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장의 재판 | 박은우 | 평점에 속았다고밖에....
평점에 속았다고밖에….
다른 사람들은 재밌게 읽은 책이 난 별로 재미가 없다면,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나의 독서력이 그 책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또 다른 경우는 그 책이 나의 독서력을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
『사신의 술래잡기』 리뷰를 쓰면서 선언하듯 단호히 말했다. 리뷰는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고. 혹시라도 누군가 내 변변치 못한 글에 자극받아 (내가 소개한) 책을 선택할지도 모르는데, 정직하지 못한 리뷰로 사람들을 속인다면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뿐만 아니라 돈까지도 날려버릴 수 있다. 그와 함께 나의 글에 대한 신뢰도도 처참하게 무너진다.
『청계산장의 재판』을 읽으면서 고심한 것도 그런 점이다. 가감 없는 정직한 리뷰를 쓰고자 한다면 과연 이 책에 대해 무어라고 쓸 수 있을까? 수준 미달 텍스트에 대한 실망, 열등감에 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현실감 없는 범죄, 인격을 부여받지 못한 안드로이드 같은 등장인물들, 매끄럽지 못한 사건 진행, 엉성한 플롯 등의 산재한 문제점들을 그냥 넘어가자니 질퍽한 똥을 싸고도 뒤를 안 닦은 듯한 께름칙함이 나를 옭아맨다. 이런 조잡한 소설로 시간 낭비했다고 혼자 속을 썩여야 하나? 아니면 현명한 독자를 위해 허심탄회하게 귀띔이라도 해줘야 하나?
그보다는 어쩌다 내가 이런 형편없는 소설을 선택해야 했나? 하고 자책하고 싶다. 인터넷 서점에 거짓 평점을 올린 아르바이트생들을 싸잡아 파묻고 싶다.
내 선택에 대한 실망과 책 내용에 대한 실망이 밉살스럽게 뒤엉킨 분노는 제쳐두고, 저질이든 고질이든 모든 책은 그 책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이 모든 불만 불평은 이 책을 선택을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
그래도 억울하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아무리 후하게 평해도 (별 다섯 개 만점에서) 두 개 정도면 족할 소설이 별 네 개를 받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 소설이 수많은 대가의 작품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 도서관 출입이 뜸한 상태에서 읽을 책이 좀 귀해지다 보니 나의 귀가 너무 얇아진 덕분에 평점에 너무 쉽게 속은 것 같다. 나의 불찰이로다.
<고립된 산장은 범죄 • 추리 소설의 단골 메뉴> |
앞도 뒤도 없는 복수극을 원하는 독자라면
보살처럼 나의 불만 불평을 꾹 참고 여기까지 읽은 진득한 독자들을 위해 『청계산장의 재판』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몇 가지 언급해야겠다는 기특한 마음을 먹는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한두 가지 장점은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나의 소심하고 나약하고 여린 심성이 지속적인 험담을 견디지 못하고 못내 불편함을 드러낸 것 또한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다소 마음이 평안해진다. 이렇게 해야만 나름 정성껏 글을 썼을 것이 분명한 작가에 대한 괜한 미안한 마음도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평균 독서량에 비하면 학력만은 대단히 높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즐길 수 있는 부담 없는 문장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가볍게 한다. 한마디로 학력, 교양, 지식,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고 ‘복수’라는 소재를 좋아한다면 (재밌고 재미없고를 떠나)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읽을만한 문장’에 둔 나 같은 독자라면 야한 잡지를 보다 선생님에게 들킨 학생처럼 후다닥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특징 없는 밋밋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그저 독서 릴레이 중 간간이 즐기는 머리 식히는 용도나 기분 전환용으로 읽으면 될 듯싶다. 솔직히 말해 그런 용도로 읽기에도 격이 떨어지지만 말이다.
추리 소설이니만큼 개괄적인 범죄 구성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폭발물 하나로 경찰의 진압 의지를 단밖에 꺾어버리는 심리 트릭은 독자의 예상을 살쩍 뛰어넘는다. 다만, 범인과 공범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짜임새를 느끼기는 어렵다.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산만하다고 할까나? 물론 이런 미흡함을 보완하고자 주범이 공범의 배신을 계획 일부로 계산한 점 등은 참신하다고 볼 수 있다.
부잣집 도련님이나 잘나가는 상위층 인사들을 제물 삼은 것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이런 소재는 지금보다는 지강헌 탈주 사건이 있었던 1990년대 전후라면 더 잘 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을 이렇게 저렇게 쌓인 울분을 풀어내는 대리만족의 기회로 읽는 독자, 또는 통쾌한 복수극에서 희열을 찾는 독자에겐 이보다 더 찐하고 흐뭇하고 짜릿하고 통렬한 복수는 없을 것이다. 복수 자체는 의문의 여지로 삼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나름 깔끔했다. 하지만, 일련의 복수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열등감’이란 단어를 끝내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다. 이런 거로 우월감을 느껴봤자 공허할 뿐이지 않을까 싶다.
아, 쓰다 보니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지적한 것 같아 송구스럽다. 가볍게 읽을 뭔가를 찾는 독자에게 이보다 더 가벼운 소설은 없을 것이다. 너무 가벼워 책이 공중 부양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설 속 청계산은 서초구에 있는 것이고, 사진은 경기도 포천의 청계산(출처: 포천일보)> |
‘라이트 노벨’이구나 깨달을 때 다롱이는 ‘댕댕’ 종을 울린다
그런데 열심히 리뷰를 쓰다 보니 퍼뜩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라이트 노벨’...
생각해 보니 『청계산장의 재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라이트 노벨’ 같은 부류의 소설이다. 말로만 듣던 ‘라이트 노벨’, 내가 보기엔 가치를 논할 가치가 없는 책들, 그래서 애써 리뷰할 필요도 없는 책들, 한마디로 책 중의 ‘정크 푸드’ 같은 존재들, 먹는 것보단 안 먹는 것이 나은 정크 푸드처럼 읽는 것보단 안 읽는 것이 나은 책들, 그런데도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드는 단순함과 지긋지긋한 일상을 후려치는 통쾌함 때문에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존재들, 그래서 한두 번 발길을 들이기 시작한 독자를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마약 판매상 같은 존재들.
사정이 이러하니 지금까지 내가 지껄인 모든 소리는 흰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해 기껏 짜장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공화춘 짜장이 이러쿵저러쿵한다고 운운한 격이니 내가 생각해도 바보 멍청이가 따로 없다. 혼자 별것도 아닌 일에 심각하게 열을 올린 것 같아 민망하다. 그렇다고 꽤 긴 시간을 궁리하고 시냅스를 번쩍이는 열량을 소비하며 공들여 쓴 글을 버리는 것은 아깝다. 겸연쩍고 무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이런 나의 오갈 데 없는 착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롱이는 열심히 코를 곤다. 그 모습을 곤히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는 한 곳을 멀뚱히 바라본다. 가습기에서 희뿌연 수증기가 뱀이 흙 위를 기어갈 때 날법한 음산한 소리를 내며 차분하게 뿜어져 나오는 곳이다. 어지간히도 목이 탔나 보다. 자다가 깬 것도 모자라 자린고비라도 하듯 수증기로 갈증을 달래려고 한 것을 보면. 물그릇에 시원한 새 물을 채워주니 냅다 달려와서는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하늘이 무너져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다음 순서는 아마도 소변을 보는 일이라.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종을 울리며 웨이터를 부르듯 두툼한 앞발로 창문에 달린 종을 치며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어 달라고 신호하는 다롱이. 인제 그만 써야겠다. 지린내 나는 다롱이 오줌보다 더 지독한 내 글을 얼른 치우고 자야겠다.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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