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X, 2022) | 식욕, 성욕, 살인엔 나이가 없다?
<룰루랄라, 로케이션 장소로 이동하는 조촐한 영화팀> |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맥신과 맥신의 남자친구이자 프로듀서인 웨인은 작은 영화팀을 이끌고 노부부인 하워드와 펄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넓고 한적하며 주변에 촬영을 훔쳐볼 엉큼한 이웃도 없는 이 농장이 마음에 든 그들은 마음 놓고 성인영화 제작에 돌입한다.
맥신 일행은 낮에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일과 쾌락을 동시에 좇고, 밤에는 술을 마시고 섹스와 사랑에 대해 수다를 떨며 젊음을 만끽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다짜고짜 산탄총을 들이대는 보는 하워드와 그들의 촬영 장면을 몰래 엿보는 펄은 젊은이들의 활력 넘치는 방탕을 그냥 두고만 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상대가 바람만 스쳐도 픽 쓰러질 것 같은 노인네라서 그런 것일까? 맥신 일행은 가드를 내린 치 젊은이의 특권이라도 되는 듯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할머니, 그러시면 안 돼요!> |
<곧 여자의 가위 조르기가 시연되고 남자의 목은 싹둑!> |
흑백 TV에선 늙은 목사의 달갑지 않은 설교가 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올 때, 현실에선 목사를 엿 먹이듯 젊은이들이 쾌락과 명성을 탐닉한다.
펄의 성적 요구를 건강 때문에 거부해야만 하는 하워드의 머리가 숙어질 때, 한쪽에선 노부부를 비웃듯 남자 몸 위에 요염하게 올라탄 여배우의 머리가 흥분과 쾌락에 절규하며 뒤로 젖혀진다.
펄이 한때 요정 같았던 자신의 옛 모습을 색기 넘치는 맥신의 육체를 훔쳐보며 추억할 때 그녀는 이미 젊음을 섭취하고 싶은 잔인한 포식자가 되어 있었다. 마치 인생의 무상함과 젊음의 덧없음이 펄에게 체관의 지혜가 아니라 포식의 본능만을 남겨놓은 것처럼.
<이로써 악어의 점심은 해결될 수 있을까?> |
<아침 남자의 그것처럼 우뚝 솟은 대못은 피 맛을 볼 수 있을까?> |
성욕은 무조건 인내해야 할 부정적인 본성으로만 다뤄줘 왔던 유교 문화에서 할머니가 손자뻘 되는 남자에게 구걸하다시피 섹스를 요구하는 이 영화는 꽤 충격적이다. 사실 사람에게 있어 식탐만큼이나 강한 것이 성욕인데, 유교 문화에서 노인들은 거의 무성 동물로 취급됐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자나 남자를 밝힌다는 것은 점잖지 못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추하고 꼴사나운 짓이다. 그러하기에 우리 주변에선 나이를 먹을수록 식탐이 과해지는 노인네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욕을 거세당하니 그에 대한 반동으로 식탐이 과해지는 것이니라.
건강히 허락한다면 노인들도 충분히 섹스를 즐길 수 있지만, 영화에서 보듯 그들의 섹스가 일본의 AV처럼 마냥 자극적인 것은 아니다. 아마 어느 할머니가 이 영화를 보면 왠지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섹스는 아름답다거나 황홀하다기보다는 젊음, 꿈, 욕망, 열정 등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절규 비슷한 절절함과 봐선 안 될 것을 본 것 같은 께름칙함으로 관객을 압살한다.
<할머니 또 그러신다, 안 된다니까요> |
<아가씨, 사람을 보고 그렇게 소리 지르면 못써!> |
펄의 앙상한 뼈마디가 하워드의 신통치 않은 육체 아래서 삐거덕삐거덕 섬뜩한 신음을 토해내며 쾌락을 고문할 때, 맥신의 날렵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육체는 근육질 남자 품에 안겨 철퍼덕철퍼덕 쾌락을 펌프질한다. 징그러우면서도 기묘한 이 대비는 젊음과 늙음의 가장 큰 차이는 욕망 같은 내면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겉으로 드러난 육체의 차이임을 은유한다.
어느 할머니가 이 가련한 펄 역할을 맡았을까 하는 생각에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알고 보니 맥신 역을 맡은 미아 고스(Mia Goth)가 1인 2역을 연기했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다. 배우 김수미가 「전원일기」에서 32세의 나이로 60대 노모인 ‘일용네’ 역을 맡은 것처럼 미아 고스도 한창나이인 20대 후반에 90대(?) 할머니 역할을 맡은 격인데, 감쪽같이 속은 것은 나의 둔감함도 있겠지만, 분장술과 연기력도 감쪽같았다.
젊음을 질투한 나머지 하이랜더나 흑마법사처럼 사람을 죽여 그 생기를 획득하고자 하는 펄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운) 욕망은 젊음을 유지하고자 처녀의 피로 목욕했다고 하는 바토리 에르제베트(Báthory Erzsébet) 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대의 음울한 분위기를 잘 살린 노래 ‘Oui, Oui, Marie’ 등의 OST도 듣기 좋지만, 이보다는 격렬한 정사 장면에서 비명처럼 쏟아내는 신음 때문이라도 헤드폰 착용을 권장한다. 폭력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경로 우대’에 반하는 망측한 장면들이 좀 있으니 (아마도 이 때문에 일본에선 개봉했지만, 한국과 중국에선 아직 미개봉?) 선비분들은 나름 볼만한 영화 괜한 트집 잡지 말고 알아서 거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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