량한 들판으로 도망쳐 영호충이 듣는 앞에서 곡장로와 함께 마지막으로 소오강호를 합주하고는 영호충에게 악보를 맡긴다. 이승에서 못다한 두 사람의 고결한 우정은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끝맺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으로 마무리된다. 의리 때문에 자신의 가족과 제자를 희생한 유정풍의 단호한 결심을 본 독자 중에서는 유정풍이 곡장로에 대한 의리가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우선시하는, 물건을 만드는 기업이나 그것을 파는 장사꾼이나 정직함과 신의보다는 고객의 심리나 약점을 이용하거나 때론 속이기도 하면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술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로 속이고 속여 먹는 요즘 세상에 사는 우리가 어찌 강호의 진정한 의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두 사람이 마지막 남은 내력을 발산하여 합주한 소오강호는 갑자기 높아졌다가 갑자기 낮아지는 등 복잡하고 변화가 많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한껏 동요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구슬픈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도 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절한 곡이다.

곡장로는 죽기 전 영호충에게 악보를 맡기면서 다음과 같이 소오강호 내력에 대해 설명한다.

“나와 유 형제는 음률에 깊이 빠지고 말았네. 그리하여 수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서는 '소오강호'라는 한 곡을 지어 내었는데, 이 곡의 기이함은 천고에 없었던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네. 금후 이 세상에 곡양과 같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유정풍이라는 사람이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유정풍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곡양이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네. 설사 곡양과 유정풍과 같은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두 사람이 동시에 태어나서 서로 만나게 되어 사귀게 되리라고는 볼 수 없네. 즉 음률에 정통하고 내공에 정통한 두 사람의 뜻이 맞고 성격이 비슷하여 함께 이런 곡을 지어낸다는 것은 실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일세. 이 곡이 단절되게 된다면 나와 유형제는 구천지하에서도 길게 탄식을 불어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네.”

교파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었던 두 사람의 뒤를 이어 그들이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화려하게 펼쳐보이는 인물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영호충과 임영영이다. 이 두 사람 역시 소오강호를 작곡한 유정풍과 곡장로처럼 서로 다른 교파의 인물이지만 주변의 끊임없는 간섭과 험난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게 되면서 작품 마지막에는 유정풍과 곡장로가 환생이라고 한 것처럼 함께 소오강호를 연주하게 된다.

작품의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연주되는 소오강호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영호충은 작품 마지막에 임영영과 함께 소오강호를 연주하고는 유정풍과 곡장로가 합주했을 때를 생각하며 두 사람이 이 곡을 지은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바로 정파와 사파가 그동안 피로써 맺힌 원한을 풀고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는 것을 …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은 영호충과 임영영의 합주로 승화되면서, 이로써 오랜 갈등과 원한 관계로 피비린내가 멈추지 않았던 강호에는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온다. 아쉽게도 글로 연주되는 곡이라 금과 퉁소의 어우러짐과 선율의 아름다움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1990년에 개봉한 영화 『소오강호』의 주제곡처럼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곡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가사만큼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험한 파도에 웃음을 싣고, 물결 따라 덧없이 살아온 삶, 한 잔 술에 웃음을 담아, 모든 은원 깨끗이 잊고 살리라, 산천초목도 따라 웃누나,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 부질없어라, 소슬바람에 미소 지으며, 모든 근심 잊고 살리라, 우리네 인생은 아름다운 것, 욕심 없이 어우러져 웃고 살리라.”

정말 인생의 무상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진리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남녀노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 이러한 이치대로 돌아갔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마치면서...

근에는 귀찮기도 하고 글 실력도 터무니없고 해서 독서 후기를 되도록 간략하게 작성해 왔으나, 오래간만에 독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재미와 마음속 가득한 감동 때문에 작품을 읽으며 가슴 속에 쌓아두었던 소감의 말들을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횡설수설 되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실속 없이 지루하기만 한 긴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무협지라고 하면 삼류소설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 그런 무협지조차 별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한 말이기에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 읽었던 『소오강호』의 느낌과 기타 이러저러한 책들을 수백 권 이상 읽고 작금에 와서 다시 본 『소오강호』의 느낌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평범한 초등학생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을 때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 다시 읽었을 때, 이해력이나 기타 삶에 대한 경험에서 오는 차이에 따라 감흥이 틀리듯, 인제야 『소오강호』에 담긴 그윽한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용의 해박한 지식, 간결하고 조촐하지만 마법처럼 흡입력 강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논리정연하고 치밀한 김용의 이야기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한 번쯤은 읽고 넘어가야 할 또 다른 고전이다.

마지막으로 무협지에 묘사되는 피비린내나던 강호 세계가 현대에는 사라졌을까. 옛날에는 검이나 장법 등으로 무술 실력을 겨루는 ‘무공’이 돈을 버는 능력으로서의 ‘무공’으로 바뀌었을지 망정 우리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돈 비린내 나는 현대판 강호, 고결한 의리와 정의로운 협행은 사라지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인정사정없는 세계에서 우리는 사는 것은 아닐까.

이 리뷰는 2014년 08월 31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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